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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이어트 플레이스, 그저 시간때우기에 그만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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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는 침묵 속에 조여오는 공포영화’라고 해서 솔직히 기대를 약간 가졌다.
‘블레어 위치’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와 비슷한 영화를 기대했다.
주중 낮시간이었는데 영화관에 관객은 혼자 뿐이었다.
영화가 시작도 하기 전에 지레 긴장을 하고 말았다.
다행히 세 명의 관객이 더 들어와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긴장감을 풀면서 보던 광고들이 끝났다.
극장에 불이 꺼졌다.
마음의 준비를 하며 영화를 바라봤다.
약간 어지러운 건물 바닥을 비추고
조심 조심 움직이는 맨발이 보였다.
긴장을 했다.


그런데 긴장은 오래가지 않았다.
소리를 내면 죽는다는데
부모는 어린아이가 혼자 돌아다니게 놔두고 있었고
조심스러운 발걸음과 달리 가족들의 표정과 행동에는 공포가 없었다.
모든 행동은 조심스럽고 대화도 수화로만 이뤄지는데
영화는 내내 소란스러웠다.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 사용되는 음향효과가 침묵을 깨뜨리고 있는 것이다.
“뭐야? 장난하냐?”하는 생각이 들었다.


‘침묵 속에서 조여오는 공포’는 영화 시작 10분만에 포기했다.
긴장감을 풀고 그냥 편하게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온갖 잡동사니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외계생명체의 공격을 받아 도시는 쑥대밭이 됐고 인류는 거의 전멸수준인데
전기가 들어오고 있었다.
외계생명체는 오직 소리에만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주변 사물들은 쓰러지고 떨어지기 좋게 놓여있었다.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신발을 신지 않는다는 거야 이해할 수 있지만
양말을 신는게 소리를 줄이는데 더 좋은데 모두 맨발로 다니고 있었다.
강물소리나 폭포수 소리처럼 자연의 소리가 더 크면 사람의 소리는 묻힌다고 아빠가 설명해주고 있는데
왜 그들은 안전한 폭포수 아래에서 살지 않고 삐걱거리는 목조주택에서 살고 있을까?
이런 잡동사니들이 너무 많아서 배우들의 긴장감과 공포가 전혀 다가오지 않았다.
수시로 깜짝깜짝 놀래키기는 하는데
공포영화도 아닌 액션영화에서도 흔히 봐왔던 수법들이라서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허접하지는 않았다.
앞뒤 상황 뚝 자르고 처음부터 긴장감 넘치는 상황에서 출발한 영화는 내내 긴장감이 흘렀다.
청각장애를 갖고 있는 딸과 출산을 앞둔 엄마라는 설정은 소리에 대한 양극단의 긴장감을 만들었다.
단 네 명의 가족들만이 등장하는 상황에서도 서로의 협력과 갈등은 잘 짜인 톱니바퀴처럼 움직였다.
지나친 음향효과가 기대감을 가져가버리기는 했지만 관객을 영화로 계속 끌어들이게는 만들었다.
한마디로 아주 영리하게 소품들을 배치해서 잘 설계된 퍼즐놀이를 하는 듯한 그런 영화였다.
공포영화라기보다는 ‘미니멀한 에이리언’이라고 해야하나?


기대감이 산산이 부서지면서 실망감 속에 영화를 보고 있는데
자식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었던 엄마가
외계생명체에게 총을 쐈더니
그 괴물이 그냥 죽고 말았다.
“뭐야? 장난하냐? 이럴거면 처음부터 총으로 죽여버리면 될거아냐?”
라는 생각에 허탈해지는데
영화가 끝나버리는게 아닌가.
“뭐야? 벌써 90분이 지났단 말이야?”
이 영화의 엔딩은
이렇게 말도 안되는 허탈함과 함께
말도 안되는 몰입감으로 놀랍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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