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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민주주의와 직접 민주주의

현대중공업 조돈희 해고자를 만나서 관료적 조합주의운동을 넘어서는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노동운동의 위기에 대해서는 많은 얘기들이 나왔다. 그러나 위기에 대한 논쟁은 활발하지만 정작 위기를 넘어서기 위한 대안적 흐름은 아직 초보적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기본적으로는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로 노동운동이 밀리면서 위기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많은 얘기들이 나오고 있지만, 내가 주목하는 것은 조직 내부 운영과 민주주의 문제이다.

많은 이들이 민주주의에 대해 얘기하지만 어떤 민주주의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형식적·절차적 민주주의의 한계를 얘기하면서 노동자 민주주의를 얘기하기도 한다. 노동자 민주주의를 얘기할 때 중요한 것은 자본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의 입장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90년대 중반 이후 대중의 정서를 얘기하면서 대중 정서에 영합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면서 투쟁을 회피하는 경향이 팽배해진 것이다. 다수 대중의 정서가 실제로 보수화되고 개인주의화됐다고 하더라도 소수의 건강한 흐름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소수의 건강한 흐름을 반영하면서 투쟁하고자 하는 대중 정서에 결합하지 못했다. 그것이 노동자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즉, 노동자 민주주의는 노동자 대중의 계급적 요구를 바탕으로 아래로부터 계급투쟁을 조직해 나가는 활동이라고 본다.

다른 한편에서 직접민주의의도 많이 얘기되고 있다. 위로부터의 결정과 집행의 문제는 민주노조운동 초기의 아래로부터 의견을 수렴하는 정신이 없어진 결과이다. 그러다보니 대중과 지도부가 분리되고 대중이 투쟁의 주체에서 멀어졌다. 대중과 함께 토론하고 결정하면서 대중이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대중이 권력의 주체가 될 수 있다.

헌법에는 국민으로부터 권력이 나온다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아서 국민을 탄압하고 있다. 우리는 모든 권력을 민중에게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노동조합이나 진보정당도 권력을 위임받고 지도자에게 권력을 집중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운동도 대의제를 강화하면서 직접민주주의를 약화시키고 있다.

열린우리당 같은 부르주아정당마저도 주민참여제 등 민주주의 문제를 얘기하고 있는데, 오히려 노조는 권력을 위로 집중하려고만 한다. 그 결과 조직의 힘이 축소되고, 전국적 총파업을 결정해도 실질적인 총파업이 조직되지 않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노동자 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를 제대로 구분하고 통일적으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 현대중공업이나 울산지역 운동 속에서 나타났던 사례를 중심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

민주노조운동 초기에는 목적의식적으로 그러지 않더라도 항상 대중과 호흡하고 대중이 주체로 서도록 노력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거대한 대중투쟁이 가능했던 것이다.

현대중공업을 보면 87년에 두발 자유화 같은 대중의 일상 요구를 모아서 11인 대책위가 어용노조타도라는 구호 속에 투쟁을 선도했다. 이렇게 대중의 일상요구 속에 계급적 요구를 중심으로 선도적인 투쟁을 벌이니까 대중들이 스스로 주인임을 선언하면서 일어났다. 그러면서 대중들이 다양한 자신들의 요구를 더욱 폭발적으로 외치기 시작했다. 이것이 노동자 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의 결합이었고, 이 투쟁이 이루어지는 그 자체가 진정한 대중투쟁이었다. 이때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얘기하고 지도자는 이 요구를 통제하려하지 않았다. 지도자는 대중의 요구를 수렴하면서 계급적 원칙을 세워나갔다.

128일 투쟁에 앞서서도 어용노조의 직권조인에 대해 대중들의 불만이 고조됐다. 이 대중불만을 바탕으로 활동가들이 앞장서서 투쟁하면서 다시 대중이 들고 일어났다. 그 투쟁 속에서 대중들이 스스로 다양한 조직을 만들고, 자신들의 대표를 스스로 선출했다. 부서별·팀별 동지회, 정당방위대, 기동대, 사수대 등의 다양한 조직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지고 활발히 움직였다. 지도부는 이런 대중조직을 옹호하면서 강력한 투쟁동력으로 만들어갔다.

이 힘이 있었기 때문에 공권력으로 투쟁이 무너진 후에도 노동자들의 활력이 유지되었다. 그렇게 생동하는 활력은 현장에서 관리자들의 부당한 지시를 무력화시키면서 현장권력으로 작용했다.

