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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10/03

정태인의 호시탐탐 5회 박상훈교수편_박상훈의정치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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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델란드 소년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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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뭐~네델란드 소년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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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 반대 "강은 흘러야 한다"

친북인사 수경스님

 

 법정스님의 다비식이 있던 13일 경기도 여주 신륵사로 향했다.

 

 새만금과 지리산 환경파괴를 삼보일배의 정진으로 막으셨던 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 수경스님은 현 정부의 '4대강사업은 mb정부의 녹색세탁'이라며 4대강 사업 반대를 위한 <여강선원>을 신륵사 앞마당에 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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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경스님은 “대운하와 FTA, 광우병은 모두 우리와 자연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 아니냐"며 2008년 2월 한반도 대운하 건설에 반대해 종교인들과 103일간 4대강 순례를 했고, 지난해에는 mb정부의 개발 만능주의와 불통을 꾸짖고자 지리산 노고단에서 파주 임진각까지 문규현, 정종훈 신부님과 53일간 오체투지를 진행했다.

 

 보수 민간단체인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는 수경스님의 이런 사회참여를 친북, 반국가행위라며 1차 명단에 스님의 이름을 올렸다. 

 


 강은 흘러야 한다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남한강 가에 위치한 신륵사는 신라시대에 지어진 천년고찰이다. 그러나 그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던 금모래 은모래 백사상에서는 이미 모래 채취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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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을 모시는 사람들이 강을 모시는 것이 아닌 강을 모시는 사람들이 부처님을 모신 <여강선원>대웅전은 세 평 남짓한 콘테이너 박스. 비록 협소한 <여강선원>이지만, 4대강 사업 반대가 특정 종교의 외침이 아닌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의 염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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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를 맡은 현각스님은 '<여강선원>은 이런 사태를 맡게 된 것을 참회하고 기도하는 선방이 될 것'이라며 "정부가 보기에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무모한 삽질을 멈추고 원래 모습 그대로 흐르게 될 것이란 희망을 갖는다"며 개원식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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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림 시인은 격려의 말에서 "'아름다울 여(伃)'자를 쓴 '여강'이야말로 남한강의 꽃인데, 수중보를 만든다는 구실로 강이 조각조각 찢기는 것을 보니 '추한 모양 여'자 '여강'이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며 정부뿐 아니라 이 사태를 손 놓고 바라보는 우리 모두 각성해야한다고 경고했다. <다시 여강에 서서>라는 격문을 준비한 박남준 시인도 사특하고 경박한 이명박 정부만을 탓하는 것은 아니라며 "여강, 낙동강 앞에 대한민국은 범죄자이며 죄악의 공조자입니다"라고 자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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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우리들의 기도가 탐욕 때문에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고 함부로 물길을 막고 땅을 파헤치는 일 없이 온 생명이 함께 즐거이 살게 하는 자유와 평화의 숨길이게 해주시옵소서. 오늘 우리들의 기도가 최선을 다한 사람의 마지막 한 방울 눈물이게 해주시옵소서”라며 <생명을 위한 기도문>을 읽던 수경스님은 결국 눈물을 보이셨다. 4대강 개발 사업으로 무참히 유린되고 있는 환경과 뭇 생명에 대한 안타까움이자, 수행자로서 우리와 한 몸, 한 생명인 자연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참회의 눈물이었다.

 


 이재오와 이명박, 그리고 우리들에게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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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경)스님께서 바지 걷어 부치시고, 맨발로 썩은 영산강물에 한 번이라도 들어가 보셨습니까? 영산강변에 널려있는 쓰레기더미를 보셨습니까? 저 영산강의 자갈 모래를 팔고, 민간투자를 더해서, 원래의 맑고 푸른 영산강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그것이 대재앙이고 생명파괴입니까?"라며 끝장토론을 제안했던 이재오에게 고한다. 국회의원에 떨어진 것은 운명이나, 자연을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것은 천륜을 거스르는 일 임에도 강행하는 게 옳은 것인지. 

