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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 41회 – 읽는 라디오 10주년 특집

 

 

 

1

 

읽는 라디오 문을 열었습니다.

반갑습니다, 들풀입니다.

 

미리 말씀드렸던 것처럼 오늘은 읽는 라디오 10주년 특집으로 준비해봤습니다.

이 특집방송을 어떻게 꾸밀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많은 분들을 모셔서 버라이어티하게 꾸미기에는 저희 실력이 부족해서

저희 능력에 맞게 조촐한 음악회 형식으로 만들어봤습니다.

그냥 편안하게 즐겨주셨으면 합니다.

 

먼저, 읽는 라디오가 그동안 어떻게 진행돼 왔는지

10년의 발자취를 잠시 돌아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10년이 지나서도 작고 조용한 곳이기는 여전하지만

나름대로 많은 변화들이 있어왔습니다.

그 흔적들을 하나씩 살펴볼까요?

 

2011년 12월 16일 ‘읽는 라디오 내가 우스워 보이냐?’가 첫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세상에서 무시당하며 살아가는 허접한 인간도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고 싶다는 취지로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부정기적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을 때마다 방송을 내보냈어는데요

2012년 12월 16일 1주년 특집을 기해서 주 1회 정기방송으로 변화를 줬습니다.

이런 변화는 자기중심적인 방송에서 좀 더 대중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방송에 참여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고 방송을 진행하던 성민씨의 삶은 더 팍팍해져 버렸습니다.

결국 2013년 3월 18일 42회 방송부터는 비공개로 전환해서 진행하게 됩니다.

비공개로 전환하게 된 의미를 당시 방송 멘트로 옮겨봅니다.

“그동안 참여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도 누군가의 참여를 간절히 기다리면서 공개로 진행해왔던 방송을 이번 방송부터 비공개로 진행합니다.

누군가 손을 잡아줄 것이라는, 또는 누군가의 손을 잡아줄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버리고

온전히 저 자신만을 위한 방송이 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내가 우스워 보이냐?’는 2014년 4월 28일 100회 방송까지

비공개로 전환한 후 13개월 동안

첫 방송이 나간 후 2년 4개월 동안 진행된 후 마무리됩니다.

성민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삶의 구렁텅이에서 발버둥치고 발버둥치고 또 발버둥치고 다시 힘을 내서 발버둥쳐봤지만 몸부림치면 칠수록 더 촘촘히 옥죄어오는 세상’만 확인하고 방송을 끝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중에 돌아봤을 때, 그렇게라도 읽는 라디오를 진행해오면서 그 힘든 시기를 버틸 수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합니다.

 

다시 6개월이 지난 2014년 9월 18일 읽는 라디오가 두 번째 시즌인 ‘들리세요?’로 돌아옵니다.

‘들리세요?’는 세상을 향해 소리 지르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세상의 작은 목소리들을 보듬어 안으면서 자기 자신도 위로하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진행도 성민씨와 꼬마인형이 공동으로 하게 되면서 방송이 한결 편안해지고 다이내믹해졌지요.

중간에 꼬마인형이 자기 성질을 이기지 못해서 방송을 뛰쳐나갔다가 몇 달 후에 돌아오는 헤프닝도 있었지만 오랫동안 큰 무리 없이 진행됐던 방송입니다.

 

2015년 4월부터는 성민씨가 제주도로 내려가게 되면서 방송이 잠시 부실해지기도 했지만

그 이후 성민씨 환경이 안정화되면서 방송은 더 편안해졌고 내용도 풍부해집니다.

 

2015년 11월 19일 ‘들리세요?’ 61회 방송부터 읽는 라디오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첫 방송 이후 모든 것을 철저하게 텍스트 중심의 방송을 진행해왔는데요 그렇다보니 동영상이나 사진 같은 시각자료는 고사하고 노래까지도 가사로만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진행한데는 성민씨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었지만 젊은 세대인 꼬마인형은 그런 점이 답답하다며 변화를 주장해서 노래 영상이 링크로 걸리기 시작합니다.

나중에 기술적 변화를 줘서 노래영상이 방송 안에 그대로 포함되기 시작했고 사진도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시각매체들이 활용되기 시작합니다.

 

2016년 3월 16일 ‘들리세요?’ 76회 방송부터는 다음과 네이버에도 블로그를 개설해서 읽는 라디오 지국을 넓혀갑니다.

