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6

영길/ 어떻게 생각하세요?

혜린/ 우선 (웃음) 나는 무슨 그 50. 60년대 소설을 읽는 거 같은.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문화여서 나는 저렇게 동네에서 토박이들이 사는 동네에서 오래 살아 본 적도 없고 한 군데에서 오래 산 적도 없고 당연히 관계들도 그렇고 내가 살았던 여렸을 때 동네는 서울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뜨내기처럼 지내는 그런 공단지역이었고 그리고 농촌이라기도 공단이라기도 애매한 그런. 그래서 저런 물론 나의 성격적인 문제도 있었고 애들이랑 안 어울려 놀았던. 그래서 우선 저런 문화가 나에겐 너무 낯설다 너무 신기하고 어 그게 하나가 있고 또 하나는 종민이 어렸을 때, 키워드는 놀이라는 건데, 동네와 놀이라는 거를 키워드로 해서 종민이 가지고 있던 경험들을 다시 되짚어서 정리해 본 거고 그거를 창영동이랑 비교를 해 보는 거고 그런데 두 가지 정도만 안 놓쳤으면 좋겠다 방향을 잡을 때. 하나는 그거를 비교하는 이유가 그래서 우리가 여기에서 어떻게 여기라는 공간을 염두해, 전제해 두고서 비교한다라는 거 그게 요소를 뽑을 때 고려되었으면 좋겠다라는 부분 하나와 또 하나는 다시 키워드를 정리한다면 동네라는 것도 있지만 놀이라는. 저런 풍요로운 유년시절을 보냈다면 한 번 그런 거를 좀 공부해 보는 게 어떨까. 예를 들어 놀이와 학습, 놀이와 교육, 놀이와 노동, 이 세 가지의 관계, 놀이 교육 또는 학습, 노동. 여기서 얘기하는 교육이나 학습이라는 건 종민이 얘기한 것처럼 단순히 정보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관계들, 그 다음에 그 안에서 관계를 형성 유지하는 것 그리고 거기에서 먹고 살기 위한 것, 놀이가 노동과 분리되는 게 아니잖아요. 요즘처럼 레고 사다가 노는 게 아니고 비싼 장난감 가지고 노는 게 아니고 여기서 살아낼 수 있는 방법을 학습하는 과정으로서 하는 건데 학습 교육 노동 이 세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공부할 수 있는 책도 많이 나와 있으니까 이 기회에 꽂히는 주제라면 고거를 다시 한 번 정리해 보는? 공부해 보는 기회도 될 수 있을 거 같고 난 그렇게 두 가지.

 

