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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혁명과 사회주의 [사회주의자 통신 1호]

리비아 혁명과 사회주의

 

“내전도 역시 전쟁이다. 계급투쟁을 인정하는 자는 내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내전이란 모든 계급사회에서의 계급투쟁이 자연스럽게, 어떤 조건 아래서는 불가피하게, 계속되어 발전하고 격화했던 결과이다. 모든 대혁명이 이를 확증해주고 있다. 내전을 부정하거나 혹은 잊어버리는 것은 극단적인 기회주의에 빠지는 것이며 사회주의를 단념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레닌,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군사강령」, 1916년)

 

 

사노위 서울지역위원회 김해화

 


 

내전

 

최근 리비아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 알다시피, 수도 트리폴리를 차지하기 위해 긴 해안 도시들을 따라 저항세력과 가다피 ‘정부군’ 사이의 내전이 격화되고 있다. 가다피의 군인들이 탱크와 전투기로 ‘무차별 폭격’을 가하면서 트리폴리 길목의 시르트와 석유 수출항인 라스 라누프를 탈환했다. 그리고 저항세력이 장악한 미스라타를 공격하고 있다. ; 아랍연맹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리비아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요구했다. ; 미국은 비행금지구역 설정이 ‘현명한 조치’인지 여전히 회의하고 있다. 미국은 이 공을 나토에 넘기고 “모든 비상대책”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한다(EU는 뒤늦게 저항세력의 ‘임시정부’인 국가평의회를 대화 파트너로 인정했다).

이처럼 리비아는 지금 내전으로 깊숙이 빠져들었다. 그리고 내전은 인용한 바와 같이 계급투쟁이 계속되고 발전되어 온 필연적 결과이다. 가다피는 오직 저항세력을 쳐부술 생각으로만 가득 차 반격을 꾀하고 전략 도시와 석유산업과 연결된 항구들을 장악하기 무차별 폭격을 가하고 있다. 리비아의 내전은 혁명이 잔인하기 그지없는 구체제를 분쇄하고 자유와 해방을 이룰 것인가 아니면 가다피의 군사들과 용병들의 발톱에 패배할 것인가를 다투는 결정적이고 중대한 국면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저항세력들의 생사를 가르는 문제이다!

 

 

혁명의 코스

 

리비아 혁명도 튀니지, 이집트 그리고 이전의 모든 혁명들의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첫 번째로 이 혁명은 빵과 자유를 위한 대중운동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이 운동은 쇠퇴의 막바지 그리고 수렁에 빠진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의 산물이기도 하다. 대령 가다피와 그 일가의 오랜 독재 체제 아래서 리비아 민중의 35%는 굶주림에, 30퍼센트는 실업의 고통 속에 시달리고 자유를 짓눌려왔다. 최근 언론에 알려진 트리폴리 아부 살렘 교도소에서 수감되었던 한 사람은 단지 개인적인 의견을 말한 이유로 끌려온 이들이 정식 기소나 재판 절차도 없이 구금된 이들이 수없이 많다고 하였다. 그는 45일 동안 매일 ‘규칙적인’ 구타에 시달리고 ‘모의 교수형(처형)’으로 심각한 정신적 외상에 시달렸다고 증언했다. 이 교도소에서는 1996년 처우 개선을 요구하던 재소자 1,200여명이 총살을 당했다.

둘째, 혁명적 투쟁이 발전과 격화의 필연적 과정으로 결정적인 국면인 내전 상황에 이르렀다. 가다피와 그의 일가 그리고 동맹자들은 구체제를 지키기 위한 집념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저항세력-곧 리비아의 민중들을 궤멸시켜내서라도 이를 이루고자 하고 있다. 이는 떠돌고 있는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로서 가다피의 동반자들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가다피를 내쫓아낸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리비아 민중에게 유일한 자유와 해방의 길은 구체제를 남김이 없이 일소하고 자신들의 힘으로 권력을 떠안는 것뿐이다! 자발적으로 무장한 인민들이 구체제의 군대 그리고 용병들과 격돌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평화적 이행의 환상을 ‘행동’으로 무너뜨려버리고 있다. 리비아 민중의 ‘저항폭력’은 불가피하게 새로운 권력의 탄생을 위한 ‘공세적 폭력’으로 나아갔다. 리비아혁명을 기존의 ‘색깔혁명’들과 유사한 것으로 그려내는 언론들과 진보주의자들은 명백한 이 진실에 눈을 감는 것이다. 이런 국면에서 비폭력 저항은 어떠한 희생도 치르지 않고 혁명을 진전시키겠다는 것은 또한 아무것도 얻지 않겠다는 것을 뜻한다.

