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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21회

 

 

 

1

 

 

스물한 번째 읽는 라디오 출발하겠습니다.

진행을 맡은 저는 들풀입니다.

 

 

올해 제 삶의 목표가 ‘조금 손해 보면서 겸손하게 살아가자’입니다.

세상이 팍팍해지다보니까 제 삶도 만만치 않게 팍팍해져서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마음속에 있는 가시들을 하나씩 뽑아버리고 조금은 여유롭게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어렵지도 않더라고요.

사람들을 대할 때 계산적으로 판단하면서 접근하는 자세를 버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저 관계의 단순함, 편안함, 즐거움을 찾으려는 노력입니다.

 

 

서로가 편한 관계에서는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서로 편하게 대하면서 내가 먼저 상대를 위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면 됩니다.

서로 불편한 관계에서도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불편한 만큼 어차피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그 거리만큼 조심하면 됩니다.

좋은 건 가까이하고 나쁜 건 멀리하면 되는 샘이죠.

 

 

그런데 문제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일상의 관계들에서 생기더군요.

제가 돈을 지불해서 서비스를 받는 경우 상대는 저를 깍듯하게 대합니다.

돈을 지불하지는 않지만 정당한 공공서비스를 받는 경우에도 저를 친절하게 대합니다.

상대가 이렇게 낮은 자세로 제게 다가올 때 저도 공손하게 대하기는 하지만

은연중에 제가 높은 위치에 있는 듯한 언행을 하게 됩니다.

아주 사소하고 흔히 그럴 수 있는 것이라고 치부할 수 있는 언행이지만

그런 상황에서 제가 불편하거나 불이익을 당하는 것을 용인할 수 없는 겁니다.

나중에 이런 제 모습을 돌아볼 때면 얼굴이 붉어집니다.

 

 

사람들 앞에서 겸손해진다는 것이 참 어렵다는 걸 느낍니다.

 

 

 

 

2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면 슬며시 웃음이 나는 선생님이 한 분 있다.

윤창구 선생님.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었다.

직사각형의 네모난 얼굴에 화살코가 인상적인 분이었다.

이 분은 당시 4학년인 내가 보기에도 기본 상식이 좀 부족한 분이었다.

예를 들면, "야들아, 콩 한되에 좁쌀 한되를 섞으면 양이 얼마나 되는줄 아나?"

선생님의 답은 한되.

콩 사이의 빈 공간을 좁쌀이 채우기 때문이라고...헐.

그러면 좁쌀 한되에 콩 한되를 들이 부으면 콩은 어느 공간으로 들어가나. ㅋㅋ

또 다른 예.

내가 다닌 시골 초등학교에는 학생들이 직접 농사를 짓는 작은 논이 딸려 있었다.

그래서 학교 한켠에 학생들이 풀을 베어와 쌓아두고 썩혀서 거름을 만드는 퇴비장이 있었다.

어느날 퇴비장의 퇴비가 발효하면서 열이 나 김이 무럭무럭 피어 오르는 것을 본 윤창구 선생님이 무엇인가를 깨달은 듯 우리에게 해준 말, "야들아, 내 생각에 온천이라는 것은 말이지 땅 속의 퇴비가 썩어서 열을 내 만들어지는 것이 틀림없다." ㅋㅋ

그런데 이런 윤창구 선생님이 놀랄만한 기지를 발휘해 멋지게 해결한 사건이 있었다.

우리반에 인수라고 집안 형편이 넉넉한 편인 친구가 있었는데 당시로는 꽤 큰 돈이었던 500원 짜리 지폐 한장을 도둑 맞고 난리를 치는 일이 발생했다.

윤창구 선생님은 먼저 우리 모두에게 눈을 감으라고 하고는 돈 가져간 사람 손 들라고 했다.

아무도 자수하는 사람이 없자 선생님은 잠깐 고민하더니 교무실에서 뭔지 모를 장비 하나를 가져왔다.

꾹꾹이 기타 이펙터처럼 생겼는데...

아무튼 선생님은 그걸 우리에게 들어 보이며 최신 도둑 잡는 기계라고 하셨다.

옆의 빈 교실에 선생님이 자리잡고 계시고 우리는 한 명씩 선생님을 방문해야했다.

내 차례가 되어 괜시리 떨리는 마음으로 선생님 앞에 섰다.

버튼이 달린 그 장치에는 전선 두개가 뻗어나와 하나는 콘센트에 꽂혀 있었고 다른 한쪽 끝은 주머니 속의 선생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버튼을 누르라고 했다.

