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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 52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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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금꽃이 화사하게 피었길래 마루에 꽂아두었습니다.
꽃이 크고 고와서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주더군요.
울금꽃은 다른 꽃보다 오래가기 때문에 보름 넘게 화사함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꽃이 시들기 시작했습니다.
꽃을 버려야되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미안해졌습니다.
저의 즐거움을 위해 꺽어와서 꽂아두었다가 보름만에 시들었다고 버리는 것이...


미안한 마음에 버리지 못하고 한 달째 시들어가는 꽃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꽃이 커서 그런지 시들어가는 것이 빠르지 않더군요.
아주 조금씩 시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려니 처연해지더군요.


시들어가는 꽃을 위해 물도 새로 갈아줬습니다.
아직은 살아 있는 생명이기에...
저도 화사함을 넘어 시들어감에 익숙해져야할 나이입니다.

 

2


가을이라서 그런지 외로움을 무쩍 느끼게 됩니다.
그렇다고 특별히 외로움을 달랠 방법이 없어서
궁여지책으로 팟캐스트를 찾아 듣게 됩니다.
그렇게라도 세상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던거지요.


이런저런 팟캐스트를 둘러보다가 어느 한 방송이 귀에 들어오더군요.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으로 추측되는 여성 세 분이 진행하는 방송이었는데
그들의 삶과 생각을 아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아, 물론, 제가 남자라서 젊은 여성들이 진행하는 방송이 더 귀에 들어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방송은 말랑말랑한 방송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생각을 거리낌없이 내뱉으면서 기존 관념들을 자근자근 씹어제낍니다.
그 직설적인 솔직함도 마음에 들어서 계속 듣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얘기를 들으며 20대 때의 혈기왕성했던 감성이 되살아나기도 했고
발랄하고 직설적인 에너지로 저의 무뎌진 감각을 깨우기도 했고
제가 모르는 새로운 정보와 시각을 일깨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얘기가 솔직하면 솔직할수록 점점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무진장 애를 쓰며 자기 삶의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여성들의 얘기는
그들을 억압하고 이용해먹고 가르치려하고 밀어내려는 것들에 대한 분노와 울분의 얘기였습니다.
그들이 분노하는 대상에는 완고한 남성 기득권세력들이 자리잡고 있었고요.
그리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중년 남성인 저도 그 기득권세력의 바운더리에 있었습니다.


제가 그들의 얘기에서 불편함을 느꼈던 것은 그 지점이었습니다.
진보적이라 자처하며 그들의 얘기에 공감하다가도
얘기가 좀 더 진전되면 제 오른쪽 발로 그들의 칼날이 다가오고 있었거든요.
그 칼날을 느끼는 순간
처음에는 그들의 좁은 경험과 시야에 대해 논쟁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다음에는 ‘우리의 역사와 입장도 이해해달라’고 변명하고 싶어졌고
또 다음에는 ‘그래서 어쩌자는거냐?’며 짜증이 났고
마지막에는 피를 흘릴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했습니다.
제가 20~30대였을 때 기성세대를 가차없이 공격하며 제 삶의 위치를 잡아왔던 것처럼
지금의 20~30대들도 이미 기성세대가 된 저를 가차없이 공격하며 그들의 삶의 위치를 잡아가고 있는 겁니다.
그러지 않고는 그들의 자리가 없기 때문이지요.


앞으로도 이 팟캐스트를 계속 들어야겠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기성세대임을 인정해야겠습니다.
그러면서 한쪽 자리를 비워야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어야겠습니다.
그러면서 버리는 삶에 대해 더 배워야겠습니다.
그러면서 함께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래야겠습니다.
삶이란 이렇게 아름다운 곡선으로 나아가지는 않겠지만...

 


(자우림의 ‘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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