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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착한 기주

 

착한 기주

 

 

인터넷에서 기사를 보고 연락드립니다

보낸사람 : “착한 기주” <hkj6758@wmail.com>

보낸날자 : 2010년 4월 6일, 15시 22분 35초

받는사람 : <bluesea77@tmail.net>

 

안녕하세요.

저는 한기주라고 합니다.

얼마 전에 인터넷신문에서 사연을 보았습니다.

작년에 저희 아버님이 석 달 동안 입원해 계셨던 적이 있어서 남의 일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때 병원생활하면서 사용했던 것들 중에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가습기, 환자용 쿠션, 보호자용 의자 같은 것들입니다.

어차피 저희는 더 이상 쓰지 않는 것이라서 괜찮으시다면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비싼 것들도 아니고 부피도 크지 않기 때문에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받아볼 수 있는 곳 주소를 알려주시면 바로 택배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병원생활은 환자 본인보다도 간호하시는 분이 더 힘들더군요.

몸과 마음을 잘 다스리시기 바랍니다.

 

 

 

택배 부쳤습니다

보낸사람 : “착한 기주” <hkj6758@wmail.com>

보낸날자 : 2010년 4월 8일, 10시 08분 50초

받는사람 : <bluesea77@tmail.net>

 

보내 주신 주소로 방금 택배를 부쳤습니다.

내일 오후쯤 도착할거라고 하더군요.

병실에서 심심할 때 읽어보시라고 제가 읽었던 책도 몇 권 넣었습니다.

취향에 맞으실는지 모르겠지만...

암튼, 힘든 생활 잘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에구~

보낸사람 : “착한 기주” <hkj6758@wmail.com>

보낸날자 : 2010년 4월 11일, 20시 07분 12초

받는사람 : <bluesea77@tmail.net>

 

죄송합니다.

오랫동안 쓰지 않던 것이라서 보내 드리기 전에 한 번 청소한다고 하다가 제가 빠트렸나봅니다.

내일 아침에 바로 보내드릴게요.

그리고 보호자용 의자는 접었다 펴서 쓰는 건데 등받이 왼쪽 나사 하나가 빠져있습니다.

쓰시는데 크게 불편하지는 않겠지만 움직일 때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면 테이프를 그곳에 붙이시면 소리가 나지 않을 겁니다.

고장 나서 못 쓰는 폐품을 보내드린 건 아니니까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ㅋㅋㅋ

 

 

 

그런 얘기하시면 좀 민망합니다

보낸사람 : “착한 기주” <hkj6758@wmail.com>

보낸날자 : 2010년 4월 12일, 17시 52분 18초

받는사람 : <bluesea77@tmail.net>

 

받아보셔서 아시겠지만 물건들이 새것도 아니고 약간 탈이 난 것도 있습니다.

그래도 쓸 수 있는 물건이라서 보내드린 건데...

너무 거창하게 말씀해주셔서 제가 민망합니다. -.-;;

고생하시는데 도와드릴 수 있는 방법이 그런 것 밖에 없어서 미안하기도 하고요.

저한테 그런 얘기하시지 마시고

“세상에 착한 사람들이 많구나...”하는 생각만 가져주시면 됩니다.

동생분이 빨리 나으시길 바랍니다.

꾸벅.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보낸사람 : “착한 기주” <hkj6758@wmail.com>

보낸날자 : 2010년 4월 27일, 09시 52분 33초

받는사람 : <bluesea77@tmail.net>

 

저도 몇 년 전에 작은 수술을 받아서 입원해 있었던 적이 있었고

아버님이 입원해 계실 때도 옆에서 지켜봤던 적이 있어서

병원생활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기 때문에

그냥 마음이 가는 것뿐입니다.

좁은 병실에 계속 있다 보면 많이 답답했거든요.

TV도 재미없고

다른 사람들 때문에 라디오를 틀어 놓을 수도 없고 그래서

싼 거 하나 구해서 음악도 듣고 라디오도 듣고 그랬습니다.

구형이라서 MP3가 핸드폰 수준입니다. -.-;;

그 이후에는 거의 쓰지 않고 책상 서랍에만 있던 것을 보내드린 겁니다.

 

요즘 날씨가 좋습니다.

답답하고 스트레스가 쌓일 때

잠시 병원 밖으로 나와서

좋아하는 노래를 듣다보면 마음이 조금은 풀리지 않을까요?

저는 그렇게 스트레스를 풀었는데...

 

동생분도 잘 이겨내시고

본인도 잘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오~잉~

보낸사람 : “착한 기주” <hkj6758@wmail.com>

보낸날자 : 2010년 5월 2일, 22시 16분 42초

받는사람 : <bluesea77@tmail.net>

 

뜻밖의 선물을 받았군요.

이거 모두 직접 그리신 건가요?

와~

그림 솜씨가 대단합니다.

꽃 그림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제 컴터 바탕화면에 깔아놨습니다.

컴터가 막 화사해집니다. 히히히

정말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시금치 조금 보내드립니다

보낸사람 : “착한 기주” <hkj6758@wmail.com>

보낸날자 : 2010년 5월 17일, 12시 52분 26초

받는사람 : <bluesea77@tmail.net>

 

부모님이 농사를 짓고 계신데 요즘 시금치를 수확하고 있거든요.

