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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36회 – 마음속 공허함에 온기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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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되면서 팽나무 가지가 휑하니 비어버렸습니다.

다른 나무들이 낙엽을 흩날리며 가을의 정취를 연출하는 동안에도

푸른 잎사귀를 유지하며 꿋꿋하게 자태를 유지했었는데

겨울 찬바람 끝에 결국 잎사귀를 떨구고 말았습니다.

차가운 바람보다 팽나무가 전하는 스산함이 더 춥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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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하우스 안에도 냉기가 한가득이지만

노랗게 익어가는 감귤을 보고 있노라면

지난 여름의 뜨거운 열기를 아직도 간직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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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무는

차가워진 날씨에 몸이 한결 움츠러들어서

이파리의 생기가 시들해졌을 뿐 아니라

주렁주렁 매달린 열매가 힘에 부쳐서

드문드문 열매를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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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초의 날씨가 너무 따뜻해서인지

4월에 피는 꽃을 살며시 피워 올린 가지가 보이기도 하더군요.

익어가는 열매도 지켜내야 하고

추위도 견뎌야 하는데

꽃까지 피워냈으니

얼마나 바쁘고 힘들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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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하우스 한쪽 구석에 심어놓은 레몬나무에는

노란 레몬들이 꽃을 피운 것처럼

화사하게 매달려 있습니다.

일 년 동안 할 일을 다 했으니

빨리 열매를 때어내서

쉬고 싶다고 보채는 것 같습니다.

 

유난히 따뜻한 겨울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매서운 바람과 눈이 내리면서

지금이 한겨울임을 실감나게 하는 요즘이지만

하우스 안의 겨울은 의외로 화사하고 분주합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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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라 방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사랑이는

대부분의 시간을 편하게 누워 지냅니다.

찬바람도 들어오지 않고

방바닥도 따뜻하니

더없이 편안한 시간을 즐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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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 편안한 시간을 즐기다가

조금 출출해져서 간신을 먹을라치면

사랑이가 슬금슬금 다가와서

애절한 눈길을 보냅니다.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는

그 눈을 보노라면

제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피어오르곤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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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절한 눈길을 외면할 수 없어서

사랑이 전용간식을 하나 건네면

덥석 물어들고 얼른 자기 자리로 가서는

물고 뜯고 핥고 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제 마음도 즐거워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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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식을 다 먹고

더 없이 만족스러운 순간

살며시 다가오는 저를 확인한 사랑이는

바닥에 등을 대고 네 다리를 활짝 들어 올려 저를 맞이합니다.

오직 저만을 위한 포즈를 취하는 사랑이를 위해

배를 살살 쓰다듬어주면

저도 사랑이도 너무나 행복해집니다.

 

 

3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집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하우스에 들어가면 이런저런 소일거리들은 있지만 추워서 일을 할 수 없기에

사랑이 산책을 시켜주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종일 집안에서 지냅니다.

집안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책 읽기, tv나 ott 보기가 전부인데

이런 시간이 매일 이어지다보니 책도 잘 안 읽히고 ott도 재미가 없습니다.

특별한 일 없이 이어지는 이 시간들을 무의미하게 보내다보면

머릿속에는 이런저런 잡념들이 필요이상으로 활개를 치고

찌뿌듯한 몸은 점점 무거워져만 갑니다.

그래서 맹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12월과 1월을 보내는 것이 가장 힘듭니다.

 

날씨도 춥고

낮에 빈둥거리기만 하다 보니

잠을 자다가 새벽에 깨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

새벽 2시에 잠이 깬 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편안한 음악을 들으면서 제 마음을 들여다봤습니다.

 

별일 없이 무료한 하루하루를 보내다보니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 비슷한 것이 자리 잡은 것 같기도 하고

재미있는 것을 찾아서 헤매느라 마음이 괜히 들뜨기고 하고

머릿속을 휘젓는 잡념들을 치워야한다는 생각에 오히려 잡념들이 더 날뛰기도 하는

그런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뿌연 안개처럼 자리 잡은 그런 것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더니

그 뒤에 블랙홀처럼 커다란 공허함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더군요.

그 공허함이 문제라는 것은 알겠는데

그 블랙홀을 메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고민하는 순간

강박관념이 다시 기지개를 켜고

들뜬 마음이 다시 부풀어 오르고

잡념들이 다시 날개를 펴서 날아다니는 바람에

생각을 멈추고 가만히 누워서 음악만 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요가로 몸을 풀고

가볍게 식사를 한 후

사랑이와 산책까지 마치고는

뜨거운 차를 한 잔 마시며

편안한 음악을 듣고 있노라니

따뜻한 온기가 느껴져서 좋더군요.

그 온기를 마음속 공허함에 살며시 불어넣어봤습니다.

 

 

 

(웅산의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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