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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에 포섭된 제도좌파의 정치적 파산

신자유주의에 포섭된 제도좌파의 정치적 파산

● 세계정치정세 우경화(?) - 제도좌파의 정치적 파산과 현단계 계급투쟁

원영수 (노동자의 힘 회원)

프랑스 대선에서 극우 인종주의자 장마리 르팽의 본선진출소동은 이른바 "복수좌파"의 전폭적 지지에 힘입은 시라크의 재선으로 일단락 되었지만, 작년 부시정권의 출범 이래 유럽에서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를 비롯한 우파정권의 연이은 승리로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부르주아 정치의 우경화가 현실적인 우려와 관심사로 등장하고 있다.
더욱이 9.11 테러공격 이후 이성을 잃은 부시정권의 제국주의적 군사공세가 더욱 노골화되고 있는 상황이기에, 우려는 더욱 증폭되고 있다. 사회주의진영의 붕괴와 함께 선언되었던 역사의 종언이 아니라, 야만으로의 회귀가 새로운 세기의 화두가 되었다!

우경화(?)의 본질

최근의 우경화 현상의 본질은 무엇인가? 현단계 계급투쟁에서 우파의 정치적 승리를 의미하는가? 아니다. 극우파의 출현과 진출을 제외하면,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우파에 대한 정치적 지지의 증가현상은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파에 대한 지지는 정체하거나 다소 감소하고 있다.
결국, 우경화 현상의 핵심적 원인은 중도좌파에 대한 대중적 불신과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과 반발이다. 이른바 중도좌파로 표현되는 제도좌파의 신자유주의적 포섭은 제도정치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고, 역사적으로 파시즘과 극우세력의 직접적 지지기반이었던 노동자계급 하층 및 반프롤레타리아트의 극우화에 힘입어 우경화로 현상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근의 우경화현상의 핵심은 우경화라기보다는 극우파의 진출이며, 중도좌파의 정치적 파산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예견된 미래 - 제도좌파의 정치적 파산

거시적으로 보자면, 잇따른 극우파의 진출과 우파정권의 등장은 제도좌파의 정치적 파산이 선거정치를 통해 드러난 것일 뿐이다. 사실 일국 내에서 신자유주의 노선으로 포섭된 제도좌파가 국제정치에서 우파의 하위파트너가 된 지는 이미 오래다. 지난 걸프전쟁과 유고분쟁에서 제도좌파는 제국주의 세력의 한 축을 담당했다.
특히 유고분쟁시 독일 내에서 그동안 사회운동의 정치적 대표로 인정받았던 독일 녹색당의 파병지지 결정은 역사적으로 제국주의 전쟁을 지지했던 제2인터내셔널계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정치적 파산의 재판에 다름 아니었다. 이들 제도좌파가 9.11 테러 직후 감행된 부시정권의 대테러전쟁에 동참한 것은 결코 놀라운 일도 우연도 아닌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다른 측면인 제국주의적 군사동맹의 한 축은 바로 집권 제도좌파가 담당하고 있으며, 유럽의 사민주의가 아무리 문명의 외피를 쓰고 중도를 자처하더라도 본질적으로 제국주의적 지배체제의 일부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아무리 제3의 길로 포장하더라도, 사회당, 사민당, 노동당 등 제도좌파는 이미 신자유주의에 포섭되었으며, 더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점차 이들의 위성정당으로 전락하고 있는 유럽의 공산당과 녹색당 역시 사민주의의 제2중대로서 신자유주의 세력의 일부로 편입되고 있다는 점이다.

부르주아 정치의 파산과 정치적 공백

그 결과 부르주아 제도정치권 내에서는 노동자-민중의 이해를 대변할 대안적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 정치적 공백이 생겼다. 동시에 신자유주의세력 대 반신자유주의세력 간의 투쟁으로 표현되는 현단계의 계급투쟁은 제도정치에서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부르주아 제도정치일반과 이에 저항하는 반신자유주의 노동자-민중운동의 대립으로 폭발하고 있다.
이 와중에서, 전통적으로 제도좌파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노동조합 역시 신자유주의와 반신자유주의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다. 즉, 신자유주의의 하위파트너로서 노동유연화 전략을 수용할 것인지, 아니면 노동자계급운동의 복원과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주력부대로 재등장할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지난 3월과 4월 이탈리아 노동자계급의 노동법개악 반대투쟁은 한국의 96-97총파업과 함께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선 주요한 투쟁으로 기록되어야 하며, 작년 제노아투쟁에서 보여준 이탈리아 반지구화운동의 급속한 성장과 함께, 제도좌파의 정치적 파산으로 생긴 정치적 공백을 재전유하는 새로운 정치적 실험의 계급적-물적 기초를 구축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반지구화운동 - 성과와 가능성

