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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걸고 지하철타야 하는 현실 안타깝다”

 
“목숨걸고 지하철타야 하는 현실 안타깝다”

한겨레가 만난 사람 - 박경석 장애인이동권 연대 대표


“월드컵 4강에 오른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게 부끄럽습니다.”

지난달 31일 서울시청 앞, 장애인이동권연대 박경석(46) 대표는 절규했다. 휠체어에 탄 그와 30여명의 장애인은 지난 5월 서울 지하철 발산역 휠체어 리프트 추락사망 사고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며 시청 진입을 시도했지만, 경찰에 둘러싸인 채 꼼짝도 못했다.

그는 잘 들리지도 않는 메가폰을 잡고 부르짖었다. “우리는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걸고 지하철을 타야 합니다” “저기 횡단보도가 없는 곳에서 휠체어를 타고 (찻길을) 건너보십시오” “장애인단체 찾아가서 라면박스 갖다놓고 사진은 잘 찍더라”. 그는 투사였다.

7월말 현재 서울지하철에서 엘리베이터가 있는 역은 29%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현실에서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설치 등 장애인 이동권 보장요구 시위를 이끌고 있는 박 대표를 만났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역에서 사람들 손에 들려 올라갈 때의 기분이 어떤가.

=짐짝이다. 어쩔 수 없이 누군가를 부르는 게 민망하다. 불러도 바쁘다고 간다. 4명쯤 불러야 한다. 그게 창피해 승무원을 부르면 잘 안온다. 장애인을 도와주는 일을 더 중점적으로 하는 직원이 있어야 한다. 리프트를 한 번 타는 데 적게는 20~30분, 환승장이 있으면 30~40분이나 걸린다.

-지하철역에서 전동휠체어를 타고 휠체어리프트를 타다가 일어나는 사고가 잦은데.

=리프트가 중간에 서거나 아예 작동이 안되기도 한다. 전동휠체어는 중증장애인이 탄다. 손 놀림이 부자연스러워 리프트를 타고 가는 도중에 오작동이 종종 일어난다. 그것을 고려한 안전장치가 없는 게 문제다. 그래서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라는 것이다.

-몇 사람을 위해서 너무 많은 돈을 투자한다는 불만도 있다.

=엘리베이터에 적지 않은 돈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장애인만을 위한 시설이 되어서는 안된다. 엘리베이터는 교통약자인 노인과 임산부 등에도 유효하다.

-리프트가 위험하지만 없는 것보다 낫지 않나.

=더 적극적으로 엘리베이터를 만들어야 한다. 2006년까지 엘리베이터를 설치한다는데, 그때까지 리프트를 보완하기보다는 엘리베이터를 만드는 데 돈을 써야 한다. 구조적으로 엘리베이터 설치가 어렵다면 같이 검증을 해야된다. 종종 리프트를 달기 위한 핑계일 수 있다. 정말 안되면 외국처럼 계단 3개가 연결돼 장애인도 탈 수 있는 에스컬레이터로 바꾸는 방법도 있다.

-장애인용 순환버스를 타면 되지 않나.

=절대로 그렇게 돼서는 안된다. 그 버스가 하루에 2~3차례 동사무소와 관공서, 복지관을 가는 데 쓰인다. 장애인은 동사무소나 복지관만 가나 학교도 가고 친구도 만나고 친척도 만나고…. 장애인 밀집지역에만 사는 것도 아니다.

장애인만 따로다. 특수교육을 따로 시키고, 노동도 따로 보호작업장에서 한다. 교통마저 순환버스를 타면 사회속에서 참여하며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데 정면으로 반대된다. 순환버스는 어쩔 수 없는 보조교통수단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일반 시내버스를 그 원칙에서 접근하지 않고, 보조수단인 순환버스가 이동권 대책인 양 선전하는 것은 왜곡이다.

