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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정치신문 <사회주의자 통신>을 발간하며 [사회주의자 통신 1호]

온라인 정치신문 <사회주의자 통신>을 발간하며

 

사노위 서울지역위원회 대표 유승철

 


 

겨울은 길고도 추웠다.

살을 에는 추위에도, 봄의 시작을 알리는 아지랑이에도 자본가 계급의 착취와 억압, 무자비안 탄압은 더욱 거세고, 이에 맞서는 노동자 계급의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쌍용차, 현대차 비정규직, 한진중공업, 발레오공조, 재능, 대우조선, 국민체육진흥공단, 버스파업, 코아백화점...

 

2011년 4월 재보궐, 2012년 선거를 앞두고 개량주의 의회주의 세력들은 쌍용차 임무창 동지의 억울한 죽음마저도 득표수라는 산술적 합의 증대에만 기대어 이해하며 행동하고 있을 뿐이다. 그 냄새가 동네방네 아주 고약하다. 의회주의 세력들의 모든 행보에는 투쟁하는 노동자과 민중에게 아주 치명적인 독약이 들어 있다. 민주당과 함께 하는 연립정부 수립이라는 달콤한 독약이...

보신각 종 앞에도 죽음을 애도하는 추모의 대열 속에도 노동자 계급의 투쟁과 해방을 향해 외치는 복수의 날서고 목멘 목소리는 없다.

 

단지 무수한 종이짱돌(의회주의 세력들에게 던지는 투표-심삼정)을 던지자라는 기만적인 천연색 유희만이 난무할뿐....

“넋이라도 있건 없건, 연립정부 수립을 위하여!”

 

반면에 우리는 튀지니에서 이집트에서, 그리고 리비아 혁명에서 종이짱돌들은 그냥 종이일수만 있을 뿐, 계급적대의 끝자락까지 투쟁들을 밀어부쳐 나아갈 단단한 혁명적 돌팔매질을 결코 대신할 수 없음이 드러 나고 있다. 

단단한 혁명적 돌팔매질을 결코 대신할 수 없음이 드러나고 있다.

 

혁명의 기운이 다가온다. 공포에 떨게 하라! 종이짱돌을 두려워하라?

자본가계급과 그들의 국가가 행사하는 온갖 폭력과 탄압, 그리고 죽음에 맞설 투표를?

종이짱돌은 좌, 우로 휘날리고, 어불성설!, 감히 종이가 짱돌이라니!

혁명은 말한다. 종이짱돌을 던지자. 종이짱돌로 리비아 상공을 선회하는 전투기를 추락시키자. 말이나 되나?

 

이제, 봄날의 아지랑이를 걷어 치워야 한다. 희미하게 가리어져도 어김없이 불쑥 튀어 올라 꽃피우고 열매 맺는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새싹들의 뿌리가 튼튼하게 자리 잡아야 한다.

한 번의 거대한 승리로 수많은 패배로 얼룩진 계급착취의 역사를 단번에 갈아엎을 노동자 계급과 민중의 위대한 사회주의 혁명이 뿌리내릴 이 대지를 더욱 단단하게 밟아주자! 마른땅에는 단비가 더욱 고마울 뿐이다.

온갖 형태의 모든 폭력을 동원하지 않고서는 단 한순간도 살아남을 수 없는 계급착취의 끝자락이다. 자본가 계급의 얄팍한 숨통을 움켜쥘 노동자 계급의 거칠고 억센 손등이 가까이에 있다.

무엇이 그토록 가까이 다가온 노동자 계급의 혁명적 전진을 막아서고 있는가?

노동자 계급의 미래를 밝힐 촛불, 혁명적 투쟁의 지도부, 바로 혁명적 사회주의 노동자 정당이 없다. 인류의 이론적, 역사적 자산을 총화하고, 노동자 계급 투사들에게 투쟁의 방향과 지침을 더욱 선명하게 안내할 혁명강령이 없다.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 공동실천위원회는 2011년 5월 당추진위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노위 서울지역위원회의 인터넷 신문 <사회주의자 통신>은 당 추진위 건설을 향한 적극적인 실천의 일환으로 다음의 두 가지 주요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먼저 <사회주의자 통신> 발행자는 사노위 서울지역위원회이지만 내용에서는 전국적이고 정치적인 사회주의 정치선동을 전개할 것이다. 인터넷 신문의 특성상 종이신문이 가진 분량의 한계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모든 주제에 대해 심층적인 기사를 작성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토론과 노동계급적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은 동지들의 기고가 있다면 언제나 환영한다.

다음으로 사노위는 3개의 초초안을 가지고 강령토론을 진행하고 있으며, 혁명적 강령으로 통일시켜야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사회주의자 통신>은 사노위의 동지들이 어떠한 경향으로 통일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뜨거운 논쟁과 토론의 장을 만들 것이다. 이것은 현재 사노위에 참가하고 있는 동지들뿐만 아니라 사노위의 강령토론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자 투사들에 대한 기본적인 임무이기도 하다.

 

동지들!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추진위 건설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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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책자 <사회주의 지금 여기에!>에 대한 간략한 비평 [사회주의자 통신 1호]

소책자 <사회주의 지금 여기에!>에 대한 간략한 비평

 

사노위 서울지역위 임천용

 


 

기고의 배경

 

사노위에서는 사회주의를 대중적으로 소개하기 위해 “사회주의 지금 여기에!”라는 소책자를 3월 5일에 발간했고, 홈페이지 등에서 소개하고 있다.

