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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으로 운영하던 서재가 있습니다.
인터넷서점에서 제공하는 블로그 형태의 서비스인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읽었던 책들에 대한 간단한 메모를 남겨두는 형태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다른 블로그나 sns들과 마찬가지로 찾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10년 넘게 꾸준히 운영하다보니 아주 조금씩 찾는 사람들이 늘기는 했습니다.
물론 서로간의 소통이나 원활한 정보의 공유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고
그저 스치듯 지나가면서 짧은 메모를 훑어보는 정도입니다.
그 정도라도 세상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에 즐거움을 두고 있었죠.
며칠 전에 그 서재의 기능을 살펴보다가 서재 주소를 자신이 원하는 도메인으로 변경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동안 무작위로 제공되는 무의미한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저만의 의미를 갖는 도메인으로 변경할 수 있다길래 별 고민 없이 주소를 바꿔버렸습니다.
그리고 프로필 이미지도 마음에 드는 사진으로 업로드해서 저의 정체성을 좀 더 돋보이게 만들었지요.
그렇게 좀 더 저만의 색깔이 나는 공간으로 바꾸었는데 다음날부터 방문자가 사라져버렸습니다.
이유를 알아보려고 관리기능을 꼼꼼하게 살펴봤더니 “도메인을 변경하면 북마크나 RSS, 트랙백 정보가 모두 변경되니 유의하세요”라는 문구가 보이더군요.
도메인을 바꾸면서 갑작스럽게 이사를 해버렸으니 기존에 찾아오던 사람들은 서재가 사라진 줄로 알게 된 것입니다.
저의 색깔을 밖으로 드러내보려고 살짝 욕심을 냈다가 세상과의 소통이 단절돼 버리는 결과를 만들고 말았습니다. 하하하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어차피 찾는 사람들이 많은 곳도 아니었고
세상과 유의미한 소통을 하는 공간도 아니었기에
크게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큰 의미 없는 방문자 수에 연연하지 말고
제가 읽었던 책들에 대한 기록을 남겨두는 의미에 집중해야겠습니다.
읽는 라디오가 그랬듯이
그곳도 제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가야겠네요.
2
‘이 투 마마’라는 멕시코 영화를 봤습니다.
혈기왕성한 10대 청년 두 명이 파티에서 만난 젊은 유부녀와 여행을 떠나며 생기는 일들에 대한 얘기였습니다.
조금은 어색할 것 같은 이들의 여행은
섹스에 대한 직설적인 대화를 쉼 없이 이어가며 자신들의 남성성을 과시하는 청년들과
그들의 음담패설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며 맞장구치는 여성과의 대화로 요란하게 이어집니다.
그렇게 신나게 떠들며 도착한 어느 모텔에서
두 청년은 여성과의 야릇하고 뜨거운 밤을 기대하며 그의 방을 기웃거리는데
혼자 남은 여성은 침대에서 흐느끼며 자신의 상처를 쓰다듬고 있었습니다.
영화는 이들 셋의 혈기와 엇갈림과 상처와 교감 같은 것들을 보여주며 계속 이어집니다.
너무나 멕시코스러운 정서와 그들의 직설적인 대화들이 정서에 맞지 않아서 그다지 감동적이거나 재미있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셋의 관계가 인상에 남더군요.
영화 내내 셋은 쉼 없이 떠들어대고 서로 얽혀 섹스를 하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얘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친한 친구인 두 청년은 쿵짝이 맞는 것 같지만 결국 자기 관점에서 서로를 대할 뿐이었고
함께 여행을 하는 여성이 울고 있는 것을 보고도 그들은 그 여성의 상처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상처와 열정만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그들의 여행은 끝이 나고 셋의 인연도 이어지지 못한 채 각자의 삶으로 갈라서게 됩니다.
그러면서 삶과 관계에 대한 묘한 여운을 남기며 영화가 끝나더군요.
이 영화를 ‘철없는 청춘들의 좌충우돌 성장기’라고 평하기에는
철없는 청춘들의 모습이 우리네 삶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있어서
살짝 부끄럽고 불편하게 하더군요.
나이가 많든 적든, 남자든 여자든, 멕시코인이든 한국인이든 상관없이
자기 얘기만 쉼 없이 떠들어대는 것은 마찬가지고
타인의 상처를 보면서도 자신의 상처만을 쓰다듬으려는 것도 마찬가지고
관계를 소중하게 이어가는 것보다는 부나방처럼 관계 속의 즐거움만을 찾는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다스러운 저도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자기 얘기만 10년 넘게 떠들어대고 있고
너무 멀리 있는 타인의 상처보다 깊은 제 내면의 상처가 너무 생생하게 자리 잡고 있고
관계의 단절에서 오는 편안함에 익숙해져 버린 것도 사실입니다.
철없는 저는 어떻게 하면 삶과 관계에 대해 배울 수 있을까요?
3
이태원 참사 2주기라는 기사를 봤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2년 밖에 지나지 않았더군요.
그만큼 관심이 없었다는 얘기죠.
이렇게 관심에서 멀어지는 사이
참사의 책임자들은 하나씩 법의 족쇄를 풀어내고 있고
유족들은 의지할 곳 없이 거리를 헤매고 있고
상처 입은 이들은 혼자서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 소식을 접하면서도
할 수 있는 것이 딱히 없어서
이렇게 안타까운 마음만 남겨봅니다.
제 안에만 갇히지 않고
세상을 향해 귀를 기울여보려고 노력해보지만
들려오는 소리가 너무 미약할 때
세상의 시끄러운 소음이라도 들어보면서
이 차갑고 무서운 세상을 확인해봅니다.
(김민기의 ‘잃어버린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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