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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폴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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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하자 중국의 어느 산골의 풍경이 펼쳐지면서 할머니의 노랫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얘기라는 사실 자체만으로 아무것도 아닌 단순한 도입부에서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감정을 달래며 영화에 집중하는데, 일본 정부청사 앞에서 발언을 하는 할머니와 무표정하게 지나가는 사람들, 그리고 길건너에서 “더러운 창녀들!”이라며 욕설을 퍼붓는 극우단체 회원들의 모습들을 지켜보다 또 울컥하고 말았다.
분노가 일어날 틈도 주지않고 슬픔이 몰려왔다.
그렇게 영화를 보는 내내 ‘울컥하고 감정을 정리하고’를 반복해야 했다.

 

한국의 할머니는 참 열심히 다니셨다.
약을 먹으면서 수요집회도 나가고, 일본도 가고, 중국도 가고, 미국도 갔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서 고향인 북이 아니라 아는 사람 없는 남으로 돌아와서 홀로 양아들을 키우며 살아왔던 할머니는 오직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죄’를 외친다.
필리핀의 할머니는 너무 밝으셨다.
피해자 할머니들과 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즐겁게 사시는 모습이 좋았다.
몇 년 전에 죽은 남편에게 과거를 얘기하지 못한 게 가슴에 맺혔고, 떨어져사는 아들에게 그 얘기를 해야 하는 것이 많이 고민스럽지만 밝은 모습을 잃지 않으셨다.
중국의 할머니는 쓸쓸해보였다.
마을 사람들은 과거를 알고 있지만 그저 쉬쉬하기만 할뿐이고, 아기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된 할머니는 느지막히 맞이한 양딸에 의지하면서도 홀로 고단한 몸을 달래며 살아갈뿐이다.
비슷한 고통을 겪었지만 그 고통을 이겨내는 방식에 따라 할머니들의 삶은 조금씩 달랐다.

 

한국의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의 정부청사 앞에서, 일본 대학생들 앞에서, 중국의 남북교류대회장 안에서, UN 회의장 안에서 한국의 할머니는 마이크만 잡으면
“13살 때 공장에서 일하게 해준다고 해서 데려갔는데”하면서 말을 시작한다.
똑같은 얘기를 무덤덤하게 매번 반복한다.
필리판의 할머니도, 중국의 할머니도 무덤덤하게 옛날 얘기하듯 말을 한다.
세월이 많이 흘러서 할머니들 가슴 속도 무덤덤해진 것이라면 좋으련만 필리핀 할머니의 한마디가 가슴을 후벼판다.
“손자가 있어서 손자를 돌볼 때는 다른 생각할 것 없이 바빠서 좋다. 그러다 조금 시간이 나면 13살 때 일이 다시 떠올라서 가슴이 답답해진다.”
13살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채 나이가 들어버린 할머니의 얘기를 듣고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느끼게됐다.

 

이 영화는 그냥 그런 영화였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한 치열한 투쟁과 진실게임도 별로 없고
할머니들의 고난의 역사와 삶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도 아니고
위안부문제에 대한 사회의 편견이나 무관심을 일깨우기 위한 것도 아니고
피해 여성의 자기 정체성 찾기와 같은 페미니즘 담론을 앞세운 것도 아니다.
그냥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죄’를 바라는 할머니들의 바램 그 자체를 담은 영화일뿐이었다.

 

6년의 기간을 여러 나라를 오가며 찍었으면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쌓였을 거고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오고갔을 것이며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그런데도 감독은
이야기를 진열하려하지 않았고
주장을 강하게 얘기하려 하지 않았고
감정을 자극하려하지 않았다.
제목 그대로 ‘사죄’를 원하는 할머니들의 마음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정대협이라는 단체의 틀에 머문채 이뤄진 작업이라 이런저런 아쉬움들이 보였지만
할머니들의 마음을 아주 조금 이해할 수 있는 영화였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 한 권, 영화 한 편 본적이 없었다.
그저 언론에서 얘기하는 단편적인 사실들로 역사를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무지와 무관심의 벽을 돌아보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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