사회주의의 대중적 소개는 보다 엄밀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그만큼 대중의 여론에 부딪혀 싸워야 하고, 그동안 자본가 국가가 사회주의에 대해 행했던 모든 악선동에 정면으로 맞서야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체로 대중의 여론이란 부르주아적 여론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의 대중화는 맑스를 비롯한 혁명가들의 이론적 성과와 국제 혁명투쟁의 고유한 경험을 계승하고 발전시킬 때에 가능하다. 사회주의는 과거의 좋은 것들은 취하고 부정적인 것은 버리는 취사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개념을 재구성하고 계급투쟁, 프롤레타리아 독재 등과 같은 “비대중적”인 언어들을 교정함으로써 대중들에게 접근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사회주의의 희화화를 낳게 된다.

이 소책자는 사회주의를 널리 알리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중요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아래에서는 소책자의 1부와 2부만 간략히 살펴볼 것인데, 소책자의 전체 기조는 사회주의의 혁명적 전통을 계승하는 방식이 아니라 비판적, 공상적 사회주의로 후퇴하고 있다. 소책자는 이미 하나의 정신으로 채워졌기 때문에 사소한 교정을 위한 목적은 여기에 있을 수 없다. 단지 독자들이 이 소책자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가 이 글의 주된 관심사다.

 

 

사회주의 - 유토피아적 공약인가 아니면 계급투쟁의 연속인가

 

사회주의 운동이 공상적 사회주의 또는 소부르주아 사회주의와 다른 이유는 노동자, 민중, 그리고 인류전체의 고통을 보지 못하고 묘사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지난 200여년의 역사만 보더라도 노동자계급의 처참한 상태를 이용하여 봉건적, 부르주아적, 소부르주아 세력들은 자신들의 계급적 처지에 맞는 “사회주의”를 고안하고 노동자들을 동원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노동자들의 비참한 처지는 21세기 자본주의하에서도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사회주의 필연성은 현재적 고통에 대한 묘사로부터가 아니라 현실의 계급투쟁 그 자체에 의해 불가피하다. 더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전 사회체제와는 달리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의 계급투쟁의 불가피성이라는 주요한 특징이 더해진다.

그런데 소책자 1부 “왜 사회주의인가”에서 고통에 대한 묘사는 있지만 계급투쟁은 철저히 은폐되어 있다. 왜 노동자계급이 혁명의 주체 세력인가가 빠져있다. 그 결과 결론은 “... 고통을 끝장낼 것인가? ... 자본주의를 넘어설 것인가?”와 같은 인간 이성의 판단의 문제로 치환되고 있다. 다음 2부는 “사회주의, 바로 이런 사회다”로 넘어가는데, 거기에서는 사회주의의 한가하고 목가적인 풍경이 주를 이룬다. “사회주의는 어떤 사회일까”라는 질문은 그것이 현실의 계급투쟁과 구체적 연관관계를 형성하지 못한다면 이상세계를 갈구하는 하나의 이념으로 전락하고 만다.

사회주의는 목가적인 평화로움 대신에 치열한 계급투쟁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 사회주의는 파리코뮨과 러시아 혁명, 그리고 유럽에서의 수많은 패배한 혁명들 속에서만 설명될 수 있다. 국가권력을 놓고서 벌어진 노동계급과 자본가계급의 피비린내 나는 전투 없이 어떻게 사회주의가 설명될 수 있는가? 사회주의는 노동자계급이 권력을 장악한 상태에서 자본주의의 유물과 자본주의로 회귀하려는 모든 시도에 대한 가차 없는 폭력과 문화적 설득을 통한 또 하나의 계급투쟁의 시대다. 자본주의의 국제적 연관고리가 심화되면 될수록 사회주의 혁명 이후에는 혁명의 방어뿐만 아니라 혁명의 국제적 확산을 위한 보다 고도한 투쟁 과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소책44

자의 사회주의에 대한 목가적인 환상으로는 절대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할 수 없다.

이 소책자는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적이고 건전한 정신의 소유자들에게 일시적인 지지를 받을 수는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가 가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와 억압의 심화는 그러한 조건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노동자계급은 착취와 억압을 직접 경험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악행을 묘사하는 사회주의자들보다 멀리 나아가게 된다. 따라서 소책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계급투쟁을 이해하고 과거 혁명운동의 경험들을 습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회주의자들의 보다 주요한 역할이 되어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을 기독교도들로부터 구분해주는 것의 하나는 현실의 고통으로부터 유토피아적 이상사회를 내거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이 계급투쟁 속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사회주의 사회조차도 계급투쟁의 연속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사회주의의 ABC에 대한 문제

 

이제 소책자의 기본적인 사상적 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두 가지만 간단히 다루고자 한다.

