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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지났는데도...

10년이 지났는데도...

김용수

내가 '이화'에 들어온 지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1991년 11월 18일에 '이화다이아몬드'안에 있는 '진양방호'라는 용역회사에 용역 사원으로 입사했다. 사원번호 91165. 뒤에 붙은 사원번호 두 자리 중에 50번이 넘으면 용역사원이다. 그러니까 요즘 말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이화'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수물두 살 어린 나이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왜 있는지도 몰랐고 알 필요도 없었다. 그저 일 년을 넘게 일하면, 일 년에 한 번 정규직으로 채용되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말에 묵묵히 일만 했다.
조합원 총회 하는 날에는 조합원은 총회 끝나고 막걸리 마시고 우리는 그 시간에 현장에서 일을 했다. 조합원 교육하는 날에도 마찬가지다. 정식 직원은 이름표에 글자가 파란색이고 우리는 까만색이다. 일은 똑같이 하는데 정식 직원이 받는 수당도 못받고 상여금도 덜 받는다. 호봉 차이도 컸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정식 사원 채용 때 점수 높게 Q        KE아 저식 사원 되려고 눈치 보면서 하라는 대로 열심히 일했다.
드디어 1993년 봄. 재수가 좋아서인지 윗사람이 나를 잘 봐서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정식 사원이 됐다. 정식 사원 된 사람들이 기존의 정식 사원에게 한 턱씩 냈다.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사람들 회식비를 내는 것이 보통 일이었다. 부성 상사에게 선무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난 음료수를 백 개가 넘게 돌렸다. 그 때는 그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거지 똥구멍에서 콩나물을 빼 먹지...
1994년 봄에는 노조와 회사가 협상을 잘 해서인지 아니면 경가가 좋아서인지는 몰라도 모두 정식 사우너이 됐다. 신입 사원도 모두 정식 사원으로 뽑았다.
4년이 지난 98년에 IMF, 구조조정, 정리해고의 칼바람이 불었다. 우리 회사도 예외 없이 정리해고를 했다. 같이 일하던 동지들이 눈물을 흘리며 떠났고 우리는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송별회 하면서 같이 술 마시는 것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EDH지들이 떠난 자리는 다른 회사들처럼 슬며시 비정규직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마치 회사들끼리 짜기라도 한 것처럼. 회망퇴직과 자연감소로 조합원은 248명으로 줄었다. 한 때 잘나가던 시절에 500명 가까이 될 때를 비교하면 반 토막이다.
지금 우리 회사에는 일용직과 촉탁직 사원들이 80명쯤 있다. 지난해 단체협상 때 일 년에 두 번 비정규직을 정식 직원으로 채용하기로 했다. 지난 해에는 20명쯤 정식 사원이 됐는데 올해는 경기가 나쁘다는 이유로 미루더니 벌써 해를 넘기고 있다. 실습 나온 고교생, 군대 제대하고 막 입사한 사회 초년생, 아이 둘을 거느린 가장, 입사한 지 3년이 넘은 촉탁직 아줌마도 있다. 그 사람들은 오로지 정식 사원이 되려는 희망을 가지고 일하러 나온다. 그런데 회사는 그 희망을 주기 싫은 모양이다. 별도법인화, 아웃소싱, 소사장에로 정식 사원 목까지 보이지 않는 칼로 위협하고 있다. 제 코가 석 자라고, 자기 발등에 떨어진 불 때문에 비정규직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 답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주 5일제 근무에 미쳐 있다. '임금이 줄어드데' '연·월차가 줄면 안 되네' '돈이 없어서 놀지도 못하네' '그 많은 휴일에 뭐 하나?' 행복한 고민만 하고 비정규직 문제는 구호로만 떠들고 있다. 오죽하면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이 국회에 뛰어 들었을까?
다른 사람이 해결해 주리라고 믿지 않느다. 정규직이 풀어야 할 문제다. 정규직은 점점 줄고 비정규직은 전체 노동자 수의 반을 넘긴지 이미 오래다. 비정규 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우리는? 머지않아 비정규직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의 자식들까지도. 우리 자식들은 노동자 안 시킨다고? 천만에 말씀 만만에 콩떡이다. 지금 대학 나온 실업자가 비정규직으로 몰리고 있다. 지금 헤결하지 앟으면 나중에는 더 힘들 거라는 것은 다 알고 있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위험한 생각은 버리자. 그렇게 당한 노동조합 숫자가 한 둘이 아니다. 예외란 없다. 정신 차리자.
내가 녿오자가 된 지 10년이 지났는데 사상은 거꾸로 가고 있다.
전태일 열사가 가신 지 31년이 지났는데도...

*김용수 님은 이화디아몬드 수출생산부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이 글은 이화노보에 실린 글입니다.

- 월간 '작은 책' 2002년 1월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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