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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이야기2 - 바다에서 수영을 배우다

바다를 항상 접하고 살아가야 했던 저는 바다가 매우 즐거운 놀이터였습니다.
학교를 마치면 친구들과 함께 학교 옆에 있는 바다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팬티만 입고 풍덩 바다에 빠져듭니다. 수영을 하지 못했을 때는 멀리 나가지 못하고 바위에 손을 얹어서 발만 퐁당퐁당 거리면서 물장구를 칩니다. 그러다 1m쯤 되는 바위와 바위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바다와 친해졌습니다.

1m 정도의 거리는 수영을 하지 못해도 힘들지 않게 왔다 갔다 할 수 있습니다. 수영을 잘 해서 3~4m 쯤 나가는 친구들이 부럽기는 했지만, 좀처럼 그렇게 나갈 엄두가 나질 않았습니다. 물에 뜨는 것이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서 2m 정도 되는 바위 사이에서 수영을 시도합니다. 물론 수없이 바닷물을 마셔야 합니다. 그런 과정이 몇 번에 걸쳐서 반복되다보면 어느새 제 몸이 바다 위에 떠있는 것입니다. 일단 몸이 바다 위에 뜨기 시작하면 2m 정도 거리는 어렵지 않게 왔다 갔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용기가 나서 친구들과 같이 바위가 없는 바다 쪽으로 3~4m 정도 나갔다가 돌아오기도 하면서 수영의 재미에 푹 빠지기 시작합니다.

방학이 되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있는 시골에 놀러 갑니다. 시골에 가면 친척 형들과 같이 바다에 수영하러 가곤 했습니다. 나도 어느 정도 수영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친척 형들은 10m가 넘는 거리를 아주 쉽게 나갔다 오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정도 거리를 헤엄치기 위해서는 바다에 떠서 손과 발만 퐁당퐁당 거리는 것이 아니라 파도를 넘으면서 나아가야 하기 때문에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파도를 넘는 다는 것은 정말 힘든 과정이었습니다. 잠시만 호흡을 잘못해도 밀려오는 파도에 얼굴이 묻혀 바닷물을 먹기 일쑤였고, 체력도 어느 정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파도가 덜 심한 마을 포구 방파제 안에서 멀리까지 나가는 연습을 수없이 합니다. 그래야 파도에 조금씩 익숙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파도에 익숙해지면 용기를 내서 방파제 바깥쪽으로 나와서 멀리 나가는 시도를 합니다. 물론, 약간의 두려움이 있고, 바닷물을 먹어야 하는 것을 어느 정도 각오해야 합니다.
시골에서 며칠 동안 그렇게 수영을 하고 돌아오면 어느새 저는 우리 반에서 꽤 수영을 잘하는 축에 들게 됩니다.

수영실력이 늘다보면 친구들 앞에서 점점 수영실력을 뽐내고 싶어집니다. 친구들은 바위가 있는 해안가를 멀리 벋어나지 않은 채 퐁당퐁당 거리면서 수영을 하고 있으면, 저는 일부러 바위가 없는 바다 쪽을 향해서 멀리 나가서 돌아오는 등 수영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그때마다 파도가 불규칙하게 밀려오거나 파도의 흐름을 놓치게 되면 조금씩 바닷물을 먹기는 하지만 애써 내색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 즈음 조오련 선수가 수영으로 현해탄을 넘어서 일본까지 헤엄쳐서 갔다고 테레비에서 온통 난리가 난 적이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그 큰 파도와 싸워 이기면서 헤엄을 치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습니다. 저도 파도를 무서워하지 말고 더 큰 파도와도 싸워서 이겨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국민학교 때는 친구들과 수영하러 갈 일도 많았지만,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공부에 치이기 시작하면서 수영하러가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나이가 들어 육지로 나오고부터는 수영하러 바다로 간다는 것은 더욱 힘들어졌습니다.
가끔 여름휴가 때가 되면 몇몇 동지들과 해수욕장을 찾기는 하지만 바위도 없고 파도도 거칠지 않은 해수욕장은 수영하는 재미가 별로 없습니다. 휴가철에 고향에 가기도 하지만, 친구들을 만나도 술을 먹기는 해도 어릴 때처럼 바다로 수영하러 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점점 바다와 멀어 지기 시작했습니다.