이 또한 꼬마인형의 역할이 컸는데요

시작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좀 더 입체적으로 방송이 되는 한편 많은 사람들과 접촉면을 넓히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읽는 라디오는 여전히 조용한 섬처럼 남아있다가 2017년 5월 18일 139회 방송을 마지막으로 2년 8개월 만에 시즌2가 막을 내립니다.

 

시즌2가 끝난지 두 달 만인 2017년 7월 3일 읽는 라디오는 ‘살자’라는 타이틀로 시즌3가 시작됩니다.

‘들리세요?’를 진행하면서 삶의 활력을 많이 되찾은 성민씨가 세상에 살짝 발을 들여놓고 있어서 초반에는 몇몇 분들이 방송에 참여도 해주시면서 활력이 돌았습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세상과 접촉면을 조금씩 넓혀가던 방송은 2018년 2월부터 태풍처럼 불어닥친 metoo열풍 속에서 좌초합니다.

성민씨가 자신의 과거 성폭력 사실들을 공개하고 근신하겠다며 2018년 3월 12일 ‘살자’ 37회 방송 이후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방송을 중단하고 넉 달 후인 2018년 7월 2일 읽는 라디오 ‘살자’는 재개됩니다.

근신하다고 세상과 떨어져 지내다보니 오히려 마음의 평화만이 찾아와서 근신의 의미가 없어져버렸다는 것이 방송 재개의 변이었습니다.

다시 세상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세상 속에 벌거벗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근신에 부합한다는 것이었죠.

결국 세상과의 접촉면을 스스로 차단한 채 다시 자신만의 세상으로 돌아온 읽는 라디오는 그렇게 다시 이어집니다.

 

그렇게 성민씨 혼자서 조용하게 하지만 나름 치열하게 진행하던 읽는 라디오에

2020년 4월 20일 ‘살자’ 129회 방송부터 성민씨의 반려견인 사랑이가 공동진행자로 합류합니다.

처음에 심하게 말을 더듬으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하던 사랑이는 조금씩 방송에 익숙해져서 반려견 특유의 온기를 전해주게 됩니다.

그 와중에 고정 참여자도 생겨서 방송에 대한 이런저런 의견도 달아주시면서 방송이 조금 활력을 가져갔지만

성민씨가 내면의 에너지가 고갈됨을 느껴 2020년 12월 14일 ‘살자’ 161회 방송을 끝으로 3년 5개월만에 시즌3가 종료됩니다.

 

시즌3가 끝나고 석 달 만인 2021년 3월 8일 읽는 라디오 네 번째 시즌인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가 시작됩니다.

시즌4에서는 그동안 진행을 해왔던 성민씨가 프로듀서로 물러나고 제가 새로운 진행자로 합류합니다.

성민씨는 오랫동안 읽는 라디오를 진행하다보니 마음은 편안해지는데 자꾸 내면으로만 들어가려고 하고 있는 것이 고민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세상과 좀 더 소통하고 사람들의 온기를 좀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는 방송으로 나아가기 위해 성민씨가 아니 제가 진행을 맡기로 했던 것입니다.

 

제가 진행을 맡고나서도 좌충우돌하면서 시행착오만 하다가 세상과의 소통은 제대로 되고 있지 못하지만

최근에는 방송에 소제목도 달아보고 헤시테그도 열심히 붙여보면서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일 년 가까이 진행하면서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는 41회 방송을 맞이했고 읽는 라디오는 10년차에 접어들게 됐습니다.

 

어휴~ 간단하게 소개한다고 그랬는데 막상 늘어놓고 보니 소개가 길어져버렸네요.

10년의 크고 작은 부침들이 이렇게 놓여있으니 그 세월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10년의 여행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한번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오늘 10주년 특집 음악회 첫 곡으로 이상은의 ‘삶은 여행’ 듣겠습니다.

 

 

 

2

 

읽는 라디오를 10년 동안 꿋꿋하게 진행해온 성민씨와 그 동안의 소회와 읽는 라디오의 의미에 대한 얘기를 나눴습니다.

 

들풀 : 읽는 라디오 10주년을 맞이하는 기분은 어떠세요?

 

성민이 : 글쎄요, 들풀님이 10주년을 축하하자고 해서 나름 의미를 두려고는 해보는데, 솔직히 크게 와 닿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여기까지 함께 와준 읽는 라디오에게 수고했다고는 얘기해주고 싶네요.

