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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12
- 푸념.
페이스북을 떠돈다. 그러다가 지난 2021년 1월 26일 김희경 작가가 한겨레에 쓴 “들어보셨어요, 입양인의 말?”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80421.html ) 이 여러 곳에 퍼져가는 것을 본다.
글을 옮기는 이들 중 입양을 원초적 상처 관점에서 바라보는 사람들과 뿌리의 집 김도현 대표, 공익인권법인 공감의 소라미 변호사 등 일정 흐름에 함께 하는 사람들이 눈의 띈다.
고상만 인권운동가가 고양신문에 2021년 1월 28일에 쓴 그 사건이 불러낸 30년 전 기억 ‘입양’( http://www.mygoyang.com/news/articleView.html?idxno=62484 ) 이라는 글을 읽었다.
김희경 과 고상만 두 사람의 글에 대한 대중들의 접근성 차이가 아쉽다. 많은 사람들이 고상만 인권운동가의 글을 읽었으면 좋겠다.
고상만 인권운동가의 글을 읽다보니 1991년? 1992년? 너무 시간이 흘러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군을 제대하고, 한 동안 연을 맺었던 보육원이 떠오른다.
당시 나는 고상만 인권운동가처럼 뭔가를 들고 가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자원봉사 같은 것도 아니었다. 시간 되는 토요일, 남자아이들 방에서 보육원에 찾아온 손님들을 지켜보면서 큰 아이들과 함께 TV를 보거나, 잠을 자면서, 그렇게 아이들과 놀다가 나왔다. 어떤 녀석은 내게 그곳 출신이냐고 묻기도 했다.
시간은 흘러, 어느 순간 사는 것이 버거워, 보육원에 발을 내 딛지 못했고, 지금은 그저 머나 먼 과거 어느 한 순간의 이야기가 되었다.
고상만 인권운동가의 글을 읽으며 생각했다.
누구나 말을 하기는 쉽다. 하지만, 실행은 어렵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다. 이제는 몇 봉지가 아니라 박스로 과자를 사들고 가던 날이었다. 보육교사로부터 듣게 된 뜻밖의 소식. 심장병을 앓고 있던 그 아이가 입양이 결정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아니라 해외라는 것. 아마도 내 표정이 보육교사에게 그렇게 보였나보다. 너무나 슬프고 또 안타까웠다. 그때 보육교사가 농담처럼 던지며 내가 듣게 된 말. “그럼 선생님이 입양 하실래요?”]
어떤 이들은 해외에 입양된 사람들을 국가가 버렸다고 생각한다. 물론, 국내 아동을 해외로 입양 보낸 것에는 분명 국가가 그들에 대한 책임을 못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해외 입양인을 버렸다고 말 할 수 없다. 입양이 원가정을 깨는 행위가 아닌 것처럼, 국가가 해외 입양인을 버린 것이 아니다.
최근 16개월된 입양 아동의 사망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입양 부모들은 16개월된 입양 아동의 사망은 아동 학대에 의한 죽음이지 입양의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을 하고 있지만, 이와는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인트리라는 미혼모 단체가 있다.
나는 인트리가 다른 아동학대 사건과 16개월 입양 아동의 학대 사망 사건에 대한 접근이 많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인트리가 옮겨온 기사 하나를 살펴본다. 이 사건은 2년여간 갓난아기 시신을 냉장고에 보관하고, 두 아이를 쓰레기 더미에서 방임한 40대 여성과 관련된 내용이다. ( https://www.facebook.com/intree01/posts/677820206237082 )
[“(아동학대가 발생하면) 부모에게 교육·치료·돌봄 등을 지원한 뒤 아이를 돌려보내야 하는데, 무작정 돌려보낸 뒤 학대가 재발하면 원 가정 복귀는 절대 안 된다고만 하더라. 부모가 가장 바라는 건 아이와 함께 사는 것이다. 가정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인트리가 16개월된 입양 아동의 사망 사건이나, 다른 아동학대로 인한 사망 사건 모두 동일한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
나는 16개월된 입양 아동의 사망 사건을 접하고, 분노한 이들에게 이 사건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생각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전국입양가족연대 회원은 아니지만, 이번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는 가정이 필요한 아이들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아이들은 가정에서의 자라야 한다.
최근 전국입양가족연대가 입양 캠페인을 하면서 사용한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