계급투쟁의 현국면에서 새로이 성장하고 있는 반지구화운동은 극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운동은 다양한 구성과 그로 인한 원심력, 시민운동과 NGO의 비정상적 우위 등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계급투쟁의 고양을 자극하고, 전지구적으로 확산되는 투쟁의 과정 속에서 반자본주의 정치세력의 성장가능성을 현실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99년 시애틀에서 2000년 워싱턴, 프라하, 멜번, 2001년 퀘벡과 제노아로 이르는 과정에서 반지구화운동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질서에 저항할 수 있는 전세계 노동자-민중의 역량과 가능성, 그리고 점차 명료화되는 반자본주의적 지향성을 보여주었다. 더욱이, 일국운동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계급투쟁의 고양과 그 안에서 대안정치의 물질적-계급적 토대가 더욱 구체화하고 있다.
특히, 9.11테러와 아프간전쟁으로 위축되었던 반지구화운동이 제2차세계사회포럼, 바르셀로나시위, 로마시위, 메이데이투쟁, 미국의 팔레스타인 연대시위 등을 통해, 오히려 그 정치적 내용을 확장하면서 동원력을 회복하고 있는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는 반지구화투쟁이 경제적 이슈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 노동자-민중 전체가 직면하고 있는, 즉 자본주의의 계급적 모순이 불러일으키고 있는 정치-군사적 측면까지 포괄하는 투쟁으로 발전하는 내적인 법칙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현단계 계급투쟁에서 새로운 주체형성과 정치세력화

물론, 중심부 국가들의 제도좌파만이 아니라, 주변부 국가들의 제도좌파마저 대안의 가능성을 말살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반지구화투쟁과 일국운동의 발전이 기계적으로 새로운 대안을 제출할 정치세력의 즉각적 출현으로 연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1980-90년대 전세계적으로 대중투쟁을 주도하면서 새로운 대안의 희망을 갖게 했던 남아공의 민족회의(ANC)와 공산당(SACP),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전선(FSLN) 브라질의 노동자당(PT) 역시 선거정치 매몰과 제도화-관료화로 제국주의국가의 제도좌파의 길을 따라 신자유주의의 하위파트너로 전락하고 말았다.

결론적으로, 극우파의 부상과 우파정권의 등장은 신자유주의의 승리라기보다는 신자유주의에 포섭된 제도좌파의 정치적 파산에 의한 반사이익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그로 인해 창출된 정치적 공백을 채우기 위한 노동자-민중세력의 정치세력화가 발본적으로 모색되어야 할 시점이다. 이는 한편에서 위로부터는 사민주의, 아래로부터는 시민운동과 NGO형태의 개량주의 세력과의 투쟁을 통해서, 다른 한편으로 대중적 계급투쟁과 이를 통한 정치적 지도력의 재구축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제도좌파의 정치적 파산이 곧 조직적 파산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후자의 과정은 현실의 계급투쟁을 매개하면서 복잡한 양상으로 진행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대신할 새로운 정치적 주체형성과정은 복합적 투쟁과정과 맞물려 진행될 것이며, 이 과정은 지난 노동자계급운동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새로운 대중투쟁의 창조적 동력의 결합을 통해 진전될 수 있다.


● 극우화 바람과 유럽 정치의 변화
제도권 좌파의 몰락 - 새로운 전망은?

