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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현대가족이야기'를 읽고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을 쓴 주은씨를 좀 안다. 한 8년쯤 전에 노동운동 하겠다고 울산에 내려와서 현장 활동가들을 만나기 시작할 때, 주은씨를 ‘한 현장 활동가의 부인’으로 알게 되었다.

한 3년쯤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주은씨가 내가 있는 사무실로 찾아왔다. 대학원 논문을 쓰려고 인터뷰를 하고 있는데 녹취를 푸는 일을 도와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그런 일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지만, 내가 타자를 좀 빨리 치고, 그때 특별히 바쁜 일도 없었고, ‘소정의 수고료’를 준다는 말에 귀가 쫑긋해서 쾌히 승낙을 했다. 그리고 몇 일후 녹음 테이프 3개가 왔다.
그런데 이런! 녹취를 푸는 게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녹취를 풀어봤던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일을 요령 있게 할 줄 몰랐고, 주은씨와 아줌마들의 대화 과정에 애들 떠드는 일상의 소음들이 적지 않게 섞여 있었고, 사투리가 심하고 말이 빠른 경우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서 몇 번을 반복해야 하는 등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그렇게 2시간짜리 테이프 하나를 푸는 데 보름이 넘게 걸렸다. 녹취 하나 풀고 나면 완전 녹초다.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해서 당초 주은씨의 기대와 달리 나는 겨우 2개인가 3개만을 정리하고 두 손 두 발 다 들고 못하겠다고 해버렸다.
그런데 그렇게 진 빠지게 녹취를 풀면서 그들의 대화 속에 내가 푹 빠져버렸다. 주은씨가 참 말을 편하게 하고, 상대의 얘기를 잘 끄집어낸다는 것을 실감했다. 살아왔던, 그리고 살아가는 그 아줌마들의 얘기는 재미있고, 가슴 아프고, 그저 그렇기도 한 얘기였다. 그 녹취를 풀면서야 왜 ‘아줌마들이 할 일 없이 문화회관에 모여서 수다나 떨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주은씨가 그 내용을 보니 어떤 생각이 들었냐고 물었다.
나의 대답은 “세상이 달라요.”

그러다 올해 초 주은씨가 책을 냈다는 광고를 보았다. 그것도 현대자동차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하길래 주저 없이 사버렸다. 책을 사서 읽어보니 그때 내가 녹취를 풀었던 이야기들도 조금 나오기도 하였다. 솔직히 녹취를 풀 때 그 이야기의 생생함이 이래저래 편집되고 재단되면서 죽어버리기는 했지만, 편안하게 스스럼없이 얘기를 해나가는 주은씨의 성격 그대로 책도 참 편안하고 스스럼없이 읽혔다.
나와 비슷한 또래인 주은씨가 나와 비슷한 또래인 아줌마들과 만나고 살아가면서 몸으로 느낀 것을 적어놓은 글을 보면서 나와 비슷하면서 다른 이들의 삶을 접하게 되었다.

돈 때문이죠. 돈도 있고, ‘여상 나와서 빨리 회사 가서 돈 벌어라. 돈 벌어서 자기 시집 갈 꺼 자기가 벌어라’, 뭐 그런 식이었거든요. 그래, 내 가고 싶은 학교도 못 가고, 그라고 여동생도 마찬가지였고. 학교 졸업하고 취직해서 월급 타면 바로 아버지한테 월급봉투채로 드리면 적금 넣고 내 용돈 조금 주고 결혼할 때까지 그러셨거든요. 한번도 십원 짜리 이런 거 꺼내서 내가 먼저 가져 간 적도 없고, 항상 봉두채로 드려야 용돈 얼마 주시고 나머지는 부모님이 알아서 하셨지.

아버지는 대장장이여서 돈을 많이 벌었지만, “내내 술 마시고 여자 있고 해서” 엄마가 고생을 많이 하였다. 번 돈을 아버지 혼자 다 쓰고 엄마한테는 주지를 않았기 때문에 6남매가 크는 데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게다가 오빠들까지 엄마 속을 많이 상하게 했다.

우리는 그냥 별 수입도 없이 농사만 지었어요. 남의 농사도 많이 짓고.....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돈이 엄청나게 들잖아요. 수입이 없으니까, 땅 팔 것도 없으니까, 그래서 미나리 같은 것도 하고 엄마는 미나리 딱 들고 와서, 너의 수학여행 보내려면 이거 해서 수학여행 보낼 돈 마련해야 된다, 그러고. 일요일만 되면 미나리 씻어 오라고 막 그러더라구요. 그러면 언니랑 나랑 많이 도와줬거든요. 아버님이 논에다가 미나리를 키웠어요. 미나리가 장날 같은 때 많이 팔리잖아요, 봄이니까...... 아버지가 어두울 때 가서 미나리 베어 놓으면 엄마는 하루 종일 씻는 거예요.

결핵을 죽을병이라고 생각하고 어두운 10대를 보낸 승숙 씨처럼 초등학교 때부터 원인 불명의 신경성 질환을 앓았던 진자 씨에게 소녀시절의 기억은 가난과 병마와 싸웠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왜 주은씨를 비롯하여 아줌마들의 기억이 이렇게 나와 비슷하지?
지지리도 못살고, 항상 돈 때문에 자기 하고 싶은 것도 제대로 못하고, 아빠는 술만 먹고 오면 엄마 패고, 엄마까지 나서서 악착같이 벌어도 사는 건 맨날 그 모양 그 꼴이고...
얼마 전에 끝난 어느 드라마의 대사처럼 “구리다”.
그런데 여자인 그들의 삶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남자인 나의 삶보다 더 구렸다.