그리곤 됐다고 가보라고 했다.

우리반 모든 아이들이 빠짐없이 선생님 앞에 선 다음 선생님은 교실로 돌아오셨다.

우리는 숨 죽이고 선생님의 테스트 결과를 기다렸다.

"이 기계는 도둑이 버튼을 눌렀을 때 내 손에 전기가 오도록 만들어진 장치다. 테스트 결과 단 한명 내 손에 전기가 오는 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은 방과후 아무도 없을 때 교탁 서랍에 돈을 넣어 놓기 바란다. 그러면 더 이상 잘못을 묻지 않겠다."

다음날 아침 선생님의 교탁 서랍에는 도둑 맞았던 500원짜리 지폐가 얌전히 놓여 있었다.

이 사건 해결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인수의 잃어버린 돈을 고스란히 되찾았으면서도 도둑이 누구인지 영원히 모른다는 점이다.

우리는 물론 선생님까지도.

어쩌다 돈을 훔친 아이는 선생님이 자기가 범인임을 알면서도 친구들 앞에서 망신이나 벌을 주지 않았으니 진심으로 안도하고 감사했을 것이다.

그날 이후 우리반에서는 불미스런 도난 사고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십여 년 전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명탐정 코난 버금가는 우리의 윤창구 선생님.

보고싶습니다.

그나저나 그 기계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김정균님의 페이스북에서 옮겨온 글입니다.

김정균님은 얼만 전 방송에서도 옛 추억을 맛깔나게 소환해주셔서 소개해드렸는데요

이번에도 역시 어릴 적 추억을 아주 재미있으면서도 정감 어리게 불러내주셨습니다.

 

 

선생님이 약간 푼수기가 있는 것 같아 보이기는 하는데

그만큼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려는 노력이지 않을까요?

그런 선생님이 민감한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은 참으로 재치있고 현명했네요.

겉으로는 푼수 같아 보이지만 속 깊은 선생님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김정균님은 지난 추억들을 하나씩 끄집어내서 소중하게 펼쳐놓는데 소질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글을 읽고 있노라면 제 마음이 그 시절로 돌아가서 환해지는 기분이 되거든요.

저는 과거를 돌아볼 때 상처받았던 것, 실수했었던 것, 억울했던 것, 아쉬웠던 것 등이 수없이 떠올랐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하곤 합니다.

아름답고 행복했던 기억들을 애써 끄집어내려 해도 그 뒤에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낚시에 걸린 물고기처럼 달려오곤 합니다.

김정균님처럼 과거를 아름답게 불러낼 수 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됩니다.

이 방송을 진행하는 동안 좀 더 노력을 해서 제 마음 속 과거도 사랑할 수 있도록 해봐야겠습니다.

 

 

 

3

 

 

구름 참 예쁘네요. 며칠전 저희 동네 저녁구름은 노란 빛이 쏟아져내려 무척 신비로웠습니다. 요즘 기상이변으로 마치 가을 하늘같기도 하고 그러네요.

 

 

 

 

지난 방송에서 멋있는 구름 사진을 올렸더니

득명님이 마음에 와 닿았는지 댓글을 달아주셨습니다.

여름에는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내리쬐는 태양 때문에 숨이 막히곤 하는데

올 여름은 예술작품 같은 구름들을 수없이 쏟아내는 걸 보면

기상이변 때문인 것 같기도 하네요.

우리가 이렇게 아름다운 구름들을 감상하는 동안

중국에서는 엄청난 물난리가 났으니까 말이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성민씨가 제주도에서 보내온 구름 사진입니다.

어떻게 구름이 이렇게 생길 수 있죠?

제 눈에는 새가 날아가는 모습처럼 보이는데

해가 지기 전의 저녁 산책길에서 찍었다고 합니다.

이 사진을 보니 지난 방송에서 소개해드렸던 시인과 촌장의 ‘풍경’이라는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하루 일을 마치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처럼 다가왔거든요.

 

 

기후위기 때문에 온 세상이 난리라면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램이고요

이 더운 날 힘든 하루를 보내신 분들이라면 편안한 제자리로 돌아가서 휴식을 취하길 바래봅니다.

오늘은 편안한 연주음악 들으면서 방송 마칠까 합니다.

Vangelis의 ‘La Petite Fille De La Mer’라는 곡인데요

우리말로 하면 ‘바닷가의 작은 소녀’라는 뜻입니다.

편안한 한 주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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