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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38회 – 2024년 올해의 목표

 

 

 

1

 

지난 연말 제가 살아왔던 삶을 잠시 돌아봤습니다.

재미있게 보냈던 어린 시절

열심히 공부에 매달렸던 학창 시절

좌충우돌하면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던 20대

노동운동을 하면서 열정을 쏟아 부었던 30대

삶의 구렁텅이에서 발버둥치기를 반복했던 40대

세상에서 한발 떨어져 편안하게 농사짓는 지금까지

참 열심히도 살아왔습니다.

 

그중 가장 빛났던 시기는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열정적으로 하던 20~30대 시절이었습니다.

불의가 판치는 세상에 분노하고

고된 삶의 무게를 견뎌내야 하는 민중과 함께 하면서

목숨을 건 처절한 투쟁도 해봤고

회복하기 힘든 동지의 배신도 겪어봤고

가슴 뜨거운 연대의 손길에 눈물도 적셔봤습니다.

그렇게 제 인생의 굵직한 궤적을 만들어갔었는데

시간이 지나서 돌아보니

그 궤적들이 희미해져버렸더군요.

100년 200년의 시간이 흐른 것이 아니라

겨우 10년 20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말입니다.

무수히 많은 이들이 그 위로 더 굵직한 궤적을 만들기도 하고

세상의 거센 풍파 속에 애써 쌓아놓은 것들이 모래성처럼 쓸려가 버리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길이 놓이면서 과거의 길이 무색해지도 해버리기도 하면서

점점 지워지고 있는 제 삶의 궤적이 조금 안쓰러웠습니다.

 

앞으로 살아갈 삶의 궤적은 어떠할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20~30대 같은 열정을 되찾기는 어려워서 다시 한 번 굵은 궤적을 만들지는 못할 것이고

한두 번쯤 삶의 파도가 거세게 몰아치기는 하겠지만 견뎌냈던 경험이 있어서 그리 오래 허우적거리지는 않을 것 같고

점점 노쇠해지는 체력과 열정을 아쉬워하며 거센 세상 속에서 편안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며 살아가겠죠.

그렇게 제 삶은 기복이 줄어들면서 점점 희미해지다가 조용히 사라져갈 것입니다.

 

그때 제 안의 성민이가 빽 하고 소리를 지르더군요.

“야 이 새끼야, 읽는 라디오를 다시 시작하면서 뭐라고 그랬어? 편안함에 취해 의욕도 능력도 없는 그저 그런 중늙은이로 나이 들고 싶지 않다고 했잖아. 그래서 세상을 향해 다시 외쳐보겠다면서. 그런데 1년도 안 돼서 이런 중늙은이 같은 소리나 지껄이고 있는 거야? 에라 이 한심한 새끼야.”

 

제 안의 성민이가 쏟아내는 말을 들으면서 뜨끔했습니다.

20~30대의 열정과 추진력으로 거침없이 나아갈 자신은 없지만

그때의 열정과 추진력을 사랑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열정과 추진력으로 거침없이 나아가는 이들을 보듬어 안도록 해봐야겠습니다.

제가 절망에 몸부림칠 때 외면하고 발길질하고 이용하려고만 했다면서 배신감으로 멀리했던 그들이 지난날의 저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받아 안지 않으면 지난날의 저를 오롯이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고

지난날의 저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때의 열정과 추진력을 사랑할 수 없을 것이고

그 열정과 추진력을 가슴에 품어내지 못하면 중늙은이가 돼서 점점 사그라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올해의 목표가 생겼습니다.

나를 버렸던 이들을 다시 품어 안아봐야겠습니다.

 

 

2

 

며칠 전 동생과 얘기를 나누다가 사소한 일로 버럭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저를 위해 일부러 찾아왔던 동생은 당황했고

순간적으로 저와 동생을 둘러싼 공기는 싸늘해져버렸습니다.

잠시 숨을 돌리고 생각해보니

그렇게 화를 낼 일이 아니었는데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서

곧바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지만

날카로운 종이에 베인 듯한 마음의 상처가 그냥 사라지지는 않을 것을 알기에 더 미안했습니다.

하필 그날이 12월 31일이어서 해를 넘겨 1월 1일이 되어서도 마음의 불편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더군요.

 

불편한 마음을 다독거리고는 볼 일이 있어서 밖에 나왔는데

마을에서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 분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지금 사랑이가 집안에서 막 짖어대고 있는데 혹시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요.”

“사랑이가 혼자 있으면 조금 예민해져서 밖에서 나는 사소한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거든요. 아마 그래서 그럴 거예요.”

“아, 지금 밖에 계세요?”

“예.”

“아, 그렇구나. 나는 혹시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서...”

“신경써줘서 고맙습니다. 텃밭에 채소들이 많거든요. 이따 오후에 한 번 들르세요.”

“예, 알겠습니다.”

그분과의 짧은 통화를 마치고 났더니 불편했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오려고 버스를 탔는데

기사님이 “어서오세요, 반갑습니다”라고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상 밖의 인사에 저는 우물쭈물거리며 “예”라고 짧게 대답하고 말았습니다.

기사님은 타는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내리는 사람들에게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며 일일이 인사를 건내는 것이었습니다.

기계적인 반복음이 아니라 마음을 담은 그 인사를 매 정류장마다 듣다보니

차안에 화사한 기운이 넘쳤습니다.

제가 내릴 때도 역시나 기사님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해주셨고

저도 마음을 담아서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드렸더니

기사님이 다시 “예, 안녕히가세요”라고 대꾸를 해주시더군요.

버스를 내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제 마음은 화사하게 펴있었습니다.

 

 

3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림 출처 https://blog.naver.com/galleryilho/223103353422)

 

계남의 ‘잠든 사이에’라는 그림입니다.

동화의 한 장면 같이 앙증맞고 편안한 그림입니다.

 

팍팍한 우리의 삶에서 한 발 물러난

목가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이 그림이

조금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신다면

이 사진은 어떤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랑이가 하우스 안에서 편안하게 낮잠을 자는 모습도

목가적이고 낭만적이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실까요?

그러고 보면 지금 제 삶은 더없이 축복받은 삶입니다.

남들이 그림으로만 대리만족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더

이 삶에 감사하고

이 삶을 나누려고 노력해야겠습니다.

감사하고 나눌수록 행복이 더 오래갈 수 있으니까요.

이것도 올해 제 삶의 또 하나의 목표입니다.

 

 

 

(류금신의 ‘또 다시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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