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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05
1
내가 죽고 난 다음에 내 무덤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와서 그리워하고 울고 할지 그런 게 중요하죠. 그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니까.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내가 죽고 나서 날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느냐가 문제지. 그래서 강의 나가면 나는 항상 물어봐요. 당신이 죽고 나면 당신을 위해 울어줄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냐고.
박산호씨의 인터뷰집 ‘죽음을 인터뷰하다’ 중에서 홍성남 신부와의 인터뷰 중의 한 부분입니다.
음... 내가 죽고 난 다음에 내 무덤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와서 그리워하고 울고 할까요?
가끔 저의 마지막을 생각해보곤 하는데
가장 현실적인 모습은 허름한 요양원에서 찾는 이 없이 살다가 조용히 죽어가는 겁니다.
제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릴 사람도 별로 없을 겁니다.
그때까지 동생들이 살아있다면 동생들에게 제 부고가 전해져서 동생들이 제 시신을 처리해주겠지요.
조카들은 무덤덤하게 제 영정 앞에서 절을 하는 것으로 끝날 테고
혹시나 요양원에서 저를 위해주신 분이 계신다면 그분 정도가 제 마지막을 안타까워해주실지 모릅니다.
그리고는 조용히 사라져가겠죠.
저의 마지막 모습을 상상하다보면
이렇게 조용히 사라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살아생전에 번잡한 인간관계들을 정리해놓으면
제 삶의 마지막이 ‘버림받아 쓸쓸하게 맞이하는 최후’가 아니라 ‘나름 열심히 살다가 서서히 잊혀져 조용히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생을 마치면 장례식도 하지 않고 무덤도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저를 자연 속에 살포시 놓아줬으면 좋겠습니다.
그곳에서 저를 그리워하며 울거나 그러지 말고
각자의 남아 있은 삶을 열심히 살아가길 바랄뿐이죠.
2
태풍이 올라온다는 소식에 잠시 긴장했습니다.
다행히 태풍은 중국 쪽으로 빠졌고
이곳에는 검은 먹구름이 잔득 끼었습니다.
무섭게 내리쬐던 태양을 구름이 가려서 한결 살만해졌지만
높은 습도 때문에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일기예보를 보니 정말 오래간만에 비소식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일기예보에서는 비소식이 하루 뒤로 밀려있었고
그 다음날 일기예보에서는 비소식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사막에서 간절하게 물을 찾다가 저 멀리 오아시스가 보였는데
가까이 다가갔더니 신기루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처럼 허무하더군요.
여기보다 가뭄이 더 심한 동쪽지역에는 그나마 비소식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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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일어나 하루 일과를 시작하려는데
하늘이 붉게 물들어있더군요.
새벽노을은 비가 올 징조여서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져봤지만
일기예보에는 여전히 비소식이 없었고
날씨는 후덥지근하기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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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돼서 편안하게 쉬고 있는데
창밖에 불이 난 것처럼 온통 붉더군요.
깜짝 놀라서 밖으로 나와 봤더니
새벽노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붉은 노을이 넓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모습이 비로 이어지길 빌었지만
일기예보에는 여전히 비소식이 없었습니다.
![]()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다시 하루를 시작하려는데
창밖으로 미세한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밖을 봤더니
세상에나, 세상에나, 비가 오는 거였습니다.
가을비처럼 추적추적 내리는 것이 시원치는 않았지만
한 달 만에 내리는 비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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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오전에 잠시 내리다 그쳤고
내린 양도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애타는 땅과 식물들에게는 소중한 단비가 됐습니다.
오래간만에 비를 맞은 깻잎이 활기차게 이파리를 펼쳤고
힘없이 수그리고 있던 잡초들도 특유의 왕성한 생명력을 뽐냈습니다.
일기예보를 보니 며칠 후에 다시 비소식이 있더군요.
아직 폭염의 기세가 꺾이지는 않았고
후덥지근한 날씨가 좀 더 이어질지도 모르고
일기예보가 또 빗나갈지도 모르지만
이 여름의 폭염을 견딜 힘이 조금은 생겼습니다.
3
아주 찔끔이지만 비가 내리고 난 후
날씨가 꽤 선선해졌습니다.
갑자기 한 여름에서 초가을로 건너 뛰어버린 것 같았지만
일기예보를 보니 다시 폭염이 돌아온다고 하네요.
선선해진 날씨 덕분에 하우스에서 일하는 시간이 조금 늘었습니다.
덕분에 밀려있는 일들을 열심히 하느라 바빠졌습니다.
바쁘게 일을 하고나면 몸이 뻐근해서 오후의 휴식이 더 달콤해집니다.
그 달콤함을 느끼며 책을 읽는데, 시 하나가 제 마음으로 들어오더군요.
그 시가 여러분의 마음에도 가 닿을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 방송 마치겠습니다.
정원사
- 메리 올리버
나는 충분히 살았을까?
나는 충분히 사랑했을까?
올바른 행동에 대해 충분히 고심한 후에
결론에 이르렀을까?
나는 충분히 감사하며 행복을 누렸을까?
나는 우아하게 고독을 견뎠을까?
나는 그런 말을 해, 아니 어쩌면
그냥 생각만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
사실, 난 생각이 너무 많은 것 같아.
그러곤 정원으로 걸어 들어가지.
단순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정원사가
그의 자식들인 장미를 돌보고 있는.
(정밀아의 ‘초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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