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으로 보아야 할 것이 실행에 있어서의 측면이다.
[반지하]를 대상으로 나름 분석을 연습해보자는 아주 쉬운(?) 아니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이 글들을 작성하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쉽게 결론내리거나 아니 짐작조차 하기 힘든 부분이
이 실행의 부분이다.
원래는 반지하 활동가들에 대한 심층적인 면담조사(?)나 다른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 등이라도 진행하고
파악해야 하는 것을 단순이 문자화한 자료들만을 읽고
그리고 너무나 짧은 시간의 답사를 통해서 이 부분을 바라보는 것은
아직까지 나에겐 무리인 듯 싶다.
처음에는 금방할 것처럼 보였던 일들이
조금씩 생각이 깊어가면서 더 모르겠다는 마음만 커진다고나 할까...ㅎㅎ

여하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게 아주 짧게 생각들, 질문들을 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번째로 생산적 측면을 보면 결국 질문은 이것이다.
[반지하]는 무엇을 생산하는가 ?
[반지하]는 무엇을 생산해 내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단체가 되었든 활동가 개인이 되었든 누군가가 움직이고 몸뚱아리를 움직여 어떤 행함들을 진행한다는 것
이것이 넓은 의미로 노동이라면
당연이 이 노동을 통하여 생산되는 무엇, 즉 활동에서의 생산물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반지하]는 그들의 활동/운동/작업들을 통하여 무엇을 생산하는 것일까 ?

[반지하]가 생산하는 것은 결국 그들이 이야기하는 몇마디의 말에서 드러나는 것 같다.
즉, 기억과 새로움의 풍경 혹은 기록/교육/삶에 그 모습이 나타나는 것 같다.
[반지하]의 특징적인 활동이고 가장 중요한 활동의 기반인 기록에 대한 작업,
그리고 그 기록에 의해서 다시금 새롭게 다가오는 삶의 풍경들이 궁극적으로 [반지하]가 생산하는 표면적인 활동의 생산물릴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기록물들이 나타내어주는 삶의 의미들 즉, 반자본주의와 공동체의 형성이라는 궁극적인 삶의 지향들을 생산해 내는 듯도 하다.

내가 보기에 [반지하]의 가장 인상적인 활동들은 결국 삶의 기록과 소통/공유에 있지 않나 싶고
이런 활동들을 바탕으로 궁극적으로는 돈없이 사는 삶의 가치, 반자본주의적 가치의 구현이 가능하도록 해주는
궁극의 원천이지 않나 싶다.
이렇게 기록하고 그 기록들을 바탕으로 삶과 마을의 재구성을 시도함으로써 돈의 가치로 인해 사라져 가는 것들을 복원하고
그 복원된 다양한 가치들을 바탕으로 삶의 원형인 공동체를 복원하는 것
이것이 반지하가 생산하는 생산물이 아닐까 싶다.

다른 또 다른 측면을 살펴보면 결국 [교육]을 통한 인적 생산을 들수 있지 않을까 한다.
결국 반지하는 기록이라는 것을 바탕으로 [교육]을 통한 소통 혹은 복원들을 진행하는데
이를 통해 결국 [반지하]를 중심으로 한 일종의 교육공동체(?)가 형성되는 것 같다.
교육이라는 것이 딱히 커리큘럼에 의한 획일화된 시스템이 아닌 삶의 공유 혹은 소통을 통한 스스로의 성장으로 본다면
결국 반지하는 구성원들 뿐 아니라 외부자들 더 나아가 마을 을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스스로의 성장들을 바탕으로
마을에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일종의 실험지가 되고 있는듯 하다.
결국 반지하의 인적구성은 교육이라는 틀거리를 가지고 생산 혹은 축적되는 것으로 보인다.

정리해 보면 [반지하]는 기록과 교육이라는 두가지 활동방식을 가지고 마을을 만들어 가고 그 마을에서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반지하만이 가지는 반지하만의 독특한 생산과정으로 보인다.