 

들풀 : 10년이면 만만치 않은 세월인데, 왜 크게 와 닿지 않을까요?

 

성민이 : 제가 무슨 기념일이나 이런 걸 잘 챙기는 편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런 것도 있고... 음... 2012년 연말에 읽는 라디오 1주년 특집방송을 나름대로 야심차게 준비해서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엄청 힘들 때라서 1주년 특집방송이라는 명목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아서 ‘나 너무 힘드니까 도와주세요’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나름 열심히 준비했는데, 그때 방송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정말 썰렁했습니다. 그 데미지가 너무 컸어요. 그후에도 방송을 계속해오면서 1주년 특집이니 100회 특집이니 하는 걸 해보기는 했지만 자족적인 행사였지 사람들과 함께하는 의미는 아니었어요. 음... 그래서 그런 거 같아요. 어떤 이벤트를 통해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자리를 만들기보다는 그냥 혼자서 뚜벅뚜벅 걸어가는 게 더 좋은 거죠.

 

들풀 : 혼자서 뚜벅뚜벅 걸어서 여기까지 왔다?

 

성민이 : 아, 온전히 혼자서 온 거는 아니에요. 그동안 이래저래 방송에 관심을 보여주셨던 분들도 있고, 꼬마인형이나 사랑이, 그리고 지금 들풀님처럼 같이 방송을 만들어와 주신 분들도 있으니까요. 10년이라는 세월에 비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그런 분들이랑 호흡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오랫동안 이어질 수 있었던 건 분명해요. 그래서 너무 너무 고맙죠.

 

들풀 : 10년 전에 읽는 라디오를 처음 시작한 것은 세상과 소통하고 싶어서였잖아요. 물론 그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해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그런 방송은 아니지만... 그래서 이제는 세상과 소통하는 것은 포기한 건가요?

 

성민이 : 음... 세상과 소통하는 걸 포기했다면 방송을 계속 이어갈 이유가 없겠죠. 지난 10년 동안 엄청 노력했어요. 처음에는 부정기적으로 시작했던 방송을 주1회 정기적으로 내보내고, 텍스트로만 진행하던 걸 사진과 영상을 첨부하는 방식으로 변화도 주고, 포털에 블로그를 개설해서 채널도 넓혀보고, 최근에는 해시태그도 달아보기도 하면서 계속 노력하고 있어요. 단지 그런 노력들이 빛을 발하지 못했을 뿐이죠.

 

들풀 : 10년 동안의 그런 노력들이 왜 빛을 발하지 못했을까요?

 

성민이 : 글쎄... 우선 제가 기술적으로 블로그를 운영하는 노하우가 떨어져서 시대에 뒤처지는 게 있겠죠. 그리고 사람들을 끌어오기 위한 일종의 호객행위 같은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아서 계속 변방으로 남아있는 것도 있겠고, 제 얘기가 세상 사람들에게는 별로 재미없어서 관심 없는 것일 수도 있겠는데... 가장 중요한 건 제 스스로가 세상에서 한 발 떨어져 지내고 있기 때문인 거 같아요. 중간에 잠깐 세상 사람들과 교류하던 기간이 있었는데 그때는 그래도 조금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편이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이런 게 편하고 좋아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북적거리는 것보다 가끔 찾아와서 흔적을 남겨주는 한 사람의 온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것이 좋고, 세상 살아가는 얘기하면서 제 내면의 얘기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것도 너무 소중하고요. 이것도 그동안 세상과 소통하려고 여러 가지 노력을 해오면서 쌓인 성과라고 생각하거든요.

 

들풀 : 인터넷 환경이라는 것이 아주 유동적이잖아요. 만약에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 읽는 라디오가 널리 알려지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면 어떨 것 같으세요? 방송 컨셉도 막 변하고, 정체성에 혼란도 오고 그럴까요?

 

성민이 : 푸~ 그럴 일은 없을 거 같은데요.