많이 드려봐야 다 먹지 못하고 시들어버릴 것 같아서 조금만 보내드립니다.

동생분이 병원 밥에 많이 질리실 텐데 살짝 데쳐서 먹으면 고소할 겁니다.

물론 보호자분도 같이 드세요.

환자보다 보호자가 끼니를 때우는 게 더 힘들더라고요.

보호자가 잘 먹어야 환자도 잘 먹는 법입니다.

그리고 심심할 때 보시라고 재미있는 책도 몇 권 보내드립니다.

가까운 곳에 있었더라면 병문안이라고 한 번 가고 싶은데

그리지 못해서 이렇게 택배와 메일로만 병문안을 대신합니다.

벌써 넉 달 째라니 많이 힘드시겠지만

잘 버티시기 바랍니다.

 

 

 

그러셨군요

보낸사람 : “착한 기주” <hkj6758@wmail.com>

보낸날자 : 2010년 5월 30일, 19시 17분 20초

받는사람 : <bluesea77@tmail.net>

 

수술을 앞두고 얼마나 마음을 졸이셨을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동생분이 불안해 할까봐 애써 내색도 하지 못하고

혼자서 불안한 마음과 싸워야 했겠군요.

 

저는 반대였습니다.

처음에 아버지가 입원하셨을 때는

애써 담담한 척 하면서 아버지를 위해드린다고 했는데

나중에 입원 기간이 길어지면서는

제가 더 불안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아버지가 조금이라도 마음 약한 얘기를 하시면

제가 막 화를 내고 그랬거든요.

어머니가 걱정하는 얘기만 해도 짜증을 내고...

그러고 나면 마음이 더 심란해지는데

감정 조절하는 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병간호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을 하곤 했었습니다.

보내 주신 내용을 보면서 그때 생각이 나서 저도 괜히 심란해졌습니다.

무슨 얘기를 해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잘 버티시라는 얘기밖에 드릴수가 없군요.

 

지난번에 시금치를 보내드리고 나서 오랫동안 연락이 없으셔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자꾸 이것저것 보내오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그런가보다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제 마음이 그래서 그런 것뿐이었는데...

 

아직 시금치가 조금 남아 있거든요.

지난번에 것은 먹지 못하셨다고 해서...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라면 조금 보내드릴까요?

비싼 것도 아닌데...

 

 

 

맛있었다니 다행입니다

보낸사람 : “착한 기주” <hkj6758@wmail.com>

보낸날자 : 2010년 6월 6일, 23시 01분 03초

받는사람 : <bluesea77@tmail.net>

 

고맙게 받아주셔서 오히려 제가 더 고맙습니다.

‘부담’이라는 표현은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제가 보내드리는 것이 비싼 것들도 아니고

집에 있는 것들을 조금 나눠드리는 것뿐입니다.

 

아파본 사람이 아픈 사람의 마음을 잘 아는 법이거든요.

서지은씨의 상황이 구체적으로 어떤 지는 잘 모르지만

제가 인터넷에서 봤던 내용과 가끔 보내주시는 메일만 봐도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실지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냥 제가 힘들었을 때가 생각나서 도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혹시나 부담스러워 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나처럼 힘들어하는 이를 위해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큰 즐거움입니다.

거창하지 않게라도 뭔가를 함께 나누고 싶지만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것이

가장 불행한 일이거든요.

 

힘들 때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시금치를 먹고

동생 얼굴을 한 번만 쓰다듬어 주세요.

그러면 동생이 언니의 마음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와~ 좋은 소식이네요!

보낸사람 : “착한 기주” <hkj6758@wmail.com>

보낸날자 : 2010년 6월 17일, 07시 25분 54초

받는사람 : <bluesea77@tmail.net>

 

아침에 일어나서 아무 생각 없이 컴터 앞에 앉았는데

이렇게 좋은 소식이 들려오다니!!!

그러면 병원 생활이 이제 끝을 향해 가는 건가요?

하루 빨리 그 답답한 병원에서 두 분이 탈출했으면 합니다.

아침부터 이런 기분 좋은 소식을 듣게 돼서

오늘은 하루 종일 즐거울 것 같습니다.

파이팅입니다!

 

 

 

RE : 가습기와 의자를 돌려드리고 싶어요

보낸사람 : “착한 기주” <hkj6758@wmail.com>

보낸날자 : 2010년 6월 22일, 14시 18분 33초

받는사람 : <bluesea77@tmail.net>

 

돌려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동생이 퇴원을 해도 얼마 동안은 보살펴 드려야 한다니 집에서 쓰세요.

폐품 처리를 위해서 드렸던 것은 아니지만

다시 돌려받을 생각으로 드린 것도 아닙니다.

그 물건들이 필요할 때까지 쓰기고

누군가가 또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주시든가요.

 

오랜 기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직 동생이 완쾌된 것이 아니라서 걱정과 고생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집으로 돌아가게 되면 지친 몸과 마음을 조금은 달래시기 바랍니다.

