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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라디오 '내가 우스워 보이냐?' (8회)

 

읽는 라디오 ‘내가 우스워 보이냐?’ (8회)

 

 

 

1

 

화창한 봄날입니다. 오늘은 저와 같이 산책을 해보실래요?

제주도는 여기저기 올레길이라고 해서 걷기 좋은 코스들이 많이 개발되어 있는데요, 우리 동네 주변을 도는 저만의 올레 코스가 있거든요. 천천히 걸어서 3시간 정도 걸리는데 괜찮으시면 저와 같이 걸으면서 오래간만에 봄의 기운을 느껴보지 않으시렵니까? 준비물은 특별히 필요하지 않습니다. 가벼운 옷차림에 물 한 병과 초콜릿 같은 간단한 간식거리가 조금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자, 출발합니다.

 

제가 사는 동네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농촌입니다. 제주시내에서 많이 떨어져있지 않기 때문에 완전 깡촌은 아니어서 젊은 사람들도 비교적 사는 편입니다.

바다를 끼고 해안도로가 있는데 이곳 해안도로는 경치가 비교적 좋은 편입니다. 절벽을 끼고 안쪽으로 움푹 들어간 만 형태로 된 곳에 마을이 들어서 있고, 뒤로는 조그만 야산도 있는 분지 같은 지형인데, 동네가 편안한 형태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촌 동네가 대부분 그렇겠지만 2층을 넘는 고층건물이 없어서 어디를 보더라도 시원하게 둘러볼 수 있습니다. 제주도 특유의 돌담들도 있고, 집과 집 사이에 중간 중간 밭들도 있고요.

제주도는 발길 닿는 어디든 다 편안하고 아름답기는 한데, 저희 동네는 화려하지 않게 아름다운 동네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동네에 살고 있는 제가 부러우신가요? ㅋㅋㅋ

하지만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별로 편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제주시에서 가깝고 경치가 좋다보니 개발의 유혹이 동네를 가만두지 않습니다.

바다 쪽으로 있는 해안도로의 경치가 좋기 때문에 10여 년 전부터 각종 레스토랑이나 펜션 같은 것들이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이 장사가 된다는 소문이 나면서 펜션들이 무섭게 들어서기 시작해서 지금은 각종 펜션들 때문에 아름다운 해안선이 완전히 죽어버렸습니다. 외지인들이 운영하는 펜션에 외지인 관광객들만 북적거리는 꼴이 되어버렸죠.

그런 펜션들이 마을로까지 무섭게 들어오려는 상황에서 마을회의를 통해 겨우 막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행히 마을 안에는 두 채 정도의 펜션만이 들어와 있지만 얼마 전에 올레 코스가 마을로 이어지면서 카페도 생기고, 토산품 판매점 같은 것도 공사를 하고 있어서 안심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경치 좋은 관광지를 가면 아름다운 자연에 시설 좋은 펜션 같은 곳들이 있으면 관광객들에게는 좋겠지만, 그곳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일은 아니지요.

 

관광개발만이 문제는 아닙니다.

마을 옆에 레미콘 회사가 있는데, 수시로 드나드는 대형차량들 때문에 마을 밖으로 다닐 때는 신경이 많이 쓰입니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이웃 마을에 항구 공사를 크게 하면서 해녀회는 반대를 하지만, 그에 이권에 있는 단체들은 찬성을 하는 등 갈등도 있고요.

몇 년 전에는 마을 바로 옆에 유류 저장시설이 들어서는 문제로 마을사람들이 반대를 하면서 갈등이 커졌던 일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대기업인 정유회사에서 당시 마을 이장을 비롯해 몇 명에서 뇌물을 주면서 공사를 강행해 사법처리 되는 등 문제가 커지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렇게 해서 유류 저장시설은 들어오게 됐고, 당시 뇌물을 받았던 이들과 그에 반대했던 이들 간에 갈등은 아직도 이어집니다. 더 웃기는 건 뭐냐면, 뇌물을 받아서 사법처리까지 됐던 사람들이 아직도 마을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는 거지요.