 

들풀 : 인생은 모르는 거예요.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성민이 : 음... 만약에 그런 일이 생긴다면 엄청 고민될 거 같은데... 찾아오는 사람들을 일일이 다 소개하면서 소통하는 것도 힘들어질테고, 그러다보면 사람 하나하나의 온기에 집중하기보다 여러 사람의 열기에 열광하게 될테고, 그러다보면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에 신경 쓰게 될테고, 그러다보면 내 마음 속에 욕심이 자라서 그 문제로 고민하게 되겠죠. 음... 솔직히 지금보다는 좀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건 사실이지만 그게 어느 정도 수준까지인지는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지금까지는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아, 아무튼 그래요. 지금 벌어지지 않을 일을 갖고 고민하는 건 탁상공론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들풀 : 지금의 이 현실에 만족한다?

 

성민이 : 뭐, 100% 만족하는 건 아지만 그래도 만족하는 편이에요. 10년 전에 읽는 라디오를 처음 시작할 때 상상했었던 미래의 모습은 결코 아니지만, 나름 거친 파도를 헤치며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으니까... 음... 10년을 버텼다는 거에 의미를 둔다기 보다는 10년의 세월 속에 쌓인 성과로 여기에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 성과에 만족한다는 의미죠.

 

들풀 : 10년의 성과는 뭐죠?

 

성민이 : 가장 중요한 성과는 내 자신을 품어줄 수 있게 됐다는 거. 세상에서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점점 괴물이 되어가는 내 자신이 무서웠고, 그런 나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면 칠수록 점점 촘촘하게 옥죄어오는 세상이 무서웠는데, 이제는 발버둥치지 않아도 되고, 내 안의 괴물을 사랑스럽게 쓰다듬어 줄 수 있게 됐으니까요. 이거만 해도 엄청난 성과라고 생각해요.

 

들풀 : 인정! 그 정도면 여기저기 자랑하고 다녀도 되는 성과인 것은 부인할 수 없네요. 문제는 자랑할 데가 별로 없다는 거지만. 푸흐흐

 

성민이 : 자랑할 생각은 없는데 그동안 함께 해줘서 정말로 고마웠다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특히 내 안에 있는 괴물에게 잘 견뎌줘서 너무 고맙다고 해주고 싶네요.

 

들풀 : 그 괴물이 요즘도 가끔 이빨을 드러내요?

 

성민이 : 아니요. 사랑이처럼 얼마나 순하고 사랑스러운데요.

 

들풀 : 앞으로 읽는 라디오는 어디로 흘러갈까요?

 

성민이 : 글쎄... 어떤 목표를 정해놓고 하는 것이 아니라서... 그냥 흘러가는 데까지 최대한 같이 가보는 게 목표라면 목표인데... 이번 시즌의 목표가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거잖아요. 지금은 그 목표를 향해서 열심히 가봐야겠죠. 내 마음 속에 진심으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온정이 넘치게 만들어봐야죠. 만약에 그게 성공한다면 그렇게 흘러넘친 온정을 따라 더 나아갈 수 있을테고, 만약에 실패한다면 다시 내 마음이 뭘 원하는 지 들어봐야겠죠. 아, 물론 들풀님이나 이 방송을 들어주시는 소중한 분들의 얘기도 들어보고요. 거기서 더 나아가서 이 방송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들풀님이나 애청자님들의 마음에서 하는 얘기까지 들을 수 있다면 더없이 행복할 거 같기는 해요.

 

들풀 : 후후, 그건 거의 부처님 경지에 도달해야 될 것 같은데요.

 

성민이 : 헤헤헤, 그렇죠? 욕심이 과했네요. 그냥 지금 이 상태로 좀 더 편안하게 흘러갔으면 좋겠어요. 그게 10주년을 맞이하는 저의 소감이네요.

 

들풀 : 그렇게 같이 노력해보죠. 오늘 얘기 즐거웠어요.

 

성민이 : 제가 더 즐거웠습니다. 솔직히 10주년 특집 인터뷰를 한다고 해서 살짝 긴장했었는데, 편안하고 좋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들풀 : 아! 인터뷰를 마치면서 성민씨의 추천곡을 들려드리고 싶은데요, 듣고 싶은 노래가 있을까요?

 

성민이 : 글쎄요. 들풀님이 특집방송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하셨을텐테... 굳이 제게 선곡을 하라고 하면... 제 안에 있는 괴물을 위한 노래를 부탁드릴게요. 생일분위기랑 어울리는 노래는 아니지만, 이 친구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거든요. 김윤아의 ‘가만히 두세요’ 부탁합니다.