 

하나는 “노동자민중의 현재 소득과 미래소득에서 ... 자본을 살리기 위해 노동자민중이 수탈당한다”(9쪽)인데, 이는 생산의 영역에서 노동과 자본의 관계를 고찰하지 않으려는 부르조아 경제학의 방식으로 사태를 설명하는 것이다. 맑스주의 계급 구분은 개개인의 소득이나 직업으로 판단되지 않고, 생산수단과 맺고 있는 관계에서 확증된다.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의 통제하에서 일하면서 죽지 않을 정도의 임금을 받는다. 때문에 노동자들에게 “현재 소득과 미래 소득”이란 개념은 있을 수 없다. 만약 “소득”이 오타라 하더라도 노동자들에게 “미래 임금”이란 더더욱 있을 수 없다. 아직 생산과정에 투입되지 않은 미래의 노동에 대해 자본가들은 어떠한 대가도 지불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도 미래의 노동에 대해 미리 “수탈”당할 수 없다. 자본가는 생산과정에 투입된 노동에 대해서만 착취할 수 있다. 그리고 노동자의 임금은 자본가와의 투쟁 속에서만 결정될 수 있다. 그것이 노동력의 재생산비용이라 불리는 임금이 아닌가?

소책자에서 “소득”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 것은 사회주의자가 노동자계급만의 입장을 배타적으로 지지하고 혁명적인 세력으로 인정하기를 꺼리고, 자본주의로 인해 몰락해가고 있고 몰락할 수밖에 없는 소부르주아지를 대변하려는 열망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이는 소부르주아 진영중의 일부가 자신의 입장을 버리고 노동계급의 입장에 설 때에만 함께 할 수 있다는 혁명적 전통을 거부하는 것이다.

소책자에서 “노동자민중의 현재소득과 미래소득”에 대해서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민중이라 불리는 자영업자, 농민에게 존재하지 않는 임금에 대해서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계급과 소부르주아지 둘 다 억압받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노동자계급의 이해와 소부르주아지의 이해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결국에는 노동계급의 입장으로부터 멀어지고 반동적이거나 이루어질 수 없는 것에 대한 환상을 좇는 것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그것의 비근한 예가 기본소득제로 표현되는 소부르조아적 고안물이다. 모든 시민이 기본소득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소망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착취제제는 그것을 환상으로 만들어버린다. 자본가계급의 생산수단을 몰수하지 않고 자본가들이 노동착취로 축적한 자본의 일부를 다시 분배해달라는 요구가 가당키나 한 것인가? 기본소득제 구상은 어떤 계급이 생산을 장악하고 통제할 것인가를 둘러싼 전투가 아니라 자본주의는 영원하다는 전제 아래서 항상 패배한 전투의 결과에 대해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200년 전의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혁명적이었지만 지금 기본소득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지난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몽상가들이다. 사노위의 소책자가 몽상가들을 모집하기 위한 도구로 쓰이지 않고 사회주의자로서 대중들을 결집시킬 수 있도록 세밀한 주의가 필요하다.

다른 하나는 소책자 2부인데, 여기에서는 사회주의에 대해 “... 어떤 계급도 착취도 억압도 없다. 이게 바로 사회주의다!!”(20쪽),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발전의 조건이 되는 사회,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받는 사회,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이 분리되지 않는 ... 바로 이것이 사회주의다.”(21쪽)라고 하고 있다.

사실 사회주의에 대한 유토피아적 묘사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공산주의 기본원리를 사회주의로 둔갑시키는 것이 불가피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기본적 지식만 있었어도 사회주의에 대해 이렇게 서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소책자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기본 정신은 “사회주의 재구성”이 아니고서는 설명될 수 없다. 이것은 명백히 공상적 사회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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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피를 방어하라고? [사회주의자 통신 2호]

카다피를 방어하라고?

- 리비아혁명과 제국주의 

 

사노위 강령기초위원 양효식

 

 

민주당 같은 자본가 정치세력과 손잡고 민주대연합을 이루기 위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만신창이로 만드는 데 앞장 선 노동운동 내 소부르주아 민족주의 세력 일부는 현재 리비아 혁명에 반대하여 카다피를 방어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카다피가 반제국주의 투사이며, 반면 지금 카다피에 반대하여 떨쳐 일어선 리비아 봉기세력은 제국주의의 사주를 받고 있는 세력이라는 것이다.

 

‘반제 반미’가 최고의 잣대인 이들 소부르주아 민족주의 세력이 베네주엘라의 차베스와 마찬가지로 리비아 혁명에 반대하여 카다피 방어 입장을 취하는 것은 그들의 계급적· 정치적 본질로 볼 때 그리 낯선 것은 아니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전위당 건설을 주장하며 맑스-레닌주의를 자처하는 세력이 이러한 소부르주아 민족주의 세력에 놀아나서 리비아 봉기세력을 반동세력이라 지칭하고, 카다피를 방어해야 한다고 할 때 문제는 심각해진다. 전국노동자정치협회(이하 노정협)가 바로 그러한데, 이들은 “지금 리비아에 제국주의가 군사침공을 하고 있는 상황과 카다피 반군들의 반동주의적 성격들이 분명하게 폭로되어 정세가 일변한 상황에서는 카다피 방어노선을 견지하는 것이 올바른 입장”(노정신 73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리비아 봉기세력을 지지하고 차베스의 카다피 방어를 비판하는 남한의 사회주의자들을 “제국주의에 놀아나는 세력들”이라며, 다음과 같이 비난하고 있다.