제 마음이 편해지네요.

 

 

 

어떤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보낸사람 : “착한 기주” <hkj6758@wmail.com>

보낸날자 : 2010년 7월 8일, 22시 11분 09초

받는사람 : <bluesea77@tmail.net>

 

낮에 택배가 왔습니다.

“나한테 택배를 보낼만한 사람이 없는데...” 하면서 보낸 사람 이름을 보니

서지은씨 이름이 쓰여 있더군요.

가슴이 콩닥거렸습니다.

(오해는 하지 마세요.)

누군가에게 뭔가를 받아본 것이 얼마만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합니다.

“이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궁금해 하면서도 얼른 상자를 뜯지 못했습니다.

내용물보다는 누군가에게서 뭔가를 받았다는 그 기분이 좋았습니다.

알라딘의 요술램프를 어루만지듯 한참을 상자를 어루만지다가

조심스럽게 열어봤습니다.

 

얼마나 감동했는지 아세요?

그림 하나 하나를 오랫동안 들여다봤습니다.

예쁜 꽃들, 하늘과 구름, 병실에 누워있는 동생 모습, 가습기와 의자와 쿠션, MP3와 책들, 시든 시금치, 링거병과 주사바늘, 병원 복도와 자판기, 휠체어에 앉아 있는 환자들, 의사와 간호사들

제가 그 병실에 환자가 돼서 누워있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서지은씨의 힘겨우면서도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습니다.

동생분은 그런 언니가 옆에 있어서 외롭지 않았을 거예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와 버렸습니다.

 

고맙다고 답장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한참을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고마운 표현을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힘들 때 이 그림들을 보면서 용기를 얻을 게요.

정말 고맙습니다.

 

 

 

좀 쑥스럽군요

보낸사람 : “착한 기주” <hkj6758@wmail.com>

보낸날자 : 2010년 7월 9일, 19시 29분 42초

받는사람 : <bluesea77@tmail.net>

 

감정을 조절한다고 했는데 좀 오버를 했나요?

히~이~

 

저는 쓰지 않는 것들을 보내 드린 것뿐인데

서지은씨는 너무 소중한 것을 보내주셨습니다.

물물교환이라고 해도 제가 훨씬 이익을 본 거 같은데요. ^.^

암튼, 정말 마음에 드는 선물이었습니다.

 

오랜 병원 생활에 두 분이 많이 힘드셨을 텐데

퇴원 하고 나서도 쉽지 않군요.

제가 딱히 도와드릴 수 있는 게 없어서 마음만 안타깝기는 하지만

잘 헤쳐나가시리라 믿습니다.

 

혹시, 그림을 전공하시거나 그림과 관련된 일을 하시는 건가요?

그림 실력이 대단하던데요.

제가 그림이나 그런 쪽으로는 문외한이라서 그림에 대한 책이 별로 없기는 하지만

찾아보니까 미술이나 예술에 대한 책이 몇 권 있더라고요.

전문서적은 아니지만 혹시 도움이 될까 해서 보내드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동생분은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요?

저에게 책이 좀 있는데

한 번 읽고 난 책을 다시 볼일도 별로 없고

쌓아놓기만 하다보니까 관리도 잘 안되고 그래서

동생분이 심심할 때 읽어보시면 좋지 않을까 해서 같이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것은 이런 것들뿐이지만

이런 것도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쓸모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좋습니다.

 

날씨가 슬슬 더워지기 시작하는데

두 분 건강관리 잘 하세요.

 

 

 

RE : 프리다 칼로의 고통이 느껴지네요

보낸사람 : “착한 기주” <hkj6758@wmail.com>

보낸날자 : 2010년 7월 20일, 16시 29분 32초

받는사람 : <bluesea77@tmail.net>

 

저도 프리다 칼로의 글과 그림을 보면 많이 아프더라고요.

고통을 참을만하다는 것이 즐거운 소식이라는 글을 보면서 마음이 울컥해져서 책을 덮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 아픔을 달래기 위해 혼자서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얼마나 외로웠을까?

아프고 외로운 사람들은 그의 글과 그림을 보면 그렇게 몸서리쳐지나 봅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 모든 고통과 외로움을 예술로 승화했다”는 식의 평론가들의 상투적인 글을 보면 화가 납니다.

그 힘겨움을 머리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저런 표현 기법만이 보이겠지만,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자기 얘기거든요.

 

김정호의 ‘세한도’라는 그림을 봐도 그래요.

머나먼 제주도로 유배를 가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이

세상 사람들과 멀어지고

그곳 사람들과도 어울리지 못한 채

혼자서 외롭게 지내야 했던 김정호는

자신의 마음을 한 그루 소나무로 표현한 것이었어요.

사람들은 그 그림을 보면서 ‘선비의 곧은 절개’나 ‘강인한 생명력’ 이런 것들을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의 외로움이 너무도 강하게 느껴져요.

 

제 삶이 그래서 그런가봅니다.

서지은씨의 사연을 처음 접하면서 느꼈던 것도 그런 감정이었어요.

“이 사람은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고요.

