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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티스타 원주민 사령관과의 인터뷰

멕시코시티 남부 틀랄판구에 자리잡은 ‘멕시코 국립인류학 및 역사학대학’(ENAH)에 우리는 정확히 낮 12시40분에 도착했다. 오후 1시가 인터뷰 예정시간이었다. 지난 2월28일 나는 사파티스타 정보센터(CIZ)에 한통의 메일을 보냈다. 부사령관 마르코스와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답장은 3월13일에 왔다. 부사령관이 적극적으로 인터뷰를 검토하고 있으며 날짜는 14일에서 16일 사이면 될 것이라는 답장이었다. 결국 17일로 일정이 잡혔다.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주어질 것이라는 답이었다. 인터뷰 예정일에 내 조력자인 멕시코인 베네시아(20·멕시코 국립자치대학 사회과학부)와 함께 인터뷰 장소로 갔다. 그러나 1시간 정도 기다려달라고 했다. 이전 만남이 길어진다는 것이었다.

오후 2시께 우리는 대학의 본관 건물로 안내원을 따라 들어갔다. 부사령관 마르코스가 인터뷰 대상자라 생각했는데 예상 외로 세명의 원주민 사령관이 나와 있었다. 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당황하는 우리 일행에게 세명의 사령관이 말했다. “부사령관과 각각의 사령관들은 서로 일정을 분배하면서 움직입니다. 오늘은 유난히 바쁜 날입니다. 그는 지금 다른 일정에 참석중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나왔습니다.”

다소 실망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마르코스 부사령관과의 인터뷰는 무산됐지만 사령관 3명과의 인터뷰는 2시께부터 4시30분까지 2시간30분 넘게 진행됐다. 볼펜을 남방 주머니에 꽂은 토홀라발족 타초 사령관, 부족 전통 모자와 복장을 하고 나온 초칠족 다빗 사령관, 온통 검은 색 옷차림에 목에 건 빛바랜 붉은 스카프가 인상적인 세베데오 사령관은 지구 반대편에서 온 낯선 손님을 정중하게 맞았다. 세 사령관은 각각의 특색을 지니고 있었다. 멕시코에서 마르코스 다음으로 유명한 토홀라발족 타초 사령관은 설득력 있고 강약을 조절할 줄 아는 어조였다. 다빗 사령관은 단호하고 명쾌했으며, 세베데오 사령관은 나직하고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한국민들이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은 처음이다. 한국민들에겐 여러분들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그래서 이렇게 인터뷰를 기획하게 되었다.

다빗: 기꺼이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모두 답하겠다.

-멕시코에 도착해서 가장 놀란 것은 다양한 원주민 부족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얼마나 많은 원주민들이 멕시코에 사는가.

타초: 언어로 따지자면 58개 부족 정도가 된다. 각 부족은 고유한 문화를 지니고 있고, 공동체를 운영하는 고유한 방식을 운용하고 있다. 자신들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나름의 모습들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함께 투쟁하게 되었나.

타초: 그렇게 다채로운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사파티스타 투쟁으로 하나가 되었다. 이 나라의 역사는 늘 우리들을 흩어져 있게 만들었다. 당신은 수도 멕시코시티 외곽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그들은 터를 잡고 살아가던 땅들에서 모든 것을 빼앗기고 쫓겨났다. 그래서 우리의 투쟁,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이 탄생한 것이다. 우리는 그 다양한 방식을 존중한다. 그렇게 함께 노력해왔다.

-치아파스 원주민은 1994년 1월1일 봉기 전에 어떤 상황이었나.

타초: 우리는 망각으로 죽어갔으며, 치료할 수 있는 설사병으로, 또 열병으로 죽어갔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는 병원이 없고 의사가 없었다. 알약 하나가 없어서 자식이 죽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던 형제도 있었다. 봉기 이전에 우리는 1년에 1만5천명씩 죽어갔다. 그래서 우리는 치료할 수 있는 병으로 죽느니 차라리 무기를 들고 봉기를 일으키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건강할 권리, 교육받을 권리, 존엄한 삶을 누릴 권리를 찾기 위해서 말이다.

-당신들이 ‘세계화’에 맞서는 이유는 무엇인가.

타초: 우리가 ‘세계화’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살아왔던 세상이 이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저 아래 세상, 원주민들의 세상이 말이다. 우리는 불확실하고 실현가능하지도 않은 세상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를 있는 그대로 존쟁해 줄 그런 자리를 원한다.

-사령관들은 누구인가.