이는 시간의 축적과 공간의 점유 그리고 이를 통한 삶의 생성...??.....ㅎㅎ
이것이 반지하가 생산하는 방식이고 소통하는 방식인 것 같다,
 
두번째로 소비를 살펴보면
[반지하]는 무엇을 소비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
[반지하]는 스스로의 질문들을 구성하고 그 질문들에 행동으로써 답하는 과정으로써 발전하는 도특한 문화들이 있는 것 같다.
이는 결국 반지하가 살아가기 위한 주요 소비행위들 또한 크게 다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반지하는 크게 두가지 측면에서 그 소비를 살펴볼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운동 혹은 활동들의 측면을보면 그들의 출발이 질문이었던 것처럼 빌문을 끊임없이 생성하여 소비하는 방식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질문들을 구성하고 그 질문들을 가지고 스스로 발전하고 삶을 영위해 나가는 것이 반지하가 가지는 건강성이 아닐까 싶다.
이는 아마도 끊임없는 기록의 장치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 같다.
즉, 자신의 삶과 마을 혹은 공동체에 대한 끊임없는 기록과 그 기록을 바탕으로 한 자연스러운 질문의 구성이
결국 반지하라는 공동체가 살아가는 실질적인 양식이 아닐까 싶다.

다른 한 측면 즉, 생활의 모습을 보면 노동을 통한 소비 즉, 텃밭 등을 중심으로 한 먹거리의 나눔/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
즉, 의식주의 해결에 있어서 먹거리는 공동의 식사와 공동의 노작을 통한 소비가 그 주를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
다소 질곡들이 존재할 수 있고 그것이 현재 상황에서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겠지만 [반지하]는 이런 공동의 소비를 공동 노작을 통해서 해결하려는 것 같다.
다만 아직까지 공동의 의식주 해결이라는 궁극적인 공동체의 실현까지 가는 것이 아닌 건강한 먹거리의 문제 정도까지 발전한 양상이다.
하지만 여전이 이런 욕구들 혹은 질문들을 통하여 반자본주의적 공동체의 소비행위들을 조직하려는 경향들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결국 소비란 공동으로 조직하여야만이 그 해결점들이 보인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 들어 화두로 떠오른 소비의 조직....결국 거창한 구호가 아닌 삶의 작은 실천에서부터 시작되는 행동들의 연속이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세번째로 무엇을 소통하는가 ?
주변과의 소통의 문제는 결국 삶이 이루어지는 풍경일 것이다.
즉, 위에서 살펴본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 자체를 공유하는 것이 곧 반지하의 소통의 방식인 것 같다.
즉, 특별한 소통의 도구들을 갖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기록 혹은 활동들의 축적들이 마을이라는 공간에서 쌓여가는 방식으로
그렇게 자연스럽게 지역과 외부와 소통하고 있는 것 같다.
포장하지도 그리고 어떤 대단한 의미부여를 통한 자기과시가 아닌 자신들의 이야기를 가지고 마을이라는 공간안에서
버티고 살아가는 방식으로서의 소통...이것이 궁극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한 최소한의 공간들을 마련하여 공유하는 것
이것이 현재 반지하가 가지는 가장 큰 소통방식처럼 보인다.
즉, 현재적 삶으로서의 반지하와 그들이 가진 [공간]으로서의 소통......결국 공동체는 공간의 점유와 생성 그리고 활용에
그 소통의 전부가 드러날 수 있다.
그러니가 항상 지역에서의 공간이 주는 의미 혹은 그 소통방식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네번째로 어떻게 학습되어지는가 ?
어떻게 학습들이 이루어지는가?
아니 내부에서의 소통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가?
이는 솔직히 [반지하]를 분석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이다.
우선 실질적인 호라동의 모습을 보지 못했고 또한, 구체적인 내부소통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기때문이다.
어느 단체 혹은 어느 공동체든 가장 중요한 것은 내부 소통, 내부 학습일 것이다.
호라동가간의 혹은 회원간의 작게는 상근자간의 소통의 문제는 언제나 중차대하다.
실은 대다수 단체 혹은 공동체들은 내부소통의 문제로 항상 문제들이 발생한다,
옳은 일들을 한다는 의식들이 강함에도 일이 힘들어서 중도에 갈라서는 것이 아니라
실은 그런 같은(?) 목적의식을 가진 활동가간의 소통의 문제가 커지면서 갈라서거나 떨어져나가는 경향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딱히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항상 같은 상황들이 발생하는 것도 아닌데다가 같은 상황이라도 그 상황에 들어가 있는 각 개인들의 성향차이,
같은 개인이라는 그날 그날의 삶의 기복에 따라서 소통의 문제는 전혀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대략 그나마 이야기 되는 것은
기록과 드러냄이다.
우리들 각자의 호라동들 감정의 흐름. 삶의 기복들을 기록하여 공유하는 것
그리고 모든 문제나 지극히 개인적인 일들이라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기록이야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렇게 기록하고 정리하는 것 만큼 힘든일이 없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기록하려는 자세는 매우 중요한 것 같다.
드러냄에는 조심할 것이 있다. 즉, 드러냄이 곧 공유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는 거다
드러냄으로써 나의 개인적인 일들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은 실은 매우 힘들고 짜증나고 존심상하는 일이다.
따라서 그저 드러냄으로써 이해를 구하라는 것이지 공유하여 각자가 마치 자기일처럼 떠맡으라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거다.
이를 적절하게 통제하는 것 이것이 내부자들끼리의 소통의 방식들 중 가장 기본이 되는 활동들이 아닐가 싶다.

