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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37회 – 춥고 외롭고 배고픈 성탄절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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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을 맞아서 사랑이랑 둘이서 송년회를 가졌습니다.

둘이서 하는 송년회라 음식은 조촐하게 차렸지만

나름 신경을 써서 마련한 자리였습니다.

 

올 한 해 어떻게 보내왔는지

내년에는 어떻게 보낼 건지 같은 대화는 할 수 없어서

사랑이는 맛있는 간식을 실컷 먹을 수 있는 기회로

저는 제대로 된 안주를 놓고 술 한 잔 마실 수 있는 기회로 만들었습니다.

 

둘의 대화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두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사랑이와 저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음날

사랑이는 간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사료에 입을 대지 않았고

저는 숙취로 조금 고생을 했지만

조촐한 둘만의 송년회는 제 마음에 살포시 자국을 남겼습니다.

혼자가 아닌 둘이 함께 하는 자리였기 때문이죠.

 

 

2

 

아주 매서운 강추위와 함께 폭설이 이틀 동안 몰아쳤습니다.

중무장을 하고 사랑이와 함께 산책을 나섰더니

세상이 하얗게 변해서 잠시 멈춰선 것 같았습니다.

요즘 가장 바쁜 곳 중에 하나인 감귤선과장도 하얀 눈 속에 파묻혀 있었는데

조그만 강아지 한 마리만 그곳을 외롭게 지키고 있더군요.

 

집안에 가만히 웅크려 있다가

사랑이와 저를 발견하고는

살며시 집밖으로 나와서 꼬리를 흔들어대기에

인사를 나누려고 가까이 다가갔더니

줄이 근처 구조물에 걸려서 편하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구조물에 걸려있던 줄을 풀어줬더니

격하게 반기는 강아지를 살며시 쓰다듬어주는데

눈 속에 파묻힌 채 뒤집혀 있는 빈 밥그릇이 보이더군요.

이틀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서

간식과 사료를 챙겨 와서 밥그릇에 넣어줬더니 아주 맛있게 먹더라고요.

 

이렇게 추운 날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이곳에서

혼자 배고픔을 달래야했을

어린 강아지의 모습을 보며

사랑이와 저의 행복이 더없이 미안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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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자신의 아들이

십자가에 매달려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던

독하신 하나님!

 

저는 십자가가 싫습니다.

제가 뭘 그렇게 잘못 살았다고

저한테 이러십니까?

정말 너무 하십니다.

 

 

발버둥치고 발버둥치고 또 발버둥치며 살아가는 삶 속에서

정말로 간절한 기도를 수없이 해봤지만

침묵으로만 일관하는 하나님을 보며

마지막 발버둥처럼

이런 저주를 쏘아붙이는 분들이 많겠죠?

 

이분들을 향해

“나중에 시간이 흐르면 그렇게 간절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음에 감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저주를 쏘아붙일 힘조차 없이 무기력하게 쓰러져있는 사람도 많답니다”

“살다보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용기를 내세요”

라며 격려의 말이라도 건넬라치면

쌩한 냉기나 앙칼진 고함이나 뜨거운 주먹이 날아올지도 모릅니다.

 

그게 뭔지 아는 사람들은 알기 때문에 할 말이 별로 없고

그게 뭔지 모르는 사람들은 모르기 때문에 할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그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면서도 침묵을 지키셨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하나님에게 저주를 퍼부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실 거라는 믿음 때문일 겁니다.

 

성탄절 연휴가 끼어있는 조금은 들뜬 연말

세상을 향해 귀를 쫑긋 세워 봐도 간절한 이들의 소리를 들리지 않고

그들을 향한 제 목소리도 찬바람 속에 흩날리기만 하지만

제 마음 속에서라도 무슨 소리가 들리는지 조금 더 예민하게 들여다봐야겠습니다.

 

 

 

(장명선의 ‘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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