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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황당했다. 이제는 희망이 보인다 - 해고방침에 맞서 투쟁하는 김정, 박진영 조합원

 

▲ 퇴근 선전전을 벌이고 있는 박진영 조합원(왼쪽)과 김정 조합원(오른쪽)

최근 남구청으로부터 계약해지 방침을 전달받고 투쟁을 벌이고 있는 ‘울산광역시 자치단체 비정규직 노동조합’ 김정 조합원과 박진영 조합원을 만나 투쟁을 결의하게 된 과정과 투쟁 상황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대학 동기이기도 한 두 조합원은 2004년 대학을 졸업한 후 박진영 조합원은 2005년 1월, 김정 조합원은 2005년 5월에 단기계약직으로 남구청 건축허가과에 입사하게 됐다.

두 조합원은 “대학을 졸업했지만 비정규직으로 밖에는 일자리가 없었다. 남구청에 들어올 때도 계약직으로 밖에 들어올 수가 없었다. 당분간 이곳에 다니면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고민하려고 했다”면서 대학 졸업 후의 불안정한 청년들의 심정을 밝혔다.

두 조합원은 남구 일원에 있는 주택들을 대상으로 불법 건축물 단속과 건축물 유지관리 및 점검 등의 일을 하고 있는데, 주로 외근업무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남구청 건축허가과에는 40여 명의 직원이 있는데, 이중 9명이 비정규직이고, 그중 8명은 모두 건축지도계에서 동일한 업무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같은 건축지도계에 있는 직원 중 정규직 공무원들은 주로 내근 업무를 하는 반면, 비정규직은 전원 외근 업무를 중심으로 일하고 있고, 간혹 9급 공무원 업무보조와 개인 심부름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최근에 계약해지 방침을 전달받게 된 과정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했더니 김정 조합원이 당시 상황을 차분히 설명했다.

“11월 4일 오전에 구청 총무과에서 일시사역담당자들을 소집해서 3년 미만 일시사역자들을 연말에 해고한다는 방침을 전달받았다. 오후에 건축허가과 담당자가 우리 과에 해당되는 4명을 불러서 ‘알고만 있으라’면서 조용히 방침을 얘기했다. 담당자 말에 의하면 건축허가과에는 3년 미만 일시사역자가 4명이 있는데, 연말에 모두 계약해지 하고, 내년에 2명만 공채로 새로 뽑는다는 것이었다. 더 황당한 것은 계약해지 되는 4명은 공채신청에서도 제외된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 참 황당했다.”

졸지에 해고된다는 통보를 전해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냐고 짓굳은 질문을 했더니 역시 담담하게 대답했다.

“솔직히 언젠가 그만 둘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는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일이 닥치니까 황당하고 멍했다. 내가 지금 다른 직장을 찾을 수 있을까 생각을 해보았지만 좀 암담했다.” (박진영 조합원)

“화가 났다. 자기들 입맛대로 가지고 놀다가 단물 빠져서 버려지는 느낌이었다. 이 길로 계속 가야하는지, 다른 일자리를 찾아봐야 하는지 고민이 되었다.” (김정 조합원)



해고방침을 전해들은 4명의 조합원은 막바로 노조 지부장을 찾아가 상황을 설명했고, 지부장이 사실여부를 알아본 결과 사실임이 확인됐다. 지부장은 노조 임원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조합원에게는 노조가 적극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다음날에는 노동조합 단합대회가 건축허가과 단합대회가 겹쳤는데, 계약해지 방침을 전해들은 조합원들은 노동조합 단합대회에 참석했다. 그렇게 노동조합에 참여하면서 좀 더 지켜보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휴일을 보내고 다시 출근한 7일 노동조합은 긴급히 남구지부 조합원 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간담회에는 근래에 보기 드물게 많은 조합원들이 참석해서 현안문제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계약해지 방침을 전달받은 4명의 조합원은 간담회 이후 노조 간부들과의 논의 자리에서 노조간부들의 강한 의지를 믿고 투쟁을 통해 돌파하기로 마음을 굳히게 된다.

특히, 김정 조합원과 박진영 조합원은 간담회 다음날인 8일 노조 운영위에 참석해서 노동조합과 함께 투쟁하겠다는 의사를 강하게 밝히고, 노동조합의 강력한 투쟁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에 노동조합은 각 지부별로 간담회를 벌이면서 상황을 공유하고, 남구청을 중심으로 강력한 투쟁을 결의하여 14일 남구청 앞에서 천막농성에 돌입하게 됐다.

투쟁을 벌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느냐고 물었더니 솔직한 얘기를 꺼내놓았다.

“투쟁을 하면서 든든하고, 뭔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느껴진다. 이전에 조합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오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부끄럽기는 하지만, 조합원들이 많이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김정 조합원)

“처음에는 사측 반응이 어떨까를 생각했는데, 간부들이 사측에서 관심을 보인다고 얘기하길래 희망이 보였다. 텐트를 치는 날 조합원이 많이 나와서 정말 고마웠다. 내가 직접 돌아다니면서 조합원들에게 동참을 호소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 (박진영 조합원)

울산 태생인 김정 조합원과 경주 모화 태생인 박진영 조합원은 다른 노동조합 활동들을 많이 지켜보면서 자랐다. 그래서 노동조합 활동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나름대로 생각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다른 노동조합들의 활동을 지켜보다가 막상 본인들이 직접 조합에 가입하고 투쟁에 나서면서 노동조합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물었다.

“나는 원래 주어진 조건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성격이다. 그런데 막상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면서 이렇게 투쟁을 하다보니까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권리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우리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최대한 동참할 것이고, 다른 동지들에게도 동참을 호소하겠다.” (박진영 조합원)

“그전에는 노사가 협력해서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야 하는데, 노동조합이 너무 투쟁위주로 하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내가 막상 조합에 가입하고 사측에서 노동자에 대하는 태도를 보니 투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투쟁을 해야만이 권리가 찾아진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투쟁할 것이다. 뭐든지 확실하게 할 것은 하겠다.” (김정 조합원)



이날 천막 농성장에는 50대의 나이 든 조합원과 이제 막 30대에 접어들고 투쟁에 나서고 있는 두 조합원들이 함께 어우러져 술자리를 가졌다.

1년이 채 안된 조합원이나 10여 년을 다닌 조합원이나 계약직이라는 신분에 있는 이들은 임금도 똑같고, 불안정한 노동조건도 똑같고, 하나의 노동조합에 가입해 있는 비정규직 조합원이라는 신분도 똑같다. 그래서 이들은 나이차이나 남녀구분 없이 어느 노동조합보다 동질감이 높고, 투쟁 속에서 동지로 끈끈히 뭉칠 수 있다.

비정규직이라는 불안정하고 열악한 신분은 이렇게 노동자들을 새롭게 묶어주고 있고 단련시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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