 

 

 

 

 

3

 

읽는 라디오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 중의 하나가 음악입니다.

처음에는 기존 라디오방송처럼 매 사연마다 그에 어울리는 음악을 하나씩 소개하곤 하면서

한 회 방송마다 보통 4~5곡이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텍스트로만 방송되던 시절이라서 가사에 비중을 둬서 선곡을 하곤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시즌2 중반부터 사진이나 영상 등 시각자료들을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음악의 활용에도 변화를 주게 됩니다.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들을 활용하게 되면서 좀 더 다양한 음악들이 선곡되는 한편 방송을 마무리 하는 순서로 음악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방송 전체 내용과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곡이 선곡되면서 음악이 음악으로서 자리매김하는 동시에 그 자체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정확한 통계를 내지는 못했지만 지난 10년 동안 읽는 라디오를 통해서 소개했던 음악들은 400곡이 훨씬 넘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 많은 곡들 중에서도 진행자가 아껴서 자주 들려드렸던 노래들은 매 시즌의 주제곡으로 선정되기도 했는데요

시즌1 ‘내가 우스워 보이냐?’에서는 자우림의 도발적인 노래 ‘그래 제길 나 이렇게 살았어’가 자주 들려졌고

시즌2 ‘들리세요?’에서는 비올레타 파라의 ‘삶에 감사해(Gracias a la vida)’를 종종 들으면서 삶을 살아가는 힘을 얻기도 했었고

시즌3 ‘살자’에서는 범능스님의 관조적이면서도 단단한 노래인 ‘무소의 뿔처럼’이 잔잔하게 울려퍼지곤 했었고

시즌4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는 윤선애의 너무도 따뜻한 노래 ‘아름다운 이야기’를 등불 삼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읽는 라디오 10주년을 맞아 그동안의 읽는 라디오를 관통하는 노래는 무엇일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 조금씩 일어날 수 있도록 힘을 줬던 ‘삶에 감사해(Gracias a la vida)’라는 노래에 조금 더 애정이 가더라고요.

 

이 노래는 칠레의 민중가수인 비올레타 파라의 노래가 원곡인데요

절망의 연속인 삶을 살아가면서도 그 삶을 찬양하며 자신과 사람들을 위로했던 노래입니다.

이후 칠레와 아르헨티나를 비롯해 남미에 들어선 군사정권들에 의해 엄청난 만행들이 벌어질 때

가족과 친구와 동지들을 잃었던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불렀던 노래이기도 합니다.

그 시절 아르헨티나의 민중가수인 메르세데스 소사가 이 노래를 부르며 저항의 상징이 되기도 했습니다.

 

번역된 가사를 보면 직접적으로 저항이나 투쟁의 메시지는 없습니다.

아주 철학적이고 성찰적인 가사인데 그 속에 삶이 진득하게 녹아있어서

노래를 듣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가 다시 일어나게 하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비올레타 파라의 노래가 약간 읊조리듯이 낮은 목소리로 삶을 관조한다면

메르세데스 소사의 노래는 힘 있는 목소리로 강한 울림을 전해줍니다.

오늘은 생일이니만큼 조금 흥겨운 버전으로 감상해볼까 하는데요

메르세데스 소사와 존 바에즈가 함께 부른 곡으로 준비했습니다.

‘삶에 감사해(Gracias a la vida)’

 

 

 

 

 

4

 

10주년 특집방송을 야심차게 준비해왔습니다.

이런저런 구상들을 많이 해봤는데

저희끼리만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는 것보다

좀 더 많은 분들이 이 자리에 같이 참여하길 바라며 준비했었는데

생각처럼 되지가 않았습니다.

 

이전 진행자들을 섭외해보려 했지만

꼬마인형님은 저승에 가셨기 때문에 섭외가 불가능하고

사랑이는 낯선 사람이랑 하는 것이 싫다면서 완강하게 거부하더군요.

혹시나 싶어서 이 방송을 보시는 분들에게 참여를 독려해봤지만

아무도 참여해주시는 분이 없었고

제 주변사람들에게 부탁을 해봤지만

이 방송에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제 열정과 달리 싸늘한 주위 반응에 의기소침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성민씨가 이런 행사는 하지 말자고 반대했던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그래도 제가 총대 메기로 한 이상 알차게 준비하려고 엄청 노력했습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인터뷰를 하나 더 준비했습니다.