 

이곳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어릴 적부터 계속 이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러다보니 가부장적 권위주의가 매우 강하고 외부에 대한 배타성도 장난이 아닙니다.

이곳은 저희 어머니 고향이고 아버지는 옆 동네가 고향이거든요. 이런저런 사연으로 20여 년 전에 이곳에 집을 지어서 살고 있는데, 아직도 ‘처가동네 와서 살고 있는 외방 것’이라는 인식 때문에 부모님이 마을에 완전히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가능하면 마을 외곽으로 나가서 살고 싶다고 하십니다.

저는 이 동네에서 계속 살아왔던 것도 아니어서 가끔 아는 사람이 오면 바닷가에 가서 술도 먹고 그러거든요. 그런데 이 마을에 사는 40대가 바닷가에서 술을 먹으면 “새파란 게 싸가기 없이 어른들 앞에서 술을 먹는다”고 꾸중을 합니다. 그래서 30~40대들도 가능하면서 마을에서 나가서 살고 싶어 합니다.

 

어떠신가요? 아직도 이 동네가 아름다워 보이시나요? ㅋㅋㅋ

 

 

2

 

이제 마을을 벋어나서 이 도로만 건너면 좀 편하게 산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원하게 뚫린 이 5차선 도로를 건널 때마다 항상 긴장을 해야 합니다.

 

도심에서 떨어져 있는 이런 시골길은 차들이 넘쳐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속도를 줄이지 않습니다. 특히나 이렇게 길이 시원하게 뚫려 있으면 더욱 그렇지요. 물론 신호등이 있기는 하지만 시골길에서 차들이 신호를 무시하는 경우는 흔합니다.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고 있는데, 밭들이 마을 외곽에 있는 경우가 많아서 이런 도로들을 건너야 밭에 갈 수 있거든요. 그러다보니 이런 동네에서 사고가 나면 대부분 중상이나 사망사고가 많습니다. 저희 부모님도 며칠 전에 바로 이곳에서 사고가 났거든요.

 

거의 매일 이곳을 건너야 하는 저는 이곳에서 ‘사람이 아니라 차가 세상의 주인이라는 것’을 실감하곤 합니다.

처음에는 이런 곳일수록 신호를 제대로 지켜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차가 없어도 파란불이 들어올 때가지 기다렸다가 건넜습니다. 하지만 차들의 입장은 달랐습니다. 시골길에도 중간 중간 신호등이 있는 것이 짜증나는데 사람도 많이 다니지 않는 이런 곳에서 신호를 지키기 위해 정차하는 것이 귀찮은 거지요.

그래서 파란불이 켜져서 사람이 건너려 하는데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쌩하고 지나가는 차가 심심치 않게 있습니다. 5차선이나 되기 때문에 반대편으로 지나가는 거야 참을 수 있다고 쳐도, 바로 제가 건너려는 앞으로 지나가는 차를 볼 때는 무섭기도 합니다. 제가 지나자마자 바로 뒤로 쌩하게 차가 지나는 경우도 많고요. 그렇지만 할 수 있나요? 덩치도 크고 속도도 빠른 차가 주인인걸요.

또 이곳은 교차로라서 위쪽에서 내려오는 차들은 비보호 좌회전이어서 제가 파란불에 건너려고 할 때 좌회전을 하고 건너야 하거든요. 상식대로라면 사람이 먼저 건너고 차가 지나가야 하는데, 역시 차가 주인이기 때문에 상식은 간간히 무시됩니다. 그래서 좌회전 차가 있을 때는 저 긴장해야 합니다. 한 번은 파란불에 길을 건너려고 하는데 덩치가 커다란 레미콘 차량이 제 바로 옆으로 무섭게 지나가서 깜짝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의도적인 행동이었는데, ‘차가 기다리고 있는데 좆만한 게 빨리 건너지 않는다’고 겁을 준 거지요.

 

그런 일들을 몇 번 당하고 나면 무서워서 더 이상 신호를 기다리지 않게 됩니다. 주위를 살펴서 차가 없으면 신호에 상관없이 빨리 건너버리는 게 장땡입니다. 차가 있는데 신호만 믿고 괜히 깐죽거리다간 죽을 수도 있으니까요.