정병기 (노동자의 힘 회원)

2000년 2월 오스트리아의 극우파 하이더가 연정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유럽의 21세기 정치무대는 다시 우향우로 선회하고 있다. 지난 해 5월에 이탈리아에서 네오파시스트 정당 민족연맹과 지역이기주의 정당 북부동맹이 우익 베를루스코니 정당(전진이탈리아당)과 연정을 구성했다. 올해에는 프랑스 대선에서 극우 민족전선의 르팽이 결선투표에 진출했었고 지난 주말에는 영국의 지방의회에 극우파 인물이 당선됐다는 소식이 이어졌다. 독일에서도 중도보수인 기민당이 좀 더 우익으로 선회하고 독일민족당이나 쉴러당 등 극우파들의 돌풍이 예상되고 있다.
이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우경화 바람'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보다 정확히 말해 이 현상은 우경화 바람이 아니라 극우파 바람이라고 해야 한다. 프랑스 대선에서 보다시피 제도권 좌파의 몰락뿐 아니라 보수파의 시락조차 예전의 득표율을 유지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와 독일에서도 좌우 유권자들의 지지율 변동이 있었다기보다 우파 진영이 극우적 선동을 통해 유권자들에 영합하려 하고 있다. 유럽 좌파들의 선거실패를 일반적으로 중도로의 진입에 성공하지 못한 사회경제정책의 실패와 범죄율 증가에 기인하는 것으로 분석하지만, 문제의 근본 원인은 다른 데 있다.
극우파의 바람과 기성정당의 약화를 초래한 원인으로 국민정당의 위기와 대안 없는 신자유주의의 추구 및 반세계화 경향을 들 수 있다.

제도권 좌파 - 왜 무너지고 있나?

우선 1980년대 이후 유럽사회에서 회자되고 있는 정치혐오증과 정당혐오증이 국민정당의 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점이다. 1960년대 말 이후 반권위주의라는 새로운 사고가 성장하였음에도 국민정당들은 표가 되는 한 모든 계층과 입장을 대변하려는 중도통합정당화(catch-all party)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어떠한 특수이해도 대변하지 못해 왔다. 그 결과는 유권자그룹중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중간층의 대변에 매몰된 나머지 사회저변층을 소외시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기존의 정치와 기성정당에 대한 혐오증을 더욱 부추겨 정당외적 조직인 사회운동조직의 성장을 촉발시켜 온 반면, 정치권 내부에서는 신생정당들의 성장을 촉진시켜 기성정당에 대한 지지율 하락을 가져왔다. 이번 프랑스 대선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난 바와 같이 유럽 사회 전반에서 투표참여율이 점차 하락하는 것도 같은 요인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특히 사회당에 해당하는 것으로 대안 없는 신자유주의 추구이다. 1990년대 중후반 중도-좌파정권의 등장은 1980년대 초반 이후 신보수주의의 정책적 실패에 따른 반사적 이익의 결과였다. 그러나 중도-좌파정권도 새로운 좌파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답습한 데 그쳐 새로운 사회경제적 위기를 해결하지 못했다. 제도권내의 양대 진영인 신보수주의와 사민주의의 정책적 실패가 특히 부동층 유권자들에게 제3의 대안을 추구하게 만든 것이다. 그 중 좌파적 성향의 유권자들은 노동자 투쟁당의 라기예와 같은 비제도적 좌파를 선택한 반면 우파적 성향의 유권자들은 극우파인 민족전선을 선택한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의 또다른 부산물 - 극우파 바람