내가 힘들고 외로울 때 작은 마음들이 큰 힘이 됐던 것처럼

서지은씨에게도 그냥 그런 작은 마음을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제가 더 힘을 받는 거 아세요?

옛날에 저와 함께 했던 사람들은 저를 잊었는지 연락이 없지만

지난 몇 달 동안 저에게 메일도 보내주시고 소중한 선물도 보내준 사람은 서지은씨가 유일하거든요.

그 메일과 선물 속에서 제가 얼마나 즐거웠는지...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그냥 사람의 체온을 느낄 수 있다는 그 자체가 너무 큰 행복이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제가 세상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쓸모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서 힘이 됐고요.

 

에이!

글을 쓰다보니까 좀 무거워졌나요? ^.^;;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지만 하나의 책을 통해서 비슷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좋습니다.

동생분 몸이 좋아지면 두 분이 같이 놀러오세요.

제가 사는 이 동네가 유명한 곳은 아니지만 푸른 바다를 볼 수 있는 아늑한 동네거든요.

한가하게 여행 생각하기보다는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는 게 더 급할지도 모르겠지만...

 

오래간만에 이런저런 얘기를 할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동생분에게도 안부전해주세요.

 

 

 

똑 똑

보낸사람 : “착한 기주” <hkj6758@wmail.com>

보낸날자 : 2010년 7월 29일, 20시 06분 09초

받는사람 : <bluesea77@tmail.net>

 

오늘 시집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시가 있어서

보내드리고 싶어서요.

좀 쑥스럽기는 한데...

히~이~

 

 

사람이 시보다 크다

 

김수열

 

얼마 전 시인들끼리 송년 자리에서 술잔 기울이는데 한 후배가, 형은 詩가 커 보였는데 이제는 사람이 더 커 보인다 하길래 원래 크니까 그런 게 아니냐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기고 뿔뿔 헤어져 돌아오며 그 말 곱씹어보는데

갈수록 詩가 시답지 않다는 겐지 아니면 詩가 몸을 몸이 詩를 못 따른다는 겐지 그도 아니면 성장발육 멈춘 지가 하세월인데 느닷없이 더 커 보인다는 건 대체 뭔 소린지, 하는 비틀비틀한 생각으로 지하 주차장에서 계단으로 들어서는데

쿵, 하고 천장 들보에 정수리를 받히고서야 확 깨닫는다

 

그래 나, 크다

 

 

서지은씨 취향과는 다를지 모르겠지만

이 시가 가슴에 팍 와 닿았습니다.

마지막에 “그래 나, 크다”하는 부분이 얼마나 좋았는지...

저도 키가 좀 크거든요.

제 인생이 별로 내세울 게 없는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시를 읽고 나니까

“나도 키가 큰데...”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도 혼자서 “그래 나, 크다”라고 중얼거려봤더니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서지은씨는 키가 큰지 작은지 모르겠지만

꼭 키가 아니더라도

“그래 나, 눈 크다”라든가 “그래 나, 배짱이 크다”라는 식으로

자기 장점을 얘기해보면 기분이 좋아지지 않을까요?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히~이~

 

 

 

보내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보낸사람 : “착한 기주” <hkj6758@wmail.com>

보낸날자 : 2010년 8월 7일, 23시 02분 21초

받는사람 : <bluesea77@tmail.net>

 

이렇게 서지은씨 얘기를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서지은씨 얘기를 듣고 나서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생각해봤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개인적인 얘기를 해주신 것이 부담스럽다거나 그런 건 아닙니다.

뭐랄까...

이 사람도 이 사람만큼의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

아니면, 내가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물론, 저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그 글을 보내셨던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압니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힘들어하는 사람을 보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으면 손이라도 잡아주고 싶어지는데...

 

저도 가끔은 누군가에게 저의 힘겨움을 얘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도움을 기대하거나 위로를 받으려는 마음이 아니라

그냥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는 답답한 마음을 얘기하면 좀 시원해질 것 같은 그런 생각이죠.

그런데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그런 얘기를 편하게 들어줄 사람이 없더라고요.

 

작년 연말에 한 분이 오래간만에 안부메일을 보내오셨던 적이 있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소식 좀 보내라”고 쓰여 있었어요.

옛날에 같이 일을 했던 분인데 연락 없이 지낸지 몇 년 만에 연락을 해 오신 것이라서 기뻤거든요.

어떻게 내 얘기를 할까 생각하다가 제 삶을 돌아보면서 정리했던 글을 보내드렸습니다.

길기도 짧지도 않게 그동안 살아왔던 삶을 솔직하게 정리해본 글이었거든요.

최근 몇 년간의 힘겨운 생활과 고민도 들어있었고요.

그런데 그 글을 보내고 나서 아직까지 아무런 답변이 없으세요. 히히히

제가 너무 솔직한 글을 보내드려서 부담스러우셨나 봐요.

그 이후에는 그런 얘기를 할 사람도 없지만

얘기를 기회가 있더라고 내 얘기를 너무 솔직하게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지은씨 글을 읽고 나서

지은씨가 왜 이 글을 보내왔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지은씨도 위로나 도움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냥 누군가에게 자기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죠? 맞죠?