 

 바지 걷어 부치고 수돗물이 흐르는 청계천에 들어갔었던 이명박 대통령에게 고한다. 4대강에 살아있는 물고기가 아닌 로봇물고기를 헤엄치게 만들 것인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들에게 고한다. 4대강 사업으로 생태계가 파괴되면 결국 우리의 생명이 위협당한다는 것이 명백함에도 눈 앞의 이익만을 쫓아 후대를 부끄럽게 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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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강선원>에 걸린 현수막 글귀

 

 사람들은 물뿐인 수로보다 모래밭과 여울이 있는 강을 더 원합니다.

 맑은 여울과 드넓은 백사장, 다양한 생명들이 살아 숨 쉬는 4대강. 
 태초이래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 곁에 남아있는 4대강은 그 자체로도 우리 삶에 크나 큰 선물입니다. 
 모든 땅과 물은 나의 옛 몸이고 모든 물과 바람은 나의 본체입니다. 
 강은 굽이치고 여울지며 상처받은 몸을 스스로 치유하고 물고기와 새들을 품에 안고 기르는 살아있는 생명체입니다. 
 생명의 젖줄인 우리 강.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는 강을 보고서야 그것이 생명의 강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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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스님 칼럼(한겨레, 2008년 4월 18일) "생명의 강에 비친 우리네 탐욕 대운하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와 당시 운하 전도사를 자처했던 이재오 반박글 "대운하, 파괴 아닌 뱃길 복원"

http://blog.daum.net/bulyak/66?srchid=BR1http%3A%2F%2Fblog.daum.net%2Fbulyak%2F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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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경제학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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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인(경제평론가)

 

 

 

 

사랑의 경제학 (3) - 우리는 언제 천사가 되는가


제 잘못입니다. 1월호의 구체적인 게임에 관해서는 여러분이 다양한 답변을 해 주셨지만 2월호의 추상적인 질문, “언제 인간은 이타적이 될까?”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런 반응도 없었습니다. 사실 막연합니다. 제가 이 연재를 시작했을 때 밝힌 것 처럼 이 세상 그 누구도 ‘정답’을 모른다는 게 진실일 겁니다. 거의 모든 종교가 “이타적으로 행동하라”고 가르치지만 현실에서 는 그 주옥같은 교리들이 별로 힘을 발휘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서로 생각나는 대로 자유롭게 얘기를 해나가야만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물론 지난 10년 동안 학계에서 논의된 것들이 있지만 저 역시 전공이 아니라서 상당한 논쟁 끝에 합의에 이른 몇몇 결론들만 알 뿐입니다. 여전히 논의는 초보 단계라서 고백하건대 ‘이기적’, ‘이타적’이라고 할 때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정의조차 애매합니다(오직 분명한 건 경제학이 상정한 인간의 행동원리 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가이 없는 어머니 사랑”과 동네 단골 

우선 사랑하면 떠오르는 건 “가이 없는 어머니 사랑”입니다. 어머니의 행동은 실로 이기적이지 않습니다. 드라마에는 아귀같은 어머니들도 나오지만 보통 아이들에게 쏟는 정을 노후자금의 양과 비교하는 어머니는 없을 겁니다. 아버진 조금 덜 한 것 같지만 아마도 가족 관계가  대체로 그렇고 조금 범위를 넓히면 혈연관계에서도 이해타산을 넘어선 이타적 행위는 곧잘 일어납니다. 이렇게 발휘되는 이타성은 아마도 피가 섞인 정도가 적어질수록 줄어들 거라고 예상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이런 행위란 바로 우리의 유전자가 하는 이기적 행위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이기적 유전자”) 그렇다 해도 인간의 차원에서 해석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잠깐, 남녀 간의 사랑에서 나타나는 선물 공세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저는 돈 한푼 없던 대학생 시절, 없는 솜씨로 직접 그림을 그려서 선물을 하기도 했습니다. 피 한방울 섞이지 않고 내일 헤어지면 바로 남남인데 목숨까지 바치려는 그 열정은 도대체 뭘까요? 예의 유전자론은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한 이기적 행위라고 하겠지만... 이 경우에는 사랑을 얻는 데서 오는 만족감(게임이론의 보수)이 무한대이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 에로스도 정답의 후보 자격이 충분합니다. 이 세상 수많은 사람에게 수천억원, 수조원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을 느낀다면 틀림없이 세상은 훨씬 살기 좋아질테니까요. 불행하게도 남녀 간의 사랑에 존재하는 독점성(이건 필연적인 걸까요?)은 제3자에게 어쩌면 그 이상의 좌절을 낳고 심지어 살인까지도 불러 일으키니 이 답에는 어떤 유보를 남겨 둬야할 것 같습니다. 

