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살자 110회


1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전에 밭일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나서
사랑이와 가볍게 산책까지 마친 후
방에 이불을 깔고누워 tv를 보고 있는데
늦가을의 햇살이 살며시 비춰오는 마루에서
사랑이도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정겨워서 사진으로 담아놓고
다시 tv로 눈을 돌려
저 역시 여유로운 시간을 즐겨보는데
스스로 눈이 감겨오더군요.
감겨오는 눈을 애써 거부할 이유가 없기에
그대로 내버려뒀습니다.
그렇게 사랑이와 함께 달콤한 낮잠에 빠져들었지요.

 

2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랑이와 함께 어느 숲속을 걷고 있었습니다.
날은 저물어 어둡고
울창한 숲에서는 한기가 느껴졌지만
구름 사이로 환하게 비추는 보름달이
어둠과 냉기를 걷어내고 있었습니다.


처음 와보는 어두운 숲길을 달빛에 의지해서 걷다보니
무서움과 편안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묘한 기분이었습니다.
겁이 없는 사랑이는 신나서 이곳저곳 냄새를 맡으면서 뛰어다니는데
그러면서도 자주 뒤를 돌아보면 제가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더군요.
그런 사랑이가 곁에 있어서 어두운 숲길을 별 어려움없이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10여분을 그렇게 걷어가다보니 조그만 웅덩이가 나오더군요.
옹달샘이라기에는 크고 호수라기에는 작은 그런 웅덩이였습니다.
사랑이는 고개를 숙여 목을 축이고
저는 한쪽 구석에 앉아 웅덩이를 바라봤습니다.
달빛이 그곳에서도 일렁이고 있어서 편안하게 웅덩이 속의 달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목을 축인 사랑이도 제 옆으로 다가와 앉기에 가만히 쓰다듬어줬지요.


그때 웅덩이에서 잔물결이 살며시 일어나더니 잔잔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였더니 건반같은 소리가 들리더니 이어 노래소리가 들렸습니다.
귀로는 노래를 들이며 눈으로 웅덩이를 바라봤더니
달이 웅덩이의 물을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더군요.



(Low Roar의 ‘Help Me’)


가사를 정확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Help라는 단어는 분명히 들렸습니다.
그런데 저는 노래에 취해 몸과 마음이 웅덩이 속으로 녹아드는 것 같았습니다.
‘저 안으로 들어가 달을 만져줘야하나?’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사랑아!”라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3


사랑이가 꼬리를 흔들며 달려간 그곳에 사람의 형태가 보이기는 했지만
어두운 숲속이라 누군지를 알 수 없었습니다.
사랑이를 반갑게 쓰다듬다가 저를 향해 걸어오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는데
달빛에 얼굴이 보이니 저도 모르게 환호가 나왔습니다.


