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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 차가운 세상에서 밝고 유쾌하게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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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어른이 되면’이라는 책을 읽게 됐다.
중증 발달장애를 갖고 태어난 동생(혜정)을 돌봐야했던 둘째언니(혜영)는
13살이 된 동생이 장애인시설에 맡겨진 후
자신의 삶에서 빈자리를 안고 살아가야했다.
18년의 시간이 흐르고
혜영은 혜정을 시설에서 데려오기로 결심한다.
이 책은 그 이후 벌어진 일들에 대한 기록이었다.
장애인을 둔 가족들이 겪어야 하는 힘겨움
장애인을 대하는 이 사회의 무관심과 무책임
장애인 지원기관들에서 보여주는 허술함과 무능함
이런 온갖 모습들을 생생하게 기록해놓았지만 이런 모습을 폭로하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국가와 사회가 그렇더라도 어떻게든 동생과 함께 삶을 살아보려는 노력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동생과 함께 하기 위해 이사를 가고
온전히 동생을 위해 함께 시간을 보내고
동생을 도와줄 방법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다녀보고
꽉막힌 현실이 숨막히면 동생과 함께 여행을 떠나고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 동생의 경험을 넓혀나가고...
동생과의 새로운 삶을 위해 정말로 열심히 노력했다.
치열하면서도 유쾌하게!

 

의외로 깊이있는 책을 읽게 되어서 기분이 좋았다.
그 과정을 다큐로 찍어놓았다고 해서 인터넷으로 찾아보는데
때마침 극장에서 개봉을 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극장을 찾았다.

 

혜정과 혜영이 같이 살기위해 새집으로 이사를 가는 장면에서부터 영화는 시작했다.
혜정은 새로운 공간과 자기만의 방이 너무 좋았다.
혜영도 기분이 좋았고 이사를 도와주는 후배들도 모두 즐거웠다.
새로운 집은 혜정과 혜영 둘만의 공간이었지만
그곳에는 그 둘의 새로운 출발을 도와줄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그리고 혜정의 새로운 삶에 도움이 되기 위해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렇게 둘은 이 세상 속으로 거침없이 걸어갔고 파도에 밀려나기도 했지만 맞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세상이 차가울수록 둘은 좀더 많은 친구들을 만들어나갔고 그러면서 행복을 그려갔다.

 

영화는 시종일관 밝고 유쾌했다.
극적인 전개나 특별한 사건사고를 부각하지 않으면서 담담하게 혜정과 혜영의 모습을 담아냈다.
그래서 부담감없이 둘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렇게 둘의 모습을 따라가다가 혜영이 환경재단에서 주는 상을 받게 되는 장면이 나왔다.
모두들 즐거운 분위기 속에 시상식과 축하공연이 이어지는데
이한철밴드의 노래가 시작되니 흥에 겨운 혜정이 갑자기 무대 위로 올라가서 춤을 췄다.
흥겨워서 아주 즐겁게 춤추는 혜정과
얘기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면서도 덩달아 신이 난 이한철과
밋밋한 행사장을 바꿔놓은 모습에 흥이 난 참석자들이 어우러져
신나는 파티가 되어버렸다.
그 장면을 보면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소리를 내며 웃고 있는데 눈에서 눈물이 흘려내렸다.
그 모습을 보는 내가 행복해져서 나오는 웃음과 눈물이었다.
그 장면은 정말로 잊지 못할 것이다.

 

이 영화는 혜정과 혜영의 실제 모습을 담은 생생한 다큐였지만
판타지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 계속 들었다.
이 차갑고 살벌한 세상 속에
둘이 아무런 대책없이 놓여졌는데
이렇게 밝고 유쾌할 수 있다니!
현실적이지 않은 이질감을 느꼈다.
그런데 그 이질감이 너무 좋았다.
그 밝고 유쾌한 그들의 모습 뒤에
몇 배는 더 어두운 과거와 불안한 미래가 놓여있지만
둘은 노래하고 춤추며 그들의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차가운 현실에서 맨발로 돌아다니려면 더 열심히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둘만의 세계로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좀더 많은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영화는 그 얘기를 밝고 유쾌하고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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