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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11
    [2호 8면] 끝없는 경쟁의 고리를 끊자.
    꼬민/Comin

[2호 8면] 끝없는 경쟁의 고리를 끊자.

끝없는 경쟁의 고리를 끊자.
-내 삶을 되찾기 위한 연대


청 http://smallaction.tistory.com


일제고사가 또 치러졌다.

작년 일제고사가 치러지고 나서 지역별로 학업성취도가 공개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북 임실에서 성적이 조작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대해 정치인과 언론들은 몇몇 사람의 도덕성을 문제 삼으며 일제고사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항변했다. 그런데 이번 3월 31일 일제고사에서는 1~50등까지 상품을 주겠다거나, 일제고사 성적을 수행평가에 반영하겠다는 학교까지 나왔다. 31일 시험이 치러지고 나서는 일부 학교에서 미리 시험문제 및 듣기파일이 유출되었다는 것이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진단하겠다는 일제고사가 학생들의 순위를 평가하는 시험으로 변질된 것이 몇몇 학교장의 그릇된 생각 때문일까? 일제고사는 이미 대학생이 되고, 취업한 사람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일까?

 

우리 사회에는 학벌이 공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런 학벌이 형성되는 것은 교육이 단지 '배움'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육 이외의 다른 떡밥들-취업, 돈, 출세 등- 때문이라는 것을 지난 번 글에서 이야기 했었다. 이런 사회에서 시험성적을 매기는 것은 그 사람의 이해정도를 평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비교 가운데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평가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교육이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교육에 어떠한 떡밥도 없어야 하고, 교육 그 자체가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과정이어야 하며, 시험은 점수를 공개해 순위를 매기지 않고, Pass/False 로만 성취도를 평가하는 도구여야 한다고도 제안했었다. 하지만 이런 요구가 이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것은 교육에 뭔가 다른 것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서울대 입학생의 반절 이상이 서울 강남출신이다. 올해 초 고려대학교에서는 실질적인 고교등급제를 시행해 특목고 학생들이 쉽게 입학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서 논란이 되었었다. 이미 지금도 해마다 입시가 마무리되면 각 고등학교에는 서울대 합격자가 몇 명인지 현수막을 걸어놓고, 그것이 학교의 서열을 매기는 암묵적인 기준이 된다. 여기에 일제고사가 더해져, 매우 '객관적인 점수'로 각 고등학교의 순위가 매겨진다면, 그 서열을 바탕으로 대학차원에서 고교등급제를 시행하는 시나리오는 이미 현실 같지 않은가? 자신의 미래를 얻기 위해서는 더욱 우수한 고등학교에 진학해야 하고, 입시경쟁은 초등학교·중학교에서도 당연하게 될 것이다.(그런데... 이미 그런 것 같다. OTL)


일제고사는 이런 경쟁 체제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이고, 이런 제도 안에서 학생들은 더 많은 시간을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과는 상관없는 것들을 외우며 삶을 낭비해야 한다. 세상은 갈수록 온갖 상품들로 넘쳐나는데, 그것을 누리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삶의 시간들은 더 늘어간다. 인생에서 일하는 시간보다 일을 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시간이 더 커지는 역설적인 세상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학교에서 수행되는 평가는 대개 누군가를 '배제'하기 위해 이루어진다. 노동을 해야만 임금이 주어지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배제'는 일할 수 없음을, 그래서 먹고 살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 사회를 통찰했던 누군가가 이런 말을 남기지 않았는가. '자유가 있다. 굶어죽을 자유가.' 자신이 배제되는 편에 속하지 않으려는 경쟁은 정글의 목숨을 건 경쟁, '생존경쟁'이다.  이미 우리는 언제 삶의 저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중고등학교를 보내고, 대학에서는 취업을 위한 경쟁에 목매단다. '배제'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삶이 의미 없이 지불되는 것도 견뎌야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험에서는 모두가 서로 더 높은 성적을 바라고, 이를 위해 많은 수단을 강구한다. 생존을 위한 경쟁을 하는데, 그 수단에 넘지 않아야 할 선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보여주지 못한다.
아무리 그 경쟁이 싫다 해도, 나 '혼자서' 대열에 합류하지 않으면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경쟁의 최하위에 위치하게 되어 사회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 이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고, 그 사회가 이 경쟁을 주도한다면 우리는 자동적으로 그 경쟁의 일원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경쟁은 중고등학교에서만이 아니라 전 사회에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일제고사 시행은 필경 지금 대학생인 사람들, 이미 취직한 사람들, 혹은 취업대기자들 모두를 더욱더 각박하게 만든다.


이번 일제고사에는 5800여명이 '오답'선언을 했다. 만약 더 많은 사람들이 일제고사를 거부한다면, 이 승자 없는 경쟁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그리고 학교는 사회가 원래 그렇다는 것을, 우리는 그곳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가르치고 체념시킨다. 교육에 대한 아무리 훌륭한 대안을 제출하더라도 그것이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은 교육이 이런 경쟁체제·착취체제를 유지시키기 위한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일제고사를 강요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바로 이 경쟁·착취체제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지키려 한다는 사실이다. 사실 내가 시험보기 싫어 시험 치르지 않고 결석하겠다는 데 그것을 회유하고 커다란 불이익을 있을 거라고 협박하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이 초중고 12년 동안 개근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시험 치르지 않을 선택권을 줬다는 이유만으로 교사들을 파면·해임한 것은 또 어떤가. 정작 집단적으로 성적을 조작한 사람들은 경미한 징계를 받고 지금도 교육현장에 있다. 이번 3월 31일 일제고사 대신 체험현장활동을 가자는 내용의 유인물에 대해 전라북도교육청은 '불온'유인물이라며 배포를 금지시켰다. 아니 이게 학교를 폭파시키자는 내용이라도 된단 말인가? 학교 앞 불법 사교육 전단지나 단속하시지. 이렇게 온갖 방법을 동원해 학생들이 일제고사를 치르게 하려는 것은 그만큼 경쟁을 체화시키는 교육이 이 사회를 유지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살아남기 위해 이 경쟁에 편입하는 것 외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을까? 아니다. 있다.

 

 


불가능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당신의 힘이 필요하다!
3월 31일, 10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체험현장활동을 떠났고, 58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오답'을 제출하겠다고 선언했다. 작년 학생들에게 일제고사 대신 체험현장활동을 다녀오게 한 교사들이 12명 해임 파면되었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이번 일제고사에서는 145명의 교사들이 불복종 선언을 했다. 일제고사 반대운동이 고양되는 것은 일제고사가 학생들의 삶을 어떻게 옥죄게 될지 확연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옥죄어지는 삶 안에 우리의 삶 또한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일제고사에 맞서는 사람들의 싸움에 동참하여 다 같이 경쟁을 거부하는 것, 그래서 이 사회를 바꾸어내는 것. 그것만이 진정 우리 삶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길이다. 눈앞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짧은 순간의 만족감을 줄지 모르지만 그 경쟁에 편입하면 할수록 더욱 많은 자신의 삶을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를 곳에 쏟아부어야 할 뿐이다. 일제고사에 불복종한 교사들에게 지지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저들에게 불이익이 생겼을 때 온라인에서든 오프라인에서든 적극적으로 항의하자. 혼자 꿈꾸면 꿈에 불과하지만, 여럿이 꿈꾸면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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