세번째로는 매일 만나고 또 내일도 만날 사람에 대해서 우리는 이기적 행위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직접적인 보복이 두려워서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왕따를 당할 가능성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지난 호에 잠깐 얘기한 게임이론 식으로 말하자면 무한 반복 게임(또는 그럴 가능성이 높은 게임)에서는 이타적 행위가 득이 됩니다. 현실의 예를 찾자면 단골이 그렇습니다. 요즘의 24시 영업점은 사실 익명의 시장거래에 가깝지만, 동네 구멍가게에서 매일 야채를 사러 오는 고객한테 바가지를 씌우는 일은 별로 일어나지 않죠. 오늘 들어온 생선에 문제가 있다면 뜨내기 손님에겐 모르는 척 팔지 모르지만 단골에게는 “오늘 건 물이 별로 좋지 않아. 내일 사, 아님 쇠고기를 사”라고 말할 겁니다. 이렇듯 신뢰에 기초한 장기 거래는 시장경제에서도 매우 효율적입니다. 최근 대규모 리콜 사태로 완전히 체면을 구겼지만 도요타의 경쟁력을 예찬할 때 이런 논의가 사용됐습니다. 

월드컵과 노사모

종교라든가, 코스프레 동호회라든가 하는 공동체에서도 이타성은 빛을 발합니다. 어떤 사람을 우연히 만났을 때 우리는 종종 냉정하게 행동합니다. 그가 싫어서라기 보다 모르기 때문에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또는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냉정이야말로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전제입니다. 그러나 끼리 끼리 모이면 곧잘 협조적인 행위를 합니다. 최근 오바마를 당선시킨 힘이나 그 원조격인 노사모의 힘을 생각해 보십시오.  집단에 속하는 데서 오는 심리적 안정감 뿐 아니라 자기 내부의 창의력이 고양되는 경험을 할 수 있고 꽤 많은 경우에 협조는 경제적으로도 우수한 성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 이타적인 집단의 크기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날 수도 있습니다. 이 집단 내부에서는 서로를 돕기 위한 경쟁, 또는 전체의 가치(목표)를 향한 경쟁이 일어나고 최선으로 보이는 행위는 곧잘 모방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부에서는 지극히 이타적인 집단이 바깥의 집단과 싸우기 위해 대단히 비이성적인 양태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즉 외부의 적 때문에 내부의 협력, 이타성이 고양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내부의 협력은 외부와 적대적 관계를 만들어 내는 데 이용되기도 합니다. 월드컵 축구의 경험도 있지만 남북한의 지배자들은 서로를 위협하는 상황을 만들어서 내부의 독재를 합리화하기도 했습니다. 종교간 전쟁이 가장 잔인한 살육을 하는 것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죠. 

