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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라디오 '내가 우스워 보이냐?' (11회)

 

읽는 라디오 ‘내가 우스워 보이냐?’ (11회)

 

 

 

1

 

며칠 전에 ‘디어 한나’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흔하게 볼 수 없는 영국영화였는데, 무거운 삶의 얘기를 기교 부리지 않고 차분하게 해나가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영국의 어느 빈민가에서 살아가는 조셉이라는 노인이 있었습니다.

가난하게 혼자 살아가는 그 남자는 도박을 하고 나서 돈을 잃자 자기 분을 이기지 못해서 소중하게 기르던 개를 발로 차서 죽여 버릴 정도로 성질도 더럽습니다.

그렇게 밑바닥에서 거칠게 살아가던 조셉이 어느 날 누군가에게 쫓기다가 급하게 어느 옷가게로 들어가서 숨게 됩니다.

30대 정도로 보이는 옷가게 여주인(그 여자의 이름이 한나입니다)은 잠시 당황하다가 차분하게 조셉을 살피면서 진정시키려고 합니다.

한나의 따뜻한 배려에도 조셉은 거칠게 댓구를 하지만, 한나는 그가 매우 불안해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신앙심이 깊었던 한나는 “제가 기도해 드릴까요?” 얘기를 하고는 조셉 곁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에게 노인을 보살펴 달라고 진심 어린 기도를 합니다.

가만히 한나의 기도를 듣던 조셉은 조용히 눈물을 흘립니다.

하지만 그런 호의에 대해 조셉은 다시 배부른 것들의 위선적인 호의라고 거칠게 쏘아붙이면서 그 가게를 나와 버립니다.

 

다음날 조셉은 다시 그 가게를 찾아가서 전날 자신이 거칠게 얘기했던 것에 대해 사과를 하고, 한나는 미소를 지으면서 그의 사과를 받아줍니다.

그렇게 잠시 서로 얘기를 나누지만 한나의 따뜻한 배려가 좋으면서도 불편해진 조셉은 마음에 없는 거친 말을 해서 한나를 울게 만들어버리지요.

그러다가 동네 불량배들에게 호되게 얻어맞은 조셉은 다시 한나의 가게 앞에 쓰러지게 되고, 조셉을 발견한 한나는 조셉을 다시 위로해줍니다.

그런 한나의 위로와 배려에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조셉은 거친 말과 행동을 이어가면서 한나를 또 불편하게 합니다.

밑바닥에서 온갖 상처를 받아가면서 거칠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은 그랬습니다.

 

불안하고 거친 영혼을 따뜻하고 진정어린 마음으로 쓰다듬어줬던 한나는 부유한 동네에서 깊은 신앙심을 갖고 남편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겉모습과 달리 한나는 남편의 병적인 학대와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지요.

남들은 알지 못하는 그런 이중적인 삶을 살아가면서도 착하고 밝게 살아가려고 했던 한나는 자신의 아픔을 오직 가슴 속에만 묻어두고 용서와 화해로 모든 이들을 품으려 노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아픔을 가슴 속에 묻고 있었기 때문에 노인의 불안한 삶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한나의 아픔을 알지 못했던 조셉이 점점 한나에게 의지하게 되던 어느 날 남편이 두 사람이 다정하게 있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병적인 의심을 하게 됩니다.

그날 밤 남편의 폭력이 무서운 한나는 혼자서 술을 진탕 마시고 “오해하지 말아요. 제발 때리지 말아줘요”라고 애원을 하지만, 착하게 생긴 남편은 그런 그녀를 가만두지 않습니다.

그런 남편 앞에서 처음으로 거칠게 대항했던 한나에게 남편은 무자비한 폭행과 강간으로 대응합니다.

 

도망치듯 집을 빠져나온 한나는 조셉을 찾아가서 도와달라고 얘기합니다.

그제야 여자의 아픔을 알게 된 조셉은 그동안 자신에게 베풀었던 호의에 대한 보답으로 한나를 자신의 집에서 보살펴줍니다.

하지만 자신의 힘겨움과 과거의 말 못할 상처를 갖고 있던 조셉은 한나를 오래 보살펴주지 못하고 돌려보내려고 합니다.

자신의 고통을 견디면서 살아가는 것도 힘든데, 남의 고통까지 받아 안아야 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던 거지요.

 

그리고 이야기는 어떤 사건과 결합하면서 극적으로 전개됩니다.

현재 이 영화가 개봉하고 있기 때문에 이후 얘기는 더 이상 하지 않겠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그 노인의 삶이 내 삶과 너무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 더러운 성질까지 닮았더군요.

