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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의 죽음을 우연이라고만 할 수 있나

 
형제의 죽음을 우연이라고만 할 수 있나

김재광

기억을 더듬는다. 99년 이맘 때 쯤 대여섯 번의 강제철거로 움막이 되다시피
한 천막에서 밤새 추위와 싸우느라 굳어진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확성기를 근로복지공단 쪽으로 돌려세우고, 동지들을 깨우고, 인근
공원에 있는 세면대에서 세수를 하고 마치 늘 그렇게 살아온 사람 마냥 하루
를 시작했다. 봄의 말미에 시작했던 일이 이리 오래 갈지 몰랐고 당장이라도
집어치우고 싶기도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그때 이상관이라는 산재노
동자의 비참하고 억울한 죽음을 세상에 알리고, 그 부당함을 인정케 하고 그
책임을 묻기 위해 근로복지공단 본부 앞에서 천막농성 120여 일째에 들어가고
있었다.

"이상관" 그는 경남 창원 대우자동차 국민차 생산 공장의 노동자였다. 당시 20
대 후반이던 그는 그저 자기 일만 하는, 그래서 사측으로부터 표창장까지 받았
던 노동자였다. 집안에서는 큰 공장에 다니는 막내아들이 대견했고 이 대견한
아들은 대우자동차 티코를 뽑아내느라 자기 몸 상하는지 모르고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뻗쳐서 걸음조차 걸을 수 없
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산재보험이 있다하니 그것으로 치
료하면 젊은 놈이 큰일이야 날까 싶었다. 그러나 병세는 계속 악화되었고 다리
를 끌고 방안을 겨우 다닐 정도가 되었다. 그런 그를 근로복지공단은 입원치료
를 종결시키고 통원치료를 종용했다. 늙은 아비의 등에 업혀 병원을 오고가던
이상관은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99년 4월에 목숨을 끊었다. 우리는 이에 분노했고 "산재로 인
한 자살에 대한 재해 인정, 공단의 공식사과 및 관련자 제재, 근로복지공단 개
혁"을 걸고 투쟁을 했던 것이다. 농성은 그 해 12월30일 끝났고 벌써 3년 여
의 세월이 지났다.

그런데 이상관의 친형인 이상권씨가 산재를 비관해 자살로 세상을 등졌다. 이
상권씨는 대우조선의 노동자로 2002년 11월1일 18시경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이상권씨는 지난 87년 요추부 염좌로 요
양을 하고 복직하여 근무하다 2002년 7월에 다시 병세가 재발하여 현재까지 재
요양 중인 상태였다. 그는 근무 중 재요양으로 병원에 입원하여 미세 레이저
수술을 받았으나, 수술한 의사와 면담한 결과 이상이 없다는 진단과는 달리 통
증은 계속되고 다리까지 감전되는 증세까지 있어 올해 10월30일 타 병원에서
검사를 한 결과 신경이 유착되어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11월1
일 동생과 함께 창원 00병원에서 진료를 받기로 하였으나 아침에 통증이 너무
심해 갈 수가 없어 동생이 X-선 필름 등 자료만 가지고 병원을 방문하였다. 같
은 날 부인이 근무를 마치고 14시40분 경 집에 도착하니 고인은 없고 약병과
약들이 흩어져 있어 사방으로 찾았으나 다음날 주검으로 발견된 것이다.

형제는 어찌도 그리도 같이 대우자본(현재는 분리되어 있지만) 아래서 강화된
노동강도로 인하여 비슷한 질환(요추 부위의 근골격계 질환)으로 고통받다 스
스로 모진 목숨 끊었는지 비통하기 그지없다. 3년 전 동생을 그렇게 보낸 부모
를 생각해서라도 그럴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서도, 얼마나 고통이 크고 절망했
으면 그럴까 생각하니 가슴이 더욱 더 먹먹하다. 사정 모르는 세상 사람들
은 "아무리 그래도 그럴 필요는 없잖아" 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건 정말 노동
자의 현실에 대한 몰이해일 뿐이다. 이 땅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면서 자신의 신
체 일부를 잃는다는 것, 신체 일부의 기능을 상실한다는 것은 곧 생존권을 상
실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러저러한 법과 산재보험을 들먹이며 이야기 해봤
자 그 제약과 한계는 이미 알만한 사람은 알고 있고, 당해본 놈은 뼈저리게 느
끼고 있다.

현장에서 재해로 사망한 노동자, 재해를 비관해 자살한 노동자가 어디 이씨 형
제뿐이랴 마는 소식을 접한 나로서는 3년 전 "이상관 투쟁" 이후 그동안 나 자
신의 노동보건 활동을 반성하게된다. 또한 형제의 죽음이 그저 우연만이 아님
을 세상에 말하고 싶다. 이씨 형제가 특별히 못나거나 잘못한 것이 아니라, 자
본의 이윤을 위해 기계처럼 부려지는 노동자의 현실과, 불구가 된 노동자는 노
동력뿐만 아니라 인간의 자존조차 보존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안간힘을 쓰다
가 끝내 버티기 어렵게 될 뿐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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