 

결론적으로 내부소통의 문제는 [반지하]에서는 분석할 수 없었다는 것이고
그래서 평소에 느꼈던 몇가지를 이야기 해봤다....ㅎ

 

이렇게 두번째 실행의 측면 즉, 생산/소비/외부소통/내부소통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자아성찰과 신념의 문제를 간략하게 보겠다.

여기서 자아성찰이란 반성에 조응하는 것이고 신념이란 가치지향과 조응한다.

활동가들에게 끊임없는 학습이 강조되는 것은 실제로 공부 혹은 학습의 의미보다는 자아성찰 즉, 반성하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자신의 삶과 행동들 단체의 활동들을 언제나 되돌아보면서 반성하라는 것이
학습의 실질적인 요구사항이라는 거다.

하지만 이런 학습을 통한 자아성찰이 강조되기는 하지만 이런 자아성찰이라는 것이
활동가들에게는 부담스러울 수 있고 또한 그런 자기통제적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핑계야 일이 바빠서 이겠지만 그렇게 개인에게 부과되는 도덕적 결단들은 실은 매우 힘들고 사실상 이루어지기 가 불가능해 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결국 그런 자아성찰적 활동들을 각 개인 활동가들에게 개인의무처럼 부과할 것이 아니라
공동의 그리고 공식적인 프로그램화 혹은 일상적 삶의 한 축으로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스토리텔링을 통한 기록과 문제발견, 이를 바탕으로 질문구성하기, 그리고 실천과 삶으로서 해결하는 것
이것이 반지하가 가지고 있는 자아성찰의 일상적인 풍경처럼 보인다.
특히 [반지하]하면 떠오르는 이런 스토리텔링 작업들은 알게모르게 각 활동가들이 단순히 자아성찰 정도에서 머무르는 게 아니라
공동체의 일상화된 건강한 긴장을 만들어주는 핵심적인 활동처럼 보인다.
이것이 공식화되고 일상 삶으로 구현되는 자아성찰적 활동이라는 거다...ㅎㅎ

 

신념 혹은 가치지향은
내가 분석할 수 없는 영역이다.

다만 [반자본주의]와 [삶으로써의 운동] 이라는 큰 틀로 이야기 되는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들을 했었다.
반자본주의란 결국 돈의 가치가 아닌 삶의 가치로의 복원을 이야기하는 것 같고
또한 자본주의현실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는 능동적인 방식인 것처럼 도 보인다.
시공간에 지배당하는 것이 아닌 시공간을 재생성하고 재구성하는 것으로도 이야기 되는 것 같다.

 

삶의 운동으로써의 운동이란 켜켜이 쌓여가는 삶이다.
의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살아감으로써 쌓이는 유무형의 흔적들...그리고 그 흔적들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풍성해지는 삶이 곧 운동이라는 것 같다...

 

이렇게 계획공동체의 분석틀을 이용하여 장난반 연습반 나름 분석해 봤다
너무 피상적이고 잘알지 못함에서 나오는 작위적인 분석이 주로 이루어졌지만
막상 한 단체를 놓고 이렇게 많은 생각들을 하다보니
얻는 것은 지나온 나의 활동들에 대한 반성과 앞으로의 활동들에 대한 지향들이 점차 뚜렷해진다는 거다
즉, 분석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결국 삶의 재구성 운동의 재구성을 위한 새로운 시선이 아닐가 싶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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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30 10:54 2009/05/30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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