몇 년 전 몸이 좋지 않아서 병요양이라는 핑계로 잠시 고향에 머문 적이 있습니다. 몇 달을 그렇게 고향집에서 지내면서 참 적적합니다. 그래서 자주 바다 쪽으로 산책을 나가곤 했습니다.
더위가 시작되기 시작할 초여름, 바닷가를 산책하다보면 맑고 깨끗한 바다가 그렇게 시원하게 느껴질 수 없었습니다. 그런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수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것을 꺼내서 신발 속에 넣어두고는 그냥 바다 속에 빠져들었습니다. 오래간만에 바다에 빠져들어서 수영을 즐기는 기분은 편안한 그 자체였습니다. 바다에 둥둥 떠서 하늘과 육지를 바라보고 있다 보면 세상이 참 편해 보입니다.
그렇게 편하게 수영을 즐기다보니 생각보다 꽤 멀리 나와 있었습니다. 아마 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해안에서 가장 멀리까지 나왔던 것 같습니다. 바다와 제 몸이 하나가 되어서 파도의 흐름에 함께 한다는 것이 그렇게 편하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그것이 수영이었습니다.

학생운동을 정리하고 노동운동을 하겠다고 울산에 내려올 때 ‘과학적 사회주의를 선진노동자들에게 주입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틈만 나면 정세를 얘기하고, 선진노동자의 임무와 과학적 사회주의를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반응은 현장의 구체적인 현안 얘기였고, 그런 얘기들 앞에서는 저는 침묵을 해야 했습니다. 현장 현안문제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1~2년을 지나면서 현장활동가들과 친해지고 현장문제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안문제를 이해한다는 것과 그에 제대로 대처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현장활동가들은 구체적 현안에 대한 구체적 방안을 요구했지만, 저는 구체적 현안에 대한 원론적 대안만을 주장했습니다. 저는 현장활동가들에게 원론적 입장을 강조하고, 현장활동가들이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대중들을 조직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원론적 주장은 말과 글로써 존재할 뿐 현실에서는 앙상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몇 년을 그렇게 활동하면서 더욱 구체적으로 현장을 이해하게 되었고, 현장의 여러 문제에 대해 수없이 토론하면서 구체적 방안들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닥쳐오는 문제는 정치적 판단의 문제와 다양한 대중적 요구 속에서 투쟁을 실현시켜야 하는 문제였습니다. 저는 더욱 원칙적으로 헤쳐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현실에서는 수없이 굴절되기 일쑤였습니다. 그럴수록 타 정파와 싸워서 이겨야 하고, 대중을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8년의 기간을 그렇게 활동을 하다가 예상하지 못한 큰 투쟁을 직접 경험하게 됐습니다. 현장활동가들을 대상으로 주로 활동을 하다가 제가 직접 대중을 접하면서 투쟁을 함께 조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속에서 크고 작은 시행착오들도 있었고 힘겨움도 많았지만, 함께 하는 동지들과 함께 하나씩 극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저는 예상 외로 대중들의 고통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런 대중의 고통을 확인하고 함께하는 순간 엄청난 힘이 나온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8년 만에 대중과 함께 만들어가는 투쟁을 몸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다시 시간이 흘러서 저는 그때와는 다른 공간에서 또 다른 대중들을 만나면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사업장의 노동자들을 만나면서 모두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고, 비슷한 어려움에 힘겨워하고 있고, 그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 비슷한 투쟁들을 수없이 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 무수한 대중들과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투쟁을 공유하다보면 더 없이 즐거워집니다. 그렇게 즐거워지면 대중들과도 쉽게 친해집니다.

제 몸과 마음이 대중과 하나가 되고, 대중과 함께 호흡하게 되면, 함께 하는 투쟁이 됩니다. 그것이 대중의 바다에서 수영을 하는 방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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