마지막으로 극우파 바람은 세계화에 대한 반발의 흐름들 중 하나이다. 현실사회주의가 사라진 지구상의 정치경제는 국제경제적으로 신자유주의로 무장한 초국적 자본의 전횡으로 치달았고 국제정치적으로는 미국의 전일적 지배로 귀결되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미국식 세계화는 두 축의 반세계화 경향을 낳았는데 그 우측에 위치한 것이 극우민족주의 경향이다. 프랑스 민족전선을 포함한 유럽 극우파들의 공통된 주장의 하나는 '반미'인데, 실제 이들은 세계화를 '미국화' 또는 '달러화'로 규정하며 자국의 국수주의자들을 동원하고 있다. 9.11테러 이후 미국의 군사적 팽창정책은 역설적으로 극우파들에게 더욱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보인다. 극우파들의 주장은 또한 실업과 같은 사회경제적 위기와 맞물려 국수주의적 '평등' 주장과 상승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프랑스인이면' 또는 '게르만인이면' 누구나 '우월한' 평등권을 누리게 하겠다는 논리로 이들은 외국인이주자들에 대한 적대감을 부추기는 것이다.
프랑스 대선에서 르팽이 선전한 것은 전혀 새로운 현상이나 예기치 못한 일이 아니다. 1988년과 1995년 대선에서 르팽은 이미 14.4%와 15%를 득표해 상승기류를 타고 있었으며, 이탈리아와 독일에서도 이미 1980년대 후반부터 네오파시스트와 네오나치즘이 주요 정치적 사안이 되기 시작하고 있었다. 상술한 3가지 근본적 요인에 따라 극우파들의 성장은 충분히 예견 가능한 일이었다는 얘기다. 문제는 새로운 좌파적 대안의 부재에 따른 좌파진영의 심각한 약화이다. 좌파진영 전체로 볼 때에는 과거 선거에 비해 득표율이 하락했다고 볼 수는 없다. 보수 경향의 유권자들이 우익 진영 내에서 극우로 이동했다면, 진보 성향의 유권자들이 수많은 좌파정당들의 경합 속에 분열되어 간 것이라고 분석될 수 있다. 다시 말해 극우파들의 성장 경향을 경시한 채 좌파들이 서로 경쟁한 것이 선거전략상 제도좌파 몰락의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다.

전망은 어디에?

프랑스 대선을 통해 얻어야 할 것은 무엇보다 좌파들까지 포함한 제도권 정당들의 한계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한 반발이 더욱 가시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반세계화 경향이 극우파들의 준동을 초래하는 것도 현실이지만, 그 다른 한 축은 새로운 좌파들이 추동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극우파의 강화 현상이 반세계화 경향의 우익적 현상이라면, 반세계화 사회운동단체의 성장과 비제도적 좌파정당들의 약진은 반세계화 운동의 좌파적 현상인 것이다.
극우파들의 준동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좌파들이 단결해야 한다. 그러나 정당혐오증이라는 장기적 흐름을 볼 때, 대안 없는 신자유주의를 답습해온 기성정당들은 더 이상 진보진영 단결의 구심점이 될 수는 없다. 최근 각종 세계화 국제회의에 대한 시민사회운동의 강력한 저항과 프랑스 노동자투쟁당의 선전에서 보는 것처럼 극우파의 바람으로 현상한 현 시기는 다른 한 편으로 새로운 대안 제출을 강요하는 시기임과 동시에 비제도적 좌파의 희망의 시기이기도 하다.



● 남미정치의 우경화
라틴 아메리카 -- 신자유주의의 정치적 파산과 제도적 좌파의 딜레마

원영수 (노동자의 힘 회원)

비바 체 게바라!!!

작년과 올해 브라질의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세계사회포럼이 열렸지만, 수많은 남미 활동가들을 열광시킨 구호는 포럼의 공식구호인 "또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보다는 "쿠바혁명 만세! 체 게바라 만세!"였다. 이는 명료한 이데올로기적 지향을 회피하는 이른바 "세계시민사회"의 모호한 구호보다는 사회변혁을 갈망하는 라틴 아메리카 민중의 정치적 의지의 표현이었다.

격동하는 남미정세

최근 라틴 아메리카의 정세는 다시 격동기로 들어서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경제위기와 그에 따른 혁명적 상황, 베네수엘라의 반차베스 쿠데타와 민중봉기, 비록 왜곡된 형태이지만 멕시코의 정권교체 등 크고 작은 정치적 격변이 아메리카 대륙을 휩쓸고 있다. 미국 제국주의의 뒷마당이 오랜 침묵을 깨고 휴화산에서 활화산으로 바뀌고 있다.
90년대 냉전질서의 해체와 더불어, 남미전역에서 군사정권들이 퇴각하면서 형식적이지만 민주화의 과정이 진행되었다. 이에 제국주의와 그들의 이데올로그들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발전을 노래하였다. 그러나 불과 1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결말은 참혹한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는 악몽이고, 민주주의는 계급독재를 합리화하는 껍데기에 지나지 않았다.
여전히 줄지 않는 외채, 살인적인 인플레와 예측불허의 경기변동, 기본적 생존마저 위협하는 빈곤과 실업의 확대재생산, 부정부패와 타락으로 얼룩진 부르주아 정치…. 민중의 분노와 정치적 폭발은 불가피한 것이다. 새로운 계급투쟁이 대륙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반제국주의 투쟁은 다시 일상의 언어가 되고 있다.