우리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도 협력적 행위, 또는 이타적 행위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이건 현실을 잘 이해하게 되어서(게임의 그 구조를 잘 이해하게 되어서) 그럴 수도 있고, 토론과정에서 공동의 가치, 또는 의무감이 생겨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지난 호에 소개한 공공재 게임 중간에 토론 기회를 가지면 기부 액수는 현저하게 늘어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아마 작은책 독자라면 이타성이 발휘될 조건을 잘 살펴서 서로 충분히 토론한 후 특정한 제도를 만든다면 훨씬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실 겁니다. 예. 바로 그게 다음 달 주제입니다. 제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왜 물질적으로 못 살 때보다 지금 더 사는 게 훨씬 더 팍팍할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 사회의 제도나 분위기가  이기적인 사람에게 훨씬 더 유리하게 변했다는 것도 들 수 있을 겁니다. 돈을 제외한 어떤 가치도 그저 립서비스일 뿐 실제로는 돈 많은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으로 존중받는 분위기가 그렇습니다. ‘가난한 소크라테스’는 크산티페 뿐 아니라 자식에게도 그냥 무능한 사람으로 보일 뿐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정신적인 걸 뿌리치지 못하거나 사랑에 목 매달다 생활이 흐트러지는 사람은 ‘쿨하지 못한 찌질이’일 뿐입니다. 부동산투기나 주식투기로 돈 번 사람, 사교육을 시켜서 아이를 일류대학에 보낸 부모를 겉으론 비아냥거려도 속으론 하냥 부러워 하지 않나요? 이타성이 존중받는 제도란 어떤 걸까요? 그렇지만 위에서 든 아주 간단한 이타성의 예조차 사회적 제도로 번역하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역시 “대화가 필요해!”
 


사랑의 경제학 (4) - 협력의 제도화 

  
이타성? 질투?

지난 호에 인간이 이타성을 발휘하는 경우로 혈연(어머니의 사랑), 무한히 반복되는 행위(동네단골), 남녀 간의 사랑, 이해공동체 등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해서는 질투나 시기의 가능성 때문에 유보를 해 뒀었죠. 협력의 제도화를 얘기하기에 앞서서 이 문제에 관해 잠깐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최정규교수는 “이타적 인간의 출현” 개정증보판 서문에서 “최정규박사가 말하는 이타주의자는 바로 테러리스트일지도 모른다”라는 지인의 글을 보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썼습니다. 아랍공동체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전사들이야말로 이타적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요. 여기에 사랑에 수반되는 질투나 시기까지 고려하면 도대체 ‘이타적’이라는 말이 뭘 의미하는지 혼란스러워집니다. 

이런 혼란의 진앙은 확실합니다. 우리는 경제학에서 정의한 호모 에코노미쿠스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물질적 이익만 추구한다는 점에서 스크루지 영감을 떠올리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찌질한’ 감정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요즘 아이들이 말하는 ‘쿨’한 사람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인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동안 소개한 게임에서 드러나는 인간은 남의 행복을 고려하고(약한 상호성), 심지어 손해를 보더라도 이기적 인간을 응징하기도 합니다(강한 상호성). 즉 우리는 남을 생각하고, 그 남의 눈에 비친 나를 생각하는 사람, 즉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아닌 어떤 사람을 총칭해서 ‘이타적 인간’이라고 불렀던 겁니다. 그러니까 보통 의미의 ‘이타적 인간’만 여기에 속하는 게 아니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아파 하는” 사람들도 포함되는 거죠. 즉 이타적 인간이라기 보다 사타적(思他的)인간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우리 안에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는 건 금방 수긍할 수 있습니다. 맹자가 ‘측은지심’이라고 설파한 마음을 누구나 가지고 있는 반면  질투로 숨이 막히는 상황도 모두 경험했을 겁니다(그런 경험이 없는 분은 행복한 걸까요? 아니면 불행한 걸까요?^^). 어느 쪽이든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아닌거죠. 

협력의 제도화 

그런데 우리 사회는, 특히 경제는 호모 에코노미쿠스를 전제로 짜여져 있습니다. 물론 기나긴 인류 역사를 보면 기껏 300년이라는 지극히 짧은 기간만 그런 냉혈한(쿨한 인간)을 표준 인간형으로 상정한 겁니다. 또 “사랑의 경제학(1)에서 ‘배고픈 소크라테스와 배부른 돼지’ 얘기를 했습니다만 지난 40년 동안만 봐도 요즘에 이르러 ‘쿨한 인간’을 더 선호하게 되었다는 것도 분명합니다. 

