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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가을에 얼갈이배추 씨를 텃밭 한쪽에 뿌려놓았습니다.
얼마 후에 순이 올라오고 금세 자라서 얼갈이가 가득해졌습니다.
아삭한 식감이 좋은 얼갈이를 이번 겨울에 원 없이 먹겠거니 했습니다.
국과 찌개, 반찬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하며 먹다가 혼자 다 먹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주위에 나눠주기도 했었죠.
텃밭에서 자라고 있는 여러 채소들 중에 가장 잘 됐다며 흐뭇해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조금씩 병충해 피해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날이 갈수록 증상이 심해져서
이제는 쑥대밭이 되고 말았습니다.
초록의 배추가 구멍이 숭숭 뚫린 채 누렇게 변해버린 겁니다.
상태가 심한 겉잎들을 때어내고 그나마 괜찮은 안쪽 잎들을 골라내서 먹을 수는 있지만
아삭한 식감은 많이 줄어들어버렸습니다.
어떤 때는 무에 병충해가 번져서 먹을 수 없게 돼 버리고
어떤 때는 파종시기가 잘못돼서 발아가 되지 않기도 하고
어떤 때는 연작으로 심다보니 수확량이 확 떨어지기도 하고
어떤 때는 토양상태가 좋지 않아서 채소가 잘 크지 않기도 하고
어떤 때는 씨앗을 뿌린 후 흙을 너무 두텁게 덮어줘서 순이 잘 올라오지 않기 하는 등
해마다 크고 작은 문제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텃밭에 먹을거리로 키우는 것이라서
조금씩 재배하고 약을 치지도 않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면 속수무책으로 그냥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경험들이 쌓이다보니
하나의 씨앗을 두 군데에 나눠 뿌리기도 하고
해마다 채소들의 위치를 바꿔주기도 하고
파종 조건에 대해 정보를 익혀가며 시기를 조절하기도 하고
일일이 손으로 조심스럽게 파종을 하려고 노력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노력하는데도 이런 문제가 또 발생하는 걸 보니
아직도 식물에 대해 배워야할 것이 많습니다.
올해 생겼던 문제들을 교훈삼아서 내년에는 더 정성스럽게 재배를 해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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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해마다 한 두 종류씩 텃밭에 새로운 것들을 재배해봅니다.
작년에는 근대를 재배했었는데 수확량도 많지 않고 병충해가 심해서 포기했습니다.
올해는 아욱을 시도해봤습니다.
발아도 잘 되고, 수확량도 꽤 많고, 병충해도 특별히 없어서 재해하기에는 좋은데
결정적으로 맛이 별로 없었습니다.
국으로 끓여먹는 것은 그런대로 괜찮은데 나물로 먹기에는 너무 심심하더군요.
초반에 국거리로 몇 번 이용하다가 다른 채소들이 올라오면서 그냥 방치해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배추는 병충해 때문에 초토화되고, 시금치는 날씨 때문에 발아가 거의 되지 않았고, 쑥갓은 씨를 뿌린 후 흙을 너무 많이 덮어버려서 발아율이 확 떨어져버렸습니다.
이제 다양한 채소들을 골라먹는 재미에 빠져야 할 때인데 먹을 채소들이 많지 않습니다.
나물은 고사하고 국이나 찌개에 넣은 채소들도 별로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방치해뒀던 아욱에 손이 갑니다.
배추나 시금치, 쑥갓에 비해서는 향이나 식감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이런저런 국거리에 두루두루 어울리고 양도 충분해서 꽤 쏠쏠하게 이용하고 있습니다.
맛이 없다고 방치해뒀던 녀석을 아쉬워서 자꾸 먹다보니 정이 들어버린 꼴이죠.
볼품없어 보이던 것도 상황이 맞춰지면 다 쓸모가 있는 법임을 새삼스레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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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겨울에는 감귤나무에 할 일이 별로 없습니다.
땅이 마르지 않도록 가끔 물을 주고, 보름에 한 번씩 칼슘제를 뿌려주는 것이 전부입니다.
춥기도 하고 할 일도 딱히 없기도 해서 방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습니다.
그러다보면 몸도 마음도 무거워집니다.
머릿속에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스멀스멀 자리를 잡고 앉아서 저를 자극합니다.
그 생각들에 말려들지 않으려고 이런저런 노력들을 해보지만
애를 쓰면 쓸수록 부정적 에너지만 더 키우는 꼴이 돼 버립니다.
일기예보를 보니 연말연초에 또 한 번 매서운 추위가 몰아친다고 해서
예정보다 조금 빠르게 감귤나무에 칼슘제를 뿌렸습니다.
조금 쌀쌀한 바깥과 달리 햇볕이 비춰 살짝 포근한 기운까지 느껴지는 하우스에서
감귤에 칼슘제를 골고루 뿌리고 있노라니
노랗게 익어가는 모습이 제 마음을 환하게 만들어주더군요.
올해 감귤재배에 대해 이런저런 고민들이 많았는데
도톰하게 커져서 주렁주렁 매달린 감귤들이 노랗게 익어가는 모습은
제 마음을 달래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감귤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두세 시간 동안 움직였더니
몸도 개운해지고
마음속에 자리 잡은 상념들도 가라앉았습니다.
할 일이 있다는 것과
소통할 대상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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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ahualpa Yupanqui의 ‘Los ejes de mi carr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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