-사회참여를 강조하는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적 관계속에서 자기를 발견하고 나타낸다. 교육과 일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문화활동도 해야 하는데, 중증장애인이 20~30년 집에서 나가지 못하면 모든 것을 잃는다.

그래서 사회적 관계를 못 만들고, 장애을 가졌기 때문에 그렇다는 죄의식과 편견이 생긴다. 국가가 아니라 가족이 책임을 진다. 든든하지 못한 가족에서 태어난 장애인은 수용시설에 가야 하고, 동생 친구가 오면 골방에 처박혀 있어야 된다. 사회적 참여와 관계, 자립적으로 사회속에서 살 수 있는 사회적 제도가 마련되야 한다.

-이동권뿐 아니라 장애인 인권에 관한 여러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교육, 노동, 문화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로 나타난다. 이동권이 먼저다. 더 중요하다는 게 아니라 이동의 문제부터 풀 수 있다는 것이다. 시혜적 차원에서 장애인 버스를 만든다는 것은 쉽겠지만, 사회참여를 막는다. 대중교통은 누구다 다 이용할 수 있고, 우리도 누구나의 한사람처럼 그래야 한다. 장애인을 사회적으로 차별하는 가치에 대한 도전이다.

중증장애인이 저상버스(버스 출입구 턱이 낮아 휠체어를 타고도 쉽게 탈 수 있는 버스)에 타려면 5분 정도 걸린다. 우리 사회는 그것을 참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다. 장애인들이 밖으로 나와서 돌아다녀야 한다. 그러면 아무리 몸이 비틀어져도 외계인처럼 보이지 않고 친구, 이웃으로 보이게 된다.

-외국에는 얼마나 잘 되어 있나.

=일본에서는 목만 움직일 뿐 아무것도 혼자할 수 없고, 전동휠체어 조정장치를 턱에 달아 움직이는 사람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간다. 국가에서 돈을 줘서 잠자고 설거지하고 화장실 가도록 24시간 도와주는 활동보조인이 있다.

또 일본에서는 버스의 20% 정도를 저상버스로 하는 법이 최근에 마련됐다. 지하철에서 우리는 역무원이 바빠서 못 나오지만, 일본에서는 두명이 달라붙어 지하철에 태워준다. 장애인이 타면 몇번차 몇번째 칸에 탔는지 알아두었다가 내리는 역에서 기다릴 정도다.

-위헌소송을 냈는데.

=올해 1월22일 오이도역 추락사고 1주기 때, 버스를 못타는 것은 위헌이라고 냈는데 기각됐다. 지하철역에서 들려올려가는 것도 차별이라고 서울시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는데, 구체적 위법사항이 없고, 유예기간이 있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법적으로만 따지고 현실을 모른다. 지금 고통받고 다치고 하는 문제다. 국가인권위원회에 건교부를 상대로 제소한 것은 결판이 안났다.

-서울시에 공개사과를 요구하고 있는데.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앵무새처럼 앞으로 잘하겠다고만 한다. 저상버스 도입을 위한 추진본부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장애인 대중교통 권리보장법’을 제정해야 한다.

-끝으로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면.

=우리도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싶다. 아픔이 있고 차별이 있는데 눈감고 언제까지 넘어갈 수는 없다. ‘내 가족 이나 친구 중에도 장애인이 있는데 그 마음 모르겠느냐’고 하는데, 그 말이 더 무섭다. 무엇이 문제인가를 얘기하지 않고, 다 안다는 식의 자세가 문제를 풀기 어렵게 만든다.

나쁜 편견보다 좋은 편견이 더 무섭다. 장애인이라고 순수하지도, 더 열심히 일하지도 않는다. 장애인 문제가 사랑과 봉사의 단어속에서 미화된다. 그래서 사랑과 봉사로 치장하지 않으면 성금모금 전화도 오지 않는다. 사회와 몇푼의 돈이 장애인을 시혜의 대상으로 각색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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