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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자 55회


1


읽는 라디오 ‘살자’ 쉰 다섯 번째 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성민입니다.


지난 한 주 어떻게들 보내셨나요?
저는 요즘 특별히 바쁜 일이 없어서 여유롭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데요
이럴 때일수록 마음이 밖으로 나다니지 않도록 차분하게 지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의 노력과 상관없이 지난주에는 이런저런 일들이 제 주변에서 생겼습니다.
좋은 일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일들도 있어서 조금 심란하게 한주를 보냈습니다.


지난 일들을 곱씹으면 부정적 에너지만 넘치기 때문에
가능하면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두려고 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아서 심란함이 제 주위를 맴돕니다.


그래서 오늘 방송은 이 심란한 마음을 떨어트려놓기 위한 노력의 일환입니다.
얘를 들여다보지 않으면서 얘 주위를 제가 빙빙 돌아볼까합니다.
그러다보면 얘를 아무 생각없이 바라볼수 있게 되지 않을까해서요.

 

2


요즘 들어 뉴스를 잘 보지 않게 됩니다.
뉴스들이 하는 꼬라지를 보면 ‘땡전뉴스’의 전통을 이어받아 ‘땡문뉴스’로 나아가는 꼴이 참 가관입니다.
그동안 즐겨봤던 jtbc같은 경우는 노골적으로 어용뉴스가 되버려서 더 보기 싫어집니다.
지난주에는 엄청 쏟아지는 뉴스들 속에도 pc방 살인사건을 톱뉴스로 정해서 보도하더군요.
정권이 수세에 몰릴 때마다 어용뉴스들이 하는 전형적인 수법이었습니다.


아~ 얘기가 시작부터 옆길로 빠지려고 하네요. 헤헤헤
제가 하려는 얘기는 어용뉴스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살인사건에 대한 얘기입니다.
뉴스를 통해서 얘기는 많이 들으셨을테니
또 옆길로 빠지기 전에 그냥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이 뉴스를 보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가해자의 모습에서 제 모습이 자꾸 오버랩되더군요.


예전에 제가 한참 발버둥치고 있을 때
5시간을 기본요금으로 보낼 수 있는 지하철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나를 도와줄 사람이 한명도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면서도
무수하게 타고내리는 지하철 속 사람들에 시달리고 있을 때
앞자리에 젊은 연인 한쌍이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서로 다정스럽게 눈을 마주보며 얘기를 나누던 둘은
주위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맞추더군요.
그 모습을 보던 제 마음 속에서 순간 분노가 치밀어올랐습니다.
‘죽여버리고싶다’는 생각이 맹렬하게 올라오는데
그때 제 손에 칼이 있었으면 진짜로 찔러버렸을지도 모릅니다.


저같은 놈이 한순간 흉학한 괴물로 변하는 것은 찰나의 일입니다.
저같은 놈이 이 세상 도처에 우글거리고 있다는 것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저같은 놈이 괴물이 되도록 방치하고 있는 것도 이 사회라는 걸 다 압니다.
저같은 놈이 괴물이 되어가는 동안 애써 모른척 해왔다는 것도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가 봅니다.
그 괴물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모두가 그를 욕하고 악마로 만듭니다.
그래야 자신의 순결함이 증명되고
그동안의 죄가 희생양으로 인해 사하여지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권력은 자신의 치부를 가릴 기회를 얻기도 합니다.
그렇게 pc방 살인사건의 피의자 김성수는 악마가 됐고
한끝 차이로 살아남은 김성민은 그 악마의 얼굴을 바라보고만 있습니다.
그지없이 착잡하고 심란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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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제 마음속에 있는 괴물이 살며시 고개를 내밀며 한마디 하네요.
“야, 그러는 너는 세상에서 버림받고 외면당한 채 괴물이 되어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뭘 하고 있는데?”

 

3


날씨가 차가워지기 시작하면서 감귤나무에 병해충 걱정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편안하게 잡초를 제거하는 것이 일인데요
요즘 잡초는 풀 길이가 짧고 뿌리가 단단히 박혀 있어서
잡초를 뽑는 일이 여간 고되지 않습니다.


제초제 한번 싹 뿌려버리면 간단하게 끝나는 일이지만
특별히 바쁜 일도 없어서 일일이 손으로 뽑고 있습니다.
한 달 동안 거의 매일 잡초를 뽑았지만 이제 반을 조금 넘겼을 뿐입니다.
급할거 없으니 매일 조금씩 해나가고 있습니다.


일을 할 때는 사랑이를 하우스 안에 풀어놓습니다.
밖에 나갔을 때처럼 좋아서 막 뛰어다니지는 않지만
목줄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어서 사랑이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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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쭈그리고 않아서 잡초를 뽑고 있으면
사랑이는 제 주변에서 어슬렁거립니다.
일을 하다가 쉬기 위해 잠시 허리를 펴고 고개를 돌리면
사진과 같은 모습으로 저를 바라보지요.
“사랑아”라고 부르면 제 곁으로 금새 다가옵니다.
그런 사랑이를 살며시 쓰다듬어줍니다.


사랑이는 제 손길에 몸을 맡기고
저는 사랑이의 체온에 제 마음을 맡깁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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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반 동안 마루에 놓아두었던 울금꽃을 버렸습니다.


크고 화사했던 꽃이
조금씩 시들기 시작해서
작고 볼품없이 사그라드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꽃의 화사함이 시들어가는 모습이야 처연하게 바라볼 수 있었는데
줄기에 힘이 없어져서 턱걸이 하듯이 걸쳐져 있는 모습은 안타깝더군요.
그 모습이라도 끝까지 지켜볼까 생각을 하다가
꽃을 들어봤더니 줄기는 떨어져나가고 꽃은 바삭거렸습니다.
이미 생명이 다한 것을 억지로 잡아놓고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이 상태로도 얼마 동안을 더 지켜보면 꽃잎이 좀더 말라들어가는 과정을 거치기는 하겠지만
필요 이상으로 임종의 순간을 연장하는 마음이 들어서 과감하게 버렸습니다.


이 얘기 듣고 웃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지만...
시든 꽃을 땅에 묻어줄까 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두 달 반 동안 그렇게 정이 들어버렸기 때문이죠.
하지만 꽃은 원래 땅에 떨어져서 자연스럽게 사그러든다는 생각을 하니
땅에 묻어주는 건 꽃의 생리와 맞지 않을 것 같더군요.
그래서 거름을 만드는 곳에 갖고가서 그냥 버렸습니다.


시간이 지나 거름이 되면
다른 생명의 영양분이 되서
또 다른 꽃을 피우겠지요.


이 분도 몇 달 전에 돌아가셨지요.
조동진의 ‘작은 배’ 들으면서 오늘 방송 마칠까합니다.
이 노래 들으면서 저의 심란했던 마음을 들어다봐야겠습니다.
오늘 방송 같이 들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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