 

“리비아의 ‘무장한 노동자 민중들’의 ‘무장’한 형태만 보았지 ‘무장’의 내용, 즉 무장반란군들의 계급구성, 요구, 목표는 외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제국주의의 이해에 따라 춤추게 되었다. 저들은 차베스는 물론이고 쿠바조차도 ‘가짜 사회주의’라고 말하면서 리비아 침공을 신중하게 반대하는 진보적 정권들마저도 규탄하고 있다.”

리비아 혁명은 튀니지, 이집트 혁명의 연속선상에 있는 혁명이다. 지금도 계속해서 예멘, 시리아, 바레인, 사우디 등지로 확산되고 있는 중동 혁명, 아랍권 혁명이라는 맥락 속에서 봐야 한다. 이 아랍권 혁명의 성격은 기본적으로 민주주의 혁명이다. 독재와 폭정에 맞서 민중들이 떨쳐 일어선 것이다. 또한 만연한 실업과 물가폭등 같은 경제위기의 고통으로 인한 불만이 폭발한 것이기도 하다.

 

리비아에서 민중들의 시위와 항쟁은, 이집트나 튀니지와는 달리 초장부터 카다피 정권의 무력 학살로 인해 내전으로 발전하였다. 무장반란군(반군)의 기층은 노동자, 청년층, 빈민들이며, 이들이 지금 카다피 정부군과 일선에서 대치 중에 있다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 한편 반군의 상층부에는 카다피 정권에서 넘어온 각료들과 장성들, 친서방 부르주아 정치인들도 존재하며 이들이 벵가지에 있는 과도국가평의회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리비아 혁명을 카다피 축출에 제한시키려 하고 있고, 서방의 개입을 적극 환영하고 있다. 반면 기층의 노동자와 혁명적 청년층은 카다피 타도를 넘어 보다 급진적인 사회경제적 변화를 갈망하고 있고 서방의 개입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이들의 요구와 목표 또한 이집트, 튀지니에서 거리에 나선 노동자 민중들이 외친 것과 동일한 ‘독재 타도’이며, “생존권 쟁취”라는 것도 이미 다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이집트, 튀니지를 넘어 예멘, 시리아, 바레인 등 아랍권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쟁과 그 본질적 성격에서 다르지 않다. 그러나 노정협은 리비아 반란의 상층부 인사들이 서방의 개입을 환영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이 반란이 민주주의혁명이 아니라 반동적 성격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87년 6월항쟁에서 상층부를 이룬 김영삼 김대중이 친미세력이라고 해서 6월항쟁이 민주주의혁명이 아닌 반동적 성격으로 바뀌는가?

 

맹목적으로 카다피를 지지하는 소부르주아 민족주의 세력들은리비아에서 봉기가 시작하자 봉기 세력에 대해 친제국주의 또는 친왕정주의라고 규정해버리고, 봉기의 맥락(중동혁명, 아랍혁명의 맥락)과 독재를 타도하고자 하는 민중들의 분명한 열망을 처음부터 무시하였다. 리비아의 봉기자들은 이데올로기적으로 물론 동질적이지 않다. 그러나 봉기자들이 이집트에서 타흐리르 광장을 점거한 사람들이나 벤알리를 퇴진시키기 위해 튜니스에서 시위를 벌인 사람들과 그 성격에서 다르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맑스-레닌주의를 자처하는 노정협이 소부르주아 민족주의 세력에게 놀아나서 아랍혁명의 일부로서의 리비아혁명을 부정하고 ‘서방 제국주의 대 반제투사 카다피’의 구도로 몰아가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수치스런 짓이다.

 

한편 우리는 차베스가 서방의 리비아 침공에 반대하는 것에 대해 문제 삼고 있지 않다. 반대는 당연하다. 그러나 서방 제국주의의 군사 개입 이전부터 이미 차베스는 리비아 봉기세력을 비난하고 카다피를 옹호했는데 우리는 여기서 차베스가 말하는 ‘21세기 사회주의’의 기만성을 지적했을 따름이다. 그러나 노정협은 이런 사실은 애써 못본 체 하고 교묘하게 ‘리비아 침공 반대’가 쟁점인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

 

서방 제국주의 세력이 리비아에 개입하는 목적은 그들이 내세우는 ‘인도주의’가 아니라 반군 내 노동자와 혁명적 청년층 대신에 상층부의 친서방 세력이 혁명을 주도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 리비아혁명이 급진화 하지 않도록 통제하고, 그리하여 리비아 내 서방측의 이권과 영향력을 보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그렇게 해서 리비아혁명이 사우디 등 친미 왕정국가들로 확산되는 것을 막고 중동 및 아랍권에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제국주의적 패권과 영향력이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반군의 상층부만이 아니라 기층의 노동자, 청년층도 한때 카다피의 반격으로 궤멸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서방의 개입에 반대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봉기세력 · 반군의 성격이 제국주의의 사주를 받는 세력이나 반동세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 리비아 혁명은 카다피는 물론이고 제국주의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있는 노동자, 청년층의 주도 아래 있다. 제국주의 개입에 반대하면서 계속해서 카다피 정부군과의 내전을 수행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한편 서방의 군사개입이 시작하자 카다피를 방어해야 한다며 모든 리비아 사람들이 반제국주의 공동전선을 결성해야 한다는 입장도 나오기 시작했다. 사노위 신문 8호에 실린 “제국주의에 맞서 리비아를 방어하자!” 기사도 그 중 하나인데, 이 기사는 리비아 노동자계급이 "카다피와 일시적으로 제휴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제국주의의 타겟이 된 자들(여기서는 카다피 정권)에 대해서는 노동자계급이 자동으로 편을 들어야 하나? 현재 놓여 있는 정치적 맥락이나 양측의 전쟁 목표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그러나 이 반제 공동전선의 목표가 무엇일 수 있겠는가? 카다피와 리비아 노동자들이 어떤 당면 목표를 공유한다는 것인가?