그런 게 아니라면 좀 곤란한데... 히~잉~ ^.^;;

 

지은씨 얘기에 대해서는 뭐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저도 제 얘기를 들려드릴게요.

작년 연말에 그 분에게 드렸던 글을 보내드립니다.

그냥 제 얘기 들어만 주시면 됩니다.

 

유난히 더운 여름입니다.

동생분이 많이 힘들어하실지 모르겠네요.

 

 

 

자꾸 이러시면 곤란한데... ㅋㅋㅋ

보낸사람 : “착한 기주” <hkj6758@wmail.com>

보낸날자 : 2010년 8월 16일, 14시 55분 09초

받는사람 : <bluesea77@tmail.net>

 

멋진 그림을 또 받았네요.

낡은 아파트, 작은 주방, 창으로 내다보이는 도시풍경, 요즘은 보기 귀한 프라이드 자동차, 마을버스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 지은씨와 동생의 다정한 모습

지은씨가 살고 있는 집과 동네가 훤히 보입니다.

좋네요.

마음이 조금 찡해지기도 하고...

 

부모님이 여름 쪽파를 수확하고 있는데

답례로 쪽파 조금 보내드릴게요.

더워서 입맛 없으실 때 드시면 좋지 않을까 해서요.

요즘 농산물가격이 장난이 아니라서 좀 짭짤하게 수익을 올리고 있습니다.

즉, 비싼 거라는 얘깁니다. 히히히

 

 

 

사람 관계라는 게...

보낸사람 : “착한 기주” <hkj6758@wmail.com>

보낸날자 : 2010년 8월 27일, 20시 29분 11초

받는사람 : <bluesea77@tmail.net>

 

이래저래 힘든 일이 많겠군요.

세상이라는 게 무수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는 곳인데

사람 관계를 잘 풀어가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사람들에 치이다보면 나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게 되고...

그러다보면 사람들을 만나는 게 더 힘들어지고...

외롭게 지내는 건 몇 배로 더 힘들고...

 

어쩌면 저는 지은씨랑 반대의 경우로 사람에 치이고 있습니다.

만나는 사람이 없어서 사람에 치이는 경우죠.

혼자서 지낸지 4년쯤 되니까 사회성이 많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 만나는 게 힘들기도 하지만

제 자신을 대하는 게 더 힘들어집니다.

 

요즘 너무 더워서 낮에는 도서관에 가서 시간을 보내곤 하거든요.

시원한 에어컨 바람 속에 책을 보는 게 최고의 피서이긴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름철 도서관에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입니다.

저처럼 피서를 겸해서 오는 사람도 있고

방학이라 공부하러 온 학생들도 많고요.

오랜 기간 혼자서 지내다보면 신경이 많이 민감해져요.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고 있으면 작은 소리 하나 하나가 제 귀에는 큰 소리로 들립니다.

친구끼리 속닥거리는 학생들 말소리

신문이나 잡지를 휙휙 넘기는 소리

구두나 하이힐 똑깍거리는 소리

핸드폰 진동소리

이런 소리들에 신경을 쓰다보면 책을 제대로 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다보면 더 예민해져서 작은 소리라도 내는 사람이 있으면 째려보고 그러거든요.

사람이 많은 대중공간에서 그 정도의 작은 소리는 당연할 수도 있는데 저한테는 그 모든 사람들의 소리가 소음인 거예요.

자꾸 소리에 민감해져서 소리 내는 사람들을 수시로 쳐다보고 하다보면

제 자신이 이상한 놈처럼 생각이 되더라고요.

어쩌다 그런 소리들에 적응이 돼서 책에 집중하고 있으면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 저를 째려보고 있는 거예요.

제가 더 큰 소음을 내면서 책을 보고 있었던 거죠.

 

도서관에서만 그런 게 아닙니다.

버스를 탔을 때 옆에 앉은 사람의 몸이 닿거나 큰소리로 전화 받거나 그러면 막 눈치주고...

영화 보러 갔을 때 연인끼리 속삭이거나 핸드폰 불빛이 보이면 헛기침 하고...

동네에서 차가 조금만 빨리 달려도 돌아서서 째려보고...

웃기죠?

시트콤이나 이런데 보면 어리버리 사이코 같은 캐릭터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저예요.

이런 식으로도 사람에 치이고, 다른 사람을 짜증나게도 합니다.

 

지은씨,

사람 관계가 어렵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 속에서 풀어가고 단련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사람들이 힘들다고 자꾸 자기 속으로 빠져들다 보면 저처럼 이상하게 변하거든요.

 

 

 

히히히

보낸사람 : “착한 기주” <hkj6758@wmail.com>

보낸날자 : 2010년 8월 28일, 12시 11분 39초

받는사람 : <bluesea77@tmail.net>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요즘 제 자신이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잘 이겨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서지은씨가 저보다 몇 배는 더 힘들 텐데 저를 걱정해주시다니...

아~ 좋다!

 

 

 

정말 다행입니다

보낸사람 : “착한 기주” <hkj6758@wmail.com>

보낸날자 : 2010년 9월 13일, 20시 47분 20초

받는사람 : <bluesea77@tmail.net>

 

그러면 이제 동생이 생활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는 건가요?

