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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 2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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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라디오 ‘살자’ 스물 일곱 번째 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이 방송에서 사랑이와 친구들에 대한 얘기를 자주했는데요
오늘도 또 그 개들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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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랑이가 산책하면서 만나는 개들이 늘었습니다.
행복이(사랑이 전 여친)랑 우정이(사랑이 남친)만 보이곤했었는데
얼마 전부터 행복이 새끼들이 같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행복이 새끼들은 사랑이를 겁내지 않고 바로 친해졌습니다.


저랑도 역시 금새 친해져서
사랑이 줄을 잠시 놓아주고 앉은 자세로 손을 내밀면
행복이 새끼들이 꼬리를 마구 흔들며 달려듭니다.
그러면 행복이랑 우정이도 제게 다가와 손을 핥습니다.
다섯 마리의 개에 둘러싸인 저는 개들과 스킨쉽을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사랑이는 사랑이대로 네 마리 개들과 어울려 즐거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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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매일 붙어다니는 이 네 마리의 개를 보면 단란한 한 가족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우정이는 유기견이고, 행복이 새끼들의 아빠는 사랑이랍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저는 이 모습을 보면 조금 섭섭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렇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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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느 날 행복이가 새끼 한 마리를 데리고 사랑이를 찾아왔습니다.
새끼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사랑이를 쳐다보고 있고
행복이는 짐짓 모르척 딴 짓을 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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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행복이 새끼가 출생의 비밀을 알려고 하는 순간
우정이가 느닷없이 담장 위로 나타났습니다.
그에 놀란 행복이는 황급히 새끼를 데리고 돌아가버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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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며칠 후 행복이 새끼가 혼자서 사랑이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아무말 없이 사랑이를 쳐다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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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는 그런 새끼에게 구차한 변명을 하지 않습니다.
“배 고프겠구나. 이리 와서 밥 먹어라.”


푸흐흐흐,
사진 찍어놓은 걸 모아서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들어봤습니다.
재밌으신가요? 하하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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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손을 핥고 있는 얘는 우정입니다.
이제는 저에 대한 경계심이 없어져서 이렇게 스킨쉽을 나누게 됐습니다.
우정이를 볼때마다 인연이라는 게 잠깐의 선택으로 확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정이를 처음본 건 10월 중순쯤인 것 같습니다.
어느 날 목줄을 길게 늘어트린 개 한 마리가 근처를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 키우는 개를 잠시 풀어줬나보다 했는데
며칠 간격으로 주변에서 계속 목격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버림받은 개라는 걸 알게 됐고
덩치가 있는 개라서 혹시 해코지는 하지 않을까 걱정도 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길게 늘어진 목줄이 바위에 걸려 있는 걸 봤습니다.
처음에는 행복인줄 알고 가까이 다가갔는데
행복이가 아닌 다른 개가 다가오는 저를 보고 으르렁거리더라고요.
그래서 가까이 가지는 못하고 읍사무소에 유기견 신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읍사무소 직원은 신고를 받고 한참 후에 나타났고
그 사이에 우정이는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만약, 그때 읍사무소 직원이 신속하게 나타나서 우정이를 포획하고
유기견보호센터로 넘겼다면
보름 동안 새로운 보호자를 만나지 못해 안락사 당했을지도 모르지요.


그후에도 우정이는 마을 주변을 배회했는데 어느 순간 목줄이 없어졌더군요.
그리고 11월 중순쯤에 사랑이 밥을 얻어먹는 우정이를 발견하게 됩니다.
밥을 먹다가도 제가 나타나면 황급히 달아나는 우정이를 보며
떠돌이 개라서 진드기 같은 병균을 옮기는 건 아닌지 걱정이 먼저 앞섰습니다.
그 즈음 사랑이 몸에서 진드기가 발견된 것도 사실이고요.