타초: 우리는 이번 대행진을 벌인 대표단 가운데 세명이다. 우리가 마을들을 대표하는 사령관들이다. 우리 대표단은 토홀라발, 초칠, 첼탈 세 부족 대표들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민주적으로 선출되어 많은 마을을 대표하면서 동시에 우리들의 마을들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에 순종한다.

-당신들은 헌법광장의 집회에서 권력을 잡으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세베데오: 우리가 온 것은 정부에게 우리를 인정하라고 요구하기 위해서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여기 온 지 508년이 흘렀다. 봉기 이후에 우리는 감옥들에 수감되었고, 죽임을 당했고, 실종되었다. 바로 정부가 주인인 연방군에 의해서 당한 일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땅에서 살 수 있는 확실한 보장을 얻기 위해서 왔다.

-이번 대장정을 통해 당신들의 가진 힘이 드러났다. 사람들은 그것도 하나의 권력이라고 생각한다.

타초: 우리는 권력을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많은 원주민들을 대표하고 있다. 그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비센테 폭스 대통령은 권력을 갖고 있다. 멕시코의 모든 영토를 관할하는 사법적 권력과 군사적 권력을. 또한 그는 경제적인 권력을 갖고 있다. 아스테카 방송사를 비롯해 다양한 매체들이 폭스 대통령 홍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우리는 뒤에서 누가 돈을 대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들은 대표권을 권력으로 지니고 있다. 우리에게 대표권이란 다른 이들은 대표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대표권은 권력을 의미하지 않는다.

세베데오: 우리가 갖고 있는 대표권은 우리의 마을을 대표하고, 다른 주에 흩어져 사는 원주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다. 이 나라에 사는 원주민들은 환영하고, 우리를 원하고, 우리에게 지휘봉을 넘겼다. 요컨대 우리들은 이 나라에 살고 있는 모든 원주민 민중의 부드러운 연대를 대변하고 있다. 나는 이 얘기를 꼭 하고 싶었다.

타초: 끝으로 덧붙이고 싶은 것은 우리는 명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 에르네스토 세디요 대통령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세베데오: 세디요 대통령은 ‘가족적인 복지’라는 약속을 사탕발림으로 오직 멕시코 민중을 속이기 위해 활용했다. 그는 치아파스의 군사적 갈등을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믿고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 총사령부(EZLN-CG)는 세디요 정부의 내무부 장관도 만났다. 그러나, 그는 새빨간 거짓말로 1995년 2월9일 한 약속을 배신했다. 그는 집권 기간 국회가 제정한 ‘대화법’을 번번이 어겼고 사파티스타들의 저항에 맞서 12개의 준군사조직을 만들어서 치아파스를 점령했다. 연방군의 우두머리인 세디요 전 대통령은 약속도 지키지 않고, 어미도, 국가도 없는 ‘상놈의 자식’(스페인어 욕을 번역)이다.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의 봉기 이후 7년 동안 원주민사회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

타초: 7년간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원주민 동지들이 자치군들을 조직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이 기간 동안 건강을 증진시킬 사람들이 생겨났다. 진료 상담을 하고 건강을 믿고 맡길 위원회가 생겨났다. 바로 자치군들 속에서 이런 상담들이 진행되었다. 또한 교육활동을 책임질 사람들이 조직되었다. 교육책임자들은 여러 다른 마을들과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의 학교들에서 수업을 한다. 사파티스타 원주민 마을의 대표들은 교육프로그램을 만든다. 교육담당자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다. 왜냐하면 여기 멕시코에서는 스페인어만 가르치지만 이 나라에는 아주 다른 언어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다빗: 또한 여성동지들의 모임들이 만들어졌다. 그들도 지역별로 중요한 일들을 함께 하기 위해서다. 또한 마을이나 각 지역별로 물건들을 사고 팔기 위해 모임들이 생겨났다. 즉 이 7년 동안 자유롭게 많은 발전이 있었다.

-비센테 폭스 정부의 집권 100일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타초: 우리가 지금까지 본 것은 그가 전임자들과 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유사한 거짓말로 정치를 하려 한다는 것이다. 늘 있었던 유사한 사기를 치려고 한다. 그는 멕시코 민중이 입다물고 있기를 바란다. 그가 선거캠페인을 벌일 때 그는 치아파스의 갈등은 15분 만에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2000년 12월2일 그가 취임한 바로 다음날 우리는 그에게 세 가지 화해제스처를 요구했다. 7개의 군사기지를 폐쇄하고 연방군을 철수할 것을 요구하고, 치아파스, 케레타로, 타바스코의 감옥에 갇힌 정치범들을 석방하라고 요청했으며 ‘원주민의 권리와 문화에 대한 법률’(COCOPA)을 통과시키라고 요구했다. 우리는 이것이 확인되면 이 정부가 대화의 길에 나설 용의가 있구나라고 판단할 것이다.