20:43

영길/ 나는 비슷한 거 같애요. 나도 시골에서 자랐으니까. 그니까 놀이라는 게 아이들만의 점유물은 아니잖아요. 오히려 실제로는 요점은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잘 노는 경향들이 많다. 실제로는 창영동도 그렇고 도시에서 놀이를 구성할 때 실제로 놀아본 사람이 잘 논다고 놀이라는 개념을 좀 확장해 보면 어렸을 때 놀았던 저 공간이 이렇게 줄 수 있는 어떤 놀이의 효과들이 실제로 어른들 아니면 할아버지 할머니들 아니면 우리가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놀이로서 좀 바꿔 볼 수 있지 않겠냐라는 생각을 좀 하죠. 창영동 그러니까 반지하로 얘기를 하면 그 창영동 반지하 지역에 애들이 없는데 거기서 아이들하고 골목이나 그런 걸 갖고 놀 생각하는 건 오바다. 아무리 우리가 창영동 잘 모르고 연습하는 대상으로 삼는다 하더라도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라는 게 있잖아요. 할머니, 할아버지들 아이들은 한 두 명 있는데 조손 가정 아이들인데 걔들이랑 놀겠다 그 지역에서 뭔가 동네에서 공동체로 살아가는 방식으로서 놀이로 구상하는데 아이들을 전제로 하는 건 심각한 거다라는 생각이 좀 들고. 그 동네에서 놀지 않는다라는 거잖아요. 창영초등학교 아이들도 어차피 철길 넘어서 오는 아이들이면 이 동네에서 놀지 않는다라는 거잖아요. 종민샘이 자기 집 근처에 노는 거 마찬가질 거다. 만약에 논다고 하면 요즘 아이들은 놀지도 않지만 하여튼 그렇게 보면 어쨌건 그 동네에서 터전을 잡고 사는 사람들이 노는 방식을 좀 연구해 볼 필요가 있지 않냐라는 생각이 드는 거고. 그리고 놀이를 스포츠가 아닌 다른 것으로 보면 놀이가 주는 삶의 어떤 즐거움 아니면 노동이 줄 수 있는 삶의 충만감과 상관없이 삶을 채워주는 충만감의 다른 하나인 게 놀이일 수 있다고 보면 지금 현재 창영동에서 텃밭 가꾸고 사시는 실제 텃밭도 놀이일 수 있는 거고 근데 단지 정종민 선생님이 생각하는 몸을 쓰는 형태로 보면 어쨌건 동네 사람들의 동선들을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 어디까지 돌아다니고 어디까지 활동영역들이 미치는지에 대한 사람들의 조사가 필요하다라는 생각이 들고. 그리고 반지하에서 이야기할 때 지경 선생님이 얘기할 때 우리가 답사를 갔던 창영동이라는 게 굉장히 작은 지역인데 그 안에서 살며 텃밭을 가꾸고 반지하와 관계를 맺고 사시는 분들은 그 안에서 만화 할머니네 집 마냥 더 작은 단위로 세분화 되어 있다잖아요. 그 안에서 더 작은 지역인데도 그 불록 안에서 자기네끼리만 소통이 되고 다른 지역에서 소통이 안 되는 거 또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움직이는 동선이 굉장히 작은 거다. 이게 오히려 대도시일수록 교통이 편하고 이래서 동선이 많을 거 같은데 실재로 거의 움직이지 않는 삶들을 산다. 오히려 시골은 불편하고 이런 거와 상관없이 오히려 큰 범위들로 움직이는 경향이 강하다다. 만족감이 농촌 생활이 더 많이 주는 이유 중의 하나가 자기가 포괄할 수 있는 공간적 넓이가 굉장히 넓다라는 이야기가 있어요. 공간을 공부하다 보면. 그런 것들이 있다. 정종민 선생님이 어렸을 때 생활했던 것도 마찬가질 수 있다. 아이들이 놀이를 할 때 이혜린 선생님이 가졌던 유년시절의 놀이랑 정종민 선생님이나 저나 가진 놀이의 가장 큰 차이인 거는 점유할 수 있는 공간이 넓고 많다라는 거고. 그 점유할 수 있는 공간이 주는 의미, 내가 거기에 부여하고 그 공간을 내가 점유할 수 있는 의미들이 굉장히 강했다. 그렇잖아요. 산은 그냥 있었던 거고 앞산도 그냥 있었던 거고 밭도 논도 그냥 있었던 그런 건데 내가 당시에 나랑 같이 어울렸던 또래들과 그 공간을 점유하면서 아까 기지 짓고 이런 거 마냥 그렇게 공간에 투여하는 내가 어렸지만 점유하면서 내가 내 삶에 충만감으로서 교육되어지는 거 있잖아요. 사람이 공간을 점유하고 이용하고 나의 욕구대로 실현시키는 어떤 도구로서 공간들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거를 배우는 게 실제로 시골에서 보냈던 아이들의 최대 무기라는 거고, 도시 아이들의 최고의 단점 중의 하나는 이동은 굉장히 쿨하게 이동이 돼도 공간을 점유하고 공간에서 자기가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자기가 뭘 생성하고 해 볼 수 있는 경험들이 거의 도시 아이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도시 아이들한테 공간을 주거나 골목이 주어졌을 때 아이들이 놀 수 있냐 실제로 그렇지 않다라는 거죠. 