과거 현대정공에서도 활동가들이 끊임 없이 분임토의를 하면서 조합원과 토론하는 기풍을 만들어왔다. 그런 일상적 대중토론의 기풍이 현대정공 노동조합의 중요한 조직동력으로 작용했다.

민주노조운동의 역사 속에서 살아있었던 노동자 민주주의와 직접 민주주의 정신이 민주노총이 만들어지고 관료화되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대중적 활력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사례를 드러내거나, 현재 운동을 비판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지금의 이런 조건에서 어떻게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을 다시 만들어낼 것인가 하는 점이다.

활동가들이 관성화된 운동관행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활동가들이 민주노조운동 초기를 되돌아보면서 대중관을 바꿔야 한다.

대중이 보수화되고 이기주의화되었다고 보는 순간 긴장은 나오지 않는다. 대중의 속마음은 항상 불안하고, 자신의 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힘 있는 조직을 원한다. 노조는 대중을 어떻게 조합의 중심으로, 권력의 중심으로 세워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평조합원들이 노조운영과 간부들의 활동을 평가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평조합원들이 집행부의 사업과 예산집행을 수시로 평가하고 간섭할 수 있어야 한다. 제도화되지 않은 평조합원위원회가 이런 문제들에 직접 간여할 수 있도록 만들어가야 한다. 그런 대중적 의견을 공식 조직이 수렴하고 집행하는 기풍을 만들어야 한다.

대의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소위원제도와 다른 평조합원위원회를 선거구별로 만들어서 대의원 활동에 대해 토론하고, 평가하고, 필요하면 소환할 수 있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현장조직도 선거용 조직이 아니라 활동하는 조직으로 되살아나야 한다. 노조집행부가 현장조직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조직의 일상활동을 지원하고 강화해야 한다. 부르주아 정당의 당정협의회 식의 활동을 극복해야 한다.

약간 판단이 다른 지점이 있다. 지금의 노동조합은 심각하게 관료화됐고, 현장조직운동은 그 건강성을 완전히 상실했다. 결국 기존의 노동조합이나 현장조직이라는 틀로 관료화된 조합주의운동을 넘어서는 활동을 기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다. 지역연대투쟁을 보더라도 과거와 달리 노동조합차원의 형식적 연대투쟁만이 존재할 뿐 자발적인 연대투쟁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존의 조직적 관성에서 벗어나 노동조합을 넘나들고, 현장과 지역을 넘나드는 새로운 활동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모색들은 초보적인 형태이지만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활동가들이 자연스럽게 모여서 연대투쟁을 논의하고 공동행동을 조직하는 시도는 지금까지 계속 해왔던 과정이다. 지금도 그런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렇게 만나려면 항상 조직적 형식을 띨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은 형태로는 토론회나 포럼 수준이 가능할 것이다.

기존의 노조운동이나 현장조직운동의 한계를 극복해서 자발적으로 모여서 논의하고 공동행동을 조직하고, 다시 자신이 소속된 공간으로 돌아가서 그 정신을 실현하는 운동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런 것이 대비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또 일상 속에서 그런 운동이 가능하도록 하려면 지역 노동자포럼과 같은 형태로 수시로 모여서 토론하고 서로의 활동을 공유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는 방식이다.

크고 작은 투쟁 사안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고, 힘 있는 투쟁은 제대로 조직되지 않는 상황에 우리는 있다. 그런 속에서 지금의 운동을 넘어서는 아래로부터의 새로운 대중운동의 상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지금 당장 어떤 활동을 구상하고 있는가?

지역의 여러 투쟁 사안들이 많고, 비정규개악안·노사관계로드맵·한미FTA 등 전국적으로도 중요한 사안이 많다. 그러나 지난 4월 투쟁을 보면서 노조나 활동가들도 투쟁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느끼면서 많이 실망했다.

자발적으로 투쟁하려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런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작지만 공동행동을 조직하는 흐름을 만들고 싶다. 작은 야간문화제라도 조직했으면 한다. 그 속에서 관성화된 집회문화라도 깨고 싶다. 유명인사가 나와서 발언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자유롭게 발언하고 서로의 얘기를 토론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다. 그것이 연대운동이고, 자발적 운동이고, 노동자평의회운동의 맹아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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