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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5월의 마지막 날 선선한 저녘에

올해부터 부모님이 하시던 감귤농사를 맡아서 하게 됐습니다.
이것저것 배우면서 조심스럽게 해나가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유인과 전정을 하고 있습니다.
초짜가 나뭇가지를 유인하고 자르는 게 겁도 나고 힘들지만
해야할 일이기에 조심조심 해나가고 있습니다.


5시에 일어나서
명상도 하고, 간단한 운동도 하고, 밥도 먹고, 사랑이 산책도 시켜주면
8시가 좀 넘습니다.
그때부터 비닐하우스에 들어가서 나뭇가지와 씨름을 합니다.
6년이 되도록 제대로 손질하지 않은 나뭇가지는 천방지축입니다.
그런 나무를 살살 달래듯이 줄로 묶고, 톱질도 하고, 전정가위로 자르기도 합니다.
요즘은 열매가 막 달리기 시작하는 때라서 톱질을 하거나 전정을 할 때는 조마조마합니다.
라디오를 들으면서 나무와 씨름을 하다보면 시간은 후딱 흘러버립니다.
몇 그루 하지도 못했는데 점심시간이 되버리지요.
오후에는 더워서 작업을 못할 것 같기에 1시까지 쉬지 않고 달려갑니다.


약간의 뿌듯함과 조마조마한 마음을 동시에 느끼며 공구를 내려놓습니다.
샤워를 하고 점심을 먹고나면 살짝 피로가 다가오지요.
날씨도 덥고하니 냉수를 시원하게 들이키고 침대에 누워 tv를 봅니다.
그러다 눈이 스르르 감기면 30분 정도 오침을 즐기는 호사도 누리지요.


그렇게 여유로운 기간을 보내고
청소도 하고, 사랑이 산책도 시키고, 간단한 운동도 하고, 저녁식사 준비도 하다보면
어느새 저녁이 됩니다.


비교적 든든하게 저녁을 먹고는
주변에 심어놓은 작물들에 물을 줍니다.
수박과 단호박은 줄기를 황성하게 뻗었고,
참외랑 가지랑 오이랑 애호박은 아직도 어린 티를 벗어나지 못했고,
열무랑 시금치랑 쑥갓은 열심히 올라오고 있습니다.
물을 주며 매일매일 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는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하루 일을 다 끝내고나면
해가 조금씩 기울면서 마당에 길게 그늘이 집니다.
거기에 낡은 의자와 나무 상자가 놓여있습니다.
옆구리에 책을 끼고
오른손에는 따뜻한 녹차를 들고
왼손에는 노트북을 들고 마당에 나섭니다.


노트북으로 여유로운 음악을 들으면서
녹차를 한모금 마시며
책을 읽고 있으면
사랑이가 내옆으로 와서 쓰다듬어 달라고 머리를 들이댑니다.
한손으로 사랑이를 살살 쓰다듬어 주면
사랑이도 음악을 들으면서 선선한 저녁의 행복을 만끽합니다.


그렇게 30분에서 1시간 정도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는
방으로 들어와서 8시 뉴스를 보며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접하지요.
그러다 졸음이 몰려오면 9시쯤 달콤한 잠속으로 빠져듭니다.


세상에서 떠밀려온 난파선에는 찾는 이들이 없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여유롭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민중가수인 ‘아타우알파 유판키’가 부른 ‘달구지에 흔들리며’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원제는 ‘Los ejes de mi carreta’인데요
한 번 들어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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