아이들 놀게 만들려면 스포츠적인 거. 이미 아이들이 규칙을 알고 있고 도구가 주어져서 자기 창의적으로 놀지 않는 방식들의 놀이들에 익숙하게 그 공간에서 해도 그냥 아이들을 뻘쭘하게 데려다가 빈 공간에 놓으면 오히려 시골에서 그렇게 공간을 점유해봤던 아이들에 비해서 놀지 못한다라는 거죠. 오히려 더 불편하고 힘들어할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 이건 아이들만 그런 게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도시 출신 어른들이랑 회원행사 때 이렇게 가면 정해져 있는 프로그램이 아니면 굉장히 힘들어 하는 게 있어요. 그냥 왜 회원 행사고 1박 2일로 만약에 회원 엠티 간다 그러면 계곡에 풀어놓으면 그냥 놀 수 있잖아요. 나이가 어른인데. 그런데 계속 프로그램 가지고 징징대는 이런 회원들의 출생을 살아온 삶을 보면 도시에서 그렇게 제공되어지는 것 이외에는 자기가 점유해 본 경험들이 많지 않은 사람들 실제로 그렇게 낯선 환경에 떨궈 놓으면 그 공간을 자기가 적절하게 이용하고 즐겁게 하지 못하고 굉장히 불편해한다라는 거에요. 시골 출신들은 그냥 냇가 있으면 고기를 잡든 알아서 수영을 하든 이렇게 돌치기를 하든 뭐를 하든 그렇게 노는데 그렇게 못 논다라는 것이 어렸을 때 그런 공간에 대해서 자기가 생성하는 어떤 교육적인 꼭 교육은 아니지만 그 동네, 공동체가 주었던 그런 것들을 갖지 못한 것들이 굉장히 큰 거다라는 생각이 들죠 아이들을 볼 때. 그래서 처음에 선생님이 놀이에 관심 있다고 할 때 모험놀이터를 내가 제안했던 게 뭐냐면 일본이나 유럽이나 이러데 모험놀이터라는 게 별건 아니에요. 나무 숲이나 빈 공터에 일종의 센터 같이 교사들이 구급상자 놓고 왜 사무실같이 쓰는 한 공간만 있는 거고 나머지는 폐건축자재나 쓰레기 비슷한 놓고 그냥 냅두는 거에요. 아이들이 뭘 하고 놀든 그냥 빈 공간에서 총 싸움을 하고 놀든 상관없이 오직 교사는 다치지 않게만 돌봐주고 절대 개입하지 않는 것. 그렇게 무작정 놀게 하는 거에요. 근데 정해져 있는 것 하다못해 그네 같은 것도 아예 놀이터 현재 아파트나 잘 정리된 놀이터에서 있는 건 제공되지 않는 것. 그네를 놀고 싶으면 자기들이 끈을 만들어서 놀아야 되는 거에요. 그런 식의 의외로 아이들이 처음에 굉장히 불편해 하는데 나중ㅊ에 그렇게 노는 거에 익숙해지면 항상 어디를 가면 자기네들 주변에 있는 사물을 이용을 해서 자기들 노는 거리들을 만들어 논다라는 거죠. 오히려 꽉 짜여져서 그네 있고 시소 있는 놀이터 가면 오히려 아이들이 답답해하고 이런 게 있대. 그래서 그 얘기를 했던 거에요. 모험놀이터 핵심도 그런 거에요. 어떤 공간에서 아이들이 그걸 점유하고 생성하는 황동들을 해 보는 것. 그럼으로써 자기의 삶의 넓이를 넓혀가는 방식들 그리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방식들을 하는 게 가장 좋은 게 실제로 아이들이 그렇게 노는 거다. 어른들이 가르쳐 주는 야구 축구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놀이 자체를 자기가 이렇게 만들어 가는 방식들이 유의미한 거다. 아까 공방 비슷하게 손재주 많았던 형네 가면 그 형네 집이 형이 일하는 거 보고 같이 하든지 아니면 항상 새롭게 놀 게 있는 거잖아요. 똑같은 놀인데 다르게 하는 방식들이 그 당시에는 굉장히 풍부했던 거다. 계절이 변해 가면서 놀이하는 방식들도 변하고 같은 작은 동산이지만 여름에는 다른 식으로 놀고 국군반란이나 이렇게 놀고 겨울에는 눈썰매장이 되고 그렇게 공간들을 이용하는 능력들이 실제로 놀이 속에 숨어 있는 거라는 거죠. 그렇게 이 장점을 갖고 어른들의 놀이에 접목을 시켜 보는 것. 어른들도 실제로 자기의 공간을 이용하고 점유하고 가꾸고 이런 거 좋아한다. 왜 화단 가꾸고 그런 거 보면 조그만 공터만 나면 텃밭 가꾸고 그런 거 보면 그런 욕구들은 있는데 익숙하지 않은 거죠. 뭔가 나이 먹어 논다라고 하는 것 자체가 경제적 가치를 따지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거에 익숙하지 않아서이긴 한데 그런 방식으로 구현을 해 보는 것도 굉장히 괜찮다라는 거죠. 그 쪽을 공부해 봐도 재밌어요.