좋은 소식이 계속 들려와서 기분 좋습니다.

고생한 보람이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거기에는 제 정성도 조금은 들어가 있는 거죠? ㅋㅋㅋ

 

이제 지은씨 문제만 풀리면 되는데...

일자리는 알아보고 계신 건가요?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게 없어서 속상합니다.

 

그리고 추석 선물이니 뭐니 하는 생각은 절대 갖지 마십시오.

무슨 때만 되면 안부 전하고 선물 보내고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정말입니다!

몇 번 말씀드렸지만 지은씨와 동생이 힘들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그리고 지은씨가 보내주신 그림들과 글들로도 가슴이 벅찹니다.

 

추석 때 고향에 가시면

두 분보다 더 마음고생이 많으셨을 어머님 손이라도 따뜻하게 잡아드리세요.

 

좀 이르지만 미리 추석 인사드립니다.

추석 잘 보내세요.

 

 

 

추석 잘 보내셨나요?

보낸사람 : “착한 기주” <hkj6758@wmail.com>

보낸날자 : 2010년 9월 25일, 23시 17분 21초

받는사람 : <bluesea77@tmail.net>

 

아직 고향에 계신가요?

오래간만에 찾은 고향집에서는 편했나요?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들었을 동생은 고향집에서 따뜻한 온기를 느꼈겠지요?

어머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지어졌겠죠?

무엇보다도 지은씨 마음에 편안함이 들어왔겠죠?

 

저는 우울한 명절을 보냈습니다.

가족들이 전부 가까운 곳에 살고 있어서 명절이라고 특별히 반가운 것은 없지만

그래도 명절을 맞아서 가족들이 모일 수 있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특히 어린 조카들 재롱을 지켜보는 게 가장 행복한 일이죠.

추석 날 저녁에 가족들이 다 모여서 밥도 먹고 술도 한 잔 하고 있었습니다.

두 조카는 신나서 이곳저곳 뛰어다니면서 어른들의 관심을 받고 있었고요.

저도 조카들에게 이것저것 먹을 것을 주기도 하고 같이 놀아주려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네 살 된 둘째 조카가 자꾸 “삼촌, 거리 가!” “삼촌, 오지 마!” 그러는 거예요.

어린애 재롱이려니 생각하면 되는 걸

그만 울컥 해버렸습니다.

조카도 나를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 “너, 집에 가!”라면서 화를 내고는 제 방에 들어와 버렸죠.

명절 분위기는 완전히 망쳐버렸고

동생들과 매제들은 어색한 분위기 속에 돌아갔습니다.

 

혼자 지낸 지 4년이 되어가니까

점점 사람들 관계가 힘들어지고

이제는 가족들과도 대화를 잘 하지 않은 채 혼자서만 지내게 됩니다.

부모님과 동생들은 그런 저를 조심스럽게 바라보고 있고요.

특히, 부모님은 더 조심스러워서 말 한마디 건네는 것도 제 눈치를 많이 봐요.

불편하다기 보다는 걱정스러우신 거죠.

그래도 어른들은 그렇게 조심스러워 하는데 애들은 그렇지 않잖아요.

자기가 느낀 그대로 얘기하고 행동하거든요.

네 살 난 조카가 보기에도 저한테서 뭔가 불안한 기운이 느끼지나 봐요.

그래서 자꾸 저보고 가까이 오지 말라고 얘기했던 거겠죠.

네 살 난 조카가 같이 놀아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제 꼴이 우습더라고요.

 

추석 다음 날에는 오래간만에 고향에 내려온 동네 형을 만났습니다.

거의 30년 만에 만나는 형이었거든요.

형이랑 같은 회사에 있는 가족 한 팀이 같이 자리를 해서 술자리를 가졌습니다.

그 회사 부장이라는 그 분은 형을 아랫사람으로 대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꾸 저도 아랫사람으로 대하려 하는 거예요.

많이 불편하더라고요.

그래서 술을 몇 잔 먹고는 “이런 식으로 사람 대하는 거 싫다”고 얘기해 버렸죠.

분위기가 급속히 가라앉았고, 당황한 형이 자리를 수습하려고 쩔쩔맸습니다.

그렇게 어색한 술자리는 1시간 만에 끝났습니다.

오래간만에 만난 형을 생각해서라도 그러면 안 되는 건데...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증상인 거죠.

상대를 배려하고 이해하기보다는

제 자신을 달래고 누르는 데 더 신경을 쓰게 되는 거예요.

그러다보면 그런 일이 나게 되고...

 

연달아 이런 일이 생기다보니까

사람들 만나는 게 더 힘들고 무서워져요.

제 자신을 어떻게 하기가 힘들어요.

우울한 기분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며칠 째 그런 상태로 혼자서 지내다보니까 막 답답해졌어요.

답답한 마음을 꺼내놓으면 조금은 시원해지지 않을까 해서 이 글을 써봅니다.

지은씨가 이 글을 보면

괜히 나 때문에 행복한 기분을 잡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이런 얘기 들어줄 사람이 지은씨 밖에 없어요.