사람을 죽이는 방법 중에 가장 관대한 방법이 차를 이용하는 방법이라는 것들은 다 알고 계시죠? 차를 몰고 사람을 죽여도 돈으로 합의만 보면 구속도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죽어가는 사람들이 너무 흔한 게 현실이기도 하고요.

 

초반부터 제가 너무 무거운 얘기만 했나요? 기분을 잡쳤다면 미안하기는 한데요, 매번 긴장을 하면서 이곳을 건너야 하는 소심한 사람의 넋두리라고 이해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3

 

지금부터는 밭들만 있는 곳이라서 좀 편하게 산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주 긴장을 푸시면 안 됩니다. 넓지 않은 편도 1차선의 이 좁은 길로 5분에 한 대 씩 커다란 레미콘이나 덤프트럭들이 다니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밭들만 있어서 참 여유롭습니다. 오른쪽으로 있는 조그만 야산이 동네 이름을 따서 고내봉이라는 곳인데 이 옆으로 나있는 이 길로 가면 됩니다. 이곳은 경치가 비교적 좋은 편이라서 올레 코스도 이곳으로 이어집니다. 편하게 걸어보세요. 산책의 여유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잠시 여기에서 멈춰 보실래요?

야산을 끼고 도는 길이라서 약간 오르막인데 이곳이 여기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곳입니다.

왼쪽을 보면 저 아래로 제주의 아름다운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그 주변으로 마을이 고즈넉하게 들어 앉아 있는 것이 보이죠?

앞쪽을 보세요. 크고 작은 밭들이 편안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바둑판처럼 정확하게 구분돼 있지는 않지만, 검은 돌담으로 둘러싸인 밭들이 어지럽지 않게 이런저런 작물들을 키우면서 이어져 있습니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보세요. 한라산이 보이죠? 저기 보이는 저곳이 백록담입니다. 주변이 하얀걸 보면 아직 눈이 많이 쌓여 있나 봅니다.

이곳에 서 있으면 이렇게 바다와 밭과 산을 병풍처럼 쭉 둘러볼 수 있습니다.

저희 밭도 저 앞에 있어서 매일 이 경치를 보는데 전혀 질리지가 않습니다.

밭일을 하다가 잠시 쉬면서 바다와 한라산을 바라보면 가슴이 시원해집니다.

 

앗! 조심하세요.

제가 미리 얘기했죠? 5분에 한 대 씩 저런 덩치 큰 차들이 좁은 이 길을 속도로 줄이지 않고 저렇게 지나갑니다.

여유롭게 경치만을 즐기기에는 이런 아쉬움이 있습니다.

어쩌겠어요. 차가 주인인 세상인데...

 

 

4

 

이제 고내봉으로 올라가볼까요?

동네에 있는 그저 그런 야산이라서 뛰어난 경관이 있는 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곳이 있어서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높지는 않지만 산은 산이라서 조금 숨이 찰 겁니다.

한라산 주변으로 크고 작은 오름들이 널려 있는데 이곳도 그런 오름 중의 하나입니다.

경치가 별로라서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는 곳인데, 오래간만에 삼림욕한다고 생각하시고 걸어보세요.

 

휴~ 조금 숨도 차고 땀도 나네요.

여기가 정상은 아닌데 정상에 가봐야 나무로 둘러싸여서 볼 것도 없고 송신탑만 있어서 별로 거든요.

여기 의자가 있는데 앉을까요?

 

이 옆이 공동묘지라서 1년에 한 번 벌초하러 오는 정도인데 이곳에 오면 참 편안해집니다.

원래 묘지가 주는 분위기가 그래서 그런 것도 있지만, 저 앞으로 보이는 경치가 더 편안하게 만들어주거든요.

여기서는 조금 전에 봤던 아름다운 경치는 없습니다.

눈 쌓인 백록담도 안 보이고, 푸른 바다도 보이지 않거든요.

하지만 저렇게 완만하게 늘어진 한라산의 자락이 보여요.

한국에서 제일 높은 산이라고 으스대지 않으면서 제주도를 품고 있는 큰 산이라는 여유로움을 보여준다고 할까요.