셋째, 혁명적 대중투쟁의 지속과 발전은 이 투쟁의 지도적 기관이자 새로운 권력의 모태를 창출했다. 혁명적 투쟁의 발전은 ‘무정부 상황’이 아니라 ‘새로운 정부’를 낳았다. 그리고 내전은 구체제(정부)와 이 ‘새로운 정부’가 공존하는 ‘이중권력’ 상황이기도 하다. 가다피 체제를 몰아내고 저항세력이 장악한 지역에는 혁명(지역)위원회가 기존의 정부를 대신하고 있다. 그리고 이 혁명위원회는 구체제와 다른 방식으로 운영된다. 노동자위원회를 통한 주요 산업부문의 통제, 필요에 따른 생필품의 분배가 그리고 혁명을 방어하기 위한 대중의 자발적 무장이 들어섰다.

넷째,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정부’에는 서로 다른 이해를 지닌 ‘이질적’ 구성, ‘혼합체’를 이룬다. 벵가지에 기반을 둔 전국위원회(평의회) 곧, ‘임시정부’에는 혁명이 상승하면서 구체제로부터 떨어져 나온 이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워싱턴에 예속된, 제국주의와 친화적인 세력이다. 이들은 혁명의 결과 자신들의 지배권을 세우고 다시 제국주의와 거래하는 체제를 유지하려 할 것이고 그것은 다른 모든 혁명에서 보여준 것처럼 혁명을 유산시키는 길이 될 것이다. 리비아 민중이 참된 자유와 해방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이 혁명을 더욱 밀고 나가 그들 자신의, 대중의 수중에 권력을 움켜쥐는 것이어야 한다. 그들은 ‘임시정부’의 장벽을 뛰어넘고 진정한 혁명적 정부를 건설해야 한다. 이전의 모든 혁명들은 이러한 진실들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리비아혁명은 우리에게 혁명적 이행의 길들에 대해서 살아 있는 교과서가 되고 있다. 누구든지 혁명을 원한다면, 리비아혁명에서 배워야만 한다!

 

 

다른 점

 