대도시 부산에서 성장한 진영 씨는 친정이 가장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경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이었던 그녀의 아버지는 ‘여자는 배울 필요가 없다’는 봉건적 의식의 소유자여서 딸의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을 막았으며, ‘알뜰함’이 지나쳐서 성인이 된 딸에게 화장실에서 불 켜지 말고 문 열고 볼일을 보라고까지 했다 한다.
주인공 여성들의 경제활동에는 가족과 본인 생존의 필요라는 ‘의무감’이 내포되어 있었다. 여성들이 진정으로 독립을 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주인공 여성들은 모두 결혼 전에 경제활동을 했으면서도, 자신의 경제권에 대한 통제권을 부모형제로부터 박탈당했다. 그렇다면 통제가 심한, 가난한 가족적 배경을 지닌 여성들이 ‘단순반복’적 노동을 수행하면서 꿈꾸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언니가 결혼해서도 오빠랑 나는 언니 집에 있었지. 조카는 내가 떠맡아서 키우다시피 했어. 그러니까 시간이라는 게 일체 여유가 없었지. 학교 다닐 때도 그랬다, ‘학교-집, 학교-집’. 집에 오면 청소하고 밥하고 반찬하고 그 다음에... 그리고 인자 토요일, 일요일에는 딱 교회 가고!
유일하게 시간이 나는 때가 토요일 날 조금? 그것도 꼭 몇 시까지 집에 들어가야 되고...... 우리 오빠 통금 시간이 무지 엄했거든!

다른 형제들처럼 해숙 씨도 고등학교 시절부터 취업준비를 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학교 다니기도 싫고 빨리 취직을 하고 싶어서 원하던 직종은 아니었지만 취업을 ‘해 버렸다’. 3교대로 기계를 돌리는 일었는데, 일은 잘했지만 야간근무 때 너무 잠이 오고 힘들어서 1년이 안 돼서 건설회사로 옮겼다.
이때부터 해숙 씨는 신이 난 듯 자신의 직장 경험을 실감나고 재미있게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주야간 3교대 생산직으로 시작해서 사무직(경리), 컴퓨터 입력 업무 등을 거쳐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이르기까지 10년의 직장생활 동안 모두 8번이나 직장을 옮겼다.

사장의 성희롱 때문이었던 것이다. 사장의 계속된 성희롱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사정으로 인해 바로 퇴사할 수 없었다. 다음 해 봄 3월까지 계속 다른 직장을 알아보다가 자동차 협력업체에 들어가 경리업무를 하게 된다.
사무실을 지키는 게 다였던 지난 직장에 비해, 새 직장에서는 전표 끊는 방법부터 회계업무를 차근차근 다시 배워나가며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일이 손에 익을 무렵 다시 한 번 직장 내 성희롱을 경험하게 된다. 1년 반 정도 지났을 무렵, 공장장이 머리를 손으로 쑥 쓰다듬는데 그 느낌이 너무 이상했던 것이다. “껄떡대는 남자들의 짓거리를 받아쳐야”하는 게 너무 힘들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학교 졸업하고 사회생활하면서 다 컸는데 아버지든, 오빠든, 언니든 왜 이렇게들 엄격하게 통제하는 사람들은 많을까? 그놈의 직장은 왜 이렇게 자주 옮기게 될까? 껄떡대는 남자들은 왜 그렇게도 많은지...
점점 이들의 구린 얘기를 들으면서 엄한 오빠와 껄떡대는 남자들 속에 내 얼굴이 비쳐져서 쪽팔리다.

내가 울산에서 많은 노동자 가족들과 접하고, 아줌마들과도 얘기를 많이 나눈다. 가족 동반 회식자리라도 가면 나는 아줌마들에게 인기가 좋은 총각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줌마들 얘기를 잘 들어주고 맞장구를 잘 쳐주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줌마들은 처음에는 깔깔대면서 신나게 이런 저런 불만들을 얘기하다가, 술 한 잔 하면서 좀 시간이 지나면 한숨과 함께 눈시울을 붉히기도 한다. 결혼도 하지 않은 총각인 나는, 더군다나 남자인 나는 아줌마들 얘기를 듣기만 할 뿐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어진다.

한 인텔리 출신의 여성이 남편을 따라서 울산에 와서 살아가다가 노동자의 가족의 삶을 몸으로 느끼고, 이들의 고통을 함께 아파한 얘기인 이 책은 아주 뛰어난 책이다. 지식인 나부랭이들이 근엄하게, 또는 안타까운 눈길로, 또는 빈정거리는 눈으로, 또는 노동계급에 대한 관념적 겸허함으로서가 아니라 이들과 눈을 맞추고, 같이 가슴 뛰고, 같이 눈물지으면서 수다를 떨 수 있는 것은 이들과 하나이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런데 주은씨가 이렇게 뛰어난 책을 내면서 무엇을 말하려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아줌마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좀 더 나아갈 수 있는 얘기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얘기는 없었다.
주은씨가 울산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서울로 가버렸기 때문일까? 그런 서울에서 여성학자로 유명해져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일까?
낮은 곳으로 임해서, 눈높이를 맞추고, 가슴의 높이를 같이했던 주은씨는 이런 아줌마들의 구린 삶을 벋어나기 위해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근데 나한테서 더 구린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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