 

31:57

혜린/ 굉장히 재밌을 거 같은데 얘기 들으면서 드는 생각이 나는 여행을 가도 공간들을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우선 숙소를 잡아야 돼. (웃음) 얘기를 들으면서 드는 생각이 내가 살던 동네는 내가 어렸을 때 뭐 하고 놀았지? 어디서 놀았지? 생각해 보면 방, 다락 이런 식 아니면 집 앞에 있는 평상 여기서 못 벗어나는 게 성격적인 것도 있겠지만 기억나는 게 거기는 내가 살던데는 어렸을 때 기억나는 게 거기가 그 갯벌 매립지 하는 오이도 그거에 필요한 인력들이 그 동네 근처니까 뜨내기들 모여 사는 거고 우리 아빠도 그렇게 트럭 운전하셨던 건데. 동생이랑 같이 동네를 돌아다면 동네는 길은 위험하다는 기분이 있는 거에요. 그렇게 모여 있는 공터나 그런 게 없었던 게 지금도 기억나는 게 시골이니까 도시가 아니니까 길은 안 닦여져 있어 그런데 트럭들이나 큰 차들은 늘 다니는 거라. 그래서 비가 와서 길은 질척질척한데 익숙한 동네니까 동생이랑 걸어가다가 트럭이 오니까 길에 이렇게 비켜 섰거든. 늘 그렇게 비켜 서면은 여기서 차가 이렇게 휙 지나가도 그건 안전해라는 게 경험으로 아니까. 그런데 땅이 질척거리니까 트럭이 지나가다가 이게 삐끗해가지고 내 동생이 이렇게 트럭에 눌렸었던 거라. 그걸 옆에서 내가 보면서 여긴 되게 위험한데야. 집 밖으로 나간다는 게 위험하다라는 거 그런 게 영향을 주지 않았나. 그런 식이 있는 거고. 내가 얘기하고 싶은 건 놀이라는 주제가 굉장히 할 수 있는 공부 거리가 많다. 지금 들으면서 정리했던 건 세 가지. 놀이라는 게 가능한 조건들이 있는 거다. 조건에 대한 분석들이 필요하다. 공간과 주체. 이거의 조건을 분석하는데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과거의 경험. 과거의 경험이 종민이랑 영길 선배 같은 경우는 농촌에서 살았기 때문에 갖는 과거의 경험들이 있는 거고 여기서 두 번째 놀이의 의미와 가치 끄집어 나와질 수 있다. 그런데 세 번째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런데 현재 우리가 활동할 곳은 다른 조건이고 다른 공간인 거라. 그럼 여기에서 우리가 구현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이 의미와 가치들을 살려가기 위해서라는 거고. 여기서 의미와 가치라는 것은 첫 번째 유희다. 즐거워야 되니까. 두 번째는 학습, 배운다. 그게 관계에 대한 배움이든 사람들과 소통하는 거에 대한 학습이든 하다못해 여자애들은 어렸을 때 소꿉놀이 하고 놀잖아. 집안 일 보고서 어른들을 모방하면서 사회구성원으로서 자기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 것들을 놀이를 통해 학습하는 부분들이 있으니까. 그런 가치가 있는 거고, 그런 어떤 의미들과 가치가 있을까에 대한 얘기들을 해 볼 필요들이 있겠다. 이 세 가지. 조건, 의미와 가치, 그리고 구현할 수 있는 활동. 그래서 우리가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거고 또 하나는 우리가 다시 조건으로 돌아와서 과거의 조건을 얘기하면서 다시 현재의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조건들을 분석할 때 주체, 놀이의 주체에 대한 분석들도 좀 놓치지 않고 갔으면 좋겠다. 하나는 주체가 어린이냐 청소년이냐 청년이냐 중년이냐 노년이냐. 사직동만 두고 보더라도 이 세대에 따라서 그 공간에서 놀이의 방식들이 다르다는 거. 또 하나는 여성이냐 남성이냐 따라서도 다르다. 영길 선배랑 무슨 얘기하다 그런 얘기를 했는데 똑같이 노인정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있더라도 이 분들은 노동이 아닌 거라. 이미 노인정까지 오실 정도면 생계가 어려우신 분들은 아니니까. 근데 놀이하는 방식이 너무나도 달라. 할머니들은 노인정에서도 라면 끓여 먹고 수제비 해 먹고 뭔가 음식을 해 먹고 나눠 먹고 갖다 주고 이러고 노시는데 할아버지들 노는 방식은 술 드시거나 화투 치시거나 공원만 가봐도. 노인정에서 그게 딱 드러나는 거 같은데 여성과 남성에 따라서도 다르다라는 거. 세 번째는 가난한 사람과 중산층 이상일 때 놀이의 방식이 다르다. 주체에 대한 부분들 우리가 어린이 교육을 하기 위해 동네로 들어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다른 세대에 대한 부분들, 주체에 대한 분석에서 해 보는 게 어떨까 생각 들었는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5/29 19:18 2009/05/29 19:18
http://blog.jinbo.net/com/trackback/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