그렇지만 리비아 혁명은 몇 가지 이유에서 튀니지와 이집트에서와 다르다. 리비아는 약 6백만이라는 적은 인구가 커다란 지역에 살고 있다. 인구의 50퍼센트 이상은 트리폴리와 그 주변 그리고 이와 가까운 자위야 등에 거주하고 그리고 동부의 벵가지와 튀브룩 그리고 더 적은 수인 베두인 유목 공동체는 광대한 사막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다. 리비아는 석유수출(하루 생산량 140~160여만 배럴, 혁명의 과정에서 이 생산량은 급감했다)로 얻어지는 금융(금리생활)국가이다. 그렇지만 그 부는 소수의 손에 집중되어 있다. 막대한 ‘오일머니’를 손에 쥐고 소수의 사람들과 일부 부족을 먹여 살리고 나머지 다수의 부분들을 착취하는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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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유지되어 왔다. 그리하여 가다피는 자신의 체제에 몇몇 부족을 강하게 묶어내고 나머지를 배제했다. 트리폴리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돈을 쏟아 부은 반면 동부의 나머지 지역은 굶주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 체제를 떠받는 군사력 곧 ‘혁명 위원회’는 전통적인 상비군이라기보다 가다피에게 충성을 맹세한 ‘청부업자들과 같다. 이 군사는 그의 아들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며, 정상적인 국가기구의 밖에서 비용이 지불되고 또한 훈련된 이들이다. 나아가 노동자계급은 주로 튀니지 등 외국에서 이주한 이들이다. 외국 노동자들은 조금이라도 문제를 일으키면 쉽게 추방할 수 있는 조건 때문에 저항에 참여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달리 가다피에 맞선 저항은 수도가 아니라 배제되고 따라서 증오와 적대심이 자라난 다른 도시들에서 시작되었다. 이는 혁명에 완전히 새로운 동학을 만들어냈다. 이집트혁명은 수도의 청년들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나일강 삼각주의 산업도시의 노동자계급으로 확산되었고 그 다음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저항세력들은 선거권을 포함하여 완전한 민주적 권리를 요구했고 이러한 정치적 투쟁과 혁명운동의 자연적이고 필수적인 과정으로 수도를 장악하는 길로 나아갔다. 그렇지만 리비아는 위와 같은 이유들 때문에 이러한 코스들이 가로막히고 체제를 결정적으로 분쇄하기 위한 내전으로 치달아야 했다. 트리폴리에서 대중시위는 매우 잔인하고 충성을 약속한 가다피의 무장군에 의해 짓눌렸다. 따라서 군사들이 결집한 수도에서 대중투쟁이 지속되는 과정을 통해 군대 내 동요와 위기를 불러일으키고 저항세력 쪽으로 돌아서는 일들이 매우 적었다. 그래서 리비아에서의 내전은 다른 어떤 혁명에서보다 치열하고 또는 유혈적이며 지속적으로 되었다. 다수가 이주노동자들이라는 점 때문에 파업과 총파업 등으로 이집트와 튀니지의 독재자들을 무너뜨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노동자계급의 역할을 리비아에서는 어렵게 되었다. 이는 저항세력과 (이주)노동자들과의 분열적 상황을 낳기도 하고, 노동자들 상당수가 고국으로 돌아가려거나 피난을 시도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하여 노동자계급이 이 혁명적 투쟁에서 긍정적 역할을 하고, 나아가 누가 국가를 통치할 것인가라는 결정적 문제에서 멀어지게 하고 있다. 이러한 혁명적 노동자계급의 결핍은 다른 혁명들과 다른 핵심 문제이다. 리비아 저항세력들은 혁명의 승리를 위해서 이 (이주) 노동자계급을 튼튼히 묶어세워내야 할 필수 과제에 직면해 있다.

대령 가다피 체제

이제 1969년 9월 자신의 지도 아래 이뤄진 무혈 쿠데타로, 부패하고 미 제국주의에 예속된 이드리스 왕정을 물러나게 한 가다피 체제는 내리막길로 가고 있다. 그가 비무장 저항자들을 향해 ‘무차별 폭격’을 가한 공습과 고삐 풀린 무장 용병들을 풀어놓음으로 혁명의 단계는 내전 국면에 이르렀다.

베두인을 배경으로 27살의 대령 가다피는 가말 압델 나세르 정권, 타락한 군주인 파로우크 왕에 맞서 구데타를 일으킨 나세르로부터 강한 영향력을 받은 세대였다. 나세르의 수에즈운하 국유화, 서방 제국주의에 대한 그의 적대적 성격, 그리고 그의 범-아랍주의와 연대의 호소는 그에게 강력한 매력을 안겨주었다. 리비아는 지정학적으로 제국주의에 예속되어 왔다. 그렇지만 이 나라에서 부르주아지들은 민족주의가 아니라 이러한 제국주의와 이해를 같이하고 이를 계급지배의 토대로 삼았다. 리비아는 1911-1943년까지 이탈리아의 식민지 지배 아래서 파시스트들에 의해 말 그대로 절반이 굶주리고 학살당했다.

가다피 체제는 하피즈 알-아사드 시리아정부나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정부처럼 1960년대 바스주의(아랍민족주의)운동 분파들에 의해 수행된 쿠데타로 탄생하여 스스로를 혁명적이라거나 “사회주의” 상표를 내걸고 이스라엘 및 미국과 맞섰다.