지금 리비아에서 결정적인 문제는 ‘제국주의자들이 누구를 공격하고 있는가?’가 아니다. ‘리비아 혁명이 카다피 체제를 타도하는 데 어떻게 성공할 수 있는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카다피와의 공동전선이란 ‘불가능’ 그 자체이다. 물론 리비아에 개입하고 있는 서방 나라들의 노동자 민중들은 개입과 공습에 반대하는 항의와 시위를 전개해야 한다.

북한, 이란에 대해 미 제국주의가 벌이는 전쟁위협 책동에 반대하여 북한, 이란을 방어하는 것과 리비아 상황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지금 리비아를 방어하라는 것은 지금 전개되고 있는 리비아 혁명을 멈춘다는 것을 뜻한다. 만약 리비아 혁명처럼 북한 혁명이나 이란 혁명이 전개되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제국주의에 맞서 북한 이란을 방어하라!’가 아니라 당연히 ‘북한 이란 혁명의 승리!’를 내걸어야 한다.

 

리비아 내에서 반군을 비롯한 민주주의 혁명세력이 제국주의자들에게 개입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주주의 혁명 세력이 제국주의자들의 반카다피 개입이 낳아 놓은 효과를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는 결코 반대하지 않는다. 제국주의 개입과 공습으로 인해 보안군과 용병대 등 카다피의 탄압기구가 약화되었다는 이유로 이 탄압기구에 대한 지금까지의 투쟁을 중지하고 카다피와 제휴해야 할 것인가? 리비아의 반란세력은 어떤 경로로부터 오는 것이든 그들이 거머쥘 수 있는 무기는 그 무엇이든 거머쥐어야 하며, 그럴 자격이 있다. 우리는 이를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넘어 우리의 전략은 이집트와 튀니지에 있는 형제자매들이 반란세력의 전투를 도울 수 있도록 사람과 무기로 지원에 나서도록 호소하는 것이다. 나아가 반란세력은 새로운 상황을 이용하여 전투를 밀고 나아가야 한다. 스스로를 보다 효과적인 전투 단위로 조직하여 빼앗긴 도시들을 다시 장악해야 한다.

 

카다피가 제국주의 침략 위협으로부터 트리폴리를 방어하기 위해 “무기고를 개방하여 인민을 무장시키겠다”고 말한 걸로 보도되고 있다. 카다피가 통제하는 영토 내에서 민주주의혁명의 지지자들은 무기의 즉각 분배와 민중적이고 민주적인 의용군 창설을 요구해야 한다. 제국주의자들이 만약 지상군 공격과 리비아 본토 점령을 시도한다면 이 의용군은 원칙을 분명히 하는 선에서 카다피에 대한 어떠한 정치적 지지도 하지 않은 채 카다피 세력과의 공동전선을 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체의 점령 시도를 패퇴시키고, 의용군들 자신들이 카다피와 그의 체제를 타도할 능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공동전선 전술을 펼칠 수 있다. 그러나 어쨌든 이것은 제국주의의 지상군 공격과 리비아 본토 점령 시도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경우를 전제로 해서다.

 

리비아 혁명은 지금 기로에 섰다. 만일 카다피가 제국주의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이용하여 자기 체제에 대한 지지를 강화하고 반란세력을 약화시킬 수 있게 된다면, 이것은 아랍혁명에 중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시리아와 예멘, 바레인, 사우디아라비아로 혁명의 확산과 이집트, 튀니지에서의 제2 혁명에 당장 어려움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제국주의에 맞서 ‘카다피를 방어하라’거나 ‘카다피와 제휴하라’는 것은 리비아혁명을, 나아가 아랍혁명을 파괴하는 데 일조하는 반동적인 슬로건이다. 카다피 체제 타도와 함께 아랍 전역에서 제국주의 타도와 자본주의 타도를 향해 계속 전진하는 ‘영구혁명’을 통해서만 리비아를 비롯한 아랍의 인민들이 진정으로 민주주의와 빵과 평등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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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이성적인 세계, 핵폐기는 가능한가? [사회주의자 통신 2호]

비이성적인 세계, 핵폐기는 가능한가?

- 히로시마에서 후쿠시마까지

 

ICT / 번역 : 사노위 서울지역위원회 정책선전국장 김병효

 

** 이 글은 일본 핵발전소 사태와 관련한 3월 17일 ICT의 기사의 번역 글입니다. ICT(국제공산주의 경향)는 1983년 IBRP(혁명당 국제서기국)로 결성되었다가, 2009년 ICT로 이름을 바꾸었고 현재 6개국(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미국, 캐나다)에 지부를 두고 있습니다.