잃어버린 20년: 신자유주의 공세와 좌파의 무장해제

1959년 쿠바혁명이 도화선이 되어 시작된 남미전역의 농촌 및 게릴라운동은 60~70년대의 고양국면 이후 뚜렷한 정치적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쇠퇴국면에 들었고, 남미식 수입대체 산업화의 전반적 파산 이후 우파정권과 군부독재 하에서 신자유주의 노선이 조직적으로 도입되었다. 그 결과 80년대는 잃어버린 10년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협상에 의해 퇴각한 군부독재를 대체한 민간정권들은 수많은 학살과 실종을 자행한 군부독재에 정치적 면죄부를 주는 한편, 자유화, 탈규제, 민영화와 노동유연화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적 노선을 여과없이 계승하여 무차별적으로 진행하였다. 그 결과 각 나라별로 다소간의 편차는 보이지만, 남미 전역에서 신자유주의적 공세는 보편화되었다.
이 와중에서 다수의 무장투쟁세력들은 군부와의 정치협상을 통해 제도정치권으로 진입하게 된다(대표적으로 엘살바도르의 FMLN). 그러나 이와 같은 대부분의 좌파세력은 소련해체와 사회주의 진영붕괴로 인한 이데올로기적 혼란과 사회변혁의 전망상실과 함께, 부르주아 선거정치의 덫에 갇히게 된다. 그 결과 정치적 무능과 부패, 엄청난 사회적 모순에도 불구하고, 제도좌파세력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이 되기보다는 그 사회적 모순의 일부가 되는 역설적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니카라과 혁명의 고립과 정치적 파산

79년 무장투쟁으로 부패한 소모사정권을 타도하고 권력을 장악한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FSLN)은 토지개혁을 포함한 민주개혁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지만, 미국 제국주의의 끈질긴 간섭과 콘트라 반군과의 내전으로 정치적 타협을 강요당했다. 결국 1990년의 선거에서 우파세력에 패배함으로써 니카라과 혁명은 대내외적 고립 속에서 좌초하고 말았다.
그러나 문제는 그 후에 생겨났다. 비록 혁명은 패배했지만, FSLN은 확고한 대중적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제1야당의 정치적 지위를 이용해 선거를 통한 재집권의 길을 추구하게 된다. 그러나 미국의 비토는 결정적 장애물이었으며, 따라서 재집권을 향한 산디니스타의 정치는 워싱턴에 다양한 종류의 화해제스쳐를 보내는 것이 핵심이 되었다. 이와 더불어, 산디니스타 내부의 정치적 분열과 부정부패는 그들에 대한 민중의 정치적 신뢰를 붕괴시켰다.
차모로와 아윌윈의 집권하에서 산디니스타 토지개혁의 성과는 무로 돌아가고, 산디니스타 상층 지도부는 역혁명 과정에서 불법적 수단을 동원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함으로써 체제내의 기득권 세력이 되고 말았다. 1979년 산디니스타 혁명은 "신화"로밖에 기억되지 않는다.

브라질 PT의 정치학 - 희망에서 절망으로!

1970년대 말 군부독재에 맞선 노동자계급 투쟁의 성과로 건설되었던 브라질 노동자당(PT)은 새로운 희망으로 여겨졌다. 1980년대 선거에서 PT의 정치적 약진은 눈부신 것이었고, 전통적으로 취약한 브라질의 정당정치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성장하였고 PT의 집권은 가시권에 들어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지방선거와 의회선거에서 승리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활동가들이 제도권 내부로 편입되었고, 그 결과 당지도부는 기층과의 연결고리를 상실하면서 관료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당내 좌파의 축출, 사회운동과의 연대에 대한 소극적 태도, 선거정치에의 매몰 등으로 인해, PT의 사회주의적 지향은 껍데기만 남게 되었다.
오히려, 당선가능성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었고, 지도자인 룰라가 미국으로서도 받아들일 수 있는 카드임을 증명하는 것이 선거캠페인의 핵심이 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미국은 결코 룰라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그를 인정하지도 않을 것이다. 룰라와 브라질 노동자당은 자신들이 바라봐야 할 것은 미국이 아니라, 바로 브라질의 노동자와 민중, 그들의 대중투쟁이 모든 힘의 원천이라는 진실이다.