-비센테 폭스 대통령이 대통령 집무실로 초대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다빗: 우리는 세 가지 제스처를 이행하지 않는 한 정부의 평화협상 대표인 루이스 알바레스를 만날 수 없다고 말해왔다. 대통령이든, 정부 평화협상 대표인 루이스 알바레스든 우리가 그들과 얘기를 하려면 먼저 우리가 2000년 12월2일부터 제기한 최소한의 요구조건을 이행해야 한다.

-연방국회의 동의하에 법률을 인준받기 위하여 당신들은 어떤 전략을 갖고 있는가.

다빗: 우선은 연방국회 전체와 대화해야 한다. 대표단인 우리가 ‘원주민의 권리와 문화’에 관한 법률을 국회에 명하고 토론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가 요구하고 있는 국회의 연단에 오를 권리를 부정하고 있다.

-‘원주민들의 권리와 문화에 대한 법률’의 국회인준을 위해 유럽의회와 대화할 것이라고 들었다.

타초: 어제까지 우리는 ‘유럽의회’에 우리의 계획을 알리고자 했다. 우리는 유럽연합과 얘기하기 위하여 출국할 계획을 갖고 있다. 우리는 멕시코에서 분리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유럽연합’에 알리려고 한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멕시코 시민으로 대우받기를 원한다는 것을 유럽연합에 표명하려고 한다.

-유럽의회의 공식적인 초청장을 받았나.

다빗: 아직 유럽연합의 회답을 받지 못했다. 우리가 유럽의회에서 우리의 생각을 알리려는 계획은 우리를 초청하기만 하면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

-이번 방문은 대화 재개를 위해 유럽연합이 개입해주기를 바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

다빗: 우리는 유럽의회가 멕시코 정부에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이라고 압력을 넣어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유럽의회가 우리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들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왜냐하면, 멕시코 연방의회는 우리가 연단에 설 권리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세 가지 화해 제스처를 이행하면 그 이후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의 행보는 어떻게 되는가.

타초: 정부가 세 가지 조처를 이행하면 바로 정부의 평화협상대표와 접촉할 것이다. ‘민주주의와 정의’라는 주제로 대화할 날짜를 잡기 위해서다. 그것이 이행되면 그 다음엔 ‘복지와 발전’이라는 주제로 대화할 것이다. 그렇게 단계별로 접촉할 것이다. 이것은 동시에 이행될 수 있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은 어떻게 되는가. 정당이 될 것인가.

세베데오: 원주민의 권리와 문화가 헌법으로 보장되고, 여성의 권리, 실질적인 민주주의, 자유, 정의를 회복하게 된다면, 우리는 이 문서들이 실질적인 삶이 되도록, 영혼을 가질 수 있도록 계속 싸울 것이다. 우리가 정당을 결성한다면 더러운 정치가들과 같아질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정당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국회가 여러분들의 요청을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동안 당신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타초: 우리가 할 일 가운데 하나는 지금 당신과 그러고 있듯이 여러 사회단체들과 대화하는 것이다. 시민사회와 대화하고, 록그룹과도 대화하고, 우리가 아닌 모든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다.

-언제 무기를 내려놓고 스키마스크를 벗을 생각인가.

타초: 나도 여러분들처럼 살고 싶다. 한국도 가보고 싶다. (웃음) 그러나 지금 우리는 무기에 대해 얘기할 수가 없다. 또한 스키마스크에 대해서도 얘기하기가 힘들다. 스키마스크를 벗는 시기는 무기가 필요가 없을 때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한국의 민중은 수십년간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해왔다. 지금은 ‘세계화’, 특히 실업에 맞서 싸우고 있다. 한국의 민중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다빗: 한국의 모든 형제 자매들에게 우애의 인사를 보낸다. 그리고 그들에게 ‘우리가 여기 멕시코시티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바라는 형제 자매들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대로 우리를 지지해 주기를 바란다. 우리는 계속 앞으로 전진해갈 것이다. 세계화는 모든 민중을 괴롭히는 존재이다. 그들이 아주 먼곳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지만 세계화에 맞서 싸우는 한 우리는 한 형제 자매들이다. 우리의 투쟁에 관심을 가져준 것에 대해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의 모든 형제 자매들을 대표해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멕시코시티=박정훈/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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