지리산이나 설악산 같은 깊고 울창한 이미지와 완전히 다르지요.

그리고 띄엄띄엄 널려있는 저 오름들을 보세요.

어머니 품속에 안겨있는 아이들 같은 느낌이 들지 않으세요?

옆에 있는 무덤들과 저 앞에 널려 있는 오름들을 같이 보다보면 묘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요.

 

조금 전에 봤던 멋있는 경치와 비교해보면 어떤 느낌이 드실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보는 한라산의 느낌이 좋은 것은 여유로움과 포근함만이 아닙니다.

아까는 그저 아름다운 경치만이 눈에 들어오잖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한라산과 오름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름들 사이사이에 들어서 있는 마을들

마을들을 이어주는 도로들

그 중간 중간 펼쳐져 있는 밭들이 다 보입니다.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지요.

 

제 삶이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경치가 좋습니다.

뛰어나게 아름다운 곳도 싫지는 않지만, 왠지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점도 있거든요.

하지만 멋들어지지는 않지만, 이렇게 서로 어울려 있는 모습 속에서는 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이곳을 가장 좋아합니다.

 

여기서 노래 하나 들어볼래요?

여기 mp3플레이어가 있는데 같이 들어봐요.

시와라는 가수의 ‘랄랄라’라는 노랩니다.

 

 

여기 앉아서

좀 전에 있었던 자리를 본다

 

아, 묘한 기분

저기에 있었던 내가 보인다

 

저 하늘, 저 나무, 저 그늘, 저 계단

여기서도 저기서도 똑같아 보일까

 

저 하늘, 저 나무, 저 그늘, 저 계단

저기에 있었을 땐 볼 수 없었지

 

흐르는 물소리 떨어지는 꽃잎

발소리 내는 것도 조심스러워

흐르는 물속에 세상이 비치네

내 얼굴도 미춰볼까

 

 

5

 

이 길은 고내봉을 끼고 좀 전에 우리가 왔던 길과 반대쪽 길입니다.

이쪽도 경치는 별로이기는 하지만 차에 대한 걱정 없이 아주 편하게 밭들 사이를 걸어갈 수 있는 길입니다.

관광이 아닌 산책으로서는 최고의 길이지요.

 

요즘은 겨울 작물을 마무리 하는 시기라서 밭들이 조금 어지럽습니다.

여기저기 듬성듬성 나있는 것들은 쪽파입니다. 이 동네는 쪽파 재배를 많이 하는데 올 겨울에는 쪽파 시세가 별로였습니다. 비교적 따뜻한 겨울이어서 쪽파가 너무 많이 출하됐기 때문이죠. 그래서 아직도 저렇게 쪽파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겁니다. 그래도 작업은 해야 하기 때문에 중간 중간 괜찮은 것들로 골라서 작업을 하고 있고, 나머지는 씨로 만들어서 여름이나 다음 겨울에 다시 수확을 합니다.

저기 어지럽게 버려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밭들은 브로콜리입니다. 브로콜리는 12월이나 1월 한참 추울 때 수확하는데 그때 어려서 수확하지 못한 것들은 지금 저렇게 자라서 풍성한 꽃다발처럼 보입니다.

저기 양배추 밭은 뒤늦게 수확을 하고 있군요.

거의 비어있는 무밭에는 중간 중간 무들이 남아 있습니다. 올해 겨울무가 너무 많이 재배돼서 산지폐기문제 때문에 시끄러웠는데...

여기 정리되지 않은 잔디처럼 자라있는 것은 맥주보리입니다. 옛날에는 보리 농사도 많이 지었다고 그러는데, 요즘에는 보리 시세가 별로라서 보리 농사를 거의 하지 않거든요.

여기 쭉쭉 뻗어 있는 것들은 마늘인데, 마늘은 다른 작물과 달리 1년 농사라서 5월쯤에 수확을 합니다.

여기 유채꽃처럼 보이는 노란꽃이 보이시죠? 이건 유채꽃이 아니라 배추에서 자란 동지라고 합니다. 어머니 얘기로는 옛날에는 동지로 김치도 담가 먹고 그랬다는데 요즘은 그냥 둔다고 합니다.

