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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적 운동질서를 위한 울산에서의 작은 실험

대안적 운동질서를 위한 울산에서의 작은 실험


지난 2월 울산에서는 작은 실험이 진행됐다.
부안항쟁을 한 편의 다큐멘타리처럼 기록한 『부안 끝나지 않은 노래-코뮌놀이로 본 부안항쟁』의 저자 고길섶 초청강연회가 그것이다. 별로 특별한 것도 없는 초청강연회가 특별한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이번 초청강연회의 주요한 모토는 ‘대중의 주체성’이었다.
부안항쟁에서 보여주었던 대중들의 자발적이고 창조적인 투쟁양상은 관료적인 조합주의운동에 찌들어 있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상상하게 했다.
특별한 형태로 조직되어 있지 않았던 부안민중들이 부안군수의 깜짝선언과 노무형정권의 전폭적 지지 속에 핵폐기장 유치신청을 하면서 불거진 부안투쟁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않은 엄청난 투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 투쟁의 격렬성과 대규모성 못지않게 투쟁 속에서 보여졌던 다양한 대중투쟁 양상은 ‘대중의 자발적 창조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확인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매일같이 진행된 반핵민주광장에서의 촛불집회는 부안민중들에게 하나의 삶이 되었고, 투쟁의 용광로가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안민중들은 동원대상이 아니라 당당한 투쟁의 주체로 서게 되었고, 그런 속에서 대중의 변화와 함께 활동가들도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투쟁 속에서 부안민중들은 저녁 촛불집회를 중심으로 생활이 조정되기 시작했다. 또 촛불집회에는 뛰어난 영상물이나 유명한 연사들의 발언보다 그날 그날 대중들의 투쟁모습을 찍은 영상물 상영과 주민들의 자발적 발언들이 더 강한 호소력을 갖게 되었다.
부안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노래패 ‘노랑고무신’은 뛰어난 전문 노래패가 발휘하기 어려운 대중적 호흥을 이끌어냈고, 대중이 어우러져 각종 페트병과 양철통 등 온갖 소리나는 것을 두드리는 집난난타시위는 다양한 대중의 행동이 하나의 거대한 힘을 창조해내는 창조적 대중투쟁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봉건적 질서가 남아 있는 부안에서 대중투쟁은 어린이와 노인을, 여자와 남자를, 촌노와 교수를 모두가 하나의 동지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힘은 경찰과 공무자들을 굴복시켜냈고, 그 굴복은 공권력이 무력화만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위계질서의 역전을 가져왔다.
초청강연회는 대중의 주체성이 얼마나 커다란 변화를 갖고 오는지는 부안항쟁을 통해서 생생하게 확인하는 자리였다.

또 한 가지 특징은 초청강연회를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이번 초청강연회는 특정 단체나 조직이 기획을 하고 그에 맞춰 대중을 조직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고, 강연회 취지에 동의하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강연회준비위원회로 결합해서 강연회의 주체로 나서는 형식을 취했다.
강연회 준비위원들의 역할이라는 것도 거창한 것이 아니라 ‘강연회에 주체적으로 참여한다’ ‘강연회 준비를 위해 1만원의 준비기금을 낸다’ ‘주위에 강연회의 취지를 홍보하고 참여를 조직한다’는 것이 전부였다.
한 달 가까운 준비기간 동안 다양한 영역의 활동가와 현장 노동자 등 45명이 준비위원으로 참여를 했고, 강연회에는 60여 명이 참석을 해서 늦은 시간까지 함께 자리를 했다.
울산에서는 각종 강연회나 토론회 등의 행사가 자주 열리지만 대중적 조직력을 갖고 있는 단체가 아니거나,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강사가 아닌 경우에는 항상 동원의 한계를 느끼곤 했다. 그리고 동원된 참가자들의 몰입도와 자발적 논의가 활성화되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중의 자발성’이라는 내용을 얘기하는 이번 강연회는 형식에서도 내용에 부합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추진한 이런 방식은 예상보다 많은 관심을 이끌어냈고, 그 결과 다양한 이들의 자발적 참여를 조직하는데 성공했다. 몇 년이 지나서 이미 어느 정도 잊혀진 부안항쟁에 대해, 대중적으로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고길섶이라는 강사를 초청하고, 특별한 조직이 중심에 서는 것이 전혀 없이 준비된 강연회는 충분한 동원력과 참여자들의 높은 몰입도를 확인시켰던 것이다.
강연회를 마치고 진행된 뒷풀이 자리에서 “이제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강연회가 있으면 이런 식으로 하면 되겠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작은 실험은 충분한 의미와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강연회에서 논의됐던 토론내용 중에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대중과 지도자’의 문제였다.
격렬하고 위력적인 투쟁을 통해 공권력을 무력화시키고, 지방권력을 허수아비로 만들 정도로 부안항쟁은 지역수준에서 이중권력상태를 오랜 기간 유지했다. 그 백미는 부안대책위차원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한 주민찬반투표가 높은 참여율과 압도적 반대의사를 보여주면서 독자적인 행정자치수준으로까지 발전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내부에서 나타난 대책위 지도부의 패권적인 모습은 항상 대중과 긴장력을 만들었고, 이후 투쟁이 하강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주요 지도부의 정치적 행보는 투쟁의 성과와 달리 열린우리당 지지로 이어졌다. 관료적 조합주의운동과는 달리 대중투쟁이 통제되지는 못했지만, 대중투쟁의 정치적 수렴은 매우 심각하게 왜곡 되어 버린 것이다.
투쟁의 상승국면에서 지도부는 항상 정보를 독점했고 상황을 패권적으로 주도하면서 투쟁의 발전을 위해 필요했던 정치적 입장을 유보했다. 그러나 투쟁의 하강국면에서는 대안적 질서를 유지하지 못하면서 배신적인 정치적 행보를 스스럼없이 했던 것이 부안항쟁에서의 지도부의 역할이었다.
핵폐기장 반대와 부안군수 퇴진이라는 요구에서 좀 더 정치적으로 분출하지 못했던 거대한 대중투쟁은 이렇게 정치적 배신을 당해야 했던 것이다. 투쟁과정에서 아래로부터의 자발적이고 창조적인 투쟁들은 다양하게 나타났지만 그런 투쟁들을 조직적으로 묶어내는 아래로부터의 조직화의 한계, 대중투쟁을 정치투쟁으로까지 밀고나가면서 지도부와의 내부 권력투쟁을 만들어내지 못한 정치적 대오의 부재는 무한한 가능성을 봉쇄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신자유주의 질서가 상상 외로 우리 삶의 곳곳을 황폐화시키고 있고, 우리 내부의 관료적인 조합주의질서의 심각성이 물러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초청강연회는 우리에게 많은 고민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런 작은 실험은 새로운 상상력을 갖게 하기에도 일조했다.
‘노동현장에서의 평회회적 운동의 활성화’, ‘지역투쟁의 코민적 발상’, ‘아래로부터의 운동의 활성화하고 집중하기 위한 사회주의적 정치운동의 강화’라는 대안적 운동의 질서는 모색의 단계를 넘어 크고 대중투쟁들과 다양한 실험 속에서 현실의 질서로 만들어가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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