성민이 : 와~ 이게 누구야!
꼬마인형 : 안녕, 잘 지냈어?
성민이 : 야, 이거 얼마만이냐?
꼬마인형 : 너무 오버하지마, 성민이답지 않게.
성민이 : 하하하
꼬마인형 : 여기 괜찮지?
성민이 : 여기 살아?
꼬마인형 : 아니, 사는건 아니고 가끔 바람 쐬러오곤해.
성민이 : 뭐야, 그럼 꼬마인형이 여기로 우릴 부른거야?
꼬마인형 : 음, 설명하려면 좀 복잡한데, 내가 부른건 아니지만 내가 발견한 건 맞아. 이해하려고 하지말고 그냥 그렇구나하고 생각해.
성민이 : 그러지 뭐, 요즘 어떻게 지내?
꼬마인형 : 나야 뭐 그냥... 그런데 내 걱정할 형편이 아닐텐데?
성민이 : 어, 아버지 때문에?
꼬마인형 : 심술나서 방송에대고 한바탕 화풀이도 했던데.
성민이 : 어, 뭐, 그렇게 쏟아붓고나면 조금 답답한게 풀리는 것도 있는거지. 아버지는 항암치료하러 서울에 올라가 있어서 내가 할수 있는 일도 별로 없어. 그래서 그냥 그러려니 하며 살려고 노력중이야.
꼬마인형 : 그래? 그렇다고 방송을 때려치우지 않는 걸보니까 미련은 있나봐요. 성민 디제이님? 크흐흐흐
성민이 : 하하 그러게. 그 정도 일로 여기서 때려치우기에는 조금 아쉽잖아. 이래뵈도 이게 내 생명줄인데.
꼬마인형 : 그 생명줄 참 튼튼하네. 성민이는 오래살겠어.
성민이 : 하하하 그러겠지? 그러고보면 꼬마인형이랑 함께 진행했을 때가 에너지 넘치고 좋았는데. 혼자서 하려니까 그때의 에너지가 안나오더라고.
꼬마인형 : 그게 다 내 파워였다는거 이제야 느끼지? 내가 축 쳐져있는 성민이 기 살려준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그때 생각하면, 으~
성민이 : 인정 인정, 내가 꼬마인형 덕을 많이 봤지. 지금까지 방송하면서 그때가 제일 재미있었어. 얼로 어떻게 튈지모르는 긴장감도 있었고. 아~ 참, 다시 그런 방송을 할 수 있을지... 그리고 꼬마인형한테 고마웠다고 인사도 제대로 못한 것 같네. 정말 고마웠어. 덕분에 이렇게 잘지낼수 있게해줘서.
꼬마인형 : 아아아, 왜 이러세요, 아저씨. 오버 좀 하지말지. 고맙다는 말도 여러번했거든, 이게 그런말 좀 그렇다. 아이고, 성민이 아저씨가 오래간만에 말상대를 만나서 센치해지셨네요. 가을 타나?
성민이 : 야, 고맙다고 하면 그냥 받아줘라. 뭘 또 튕기냐?
꼬마인형 : 나이든 아저씨가 자꾸 고마워 고마워 그러면 닭살 돋거든. 젊은 여자 귀신한테 작업걸려는건 아니지?
성민이 : 푸하하하하, 작업걸면 넘어오기는 하고? 하하하
꼬마인형 : 이거 왜이래? 내가 살아있었으면 지금 스물다섯살이야.
성민이 : 아아, 됐어, 됐어. 처녀귀신한테 기 빨릴 생각없어요.
꼬마인형 : 그래도 오래는 살고 싶은가보지?
성민이 : 당연한 말씀을.
꼬마인형 : 이렇게 웃으면서 활기있는 모습 보니까 좋네. 그런 모습 자주 보여줘.
성민이 : 그럴 상대가 있어야지. 오래간만에 꼬마인형이랑 얘기하니까 이렇게 에너지가 넘실거리는거지.
꼬마인형 : 에고~ 불쌍한 성민이, 내가 술 마실줄 알았으면 술이라도 한잔 할텐데. 누군가랑 얘기하면서 술먹는게 성민이 소원이잖아.
성민이 : 그러면이야 좋기는한데, 뭐, 그럴 조건이 되지않는 걸 그냥 받아들이면 속편해. 그렇지않아도 혼술도 줄이려고 하고 있거든.
꼬마인형 : 어떻게든 오래살아볼려고 무진장 노력하시네요, 아저씨.
성민이 : 건강도 건강이지만 술에 의지하는게 정서적으로도 좀 그래서.
꼬마인형 : 아이고 기특해라. 이제 어른이 다 됐네요. 이렇게 착한 사랑이가 옆에 꼭 붙어있으니까 칭얼대지말고 나한테 못다한 애정을 사랑이한테나 듬뿍 쏟아주세요. 알았어요?
성민이 : 그래야지. 사랑이가 내 부처님인데. 그건 그렇고 가끔 이런 식으로라도 연락할 수는 있는거야?
꼬마인형 : 구천에서 떠돌다가 저승에간 귀신한테 미련갖지마. 그냥 살아.
성민이 : 미련이라기보다는 그냥 아쉬워서. 가끔 생각도 나고, 가능하면

 

4


꼬마인형이랑 한참 얘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눈이 뜨이고 말았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즐거운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허망하게 날아가버린 환영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다시 눈을 감으면 잠들지 않을까 싶어서 눈을 감아봤지만
그럴수록 정신만 또렸해지더군요.


고개를 돌려 사랑이를 봤더니
사랑이는 여전히 잠들어있었습니다.
잠들어 있는 사랑이의 모습을 보며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사랑이는 아직도 꼬마인형이랑 같이 있을테니까요.

 


* 오늘 방송에 사용한 그림은 Ralph Albert Blakelock의 ‘Enchanted Pool’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