** 원문 출처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11-03-17/from-hiroshima-to-fukushima

 


 

 

Meltdown(노심용융)

 

 

지난 3월 11일 사상 최악인 8.9리히터 규모의 지진과 쓰나미가 일본을 강타했다. 수만 명이 죽었고, 수십만 명의 이재민은 할 말조차 잃고 말았다. 하지만 채 여진이 닥치기도 전에 다른 문제점들이 발생했다. 지진과 쓰나미는 이후에 닥쳐올 재앙에 비하면 한낱 전조에 불과했다. 지진 발생 사흘 후 후쿠시마 다이치현의 핵발전소와 또 다른 핵발전소에서 발생한 두 차례 폭발로 행융합로 노심용융까지 위협받는 상황에 이르렀고, 이에 따라 일본에서의 핵에너지 자체에 대한 의문까지 제기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세계에서 가장 지진 위험이 높은 국가 중 하나인 일본이 도대체 어떻게 53개나 되는 핵발전소를 보유한 세계 3위의 핵에너지 대국이 되었을까?

 

이에 대해 3월 14일자 파이낸셜 타임즈의 데이빗 필링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자원 부족 국가로서 일본은 위험한 세계에서 병적으로 집착해왔다. 그리고 이것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86년 발생한 체르노빌 사고는 단일 사고만으로도 엄청난 방사능 유출과 함께, 이후 전세계에 걸쳐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기도 힘들 정도의 암발병 증가를 초래했다. 그런데 현재 후쿠시마에서는 6개나 되는 원자로 노심이 녹아내릴 위험에 처해 있으며, 다른 2개의 대형 핵발전소 역시 지진대에 위치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전력회사와 정부는 방사능 유출에 대해서 제대로 진실을 밝히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위험은 이전에도 있었다. 필링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일본은 이미 한 차례 예행연습도 겪은 바 있다. 2007년 7월 당시로서는 상당한 규모였던 6.8리히터 지진이 일본 북부 니이가타 근처의 초대형 핵발전소인 카시와자키-카리와 핵발전소를 강타했다. 이 지진으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큰 발전소 중 하나인 카시와자키-카리와 발전소조차 애초 설계부터 6.8리히터 가량의 지진에 견딜 없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당시 반응로 중 하나에 가해진 충격은 설계 당시 내진 강도보다 2.5배나 강력한 것이었다.

 

하지만 필링은 일본 정부가 자국민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를 위험에 빠트리는 것이 전혀 ‘비이성적이지는 않다’고 했다. 86년에 체르노빌에 관한 기사에 ICT가 “원자력 러시안 룰렛”이라고 제목을 붙였는데, 정말 위험한 도박이 지금 일본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제국주의자들의 명령

 

일본은 최근까지 석탄에 있어서만큼은 자급자족이 가능했다. 하지만 석탄을 제외한 나머지 자연 자원 부족은 항상 일본의 걱정거리였다. 이러한 상황은 일본으로 하여금 1895년 중국과, 1905년 러시아와 전쟁을 불사하게 했고, 1911년 조선 합병과 1931년 만주 침공까지 감행하게 하였다. 그리고 물론 더욱 극적인 예로는 바로 2차 세계대전을 들 수 있다. 일본의 1937년 중국 본토를 침공에 대해, 미국은 즉각 일본으로의 석유 공급 차단으로 대응했다. 일본은 이후 4년 동안 자구책을 마련하려 애썼지만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결국 궁극의 도박을 감행하기로 결정했다. 일본은 미국의 태평양 함대를 한 방에 날려버리고 인도네시아와 태평양 연안 제도를 점령하고, 이를 통해 석유와 다른 원자재를 손에 넣으려는 위험한 도박을 한 것이다. 일본이 자원 확보를 위해 아시아 무대에서 영국과 독일 제국주의를 패퇴키는 것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사실이 최근 공개된 문서를 통해 밝혀졌다.

 

이것이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습의 배경이다. 하지만 일본의 도박은 공습 6달도 채 안된 1942년 6월 미드웨이 해전에서 모든 일본 항모가 침몰하면서 패배로 막을 내렸다. 그런데 미국은 일본 문제를 마무리 짓기에 앞서 유럽전선에서 사소한 문제들을 해결해야 했다. 유럽전선에서 분열이 발생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소비에트 연방과의 전시 동맹의 균열이었다. 당시 미국은 소비에트의 적군이 유럽 전선에서 서쪽으로 진군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트루먼 대통령은 동부 전선에서 대해서도 소비에트 연방이 개입하면서, 만주와 조선, 그리고 중국이 스탈린의 손에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결국 미국인 기자 리차드 로데스가 ‘원폭 제조’에서 밝힌 바와 같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한 것은 단순히 미국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탈린의 동부 전선으로의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스탈린이 45년 8월 9일로 동부전선에 개입하기로 예정되어있었고, 소비에트의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 그 직전인 8월 6일 히로시마, 8월 8일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된 것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피폭으로 일본인들은 더 이상 원자력을 아예 사고의 지평 저 너머로 내던져버렸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1951년 미일안전보장조약 체결로 일본은 미국의 군사적 보호 아래 핵개발 프로그램에 착수했다. 히로시마 피폭으로 인한 백혈병 희생자들이 드러나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 일본은 핵발전을 향해 나아갔던 것이다. 일본이 세계 경제에서 핵심적인 지위를 차지하면서 일본은 더 많은 에너지원을 필요로 했고, 전후 세계에서 핵심적인 에너지원은 바로 석유였다. 자본주의 경기 순환에 있어 하락국면을 맞이했던 1971년 당시 일본은 자국 에너지 수요의 85%를 수입에 의존하는 상태였다. 미국에서 경기하락은 달러화에 대한 금태환을 포기하면서 달러가치 폭락으로 드러났다. 달러가치의 하락은 산유국의 실질 수입 하락으로 이어졌고, 이에 따라 유가는 급등했다. 에너지 안보가 전세계적인 슬로건이 되었고 이 문제는 오늘날에도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라는 형태로 여전히 진행중이다. 특히 국내 산업생산 증대에도 불구하고 이를 뒷받침할 자원이 부족했던 일본으로서는 에너지 문제에 있어서 가장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중동보다 훨씬 안정적인 남아공의 폐금광을 석유 비축 시설로 임대해서 사용하기 위해 남몰래 남아공의 인종분리 정책을 지원하는 것까지 불사했던 일본이 핵에너지를 고려한 것은 전혀 비이성적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이성적인 세계?