이런 경험과 역사 때문에 리비아 대중의 광범위한 반제국주의 정서는 가다피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그는 권력을 장악하고 휠러스 공군기지(트리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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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비행장)에서 미군의 추방과 미국 정유회사의 국유화, 이집트, 시리아 그리고 튀니지 등 범아랍 연합을 밀어붙이고 이러한 시도들은 대중적 지지를 낳았다. 반면 가다피는 최근 몇 년 동안, 특히 2003년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서방 제국주의는 금수조치를 해제한 이래 서방 제국주의에 더욱 유연한 태도를 취하고 더욱 많이 의존하고, 자기네 나라의 석유와 무기들을 거래하는 체제를 유지해왔다. 최근 가다피는 오바마 행정부와 7천 700만 달러에 이르는 군용차량을 거래하려다가 혁명이 발발하면서 무산되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다(프레시안, 2011. 3. 7., 인터넷). 미국 국무부 대변인이 뒤늦게 “리비아가 인권 문제에서 진전을 보일 때까지 치명상을 가할 수 있는” 무기수출 가능성을 논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뒤늦게 말했다. 그러면 혁명 이전에 그들이 판매한 무기는 리비아 민중에게 치명상을 가하지 않았는가! 가다피는 자신의 체제를 “사회주의 인민 리비아 아랍 자마히리야”라고 선언하고 “직접민주주의”에 기초했다고 선언했지만, 강력하고 잔인한 독재를 유지하면서 모든 정치적 반대파들과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운동에 대한 무자비한 억압을 해왔다. 어떠한 파업과 시위도 금지되었고 감옥에는 정치적 억류자들로 넘쳐났다. 그리고 이에 맞선 저항과 혁명은 이들의 ‘아랍 민족주의’ 깃발에 새겨진 억압 체제를 무너뜨리는 길로 갈 것이다. 따라서 혁명이 더욱 확고해질수록 민족주의도 붕괴할 것이다. 한겨레신문 따위는 물론 시오니즘에 맞선 이데올로기는 아니지만 “아랍국가들의 현실을 극복해 민주주의를 이루려는 민중들의 연대”로서 “범아랍주의는 아랍 민중들 사이에서 여전히 강한 소망으로 남아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랍 민중들의 연대는 민족주의를 통하지 않고 리비아에서 대령 가다피 체제를 그리고 다른 나라들에서 오랜 독재 체제를 완전히 분쇄하고 공동의 해방사회를 구성하려는 운동들 속에서만 가능하다.

피로 물든 제국주의에 혁명의 운명을 맡길 수 없다!

미국 오바마 정부는 매우 적대적인 환경에서 미국 군대가 심대한 손상을 입은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 또는 이라크 시나리오 때문에 겁을 집어먹고 있다. 지금 그들은 개입의 공을 나토로 떠넘겼다. 이는 러시아가 안전보장이사회가 선택하는 어떠한 행동계획이든 거부할 것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반면 영국과 프랑스는 리비아 석유에 커다란 이익을 걸고 비행금지구역 설정에 대해 어느 정도 집념을 보이고 있다. 벵가지의 전국평의회는 가다피 전투기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당하고 나서 희생을 치르지 않고서 트리폴리로 나아가고 싶어하는 듯하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자신들을 지원하는 누구든지 포스트-가다피 체제 아래서 보상받게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서방 제국주의가 손길을 뻗치기를 바란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자신들의 손을 피로 물들여온 제국주의에 다시 약탈의 기회를 제공해줄 위험이 명백함에도 말이다. 이 점에서 오바마의 국방장관 로버트 게이츠가 진실을 말해주었다. “솔직히 카드를 내보이자면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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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금지구역[설정]은 [리비아의] 방공진지를 파괴하기 위한 공격의 시작이다. 비행금지금역 설정을 통해서 할 수 있는 건 그것이다.”, “리비아에 전투기들을 날려 보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친구들을 “쏴 죽이게 될 것”인데 이는 출발점일 뿐이다. 곧 이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보아왔던 것처럼 리비아가 혁명이 아니라 전쟁으로 이끌리게 될 것임을 예고해준다. 제국주의는 결코 자유를 위한 “인도주의적 개입”을 하지 않을 것이다. 저항세력이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바라고 또 이를 밀어붙인다면 제국주의 장악력을 높여내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는 것이며, 제국주의의 직접적인 개입 근거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제국주의에 의한 어떠한 ‘지원’도 제국주의 세력의 수중에 더 많은 것들을 쥐어주는 반면 투쟁하고 있는 저항세력들은 가지고 있던 것마저 잃는 상황을 낳게 될 것이다. 제국주의자들은 리비아 민중의 자유와 해방이 아니라 북아프리카 지대에서 가장 풍부한 비축량을 지닌 석유와 거기로부터 뿜어져 나올 이윤에 침을 흘리고 있다.