눈 밝은 독자는 이미 눈치챘겠지만 인간이 원래 그런 게 아니라 제도가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측면도 있는 겁니다. 즉 사회학에서 말하는 ‘사회화’가 작용하는 겁니다. 남들이 다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나도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그게 ‘정상’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그렇다면 반대로 사람들이 이타성을 발휘하는 경우를 일반화해서 제도를 만든다면 사람들이 거기에 적응해서 서로 협력하는, 따뜻하면서도 생산성이 높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기적 인간이라면 결코 도달할 수 없는(죄수의 딜레마) 협력해를 우리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난 10여년 제가 계속 몰두한 것도 바로 이 협력의 제도화입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유치원에서 벌어진 유명한 일화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서구에서는 수업이 끝났을 때 보통 부모나 대리인이 오지 않으면 아이들을 내보내지 않습니다. 부모들이 지각하면 선생님들은 다른 일을 하지 못하고 아이들을 계속 돌봐야 합니다. 이런 폐해를 없애려고 유치원에서 30분 늦으면 만원, 한시간 늦으면 2만원, 한시간 반이면 3만원 식으로 벌금을 부과하기로 했습니다. 과연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요? 불행하게도 지각하는 부모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말하자면 벌금이 ‘면죄부’가 되어 버린 겁니다. 결국 이 제도는 실패로 끝났고 원래대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더더욱 불행한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벌금이 없어지자 지각하는 부모는 더 늘어났습니다.  

이 벌금제도는 분명 호모 에코노미쿠스를 전제로 만들어진 겁니다. 부모들은 이 제도에 맞춰서 호모 에코노미쿠스로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퇴근하지 못하는 선생님한테 대한 미안한 마음이 없어진 겁니다. 이런 일은 현실에서 제도를 만들 때 언제나 발생합니다. 정책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처벌 제도를 정교하게 만들면 만들수록 사람들은 딱 처벌 받지 않을 정도까지만 행동하게 됩니다. 

아내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해온 내 일생은 주례로서 적절하지 않습니다. 해서 대부분 거절합니다만 나이가 나이인 만큼 어쩔 수 없이 주례를 서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기쁨에 달뜬 신혼부부에게 “서로 미안해 하는 마음으로 살라”고 부탁합니다. 아직도 남성 우위가 판치는 우리 사회에서 뜻있는 많은 젊은이들이 평등의 계약서를 작성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계약은 불완전합니다. 어찌 미래에 일어날 모든 경우를 미리 써 놓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계약서에 규정돼 있는 의무 이상은 절대로 하지 않는 부작용이 생기고 때로는 해석을 둘러싼 분쟁도 일어나게 됩니다. 수요일 밤새도록 일한 아내/남편에게 계약서대로 목요일 아침을 차리라고 요구하면 서운한 마음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반대의 경우가 발생하면  ‘보복’을 하게 됩니다. 결국 사랑의 제도화라는 결혼이 온통 이기적 행동으로 가득 채워질지도 모릅니다. 물론 평등의 계약이 필요합니다만 거기에 더해서 서로 미안해 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계약서 이상의 좋은 결과를 낳을 겁니다. 

그러나 이렇게 사람들이 행동하도록 정책을 만드는 일이 그리 쉬울까요? 정책을 만들 때 우리는 제도를 약탈하는 사람(모든 제도는 추상적이기 때문에 그걸 악용할 방법도 언제나 찾아낼 수 있습니다)을 막으려고 최악의 경우를 상정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이기적”이라는 전제 하에서 제도를 만들게 됩니다. 이제 사람들은 유치원 실험에서처럼 그 기준에 맞춰서 행동합니다. 모든 사람이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죄수의 딜레마” 현상이 곳곳에서 발생하게 됩니다. 각 개인은 최선의 합리적 선택을 했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나쁜 결과를 얻게 되는 거죠. 