인터뷰 대상은 저 자신입니다.

 

 

읽는 라디오 : 열심히 준비하셨는데 찾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서운하세요?

 

들풀 : 아니오, 나름 열심히 준비했으니까 그것으로 만족해요. 이렇게 말해야 하는데, 솔직히 서운하죠 헤헤헤.

 

읽는 라디오 : 이곳이 그런 곳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잖아요?

 

들풀 : 음... 욕심이 생겼던 것 같아요. 찾는 이 별로 없는 적막한 곳이지만 이벤트를 멋있게 펼쳐서 사람들의 온기를 불어넣어보고 싶은 그런 욕심이요.

 

읽는 라디오 : 지난 10년의 역사를 돌아봤다면 그런 노력이 부질없다는 것도 아셨을텐데...

 

들풀 : 그렇죠. 그런데 욕심이라는 것이 한번 생기면 그 욕심의 노예가 되더라고요. 불가능한 것도 열심히만 하면 이뤄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고, 그래서 더 노력하게 되고, 노력이 쌓일수록 욕심은 더 커지고, 그러면서 환상만 신기루처럼 환해졌나 봐요.

 

읽는 라디오 : 다시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가서, 그래서 서운하세요?

 

들풀 : 음... 서운한 감정도 제 욕심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잖아요. 이제 그 욕심이 부질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서운한 감정도 털어버려야겠죠.

 

읽는 라디오 : 10주년 행사를 준비하면서, 또는 지난 1년 가까이 방송을 진행하면서 읽는 라디오는 어떤 곳이라고 생각이 드세요?

 

들풀 : 질문이 좀... 어... 지난 10년을 성민씨의 시각에서 본다면 읽는 라디오는 성민씨가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된 소중한 공간이죠. 하지만 이곳은 공개된 공간이고, 몇 명 되지 않지만 같이 공유하는 공간이거든요. 그래서 성민씨의 시각으로만 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의 시각으로는 어떻게 다가오는지를 듣고 싶었는데 그것이 잘 안돼서...

 

읽는 라디오 : 들풀씨에게는 어떤 공간인가요?

 

들풀 : 음... 처음에 이 방송을 접했을 때는 편안한 곳이었어요. 당시 방송을 진행하시던 성민씨는 절망의 한가운데서 엄청 노력하고 계셨지만 그런 노력마저도 왠지 편안하게 다가왔어요. 그건 아마 성민씨의 능력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 편한 공간의 매력에 빠져 방송을 즐기다가 가끔 성민씨가 힘들어하면 한마디씩 응원해주고 그랬었는데...

그렇게 하다가 성민씨의 뜻밖의 제안을 받고 방송 진행을 하게 됐는데... 음,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이 방송을 세상 속으로 끌어내야겠다는 욕심이 강했어요. 성민씨와 소수들만이 자족적으로 즐기는 방송이 아니라 좀 더 많은 이들이 참여해서 다양한 삶의 얘기를 풀어놓고 그러면서 뭔가 새로운 에너지가 만들어지는 그런 곳.

그런데 그것이 생각만큼 쉽지가 않더라고요. 어... 아, 얘기가 이렇게 흘러가면 좀 그런데...

 

읽는 라디오 : 아니 괜찮아요. 들풀씨가 생각하는 읽는 라디오에 대해서 얘기해주시는 거잖아요.

 

들풀 : 하하, 그렇게 이해해주시니까 제가 편하네요. 얘기가 중언부언 길어질 것 같아서 요점난 말할게요. 성민씨가 10년 동안 진행하면서 느꼈던 ‘세상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단기간 내에 저도 느끼고 있어요. 제 능력으로는 이곳을 단기간 내에 변화시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래서 중간에 방황도 했었는데, 그때 성민씨가 그랬어요. 읽는 라디오의 최고의 애청자는 자기 자신이라고.

그때부터 저도 조금씩 방향을 조정하기 시작했죠.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뭔가를 얘기하려는 의지가 강해서 ‘무슨 얘기를 해야 하지?’ 하는 것이 항상 고민이었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무슨 얘기가 들려올까?’ 하고 귀를 기울이게 되더라고요. 그러다보면 세상과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고 얘기하던데, 아직 그 소리들과 대화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지만,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읽는 라디오는 세상과 내면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읽는 라디오 : 그런데 10주년 행사를 준비하시면서는 목소리를 내고 싶으셨던 건가요?