유채는 조금 지나서 피는데 옛날과 달리 농사로 재배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관광지 경관용으로 길거리에 심어놓는 것뿐입니다.

우리 동네를 지나다보니까 붉은 백합이랑 하얀 목련이 막 꽃이 피기 시작했던데, 아직은 꽃들이 피려면 조금 있어야 하나 봅니다.l

 

아~ 저기 보세요.

밭담 위로 개나리가 있는데, 꽃망울이 막 올라오고 있어요.

초록색 사이로 노란색이 비치는 게 너무 앙증맞기도 하고, 싱싱해 보이기도 하네요.

꽃을 막 피우기 직전의 생동감이 이런 건가 봅니다.

다음 주쯤 되면 개나리도 피기 시작하겠군요.

개나리의 저런 모습을 보니까 정말 기분이 상쾌해지는군요.

 

기분 좋은데 제가 노래 하나 부를까요? 히히히

가끔 산책을 하면서 혼자 흥얼거려보는 노랜데 한 번 들어보세요.

 

음~ 음~

 

 

세상에 태어나

생의 먼 길을

쉼 없이 걸어갈 때

인간에게서 한없이 소중한

참된 삶이란 무엇인가

 

조국에 바친 청춘이던가

나를 위한 안락이던가

동지들이여 생각해보라

참된 삶이란 무엇인가

 

 

조끔 쑥스럽네요.

비장한 기운이 팍팍 느껴지기는 하지만 뒷부분 가사보다는 앞부분 가사가 마음에 들어서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특히 ‘생의 먼 길을 쉼 없이 걸어갈 때’라는 가사가 많은 걸 생각하게 합니다. 오래 걸어온 삶인 거 같은데, 이제 겨우 반 정도 걸어왔으니 말입니다. 히히히

 

 

6

 

이제 좀 피곤이 느껴지는데 여기 밭담에 앉아서 잠시 쉴까요?

물도 좀 마시고, 초콜릿도 하나 먹어야겠습니다.

 

봄 햇살이 참 따뜻하네요.

바람이 살며시 불어오는데, 이제는 춥다는 느낌보다는 시원하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정말 오래간만에의 산책인데 편안하고 좋습니다.

 

예전에 나치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얘기를 넣어놓은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생존자’라는 제목의 책이었는데, 그 책은 다른 나치수용소 생존자들의 경험담과 달리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영웅담이나 인간승리를 다룬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행동과 심리를 차분하게 분석하는 책이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런저런 경험들을 얘기하는 중에 한 사람이 이런 얘기를 합니다.

 

“집단 강제수용소의 사람들은 모두가 누군가를 잃은 사람들이었다. 모두 침묵 속에서 슬픔을 참고 있었다. 누구나 타인의 눈물을 이해했지만, 동정하지는 않았다. 불행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불행을 동정하지도 않으며, 다른 사람의 재난에 동요하지도 않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두 여인의 짧은 대화를 소개합니다.

 

“왜 울고 있어?”

나는 더 심하게 흐느껴 울었다.

“정말이지, 왜 울고 있는 거야? 우리는 모두 함께 있는데, 그리고 모두가 똑같이 심하게 당하고 있는데 말이야.”

 

요즘 문든 이 얘기가 생각났습니다.

며칠 전에 부모님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요즘 좀 힘들거든요.

지난 번 방송에서 그에 대한 얘기도 했었지만...

그런데 부모님이 크게 다치신 것도 아닌데 혼자만 힘들다고 징징 짜는 꼴이었거든요.

나만 특별히 힘들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한이 없는데, 주위를 둘러보면 그 정도의 힘겨움은 대부분 갖고 살아가는 것이기도 하고...

힘들지 않은 건 아니지만, 유독 나만 더 힘든 것도 아니거든요.