우리가 그동안 간단하게 살펴 본 인간의 본성, 또는 행위 동기에 대한 이해는 이런 문제를 풀어나가는 실마리를 제공할지도 모릅니다. 다음 호에는 당연히 호모 에코노미쿠스로 행동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은 경제 행위, 즉 시장원리에 따른 행위부터 들춰 보고 서로 협력하는 사회를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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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선의 빨간장화_김정헌위원장, 마을을 지키는 김씨를 꿈꾸다


 

 

 마로니에 공원 안 쪽에 자리한 아르코 미술관. 미술관 3층 창고 옆에는 김정헌 문화예술위원장의 임시 거처가 있다.

 

 적막한 위원장 사무실 창 밖으로 마로니에 공원이 한 눈에 들어왔다. 따사로운 봄 볕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모여 들었고 창가에는 복귀를 축하하는 화분이 놓여 있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위원장님"
 "아냐. 혼자서 심심하던 참인데 오느라고 수고했어."

 

 갓 내린 커피를 건내는 김정헌 위원장의 손은 하얗고 가늘었다. 붓을 잡고 그림을 그려야 할 손이 펜을 잡고 문서에 치이는 생활을 한 지 언 2년 반. 그러나 그는 아직 붓을 잡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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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그림을 그리다

 

 공주교도소 벽화(꿈과 기도_1985년 作 http://www.outsideart.net/archives/000288.html )를 그릴 당시 화가가 캔버스 위의 자기 생각에 갖혀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30m x 3m 크기의 큰 그림을 겁도 없이 그렸다는 김정헌 위원장.

 

 초대 문화예술위원장을 지낸 김병익 위원장이 '원 월드 뮤직 페스티발'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표를 내자, 위원회 활동을 하던 김정헌 위원장은 호선이 아닌 공모를 통해 두 번째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에 오르게 됐다.

 

 그 때가 2007년 9월 7일. 따라서 그의 임기는 2010년 9월 6일까지다.  

 

  그는 2년 반 동안 위원장 직을 맡으면서 지역 정부와의 협력형 사업을 통해 문화예술 기금을 마련하는 큰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이 로드맵을 문광부에 보고하려 할 때마다 일선 담당자들이 누락시켰다고 한다. 그러다 유인촌 장관이 보게 됐는데, (이 방법이 옳다며) 맞장구를 쳤다고 한다.

 

 "그 사람이 힘이 있어서 맞다고 판단하고 밀어붙이니까 내가 하는 것보다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더라. 그러나 빠른 대신에 준비가 안 된 채로 (중앙의 지원금이 지방으로) 내려 보내지는 것이다. 그것을 어느 정도 해놓고 나오고 싶었던 생각이 있었는데, 그것만 잘 만들어 놓으면 재원도 늘릴 수 있고 지역의 여러 가지 일들을 지방 정부가 알아서 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지 않았겠나. 그게 역점사업이었는데 해임되는 바람에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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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인촌 장관의 결단과 최문순 의원의 결단

 

 현 정권은 지난 정권에서 선출돼 임기가 보장된 정부 부처의 위원장들을 보란듯이 해임시켰다. 문화부 감사라는 압력 행사에 한국예술종합학교 황지우 전 총장도 지난해 5월 결국 사퇴했다. 

 

 문화예술위원회 수장 자리도 비슷한 명목으로 갈아 엎은 상태.

 

 유인촌 장관은 2009년 1월 담당 실무자를 동원해 약 50억 원(48.60%)의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문예 진흥기금 100억 원 투입되었던 펀드를 서둘러 환매하고, 환매가 안 된 펀드의 잠재적인 손실을 확정해 김정헌 위원장에게 기금 운영의 책임을 물어 위원장 자리에서 내쫒았다. 뿐만 아니라 김정헌 위원장 개인을 상대로 손실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해 놓은 상태다.  

 

 하지만 올해 1월 효력정지를 받은 상태에서 유인촌 장관의 부당 해임에 불복. 낙하산으로 새로 임명된 오광수 위원장에게 방을 내준 채 지금은 아르코 미술관으로 출근하고 있다.

 

 민주당 최문순 의원은 문화예술위의 사태에 대해 자신의 블로그에 이렇게 적어 놓았다.