물론, 리비아 저항세력이 반혁명을 분쇄하고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국제주의에 기초한 지원과 연대가 당연히 필요하다. 리비아 저항세력들은 리비아혁명이 리비아 민중들 자신의 것이고, 오직 그들에게 한정된 것이기를 원했다. 어떤 점에서 그들은 리비아혁명이 리비아 한 나라의 것일 뿐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옳게도 서방의 어떠한 지원도 거부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는 서방의 지원이나 원조하는 것이 그들에게 타협하기를 바라고 따라서 내전이라는 현재 국면, 상황 속에서는 민중들을 가다피의 학살에 내맡기고 혁명의 잔인한 유산을 낳을 뿐이라는 점에서 당연히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리비아 혁명은 리비아 민중의 것만이 아니다. 리비아 혁명은 전 세계 노동자계급과 피억압 인민 대중 모두의 혁명이다. 리비아 혁명의 승리는 또한 우리 모두의 승리이다. 그리고 그 승리를 항구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들에서 혁명이 뒤따라야 한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제국주의자들의 ‘인도주의적 개입’이나 지원이 아니라 국제주의에 기초한 혁명적 연대,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연대와 지원이 필요하다. 한국에서도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자계급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리비아혁명을 지원하기 위한 행동을 펼쳐나가야 한다.

 

 

21세기 사회주의의 허상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는 가다피의 잔혹한 독재 체제를 비난하기를 거부하였다. 그리고 비무장 저항자들에 대한 대량학살에 대해서도 침묵을 지켰다. 전 세계 민중들에게 너무나 분명한 사실조차 그는 정보가 없다는 이유로 침묵했다. “리비아에 관해서 거짓캠페인들이 떠돌아다니고 있다”, “나는 그를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오랜 친구인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은 겁쟁이나 하는 짓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도대체 누가 겁쟁이고 비겁자인가? 실은 혁명이 대륙을 건너 자신을 건드리게 될까봐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그는 명백한 겁쟁이다. 쿠바의 카스트로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지난 2월 13일 ‘이집트의 혁명적 반란’이라는 논평에서 이집트 민중들의 시위에 대해서 지지를 보냈다. 그것은 무바라크 정부가 친미적이라는 이유이다. 반면, 리비아 혁명에 대해서는 차베스와 마찬가지로 “전세계에 뉴스가 넘치는 상황에서 진실과 거짓을 판별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감히 말하기를 회피했다. 가다피가 ‘반미주의자’라는 생각에서 그랬을지 모르지만 이미 가다피는 친미, 친제국주의자로 돌아선 것을 그가 모르는 것일까? 더욱이 리비아혁명은 친제국주의 체제와 정부를 낳을 가능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오히려 철저한 변혁의 완수와 승리는 오히려 제국주의를 또한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리비아혁명을 둘러싼 그들의 태도와 행동은 이들 나라의 “21세기 사회주의”가 얼마나 커다란 허위인지 잘 보여주었다. 또한 이러한 “21세기 사회주의”를 슬로건이나 이념, 지향을 따르는 진보주의자 또는 ‘사회주의자’들의 심각한 오류도 잘 보여주었다. 이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이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회피하거나 심지어 차베스와 카스트로를 옹호하기도 한다. 이는 가다피에게 ‘인권상’

특집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제국주의자들의 ‘인도주의적 개입’이나 지원이 아니라 국제주의에 기초한 혁명적 연대,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연대와 지원이 필요하다. 한국에서도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자계급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리비아혁명을 지원하기 위한 행동을 펼쳐나가야 한다.”11

을 수상하면서 인권과 자유를 신장시켰다는 전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의 말처럼 치욕스러운 것이다.

