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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드 러너 2049, 철학적 질문만 잔득 늘어놓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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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무르익어가고, 바쁜 일도 별로 없고, 볼만한 영화도 많이 걸려 있는 요즘
“무슨 영화를 볼까?”하며 잠시 행복한 고민을 했다.
선택의 기준은 단 하나, 나중에 케이블에서 보기 어려울 것 같은 영화
그래서 선택한 영화가 ‘블레이드 러너 2049’였다.

 

감독의 스타일을 알기 때문에 화려한 볼거리는 애초에 포기하고 들어갔다.
‘이번에는 어떤 사회적 문제를 SF로 풀어낸 걸까’ 하는 간단한 궁금증만 안고 들었갔는데
“SF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심하게 볼거리가 없었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와 각종 홀로그램을 빼면 황량한 서부영화 같았다.
애당초 SF적 볼거리를 포기했기에 감독의 의도를 그냥 따라가보기로 했다.

 

영화는 처음부터 황량한 미래의 도시에서 출발하더니 내내 우중충한 분위기를 고수했다.
그런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면서 이야기도 무겁고 심각하게 이어졌다.
예상 외의 묵직함에 당황한 나는 영화 시작 10여 분만에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졸지 않으려 참으려 애쓰다가 잠시 졸다 정신을 차렸지만
묵직하게 천천히 이어지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 영화의 런닝타임이 2시간 30분이라는 걸 생각한 나는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해야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나니, 오히려 기대감도 불안감도 없어져서, 편안히 영화를 볼수 있었다.
“그래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거냐?”며 가만히 지켜봤더니
볼거리와 줄거리는 별거 없는데 철학적 질문들만 온통 늘어놓고 있었다.
‘인간을 복제한다는 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인간과 복제인간과 디지털 홀로그램은 서로에게 어떤 관계를 만들어가는가?’
‘디지털 시대에 나는 무엇이고, 사랑과 관계는 또 어떠한가?’
‘복제의 시대에 기억이란 무엇이며, 진리는 또 무엇인가?’
철학 숙제를 하는듯한 이런 질문을 계속 하게 만들며 영화는 아주 천천히 걸어갔다.

 

아주 오래전에 본 왕가위의 ‘동사서독’에서 멜랑콜리한 분위기를 빼고 거기에 철학적 질문만 잔득 올려놓은 그런 영화라고나 할까...
그런데 그 철학적 질문이라는 것도 1999년에 나온 ‘매트릭스’에서 이미 써먹은 거였고, 그보다 몇 년 전에 나온 ‘공각기동대’에서 더 묵직하게 던져놓은 거였다.
몇 년 전에 나온 ‘Her’는 차라리 발랄하기라도 해서 재미라도 있었는데...
영화를 열 편쯤 만들다보니까 묵직한 주제로 자기 영화의 수준을 한단계 올려놓고 싶어졌는지 모르겠지만
1995년판 ‘공각기동대’에서 한 발도 나가지 못한 철학적 문제만 진열하고만 꼴이 되버렸다.

 

영화를 보고 나왔더니 아직 날은 저물지 않은 가을의 늦은 오후였다.
하늘을 보며 생각했다.
“나는 누구인가?”
“세상은 무엇으로 이뤄졌나?”
“사랑이란 무엇인가?”
“아~ 가을이구나, 푸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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