 

어쨌든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적 표현으로서 ‘이성적’이라는 말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성적’이라는 말과는 관계가 없다. 우리는 국민국가로 구성된 세계에 살고 있으며, 이 세계는 앞서 파이낸설 타임즈가 ‘위험한’ 세계라고 언급한 바로 그 세계다. 세계가 위험한 이유는 오늘날 자본주의가 국민국가들 간에 자원을 위한 은폐된 경쟁 혹은 공공연한 전쟁 형태로 대결하는 제국주의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계에서 가장 지진 위험이 높은 나라에 핵발전소를 세우는 것이 ‘위험한’ 세계에서는 이성적일 수도 있다.

이 글에서는 의도적으로 핵에너지 자체에 대한 논란은 다루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하에서는 어떠한 이성적인 토론도 불가능하며, 이윤 동기나 일국적 관점 하에서는 논점이 항상 왜곡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핵에 대한 광기가 바로 그 증거다. 제국주의자들은 이번 사고를 통해 인간의 미래의 필요와 양립할 수 없는 전쟁과 비이성적인 정책들로 가득찬 제죽주의의 면모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정말 “이성적인 세계”에서는 국민국가라고 하는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제국주의적 경쟁, 사람보다 이윤을 우선시하는 태도도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파괴적인 전쟁도 없다. 하지만 이러한 이성적인 세계는 오직 전세계 노동자계급의 힘으로 모든 비이성적인 요소를 만들어낸 자본주의적 생산 자체를 철폐함으로써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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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자 통신>에 실린 비평 글 사과하라고? 정치적 웃음으로 답하며 [사회주의자 통신 2호]

<사회주의자 통신>에 실린 비평 글 사과하라고? 정치적 웃음으로 답하며

- 사노위가 직면한 다수파, 소수파 문제에 대해 -

 

 사노위 서울지역위원회 정책선전국원 남궁 원

 


 

문제의식 - 강령토론과 조직 원칙 문제

 

1년간의 공동 활동 경험을 정리하고, 이제 사노위는 당 건설 추진위를 향하고 있다. 사노위는 전국적인 공개 강령토론을 5월부터 시작한다. 강령 쟁점은 사노위 신문에서 다루고 있어서, 사실상 공개적인 사상 이데올로기 논쟁은 벌써 시작됐다.

강령 논쟁은 우리가 건설할 당 추진위원회가 ‘마르크스주의의 어떤 (개량주의) 역사를 떨쳐버리고, 어떤 (혁명주의) 역사를 새롭게 만들어가려고’ 하는 가를 분명히 하는 문제다. 그래서 중요하다. ‘높은 수준의 이론’을 토론하다보니, 공부도 해야 한다. 그런데 이에 비해 사노위 안에서 벌어지는 조직 운영 원칙과 활동 문제들은 공개적으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조직 운영과 활동은 과거 조직 활동 경험에 비추어 판단한다. 정치 노선에 비하면 조직 원칙 문제들은 부차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강령 문제는 공개적으로 자유롭게 말을 하면서도, 조직 문제는 ‘점잖은 이유’(?)로 침묵하고 있다. 추진위 건설을 하면서 우리는 이 모순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우리가 사회주의 정치조직의 생성과 분열, 파산 선고를 접할 때, 흔히 듣는 말이 바로, 서클주의, 종파주의, 조직이기주의, 패권주의라는 용어다. 주로 조직문제와 관련된 용어들이다. “조직문제는 정치문제”다. 조직문제는 정치노선 문제와 기계적으로 분리될 수 없고,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지금 사노위 안에서 조직 문제 보다 더 복잡하게 꼬인 문제는 없다. 사노위 출범부터 경기 지역/분회 건설 문제, 가입원서 거부 논쟁, 2기 중앙위원회 구성 문제, 단일지도부냐, 연합지도부냐 등 많은 시간을 조직 문제를 둘러싼 토론(?)에 힘쓴바 있다. 이러한 논쟁은 당 추진위 조직원리와 규약을 다루는 정치적 문제다. 나는 강령문제 만큼이나 ‘조직 활동의 원칙’ 문제 또한 공개적으로 토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우리가 종이 회원이 아니라면 회원 가입 자격과 활동 문제, 현장 분회 활동 문제는 반드시 다루어야 할 문제다.