그래서 영화를 보는 동안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나중에 영화가 다 끝나고 나서도 흘러나오는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 급하게 화장실로 달려가야 했습니다.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삶이 어쩌면 그렇게도 비슷한지...

 

‘디어 한나’에 나왔던 노래 하나 듣겠습니다.

‘Sing All Our Cares Away’라는 노래인데요, 제가 번역할 능력이 되지 않아서 영어로 그대로 듣겠습니다.

 

 

Mary loves the Grouse

Hides the bottles round the house

Watches chat shows and the soaps

Broken Hearted but she copes

 

Michaels out of work

Feels Hes sinking in the murk

Hes unshaven and a mess

Finds it hard some days to dress

 

Stevie smashed the delph

Cos he can't express himself

Hes consumed by rage

Like his father at his age

 

Ritas little child

Has a lovely little smile

But this means nothing to her father

Cos hes never even seen her

 

But we sing

sing all our cares away

And we live

to fight another day

 

But we sing

sing all our cares away

And we live

to fight another day

 

We grow strong

From it all

We grow strong

or we fall

We grow strong

 

 

2

 

‘디어 한나’를 보고 났더니 작년에 봤던 ‘세상의 모든 계절’이라는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우연치 않게 ‘세상의 모든 계절’도 영국영화였습니다.

 

영국의 어느 도시 변두리에 살고 있는 메리는 가난하고 외로운 중년의 여자였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지원하는 어느 기관에서 일하고 있던 메리는 그곳에서 상담사로 일하고 있던 제리라는 여자와 친하게 지냅니다.

도시 외곽에서 텃밭도 가꾸면서 가족과 함께 단란한 중산층의 삶을 살아가는 제리는 가난하고 외로운 메리를 따뜻하게 대해줍니다.

가까운 이들과 함께 모여서 벌이는 가벼운 파티에도 메리를 초대해주고, 힘겨운 삶에 지쳐있는 메리를 따뜻하게 안아주면서 위로합니다.

그런 제리와 그의 가족들의 따뜻한 배려에 감동하고, 그들의 편안하고 행복한 삶이 부러운 메리는 어떻게든 그들의 삶 속에 들어가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좀 과하게 싶을 정도로 섹시한 옷을 입고 파티에 나타나기도 하고, 제리의 아들에게도 필요 이상의 애정을 보이기도 하고, 자신의 외롭고 힘든 삶을 강조하면서 동정심을 일으키려고도 합니다.

하지만 제리의 가족들은 메리의 과도한 친밀감의 표현에 불편해 하면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메리를 위로해줄 뿐입니다.

 

어느 날 제리의 아들이 여자친구를 집으로 초대합니다.

그 자리에 연락도 없이 메리가 찾아와서 끼게 됩니다.

제리의 아들은 여자친구에게 “엄마의 회사 동료인데, 좀 독특한 사람이야”라고 메리에 대해 설명합니다.

가족들의 행복한 자리에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끼어 앉은 메리는 그들의 얘기에 끼어들려고 하지만 그들은 메리를 그들의 대화에 끼워주지 않습니다.

제리 가족들의 행복 대화 속에 소외된 채 어색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메리의 표정을 비춰주면서 영화는 끝납니다.

 

어디에도 끼지 못한 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들의 얘기를 듣고만 있는 메리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너무 외로워서 행복한 이들과 같이 어울리면 살고 싶지만, 사회성이 떨어지는 메리는 푼수 같은 행동만 하면서 밀려나기만 할 뿐입니다.

그런 메리의 행동을 보면서 많이 속상했습니다.

그게 제 모습이었거든요.

그런 푼수가 되지 않으려고 날카로운 고슴도치가 된 것이 ‘디어 한나’의 조셉입니다.

누군가와 어울리고 싶지만 분위기 파악 못하는 푼수가 되거나, 그걸 애써 포기하고 강한 척 해야 하는 모습이 가난하고 외롭고 상처받은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인 것입니다.

 

재미있는 영화들도 많은데

나는 왜 하필 이런 영화를 봐서

속상해 하고 질질 짜고 그러는지...

 

 

3

 

독실한 신자였던 한나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그 모든 고통을 참고 살아갑니다.

남편이 한나를 폭행한 다음날 울면서 사과하면 한나 역시 울면서 남편을 안아줍니다.

가식이 아니라 진정으로, 그렇게 남편이 회개하고 반성하면서 변하기를 원했던 거지요.