 

-(김정헌 위원장 개인에 대한)감사를 이 잡듯이 했지만, 결정적인 하자나 비리를 찾을 수 없었고 결국 국민의 혈세인 기금(50억 원)의 손해를 확정지음으로써 그에게 경영책임을 묻고자 한 것입니다.

 

-사람 한명 쫓아내기 위해 50억 원의 손실을 확정했다. 자신의 돈이라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요? 이쯤되면 유인촌 장관을 업무상 배임혐의로 고소당해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출처)최문순의원 블로그 http://blog.daum.net/moonsoonc/8495297

 

 인터뷰를 끝내고 김정헌위원장과 늦은 점심으로 칼국수를 먹고 있는데 최문순의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러지. 내 나가지"
 "위원장님 어딜 나가신다는 건가요?"
 "19일 날 문방위에 문화예술위 업무보고가 있는데 나오라네. 나한텐 공식 참석 요청이 안 왔거든"
 "그럼 지금 오광수위원장은?"
 "요청받고 나가겠지. 그런데 최 의원이 내 자리도 마련한다고 꼭 나오라고 하는군"

 

 한 지붕 아래 두 위원장 사태. 2월 19일 YTN돌발영상은 당시 문방위장을 한 편의 코메디로 묘사했다.

 

  YTN돌발영상 '자리 다툼-코믹 버전'

  http://www.ytn.co.kr/_comm/pop_mov.php?s_mcd=0302&s_hcd=01&key=20100224142632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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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을 지키는 김씨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화가의 얼굴에 그려진 주름은 햇살이 됐다, 밭고랑이 됐다, 이내 담배 연기가 되어 사라지곤 했다. 

 

 민중미술 1세대로 불리우는 김정헌 위원장의 꿈은 작업실이 있는 경기도 가평으로 돌아가 마을단위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옛날 자료를 찾아보니 엽서로 만들어서 연하장 비슷하게 돌렸던 카드가 있다. 그 제목이 ‘마을을 지키는 김씨’다. 마을이라는 게 한국 사람들에게 안전한 이상향으로 마음 속에 누구나 남아 있다. 그것을 잘 활용해보자. 이상향을 정말 실패할 경우도 있겠지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가평 두밀리 마을 이장을 꿈꾸는 65살 김씨.
 그가 꿈꾸는 마을이 어서어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그 날이 오면, 함박 웃음 지으며 김씨와 막걸리 한 잔 하러 가야겠다.

 

 

 

 <칼라풀 인터뷰_문화예술진흥위원회 김정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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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인의 <호시탐탐 제3회> 이범 (교육평론가) 편

김정헌 위원장 인터뷰




현재 문화예술위 위원장이 2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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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헌 위원장은 2008년 12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해임됐다. 이후 2009년 12월 16일, 행정법원으로부터 자신의 해임 처분 집행 정지 결정을 받아냈다. 1년 만에 승소한 것. 하지만 문화부는 이에 불복, 현재 고등법원에 항소를 했다. 김정현 위원장의 임기는 오는 9월까지다.

김정헌 위원장은 문화부가 문화예술진흥기금 운용 규정 등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자신을 해임하자 바로 소송을 제기했다. 문화부는 지난 2008년 여러 사퇴 압력에도 당시 김 위원장이 물러나지 않자 문예진흥기금 운용 소실 등의 책임을 물어 그 해 12월 강제 해임했다.

앞서 유인촌 장관은 김정헌 위원장을 지목해 "지난 정부의 정치색을 가진 기관장은 물러나는 게 자연스럽다"고 압박을 가했었다. 작년 12월 법원은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아니하여 위법할 뿐 아니라 표적 감사에서 지적된 사항이 대부분 사실이 아니며, 해임에 이를 정도의 업무상 잘못이 없다"고 해임 무효를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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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임 효력 정지 결정을 받은 김정헌위원장은 다시 출근을 하자 3대 위원장 오광수 위원장과 함께 한 기관 두 위원장이 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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