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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나지 않았다, 팽팽한 긴장감은 넘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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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한 부부가 자식의 친권을 둘러싼 재판에서부터 영화는 시작한다.
11살인 아들은 ‘폭력적인 아버지를 만나고 싶지 않다’는 자신의 뜻을 명확히 전달한다.
어머니와 그의 변호사는 ‘두 자녀의 명확한 의사는 아버지의 폭력성에 기인하다’며 단독 친권을 주장한다.
아버지와 그의 변호사는 ‘아들의 진술이 엄마에 의한 세뇌의 결과’라며 여러 가지 근거를 제기한다.
양측의 팽팽한 주장 속에 영화는 출발부터 긴장감이 흐른다.


얼마 후 법원은 아버지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주말에는 아버지가 아들을 만날 권리가 있음을 통보한다.
그래서 아버지가 아들을 만나기 위해 찾아왔지만 아들은 나가려하지 않으려 버티다가 마지못해 나간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듯한 표정으로 아빠 차에 올라탄 아들과 그런 아들을 어떻게 대해야할지 몰라 어색한 아빠 사이에 긴장감이 흐른다.


아빠가 다가가려 하면 아들은 도망가는 식으로 둘의 만남이 어색한 분위기 속에 이어진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오래간만에 만난 손자와 식사를 하며 긴장감을 풀려고 노력한다.
아들은 ‘다음 주에 누나 생일파티가 있어서 아버지를 만나는 대신 생일파티에 가면 안되냐’고 묻고, 아빠는 ‘그 얘기를 왜 엄마가 하지 않고 네가 대신하냐’며 화를 낸다.
그러자 잠시 느슨해진 것 같던 긴장감이 다시 팽팽해진다.


아들을 엄마에게 돌려보내면서 아빠는 강압적으로 아들을 추궁해서 엄마의 폰번호를 알아낸다.
그리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화를 내고는 만나서 얘기하자고 한다.
그러나 엄마는 아빠를 만나려하지 않았고 아빠는 더 화가 난 채 아들을 돌려보낸다.
좀처럼 긴장감이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다음 주에 다시 아빠가 아들을 데리러 왔고 누나의 생일파티 대신 아빠를 만나야 하는 아들은 똥씹은 표정으로 아빠를 따라간다.
다시 할어버지 할머니와 함께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다가 한 부분이 아빠의 신경을 건드렸다.
아빠는 아들을 강하게 추궁했고, 그런 아빠의 태도에 할어버지가 강하게 항의를 하며 분위기를 급속히 나빠졌다.
신경질이 난 아빠는 아들을 끌고나와 차에 태우고는 ‘지금 엄마와 함께 사는 곳을 말하라’고 아주 험악하게 다그친다.
잔득 주눅이 든 아들이 얼버무리면 더 강하게 추궁하면서 긴장감이 더 팽팽해진다.


그 뒤에도 영화는 계속 이런 식으로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팽팽하게 조여가면서 아들과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더 얘기하면 지나친 스포가 될 것 같아서 줄거리에 대한 얘기는 여기서 줄여야겠다.)


영화는 복선이나 암시 같은 것 없이 그저 이 가족의 모습 그대로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들의 심리가 아주 복잡할텐데도 그런 것에 신경쓸 여유가 없다는 듯이 그냥 앞으로 달려가기만 한다.
팽팽한 긴강감 속에 앞만 보고 달리는 모습을 보며 ‘저러다 사고날텐데...’하며 걱정을 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대형사고를 터트리고는 영화가 끝이 난다.


아빠가 터트린 대형사고가 정리된 후 엔딩크레팃이 올라가는데 한숨이 나왔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몰입해있다가 엔딩크레팃과 함께 순식간에 빠져나왔더니
“법원은 도대체 어쩌자고 그런 결정을 내렸던 거냐!”고 화가 치밀었다.


상영관을 나와서 화장실을 들러 볼일을 보고 밖으로 나왔더니
영화 속 긴장감은 말끔히 사라지고 뜨거운 햇살이 비추었다.
순간적으로 치밀었던 화도 역시나 순간적으로 날아가버렸다.
긴장감으로 유지되던 영화는 긴장감이 풀리지 순식간에 날아가버린 것이다.
90분 동안의 팽팽함이 5분만에 날아가버리다니...


이렇게 얘기하면 너무 박한가?
뭐 그렇게 얘기해도 어쩔수는 없지만 내 느낌은 그랬다.
아주 힘있는 사실주의영화여서 사람을 확 잡아끌기는 했는데
다보고나면 순간적으로 욱하는 감정만 남기고 사라질뿐
감정의 고양이나 지적 되새김 같은 건 별로 남기지 않는다.


영화에는 주인공이 딱히 없었다.
폭력적인 남편과 옴짝달싹 못하는 아들 사이에서 소극적으로 발버둥치는 엄마의 몸부림에 초점을 맞춘 것도 아니고
소극적인 엄마와 집요한 아빠 사이에서 상처받는 아들의 고통에 초점을 맞춘 것도 아니고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남자로서의 자존심을 찾으려하지만 현실 속에서 외면받으며 더욱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아빠의 이중성에 초점을 맞춘 것도 아니고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제도적으로 방관하는 사회시스템을 드러내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도 아니고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가부장적 폭력의 완강함을 보여주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도 아니다.
어쩌면 감독은 이 모든 것을 다 드러내주려고 했는지도 모르지만
어느 것에도 명확히 초점을 맞추지 못한 영화는 결국 ‘쫄깃쫄깃한 긴장감’이 주인공의 자리를 차지해버리고 말았다.


다르덴형제의 영화같이 묵직한 정공법으로 삶을 파해쳐보는 영화였지만
다르덴형제의 영화와는 달리 말하려는 바가 분명하지 않아서 기교가 넘치는 오락영화처럼 포장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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