그것이 하나님의 가르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남편이 한나가 조셉과 같이 있는 장면을 보고 “있다가 집에서 보자”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가자 한나는 너무 무서웠습니다.

무서움과 힘겨움에 지친 한나는 가게에 걸려있던 예수님 사진을 향해 “뭘 봐!”라면서 고함을 지르고 맙니다.

힘들 때마다 하나님을 믿고 기도를 하면서 버텨왔는데, 그런 한나를 보면서 침묵만 하시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원망스러웠던 것이지요.

그 마음이 어떤 건지 잘 알기 때문에 그 장면에서 또 울컥 했습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신을 위한 진심어린 한나의 기도에 눈물을 흘렸던 조셉은 한나의 사랑에 위안을 받습니다.

그래서 조셉은 한나를 찾았던 것입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조셉은 한나에서 쓴 편지에서 “나를 위해 미소를 지어준 유일한 사람이었기에 당신을 찾았지만, 당신의 고통까지 알고 싶지는 않았다”고 솔직히 예기합니다.

그런 조셉은 한나를 뿌리치지 못하고 손을 잡아주면서 영화는 끝납니다.

조셉이 힘들 때 한나가 기댈 수 있는 하나님이 돼 주었던 것처럼, 한나가 고통에 몸부림칠 때 조셉이 한나의 하나님이 돼 주었던 것입니다.

세상의 가장 낮은 곳으로 와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는 하나님은 그렇게 상처받은 모습으로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조셉처럼 저도 신을 믿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나의 고통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를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나의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나의 하나님이 나만큼 고통스럽게 발버둥치고 있다면

그 고통을 감당하는 것이 많이 힘들겠지만

내가 그의 하나님이 되어주어야겠지요.

 

김민기의 ‘금관의 예수’ 듣겠습니다.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곤욕의 거리

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무얼 찾아 헤매이나 저 눈 저 텅 빈 얼굴들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아 거리여 외로운 거리여

거절당한 손길들의 아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어디에 있을까 천국은 어디에

구름 저 편 푸른 숲에 아 거기에 있을까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여기에

우리와 함께,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4

 

‘디어 한나’에서 이 방송의 이름이 나오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허름한 술집에서 혼자 술을 먹던 조셉이 시비를 거는 동네 양아치를 몰아붙이면서 “내가 우스워 보이냐? 응! 우스워보여?”라고 고함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장면에서 살짝 미소를 지어봤습니다.

이 방송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우스워 보이냐?”라는 말은 삶의 밑바닥에서 끝임 없이 허우적거리면서 살아가는 허접한 인간들이 참고 참고 또 참고 살아가다가 한 번 성질을 내면서 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방송에서 그런 얘기들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롤러코스터의 ‘힘을 내요, 미스터 김’과 자우림의 ‘그래 제길, 나 이렇게 살았어’라는 노래로 시작한 이 방송은 바로 그런 이들을 위한 방송입니다.

 

작년 연말에 시작한 이 방송이 벌써 10회를 넘겨서 5개월이 됐습니다.

처음에는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 친다는 심정으로 무작정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저처럼 외롭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얘기해보자는 마음이었지요.

하지만 지난 5개월 동안 인터넷에 올린 방송에 짧은 댓글이 2개 달리고, 교도소에 있는 한 분이 편지를 보내주셨던 것이 이 방송에 대한 반응의 전부였습니다.

용기를 내서 다시 세상을 향해 손을 내밀어 보았지만, 세상은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었지요.

그런데도 저는 계속 방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 손 좀 잡아주세요”라는 심정으로 5개월 동안 방송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얘기를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한나의 고통을 알게 되고 난 후 “저 좀 안아주세요”라고 울먹이는 한나를 아무 말 없이 바라보기만 했던 조셉의 마음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방송을 그만두고 싶지도 않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제가 힘들면 힘든 사연을 얘기할 것이고

쉽게 이뤄질 수 없는 소원을 짜증나게 반복해서 얘기할 것이고

허접한 하소연들도 푼수처럼 계속 얘기할 겁니다.

이 방송을 통해서 그런 얘기를 계속 들으면 많이 불편하시겠지요.

그런데도 침묵 속에 저의 허접한 기도를 계속 들어주시는 분이 있다면

그 분이 저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제 기도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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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송에도 누군가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방송에 대한 의견도 좋고

전하고 싶은 얘기도 좋고

광고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도 됩니다.

아니면 쓸데없는 얘기 주절거려도 되고요. ㅋㅋㅋ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문을 열어 놓고 있겠습니다.

 

성민이 mk102938@hanmail.net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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