차베스정권 - 볼리바르주의 혁명(?)

라틴 아메리카의 경제적 혼돈과 정치적 혼란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는 바로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의 수립이었다. 빈약한 정치적 기반에도 불구하고 차베스는 개인적 카리스마에 의존하여 부르주아 정치에 식상한 대중들을 사로잡았고, 볼리바르주의 혁명의 이름 아래 민중적 개혁정치를 밀어붙이고 있다.
차베스 혁명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부르주아 정치의 파산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보수양당에 기반한 과두지배체제는 사실상 붕괴하였다. 이는 필리핀의 에스타라다 정권과 더불어, 부패한 부르주아 정치의 구조적 취약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러나 차베스정권은 아직은 취약한 계급적 기반과 끊임없는 제국주의의 간섭으로 항상적인 내전의 위기에 처해 있다. 지난 4월의 군부쿠데타는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언제라도 다시 발생할 수 있다. 오직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정치적 조직화와 강력한 국제연대투쟁만이 차베스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아래로부터의 신자유주의 - 제국주의에 봉사하는 NGO

80~90년대를 거쳐, 정치적-경제적 차원에서 진행된 신자유주의적 포섭을 측면에서 지원한 것이 바로 수많은 종류의 NGO들이었다. 전통적으로 포퓰리즘적 전통이 강한 남미에서 국가의 역할은 중요한 것이었고, 국가에 대한 NGO들의 비판은 아래로부터 신자유주의 공세를 위한 길을 닦았다.
동시에 수많은 NGO들은 과거의 게릴라와 활동가들에게 안정된 직장과 급여를 제공함으로써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을 봉쇄하는 역할도 동시에 수행하였다. 그 결과 제도좌파정치권 역시 민중운동과의 연대보다는 이들 신자유주의적 NGO의 지원에 더 의존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들 NGO는 신자유주의의 대리세력으로서 부르주아 정치일반의 해체로 생긴 공백을 강력한 노동자-민중운동이 장악하는 것을 막는 완충지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들은 대중투쟁과의 결합보다는 재정적 지원을 제공하는 제국주의 국가와 제국주의적 거대NGO들에 의지하면서, 노동자-민중투쟁의 계급적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 - 어디로 가는가?

라틴 아메리카 전체적으로 볼 때, 신자유주의적 보수정권과 그들의 2중대 제도적 좌파에 대한 대중적 불만과 불신은 극도로 높아지고 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경제위기, 만연한 실업과 빈곤, 정치적 부패와 무능 등. 이에 대한 대안은 제도권 내에서 보이지 않는다. 한때 희망으로 여겨졌던 PT나 FSLN, FMLN 등 제도권내 좌파 대중정당은 더 이상 민중의 희망이 아니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다시 일어서는 노동자-민중운동이 그것이다. 아직 정치적 대안으로까지 진전되고 있지는 않지만 콜롬비아 게릴라운동(FARC와 ELN), 멕시코의 사파티스타 원주민봉기, 볼리비아와 전투적 농민운동, 브라질의 무토지 노동자운동(MST), 아르헨티나의 실업노동자투쟁 등은 여전히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을 조직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아르헨티나의 상황에서 보여지듯이, 광범한 민중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위기에 대한 대안을 제출하는 정치세력은 소수의 변혁적 좌파를 제외하면 거의 전무하다. 불행히도 브라질의 PT나 니카라과의 FSLN과 같이 강력한 투쟁의 역사를 가진 제도좌파세력의 경우 라틴 아메리카 민중의 갈망하는 정치세력화의 전형 창출을 위해 투쟁하기보다는 선거정치에 매달리고 있으며, 워싱턴의 관대한 처분을 꿈꾸고 있다.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가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결국 문제는 노동자-민중투쟁을 올곧게 반영할 수 있는 정치적 지도력을 형성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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