그런데 오히려 우정이를 챙겨주는 사랑이의 모습을 보며 제 마음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정이에게 새로운 친구가 생긴 걸 축하해줘야 겠다는 생각과 함께
버림받은 개에 대한 편견으로 터부시했던 제 자신을 반성하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부터 사랑이 밥그릇에 항상 사료를 가득 채워넣었고
우정이가 밥을 먹고 있으면 “괜찮아, 편히 먹어”라고 다정하게 얘시해주며 자리를 피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우정이와 저와의 거리가 조금씩 좁혀졌는데
이제는 행복이를 만나서 아주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겁니다.
다행이 행복이를 기르는 분도 우정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나 봅니다.
요즘에는 밥 먹으러 찾아오지도 않고 산책길에만 마주칠뿐이지요.


덩치는 사랑이보다 큰데도 순해서 그런지
가끔 사랑이랑 으르렁거리며 장난칠 때는 사랑이에게 밀리더라고요.
아무쪼록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는 우정이가 이 동네에서 잘 지냈으면 합니다.

 

3


김영진님 : 예전 성탄절에 오시던 예수님은 모두의 예수님이셨고 모두를 용서하시려 땅위에 내려왔는데 수십년 지난 지금의 예수님은 왜 변해버린건지요~
예수님도 지나가버린건 아니죠?
종교가 신을 따르지 않고 사목을 따르다 망가지지 말아야 오래도록 사람들을 위로하고 보듬어 줄 수 있기를 성탄절에 바랍니다~


Kil-Joo Lee님 : 뭐 이글이 사제과자가 될 수는 없지만 성민씨의 삶과 마음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이를 계기로 인간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 메리크리스마스입니다.


여승선님 : 부럽다..., 보기 좋네

 


지난 방송에 여러 분이 댓글을 달아주셨습니다.
이 댓글들을 보며 오래 전에 읽었던 칼 맑스의 글 중의 한 부분이 떠올랐습니다.

 


인간을 인간이라고 전제하고. 세계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인간적 관계라고 전제한다면 너는 사랑을 사랑과만, 신뢰를 신뢰하고만 등등으로 교환할 수 있다. 네가 예술을 향유하기를 바란다면 너는 예술적인 소양을 쌓은 인간이어야 한다; 네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한다면 너는 현실적으로 고무하고 장려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인간이어야만 한다. 인간-그리고 자연-에 대한 너의 모든 관계는 너의 의지의 특정한 대상에 상응하는, 너의 현실적.개인적 삶의 특정한 표출이어야 한다. 네가 사랑을 하면서도 되돌아오는 사랑을 불러 일으키지 못한다면, 즉 사랑으로서의 너의 사랑이 되돌아오는 사랑을 생산하지 못한다면, 네가 사랑하는 인간으로서의 너의 생활 표현을 통해서 너를 사랑받는 인간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너의 사랑은 무력하며 하나의 불행이다.

 


이제 성민이의 사랑은 더 이상 무력하지도 불행도 아닙니다.
이 댓글들이 그걸 증명해주고 있지요.


여승선님이 멋있는 노래 한 곡 추천해주셨습니다.
들어보실래요?

 

 

 

 

(Paolo Nutini의 ‘Iron 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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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렁주렁 달린 귤이 노랗게 익어가고 있습니다.
이 귤은 5월초에 수확하는 것이라서 지금이 한참 익어갈 때입니다.
이렇게 잘 익어가는 귤의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귤농사를 해봤습니다.
밀집돼 있던 나무들을 과감하게 감벌을 해버렸습니다.
그리고 어설프게 배운 전정기술로 낑낑거리며 가지들도 다듬었습니다.
전정보다 유인이 더 중요하다고 해서 가지들과 씨름도 많이 했습니다.
여름에는 땀을 흠벅 쏟으면서 가지들을 묶어야했고요.
여름철 물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마음도 많이 졸였습니다.
병충해 방제는 잘하는 건지 긴장도 하면서...


열매 크기가 작아서 마음이 조금 쓰리지만
열심히 가꿔서 이렇게 익어가는 모습을 보니
기분은 아주 좋습니다.


오른속으로 왼쪽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얘기했습니다.
“한 해 동안 고생많았네, 수고했다, 성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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