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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발'자전거, 닫힌 학교를 뚫다

지난 5일 12시 30분경, 서울 금천구 독산고등학교에서는 청소년인권활동가들이 교내에서 두발자유와 청소년인권을 외치는 자전거시위가 기습적으로 벌어졌다.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서 기획한 “‘두발’ 자전거 School Attack”이라는 이름의 이 시위는 학생들의 제보, 신청을 받아 인권활동가들이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기습 방문하여 항의시위를 열고 해당학교 학생들이 호응하는 직접행동을 취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두발’ 자전거를 타고 ‘두발자유’를 외친다는 발상은 지난 5.14 청소년인권행동의날 행사 때 한 무리의 청소년들이 자전거를 타고 자발적인 두발자유 캠페인을 벌인 뒤 집회에 참가했던 경험에 착안한 것이다. 그 첫 대상이 된 독산고등학교는 올해부터 두발규제가 새로 생긴 곳이다. 제보한 학생에 따르면, 독산고에서는 학기 초에 여러 차례 강제이발이 이루어졌고, 5월부터는 두발단속에 걸린 학생들의 뒷머리와 옆머리를 뽑기도 했다고 한다.

‘두발’ 자전거 타고 '두발'자유를

점심시간이 절반가량 지났을 무렵, “두발자유 School Attack”이라고 적힌 깃발을 휘날리며 청소년인권활동가 7명은 4대의 자전거와 함께 독산고등학교 교문 안으로 들어갔다. 점심시간을 택한 것은 학생들이 건물 밖으로 가장 많이 나와 있는 때이기도 하고, 수업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두발자유’, ‘청소년인권’라는 글귀의 선전물로 꾸며진 자전거는 건물 주위와 운동장을 돌며 시위를 이어갔다. 한 명은 얼굴에 가면을 쓴 채 자전거 시위에 참여하였는데, 이는 학생들이 당당하게 얼굴을 드러내고 공개적으로 학교를 비판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건물 밖에 나와 있던 학생들은 “두발자유”가 적힌 깃발을 보자 “두발자유다!”, “우와~”라고 말하며 술렁이기 시작했다. 자전거가 건물 앞에 도착하자 건물 옥상에서는 두발자유의 정당성을 담은 전단지가 뿌려졌다. 이윽고 자유가 고픈 학생들이 여기저기서 몰려들기 시작했다. 시위대를 향해 “두발자유”를 함께 외치며 응원을 보내준 학생들도 있었다.

잠시 후 교사들이 나와 시위를 제지하기 시작했다. “당신들 뭐야?” “남의 학교에 기관장 허락없이 들어와서 무슨 짓이야?” “수업방해다”라며 고성을 질러댔다. 활동가들이 “저희가 여러분 수업을 방해했나요?”라고 학생들에게 되묻자 학생들은 “아니요”라며 호응해 주었고, “학교가 교장 선생님 허락을 맡아야만 들어올 수 있는 사유지입니까”라고 다시 묻자 역시 “아니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교사들의 제지에도 청소년인권활동가들은 모여 있던 학생들을 향해 “두발자유! 청소년인권!” 구호를 외쳤고, 모여 있던 학생들도 교사들이 나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구호를 따라 외쳤다. 학생들의 호응은 청소년인권활동가들에게 더욱 힘을 실어주었다. 그러자 독산고 교감은 직접 호응하는 학생들의 사진을 카메라로 찍으면서 들어가지 않으면 혼난 줄 알라고 윽박질렀다. 그래도 학생들이 흩어지지 않자, 교감은 학생들의 정강이까지 걷어차며 강제로 해산시켰다고 한다.