 

너무 큰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은 조용히 그 상처를 쓰다듬는 법인데

아직 내공이 모자란 저는 수없이 징징거리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내공이라는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도 아니고

나이가 든다고 자연스럽게 쌓이는 것도 아니라면

이렇게 징징거리는 것도 내공을 쌓은 과정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 대신 “나만 왜 이러지...”라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주변에 더 한 사람들도 많은데, 그들이 보면 우습잖아요.

 

쉰다고 하면서 잠깐 무거운 얘기를 해버렸군요. 히히히

다시 움직여볼까요?

 

 

7

 

드디어 바다에 도착했습니다.

여기는 우리 옆 동네인데 이쪽 동네에서는 바다 풍경이 가장 멋있습니다.

멋있게 해안산책로까지 있어서 10여 분 정도 해안산책을 할 수 있기도 합니다.

 

여기 낡은 벤치가 있는데 잠시 앉을까요?

휴~ 세 시간 정도 걸었더니 다리가 뻐근하네요.

 

오늘은 날씨도 참 좋고 바람도 거의 없어서 바다가 잔잔합니다.

이게 제주의 삼색 바다입니다.

검은 현무암과 하얀 모래, 그리고 쪽빛 바다이지요.

외국은 나가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바다를 보지 못했습니다.

여름이면 세 가지 색깔이 제대로 어우러진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아쉽지만 그런 대로 괜찮지 않으세요?

 

여기서 이렇게 바다를 보고 있으면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시원해집니다.

어릴 때는 이 바다가 세상의 끝이어서 많이 답답했거든요.

섬에서 자란 사람들은 그런 기분을 이해할 거예요.

그런데 이제는 이 바다가 세상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요.

그래서 편안하고 시원하게 느껴지는 거겠죠.

아~ 좋다!

 

여기서 노래 하나 더 들어볼래요?

제가 부르는 건 아니고요, mp3로 하나 더 들어보죠.

예전에 방송에서 한 번 들려드렸던 노랜데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그 노래가 가장 어울릴 것 같아서 한 번 더 들어볼까 합니다.

이상은이 부른 ‘바다여’라는 노랩니다.

 

 

바다여 바다여

작디작은 내 맘의 상처

그대의 앞에선 작디작은 물거품이네

 

오랜 옛날 한 청년이 배를 타고 흘러흘러

작은 섬, 남쪽의 나라에 와서 살았다네

그 바다에 지금 그대와 함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늘은 가장 빛나는 파란 보석

 

바다여 바다여

크디크던 내 맘의 상처

그대의 앞에선 작디작은 물거품이네

 

하늘이여 하늘이여

작디작은 내 꿈도 이젠

그대의 앞에선 반짝반짝 별 하나 되네

 

세상을 바꾸려고도 해보았고 사람들도 도와주며

세상이 가르쳐 주는 대로 살기 싫어 떠났다네

땅에 떨어진 씨앗이 죽어서 더욱 큰 꿈으로 자라나

고운 열매와 붉은 꽃이

 

우... 세상을 바꿀 수 없는 건 알고 있겠지

우... 새벽 4시의 편의점에서 우는 그대여

우... 그대의 사랑으로 세상은 1mm 쯤

우... 아름다워졌을 거야 그러니 괜찮아

 

바다여 바다여

크디크던 내 맘의 상처

그대의 앞에선 작디작은 물거품이네

 

하늘이여 하늘이여

작디작은 내 꿈도 이젠

그대의 앞에선 반짝반짝 별 하나 되네

 

친구여 친구여

우리가 녹아버린 시간

돌아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영원 속에 녹았을 뿐

 

이름 모를 꽃과 새들이 있는 먼 먼 남쪽

그는 또렷한 눈매의 별과 함께

영원히 살아가네

 

오늘 산책이 어떠셨나요?

저 혼자 너무 떠들었던 건 아니겠죠?

오래간만에 이렇게 같이 산책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자, 이제 헤어져야겠군요.

다시 서로의 지옥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잘 버티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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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송에도 누군가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방송에 대한 의견도 좋고

전하고 싶은 얘기도 좋고

광고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도 됩니다.

아니면 쓸데없는 얘기 주절거려도 되고요. ㅋㅋㅋ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문을 열어 놓고 있겠습니다.

 

성민이 mk102938@hanmail.net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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