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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 4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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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라디오 ‘살자’ 마흔 아홉 번째 방송을 시작합니다.
안녕하세요, 성민입니다.


오늘은 사랑이 사진으로 방송을 시작했는데요
소위 얼짱 각도에서 사진을 찍어봤습니다.
꽤 귀엽죠?


이 자세는 사진을 찍으려고 연출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저만을 바라보는 사랑이의 평소 모습입니다.
저랑 단둘이 살아가는 사랑이가 의지할 사람이 저뿐이기 때문이지요.
더군다나 묶여서 지내기 때문에 저의 행동 하나하나에 더 신경을 쓰곤합니다.
그런 사랑이가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좀 더 잘 해주려고 노력은 하지만
저의 노력이라는 게 사랑이 입장에서는 항상 부족하겠지요.


어제는 산책을 하다가 사랑이가 길에 떨어져 있는 뭔가를 먹었습니다.
순식간의 일이라서 말릴 사이도 없었는데
집에 와서 얼마 후에 구토와 설사를 심하게 하더라고요.
뒷다리도 떨면서...
놀라서 사랑이를 좀 서늘한 곳으로 옮기고 상태를 살펴봤습니다.
물을 새로 줬더니 물은 조금 먹었지만
사료는 먹지 않은 채 가만히 누워있더라고요.
좀 더 상태를 살펴보다가 닭가슴살을 사다가 줬는데도 먹지 않더라고요.
상태가 조금은 호전되는 것 같아서 당장 병원으로 가지는 않고 그날은 그냥 지켜봤습니다.


사랑이가 그렇게 아픈 모습을 보인 경우가 처음이어서
놀라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당장 병원으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상태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저녘을 먹고 제 볼일을 봤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사랑이는 항상 저를 바라보지만 저는 필요할 때만 사랑이를 바란본다는 것을...
인간과 동물의 관계여서 그런 걸까요?
자기중심적인 저의 자세 때문일까요?
저를 바라보는 사랑이의 눈길이 살짝 부담스러워집니다.

 

2


사연도 없고 댓글도 없고 좋아요도 없고 이상한 라디오 내가 사는 거랑 비슷합니다.

 


‘호리’님이 보내주신 사연입니다.
호리님 덕분에 이번 방송에는 사연이 있네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읽는 라디오 ‘살자’는 작년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1년이 조금 넘었는데요
제가 읽는 라디오라는 걸 시작한지는 지금 7년째랍니다.
7년을 진행했는데도 아직도 이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중간에 잠깐 사연과 댓글과 좋아요가 생겼던 적이 있기는한데
이런저런 사정들로 인해서 지금은 이렇게 휑한 라디오가 됐습니다.
이런 휑한 방송도 오래하다보니까 이제는 익숙해져버렸습니다.
이렇게 가끔 발자취를 남겨주는 분이 계셔서 그 온기가 더 소중하게 느껴지지요.


호리님도 이 방송이랑 비슷한 삶을 살고 계신가요?
음... 그런 삶에 익숙해지는 건 좋은 게 아닌데...
그래도 뭐, 어쩌겠습니까. 그렇게 살아가다보면 뭔가 생기겠지요.
그 대신 우리 외로움에 질식당하지는 말자고요.


이렇게 이상하고 휑한 방송이지만 가끔 찾아와주세요.
서로 힘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서로의 마음은 잠시나마 스칠 수 있지않을까요?

 

3


가을이 되면 들려오던 노래 중에 ‘올 가을엔 사랑할거야’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가을의 대표곡 중의 하나였는데 요즘에는 듣기가 어렵죠.
찬바람이 불고 낙엽이 지면 쓸쓸해져서 따뜻한 누군가가 그리워진다는 노래인데요
가만히 이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예전의 낭만적 감성이 살며시 되살아나기도 합니다.
너무 더워서 사람의 체온이 싫은 여름에 비하면 가을은 분명 사람이 그리워지는 계절이기는 합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가을의 쓸쓸함이니, 따뜻한 사랑의 온기니 하는 얘기가
철지난 낭만타령으로 들려서
사치스럽기까지도 한가요?
하긴, 점점 차갑고 살벌해지는 세상에서
나이가 쌓여갈수록 인간에 대한 배신감만 늘어나는데
낭만이니 사랑이니 하면서 앉아 있는 꼴이라니...


나이가 들어갈수록 현실을 또렷하게 보게되지만
현실을 또렷하게 보게될수록 사람들은 멀어져만 갑니다.
외로움이 또아리를 튼 그 자리에는 냉소가 친구를 자처하지요.
그래서
올 가을에는 사랑을 해보려고 합니다.
이미 굳건히 자리잡은 외로움을 쫓아낼수는 없지만
친구를 자처하는 냉소는 쫓아낼 수 있지 않을까해서요.
억지로라도 온기를 집어넣으면 차가움이 조금은 자리를 멀리하겠지요.


새벽 명상을 할 때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조금이라도 나에게 도움을 줬던 사람들을 떠올려봤습니다.
부모님부터, 어릴적 친구들, 인생의 선배와 마음씨 좋은 이웃들, 친했던 동지들, 나를 믿고 따랐던 여러 사람들
그들을 일일이 떠올리다보니 명상 시간이 1시간을 넘겨버렸습니다.
그렇게 많은 이들을 떠올리며 고맙다고 한마디씩 했더니 그날 하루 기분이 엄청 좋더라고요.
이렇게 뒤를 돌아보면 내게 상처를 줬던 사람들보다 도움을 줬던 사람들이 몇배는 많습니다.
상처가 몇배는 더 강해서 내가 고마워해야할 이들을 잊고 지내왔다는 걸 새삼스럽게 알게됐습니다.
이제는 고마워해야 할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올 가을에는 사랑할겁니다.

 



(방미의 ‘올 가을엔 사랑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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