폐쇄성 깨고 학교를 공공의 공간으로

돌아가려는 청소년인권활동가들을 교사들이 강제로 막으면서, 시위는 이제 교사들과 청소년인권활동가들 사이의 언쟁으로 전환됐다. 교사들은 “당신들 주거침입이다”, “수업방해다”, “미리 연락도 없이 허락도 받지 않고 들어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고 거세게 항의했다. 그러더니 교문을 닫아걸고 경찰에 주거침입으로 신고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청소년인권활동가들은 “학교는 주거지나 사적 공간이 아니라 공공의 공간인 만큼, 학습권을 침해하거나 안전을 해치지 않는다면 누구나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 “학교는 교장의 허락을 맡고서야 드나들 수 있는 사적 공간이 아니”라며 강하게 맞받아쳤다. 학교 안에서 인권침해가 일어나고 있다면 인권침해가 일어나는 바로 그 현장에서 학생인권이라는 공공의 문제에 대해 누구나 의사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학교는 폐쇄된 공간, 사회 밖의 공간으로 숨어있으면서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들을 쉬쉬해 왔다. 폐쇄성이라는 장벽을 깨고 학교를 공공의 공간으로 바꾸는 것, 이것 역시 이번 자전거 학내 시위의 목표 가운데 하나였다.

교사들과 활동가들 사이의 대치는 30분이 넘게 계속되어 수업종이 울린 뒤에도 한참동안 실랑이가 벌어졌다. 도중에 불려나온 학생회장은 “우리 학교는 강제이발 없고 두발규제도 심하지 않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학생회장의 말을 반박하는 학생들의 증언은 아주 많다. 제보한 학생의 증언은 물론, 한 인터넷언론 기사에 달린 독산고 학생들의 덧글들도 학생회장의 말이 거짓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잠시 후 학교 측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도착하면서 약간의 긴장이 흘렀다. 하지만 경찰들도 이런 경우가 처음이어서인지 약간은 당황한 모습이었다. 경찰들은 문제의 소지는 있지만 학교를 딱히 주거지라고 볼 수는 없다면서 난감해했다. 경찰이 난감해하자 기세등등하던 교사들도 수그러드는 듯했다. 잠시 후 인권활동가들은 “다음번에 독산고를 방문할 때는 정식 면담 신청을 하고 오겠다. 면담 신청을 하고 오려는 이유는 오늘의 시위가 ‘절차’를 밟지 않은 부적절한 것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오늘은 학생들을 만나러 온 것이었고, 다음번엔 학교측에 우리 입장을 좀더 체계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공문을 보내겠다”는 의사를 전하고 교문 밖으로 무사히 나왔다.

‘School Attack'은 계속된다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는 “두발 자전거 School Attack”과 같은 기습 시위를 학교와 사회에 대한 충격요법이자 학생들의 행동과 저항을 이끌어내기 위한 촉매제로서 준비했다. 사실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두발규제나 체벌 등의 인권침해에 불만을 갖고 있더라도 직접적인 행동이 학교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갖지 못한다. 수동적인 삶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학교가 변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도 졸업할 때까지 버텨야 하는 일, 교육부나 교장 등 ‘위에 분들’이 바꿔줄 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설령 행동이 필요하다는 걸 알더라도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 때문에 쉽게 나서지 못한다. 그런 청소년들을 직접 찾아가 학내에서 시위를 벌임으로써 행동해야 할 용기를 북돋아주려는 것이 찾아가는 자전거 시위의 목적이다. 실제로 첫 번째 School Attack에서 학생들이 보여준 호응은 뜨거웠다. 시위를 끝내고 나올 때 체육시간인 듯 운동장에 나와 있던 학생들이 교사에게 “두발규제는 인권침해 아니냐.”라고 항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시위가 끝난 이후 학생들의 반응도 전반적으로 매우 좋았다는 전언이 있기도 했다.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는 오는 10일 서울의 몇몇 지역에서 ‘두발’자전거 순례를 기획하고 있고, 앞으로도 다른 학교들을 직접 찾아가는 “두발 자전거 School Attack”을 계속 이어나가려고 한다. 두발자유의 열기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 그리고 학생들이 직접 나서서 행동하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두발자전거는 두발자유를 위해 쉴 새 없이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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