 

오늘 지은씨가 보내주셨던 그림들을 하나씩 들여다봤습니다.

그리고 많이 울었습니다.

 

우울한 글 보내드려서 죄송합니다.

 

 

 

돌아오셨군요

보낸사람 : “착한 기주” <hkj6758@wmail.com>

보낸날자 : 2010년 9월 30일, 18시 20분 44초

받는사람 : <bluesea77@tmail.net>

 

고향에서 돌아오자마자 우울하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지은씨 메일을 받고 나니까 기분이 좋습니다.

 

그제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소설을 읽었습니다.

어릴 적에 영화를 봤던 기억은 있는데

소설을 직접 읽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어릴 때 영화를 볼 때는 무서웠는데

소설은 슬펐습니다.

 

한 박사가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냈는데

엄청난 괴물을 만들고 말았다는 두려움 때문에 자신이 만든 생명을 죽이려고 했어요.

괴물은 살려고 달아났고...

나중에 그 괴물이 박사를 찾아와서 “인간 세상에서 멀리 떨어져서 조용히 살 테니까 여자 한 명만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어요.

자기도 사랑을 하면서 행복하고 살고 싶다는 거였죠.

그런데 그 박사는 그 괴물이 더 늘어나는 것이 두려워서 그의 소원을 거절했어요.

그래서 박사는 그 괴물을 끝까지 찾아서 죽이려고 했던 거죠.

괴물의 소원은 단지 사랑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거였는데...

못생기고 멍청하고 힘이 세다는 게 그 단순한 소원을 거절한 이유였어요.

 

그 괴물이 바로 나예요.

못생기고 무능하고 가진 것 없는 나 같은 사람들은

사랑하면서 행복하고 살고 싶다는 소원을 가져서는 안 되는 거죠.

사람들이 싫어하니까...

 

고맙다는 얘기하려고 그랬는데

또 우울한 얘기가 돼 버렸습니다.

하지만 지은씨,

무서운 괴물 프랑켄슈타인은 착한 마음을 가졌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나쁜 괴물 아니거든요.

 

 

 

앗~싸!

보낸사람 : “착한 기주” <hkj6758@wmail.com>

보낸날자 : 2010년 10월 3일, 11시 57분 09초

받는사람 : <bluesea77@tmail.net>

 

지은씨 메일 보고 나서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저한테 그런 장점들이 있었군요.

자기 자신을 긍정해야 된다는 얘기는 많이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지은씨 메일을 읽고 나서 한참 동안 거울을 쳐다봤습니다.

또 다른 한기주가 저를 보고 있더군요.

거울 속의 기주는

얼굴도 못생겼고, 나이도 많고, 머리도 많이 빠졌고, 후진 추리닝을 입고 있었어요.

그런데 키가 컸어요. (물론, 키 작은 사람이 루저라는 것은 아니지만...)

덩치도 듬직했고요.

무엇보다 그 작은 눈이 맑았어요.

우리 동네 앞 바다처럼... (좀 쑥스럽다. 히히히)

그리고 얘기를 걸어봤거든요.

거울 속의 기주는

말을 참 솔직하게 해요.

막 머리 굴리고 거짓말 하면서 사는 게 싫데요.

누가 그러는데 글도 참 잘 쓴다는 얘기도 들었데요.

예전에는 사람들이랑 잘 어울려서 오지랖도 엄청 넓었다나요.

책도 많이 읽고, 음악도 많이 듣고, 영화도 좋아한데요.

아무 거나 잘 먹어서 어릴 때부터 음식투정 없이 잘 자랐데요.

안타까운 사람을 보면 마음이 아파서 손이라고 잡아주고 싶어 한다고도 하고

자기가 상처를 줬던 사람들 때문에 마음이 더 아프기도 하데요.

짜식! 멋있더라고요.

 

지은씨!

지은씨는 그림을 참 잘 그려요.

마음도 참 곱고요.

동생에게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언니이고

엄마에게는 둘도 없이 든든한 딸이에요.

생각보다 많이 씩씩한 것도 같고요.

그리고...

참 이뻐요.

히~잉~

 

고맙습니다.

인사치례가 아니라 진짜로

힘이 되네요.

 

 

 

음...

보낸사람 : “착한 기주” <hkj6758@wmail.com>

보낸날자 : 2010년 10월 15일, 15시 19분 56초

받는사람 : <bluesea77@tmail.net>

 

제가 놀러오라고 그랬었나요?

지은씨랑 동생분이 오신다면 기쁠 거예요.

지은씨가 보고 싶어 하는 맑고 푸른 바다도 보여드릴 수 있을 거고...

맛있지는 않지만 싱싱한 시골 음식도 대접할 수 있을 거고요.

 

그런데 요즘 저희 집이 좀 어수선합니다.

밭에 이래저래 일들도 널려 있고

창고를 수리한다고 어지러운 것도 있고

동생네가 이사한다고 해서 도와줘야할 것도 있고

암튼, 저희 집을 방문하시는 것은 나중으로 미뤄야할 듯합니다.

