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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씨 119, 미국 자본주의의 민낯을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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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마이클 무어의 영화를 그리 많인 본 것은 아니었다.
아주 오래전에 봤던 ‘로저와 나’는 너무도 선명해서 아직도 기억이 나고
‘폴링 포 콜럼바인’은 미국에서 총기사건이 날 때마다 떠오른다.
그리고 10여 년 전 아주 재미있게 봤던 ‘화씨 911’이 내가 봤던 마이클 무어의 마지막 영화였다.
그후에도 그의 영화가 계속 개봉했지만 너무 미국적인 주제들이어서 발길이 가지 않았다.

 

10여년 만에 ‘화씨 119’라는 제목으로 그의 영화가 개봉했다.
처음에는 “다큐멘터리도 재개봉하는 거야?”라고 의아했는데 자세히 보니 숫자의 위치가 하나 달랐다.
911은 부시에 대한 얘기였는데, 119는 트럼프에 대한 얘기였다.
트럼프가 온통 난리를 치는 세상이어서 마이클 무어가 또 어떻게 한방 먹였는지 궁금했다.
요즘 한국도 돌아가는 꼴이 엉망이라서 시원한 정치영화를 보며 속풀이라도 하고 싶었다.

 

영화는 모두의 예상을 뒤업고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하는 모습으로 시작했다.
빵빵한 음악과 음향효과까지 극적으로 써가면서 초반부터 화끈하게 시작했다.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게 됐는지를 직설적으로 까발린다.
유권자의 의사를 왜곡하는 미국 선거제도, 지지자의 열망을 잠재워버리는 정당정치, 대중의 실망과 무력감 속에 공고해지는 기득권세력, 거기에 기생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썩은 언론인들까지...
태극기와 성조기를 같이 흔들며 선망해마지 않는 자유민주주의의 선진국은 이런 모습이었다.

 

선거와 정치제도에 대한 얘기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은 감독은 플린트시라는 곳으로 달려갔다.
미국을 칭송하기에 바쁜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알려주지 않았던 미국 내 치부를 마이클 무어가 보여줬다.
사업가 시장이 당선된 이후 그곳에서 벌어진 일들은 상상을 초월했다.
정당정치와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가 살아있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지다니...
이명박이 4대강 갖고 장난친 건 정말 장난일 정도다.
그리고 문제가 심각해지나 ‘짠!’하고 나타난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미국인의 우상인 오바마 대통령은 사람들의 뒤통수를 제대로 갈겨놓고는 사라져버렸다.
미국의 자본주의는 그렇게 썩어가고 있었고, 정치인들은 그 오물 속에서 돈을 챙기느라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런 오물투성이 잡탕 속에서 어느날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난 인물이 트럼프였다.
대중의 불만을 직설적 화법으로 교묘하게 왜곡해버린 그는 정치에 대한 환멸까지 자신의 승부수로 이용했다.
독일이라는 발달한 민주주의국가 속에서 대중의 불만을 먹고 나치가 성장했듯이 세계 최강국 미국에서도 대중의 불만을 등에 업은 트럼프가 우뚝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는 거침없이 미국과 전세계를 휘젓고 있다.
마이클 무어는 그런 트럼프를 대놓고 히틀러와 비교해버렸다.
마이클 무어다운 과감함이었다.

 

마이클 무어는 상층부의 추악함을 드러내면서 허무주의로 빠지는 오류를 범하지 않았다.
그는 이런 미국을 바꿔낼 힘이 바닥에서 흐르고 있음도 보여줬다.
계속된 총기사건에 맞서 당당하게 거리로 나선 청소년들,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노조집행부의 방해를 뚫고 파업을 성사시킨 교사들, 민주당을 아래로부터 변화시키려는 열성적인 소수자 활동가들
미국이라는 사회 밑에서 도도하게 흐르는 자발적 대중운동에서 그는 미래를 찾고자 했다.

 

이 영화는 트럼프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자본주의를 얘기하는 영화였던 것이다.
그래서 깊이가 있었고, 그의 선명한 주장은 더 빛났다.
그런데 이전 영화들과 달리 힘이 조금 빠져보였다.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에 기대하더라도 결국 민주당을 버릴 수 없는 그의 딜레마가 보였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미국 사회 곳곳을 카메라로 비추면 목소리를 높였지만
미국 자본주의는 점점 썩어가고
공화당과 민주당 기득권 세력은 더 굳건해지고만 있으니
아래로부터의 운동으로 민주당을 바꿔야한다는 얘기를 자신있기 하기가 힘들었다.
그 딜레마로 인해 영화 후반부는 다소 설교조가 되고 말았다.

 

그래도 오래간만에 화끈한 정치영화 한 편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미국을 따라가기는 태극기부대만이 아니라 한국의 민주당도 마찬가지여서 한국의 미래를 보는 것도 같았다.
촛불을 들고 박근혜를 몰아내고, 그 성과로 문재인을 당선시켰고, 또 그 여세를 몰아 지방권력까지 화끈하게 몰아줬는데 지금 하는 꼬리지들을 보면...
과거 노무현 정권이 했던 뻘짓을 세련된 형태로 다시 하는 걸 바라봐야 하는 기분이 꿀꿀하기는 하지만 한국은 미국보다 훨씬 역동적인 대중의 흐름이 살아있다.
그래서 미국의 마이클 무어보다는 한국의 내가 덜 비관적인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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