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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83회 – 겸손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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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을 하시는 아빠 덕분에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집이 있었습니다.
평수 넓은 고급아파트, 럭셔리한 실내 인터리어, 해외여행 갈 때마다 사온 고급 물건들, 매일 다니다시피 했던 백화점 쇼핑, 고급 승용차를 타고 가는 콘도미니엄 여행 등
재벌급은 아니어도 준재벌에 가까운 삶을 살아왔던 그 집은 1987년 IMF 외환위기와 함께 모래성처럼 무너져버렸습니다.
이후 그 집은 다시 일어서지 못했고 나이가 든 부모님은 차상위계층에 지원하는 복지시스템에 의존해서 근근이 살아가게 됩니다.
제일 힘들었던 부분은 내 통제를 못했던 게 힘들었던 거야. 내가 수입이 좋았을 때 내가 알아서 어떤 목표를 세워서 그만한 돈을 주면 단 얼마라도 저축을 해야 하는데... 우리는 돈이 마르지 않으니까 샘솟는 우물이랄까? 그렇게 생각하고 계획 없이 살았는 거지. 아빠가 항상 사업해서 잘될 거라고만 생각했지 내리막이 있을 거라고 생각은 못 했던 거지. 그래서 지금 생각해보면 내 통제가 참 없었구나, 과소비하고, 그랬던 게 후회되고.
롤러코스터 같은 환경에서 자란 딸이 커서 다큐감독이 되었고
가족이야기를 다큐로 만들겠다며 부모에게 카메라를 들이밀자
엄마가 했던 말입니다.
비참한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화려했던 기억들을 붙들고 있어야 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는 이 말이 제 마음이 와 닿았습니다.
경제적으로만 보면 저는 반대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노동운동을 막 시작할 때는 생계비가 없어서 수시로 주위에 손을 벌려야했고
그나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는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월급으로 근근이 버텨야했고
나중에 경력이 쌓여 유급상근을 하게 되면서도 월수입 100만원을 넘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오랜 방황을 겪으면서는 가족들에게 의지하며 나이든 캥거루처럼 살아야했습니다.
극빈층에서 시작한 사회생활이
오랜 노력 끝에 차상위계층 정도로 올라섰다가
다시 실업자로 전락해왔던 그 삶 끝에
이제는 혼자서 살아가기에는 충분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밑바닥에서 한 계단씩 올라와서 큰 걱정 없이 편안하게 살아가는 지금
나는 어디를 바라보고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높은 곳에서 살던 사람이 낮은 곳으로 내려오면 과거의 기억을 잊지 못해서 괴로운데
낮은 곳에서 살던 사람이 높은 곳으로 올라오면 과거의 기억이 너무 쉽게 잊혀집니다.
낮은 곳을 향하여 흐르는 강물처럼 당당하고 뜨겁게 살고자 했었는데...
(앞에서 인용한 이야기는 마민지의 ‘나의 이상하고 평범한 부동산 가족’이라는 책에서 옮겨왔습니다.)
2
얼마 전에 수확한 레몬이 넉넉해서 아는 분에게 조금 드렸더니
고맙다며 자신이 재배한 브로콜리를 잔득 가져오셨습니다.
브로콜리를 실컷 먹고 동생들에게 나눠주고도 남아서
동네에 사는 분에게 조금 드렸더니
이번에는 삶은 고구마와 감자를 소박하게 건네시더군요.
출출할 때 하나를 먹어봤더니 아주 달고 맛있었습니다.
레몬이 브로콜리가 되고 고무마가 되는 마술
마음이 넉넉해지는 행복한 마술입니다.
3
감귤 열매가 튼실하도록 하는 칼슘제 주기를 마쳤습니다.
보름 간격으로 한 번씩 칼슘제를 뿌려주는 것이 겨울철에 중요한 일이었는데 그것을 모두 마쳤습니다.
4월 중순쯤 수확할 때까지는 물과 온도관리를 하는 것 외에 특별히 해줄 일이 없습니다.
지난 일 년 동안의 수고가 헛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감귤나무에 감사의 마음을 전할 뿐입니다.
이제 1월을 마치고 2월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예년보다 포근한 겨울이기는 했지만 저는 조금은 힘든 겨울이기도 했습니다.
2월로 접어들면 두세 번 정도 반짝 추위가 찾아들기는 하겠지만 하우스 안에서는 포근한 기온을 일찍 즐길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서서히 봄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겨울 동안의 수고로움을 조금씩 덜어내도록 해봐야겠습니다.
(김광석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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