오해하지는 마세요.

다른 뜻이 있어서 그런 건 절대 아니니까요.

 

여행하기에 좋은 날씨죠?

두 분이 가까운 곳에라도 바람 쐬러 다녀오세요.

그동안 고생했던 것들도 가을바람에 가볍게 날려 보내시고

언니와 동생의 애정도 더 쌓으시고요.

 

많이 아쉽네요.

지은씨랑 동생 만나보고 싶었는데...

 

 

 

조금만 기다려주실래요?

보낸사람 : “착한 기주” <hkj6758@wmail.com>

보낸날자 : 2010년 10월 19일, 23시 36분 25초

받는사람 : <bluesea77@tmail.net>

 

지은씨가 얘기했던 내용이 맞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지만...

솔직히 얘기하면...

지은씨를 만나는 게 무서워요.

지은씨가 무서운 게 아니라 제 자신이 무서워서...

 

많이 극복해가고 있지만

아직도 사람들 만나는 게 정말 힘들거든요.

물론, 이렇게 혼자만 계속 지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용기가 안 나요.

 

지난번에도 얘기했던 것처럼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을 배려하기보다는

제 자신을 다루는데 진을 빼거든요.

그러다보면 실수하게 되고, 그러고 나서 또 후회하고...

만약, 지은씨를 만나서 그런 일이 반복된다면

저는 정말 사람들 만나지 못할 거예요.

 

조금만 기다려주실래요?

제가 자신감이 생겼을 때 정식으로 초대할게요.

이해하시죠?

 

 

 

아마 저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시고 있는 것 같군요

보낸사람 : “착한 기주” <hkj6758@wmail.com>

보낸날자 : 2010년 10월 21일, 01시 46분 31초

받는사람 : <bluesea77@tmail.net>

 

서지은씨!

저는 서지은씨가 생각하고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그동안 제가 써서 보냈던 글들 때문에 뭔가 환상을 갖고 계신가본데

글로만 접하던 사람을 실제 만나게 되면 실망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글은 항상 자신을 포장하거든요.

 

그동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계셨을 텐데

이런 글을 써서 죄송하지만

이 나이 되도록 혼자서 살고 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특히 이성관계에서는 더더욱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고요.

서지은씨 귀가 더러워질까 봐서 자세하게 얘기하지는 않겠습니다.

아마 서지은씨가 상상하는 그런 이유가 맞을 겁니다.

 

외로운 남자가 밤에 혼자서 뭘 하는지 아십니까?

자위를 합니다.

서지은씨를 생각하면서!

 

 

 

읽으셨군요

보낸사람 : “착한 기주” <hkj6758@wmail.com>

보낸날자 : 2010년 10월 21일, 06시 39분 25초

받는사람 : <bluesea77@tmail.net>

 

지은씨 메일을 받고 나서 술을 좀 먹었습니다.

술기운에 그런 메일을 보내고 나서 소주 한 병을 더 마시고 잠들었습니다.

그리고 꿈을 꿨습니다.

제가 지은씨를 강간하고 동생을 죽였습니다.

텔레비전과 신문에 제 이름과 얼굴이 나오고

여기저기에 현상수배 전단이 붙어있더군요.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하고 거리를 걷고 있는데

예전 회사 동료가 “저기 한기주다!”라고 소리치더군요.

경찰이 뒤에서 쫓아오고

또 한쪽에서는 저를 아는 사람들이 달려들어서 모자와 마스크를 벗기려고 하고...

그렇게 골목골목으로 담을 넘어서 도망가다가 꿈이 깼습니다.

멍한 상태로 한참을 있었습니다.

정말 프랑켄슈타인이 되는구나...

많이 슬펐습니다.

 

다시 잠을 자지 못한 채 한참을 뒤척이다가

보낸 메일을 지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뭐라고 할 말이 없습니다.

이래저래 좋았던 기억으로 남았어야 했는데...

어쩌면 이것도 저의 모습 중의 하나입니다.

좋지 않은 기억을 심어드려서 죄송합니다.

 

 

 

오래간만에 가을 하늘을 봤습니다

보낸사람 : “착한 기주” <hkj6758@wmail.com>

보낸날자 : 2010년 10월 23일, 21시 14분 03초

받는사람 : <bluesea77@tmail.net>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서

동네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잔잔한 바다가 맑고 푸르더군요.

잠시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봤습니다.

파란 하늘에 구름이 여유롭게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가을 하늘을 느껴본지가 얼마만인지...

 

눈물이 흘러나왔는데

그냥 뒀습니다.

눈물도 힘들 테니까요.

 

고맙다는 얘기 너무 많이 하는 거 같은데...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지금 엄청 노력하고 있는 거거든요.

이겨낼 거예요.

하지만 시간이 좀 더 걸리겠죠.

그 시간만큼 힘겨움은 더 길어지겠지만...

 

지은씨,

그냥 그 정도 거리에서 지켜봐주세요.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제 손을 잡아주지 않아도

이런 제 모습을 지켜봐주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저에게는 엄청난 힘입니다.

 

나중에 제가 봤던 바다와 하늘을 꼭 보여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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