차베스는 “그의 친구” 가다피에게 전화를 걸어 저항세력과 중재를 위한 “우호적 국가(우방)” 연합을 친절히 제안하기도 하였다. 가다피의 못난 아들들과 그의 도살자 동료들은 심지어 가다피가 카라카스의 은신처로 도망을 치는 한이 있더라도 중재를 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대신에 무차별 공습과 폭격 그리고 즉결 사형으로 리비아 민중들이 궤멸되더라도 혁명을 끝장내고 싶어 한다. 이러한 상황이 내전을 더욱 격화시켜내고 있다.

차베스와 카스트로, 이란의 마흐무드 아메디네야드, 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베 그리고 리비아의 가다피는 사이비 “반제국주의”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가다피는 지난 10년 동안 미국과 프랑스, 영국의 치마폭에 놀아나면서 반제국주의자인 양 보여지기 위해 매우 우스꽝스런 모습들을 연출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 나라들이 한동안 제국주의에 맞서고 또 그들의 표적이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어떤 ‘혁명적 체제’를 방어하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들은 자기 인민들을 착취해온 바탕 위에 선 체제를 유지하고자 할 뿐이었고 심지어 제국주의에 제대로 맞설 능력과 의지도 갖추지 않았으며 가다피가 보여준 것처럼 제국주의와 실제로 적대하지도 않았다.

우고 차베스는 “새로운” 세계 노동자운동의 지도자의 옷을 걸쳐 입고 그와 정반대의 모습들을 보여줬다. 베네수엘라는 어떠한 의미에서도 “사회주의” 나라가 아니다. 이를테면, 베네수엘라의 사회적 불평도는 20세기 이른바 ‘사회주의(국가자본주의)’ 나라들보다 훨씬 더 크며 토지개혁은 강력하게 추진되기는 했지만 지주와 소작농들과의 관계를 변화시키기는커녕 지주들이 고용한 총잡이들이 토지개혁의 지지자들을 암살하는 것을 소극적으로 막는 것도 실패했다(제임스 페트라스,「역사를 통해 본 라틴 아메리카의 21세기 사회주의」, 『실천』, 2010년 9월호). 차베스는 작년 한 해 동안 그는 제5인터내셔널 건설을 호소하고, 그리고 나서 아무런 회의도 소집하지 않으면서 시간을 낭비했다. 그리고 베네수엘라에서 “우회전”의 특징들을 더욱 많이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의 21세기 사회주의는 대령 가다피의 야만적 체제와 리비아에서 오래 동안 인민들을 억압해온 ‘혁명적 위원회’에 대해서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았다. 그는 부르주아 반대파 정치가들과 협정을 맺고 그에게 맞선 쿠데타를 석방해준 반면, 2009년 체불임금에 맞서 2주 동안 파업을 이끈 노조연합의 루벤 곤잘레즈에게는 7년 6개월을 징역형을 선고했다. 곤잘레즈는 지금 1년 반 넘게 감옥에 갇혀 있다. 그렇다면 “21세기 사회주의”를 표어만이라도 차용하고 더 나아가 그것으로부터 강령과 대안을 이끌어 내거나 또는 베네수엘라와 쿠바로부터 무언가 “대안사회”를 배우고자 하는 것이 얼마나 환상이며 부질없는 것인지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리비아 혁명은 여러 점에서 혁명의 교과서가 되었다!

비행금지구역 설정도,

어떠한 제국주의 개입도 반대한다!

리비아 혁명을 위한

국제적 지지와 연대를

독재자 가다피와 그의 체제에 대한

완전한 타도를

리비아혁명이여 영원하라!

쿠바도 베네수엘라도

한국에서도 노동자혁명을

“21세기 사회주의”,

가짜 사회주의가 아니라

혁명적 사회주의를!

계속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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