 

들풀 : 그렇게 얘기하시면 좀 섭섭하죠. 제 딴에는 좀 더 많은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그랬던건데... 하지만 이번에 이렇게 행사를 준비하면서 느낀 것은 있어요.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기 위해서는 내 자신과 주변의 소음을 줄여야 하기도 하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수다스럽게 조잘대면서 그 속의 마음을 읽어내는 것도 방법이라는 거죠. 성민씨는 전자의 경우로 나아갔다면, 저는 후자의 경우로 나아가고 싶은 거예요.

 

읽는 라디오 : 아, 그 얘기는 공감합니다. 그럼 앞으로 읽는 라디오는 좀 더 수다스러운 방송이 되는 건가요?

 

들풀 : 아니, 뭐, 그렇게 똑 부러지게 얘기할 자신은 없어요. 하지만 그렇게 노력하고 싶어요. 그렇기 위해서는 우선 제가 귀 기울여 듣는 연습을 좀 더 해야 하는 과제가 있죠. 읽는 라디오는 그런 의미에서 수련의 장이기도 해요.

 

읽는 라디오 : 들풀씨 얘기를 듣다보니까 읽는 라디오의 변화가 기대가 되네요.

 

들풀 : 예, 그렇게 노력하고 싶어요. 성민씨가 10년을 걸어오면서 천천히 변화를 만들어냈던 것처럼 저도 조금 긴 호흡으로 그런 변화를 만들어가려고 노력해보겠습니다.

 

읽는 라디오 : 마지막으로 들풀씨가 들려주실 노래는 무엇일까요?

 

들풀 : 읽는 라디오 10주년을 기념하는 노래가 아니라 온전히 저를 위한 노래라면, 어떤날의 ‘너무 아쉬워하지 마’를 듣고 싶습니다. 오늘의 저를 위한 최고의 힐링송이 될 것 같아서 골랐습니다.

 

 

 

 

 

5

 

혹시 ‘와이키키 부라더스’라는 영화를 아시나요?

임순례 감독의 2001년 작품인데요

오래 전에 봤지만 아직도 그 여운이 남아있는 영화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밴드활동을 하면서 음악에 대한 꿈을 키웠던 이가 있습니다.

그때는 밴드를 한다면 여자들에게 인기도 좋고 멋있어 보이던 시절이었죠.

그렇게 음악이 좋아서 밴드활동을 이어갔는데 나이가 들어서도 그 생활을 이어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나이트클럽이나 지방 행사를 전전하면서 힘들게 유지되던 밴드는

생활고와 전망의 불투명함 등으로 인해 멤버들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합니다.

마지막까지 버티던 멤버들 간에도 여자문제로 다툼이 생기고

오래간만에 만난 어릴 적 친구들은 생활에 찌들려 있고

음악을 가르쳐줬던 선생은 술에 의지해 사는 폐인이 돼 있고...

서로가 힘들게 버티고 있으면서도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관계는 결국 밴드의 해체 위기까지 이어집니다.

 

그때 트럭 야채 장사를 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옛 동료이자 첫사랑을 만나서

이런저런 삶의 고단함과 밴드의 현실에 대해 얘기를 하게 되고

결국 그들은 다시 팍팍한 현실에서 탈출이라도 하듯이 음악을 하게 됩니다.

 

그들이 현실에서 탈출해 마이크와 악기를 잡은 곳은 지방의 조그만 나이트클럽이고

그곳에서 심수봉의 ‘사랑밖엔 난 몰라’를 부르면서 영화는 끝나는데

싸구려 삼류 밴드의 그 연주 모습을 보며 얼마나 울컥했는지 모릅니다.

 

읽는 라디오 10주년 특집방송을 마무리하면서

그 장면이 떠올랐던 것은

이곳도 역시 싸구려 삼류 밴드나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알아주는 사람도 비전도 별로 없지만

아직도 행복하게 방송을 이어가는 곳이라는 점도 비슷합니다.

그런 곳을 찾아와 같이 시간을 보내주신 여러분도 비슷한 심정일까요?

 

오지혜가 부른 ‘사랑밖엔 난 몰라’ 들으면서

읽는 라디오 10주년 특집방송 마치겠습니다.

오늘 같이 있어준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얘기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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