 

어떻게 보면 고작 한줌밖에 안 되는 사회주의자들 간에 미묘한 조직 입장과 해석의 차이로 다투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논쟁을 통해 현 정세를 돌파하고, 실질적인 당 건설 추진위 운동으로 나갈 수 있다고 본다.

강한 조직은 그 자체가 사회주의 정치 운동조직의 생존 조건이다. 특히 사노위가 계급의 ‘투사’ 들과 함께 당 추진위를 건설하려면, 폐쇄적인 내부지향이 아니라, 더욱 공개적인 논쟁을 통해, 대중 앞에 당 추진위 투쟁 주체로 단련되어야 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당 추진위 건설’이지, 사노위 존재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나는 사노위가 구 조직들의 산술적 · 기계적 연합이 아닌 질적으로 더 높은 단계의 정치적 집중력을 가진 조직으로 나가기 바란다. 나는 이러한 정치적 판단 아래, <사회주의자 통신> 창간호에 실린 「사회주의, 지금 여기에!」소책자 비평 글과 관련한 조직 내 논란을 검토하면서, 의견을 개진한다.

 

조직 논란 : 사회주의 지금 여기에! 소책자와 공상적 사회주의 비평 글

 

사노위 2기는「사회주의, 지금 여기에!」대중용 소책자를 발간하면서, 전 조직적으로 노동자들에게 배포 판매하고 있다. 소책자는 △ 왜 사회주의인가 △ 사회주의, 바로 이런 사회다 △ 사회주의, 가능한가 △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바로 이런 당이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사노위 서울지역위원회 <사회주의자 통신> 온라인 신문은 소책자 비평 기고 글을 실었다. 비평 글은 사노위가 발간한 “소책자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기본정신은 사회주의의 혁명적 전통을 계승하는 방식이 아니라 공상적 사회주의”라고 주장을 펼쳤다. 조직 명의로 중앙에서 발간한 소책자를, 서울지역 한 집행위원이 전면 비판한 것이다. 당연히(?) 비판 글 주장을 둘러싸고 사노위 조직 안에서 논란이 뜨겁다.

자, 이제 우리 조직 안에서 비평 글 반대를 하는 동지들이 어떤 정치적 주장을 하는지, 그 정치적 함의를 들춰보자.

 

첫 번째 반응. 비평 글은 사노위 조직 사업을 파괴하고 부정하는 행위다. 비평 글 사과하고 삭제해야 한다.

두 번째 반응. 조직에서 낸 소책자를 공상적 사회주의라고 규정했다. 생산적 비판이 아니라 근거 없는 비난이다.

세 번째 반응. 조직 내부에 먼저 문제제기를 해야지, 서울지역 공적 조직 기관지에 조직을 비난하는 비평 글을 게재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사회주의 정치조직은 추상성이 높은 정책 이론과 구체적인 현실 정치 투쟁 사이의 접목을 둘러싸고, 내부 불일치와 견해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래서 정치조직은 실천투쟁을 하기위해서 토론과 논쟁을 하게 된다. 정치토론과 논쟁이 이어지기 위해서는 논거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소책자 전체적인 기조가 “공상적 사회주의다”라고 주장하면, 다른 쪽은 반대 명제를 들어 소책자는 “공상적 사회주의가 아니다”라고 논증을 하면 된다. 이렇게 해서 정치조직 토론과 논쟁은 정치적 논거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의 문건이나 글을 읽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필자의 선언(宣言)적 주장과 주장의 내용을 구성하는 논거를 구별하는 것이다. 그리고 논거의 내용을 살펴야 한다. 선언적으로 주장된 것들에 대해서 그 내용의 일관성을 따져보고 내적 모순들을 드러낸 후 이데올로기적 배경을 추적해야 한다. 더 나아가서 정치적 심리적 배경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비판을 하면 된다.

 

그런데 위에 언급한 세 가지 반응들을 보라. 사노위 중집과 서울지역 다수파 운영위원은 비평 글에 대해 정치 토론 논거가 없는 채, 단지 도덕적인 감정적 반응을 보이면서, “조직 사업을 파괴하고 부정했다” “조직 내부에 먼저 문제제기” “근거 없는 비난이다”는 말 뿐이다. 정치적 대화와 토론은 사라지고, 조직에는 어두운 암흑과 침묵만이 존재한다. 이러한 반응은 심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 심리적 배경은 지켜야 할 ‘그 무엇’과 관계된다. ‘그 무엇’은 바로 사노위 중앙의 권위다. 그래서 사노위 중집은 예정된 소책자 사업을 중단하는 ‘정치적 태업’을 결정하고, 서울지역 다수파 운영위원들은 비평 글 게재를 ‘조직 사업 부정· 파괴 문제’로 접근한다.

표면상 이 문제는 1차적으로 ‘조직사업 운영과 비판의 자유’로 대립된다. 그러나 나는 비평 글을 쓴 한 회원의 정치적 행위, 즉 중앙 소책자 내용 중 사회주의 상(像)에 대한 사상 투쟁인, ‘비판의 자유’를 방어하면서, 더 근본적으로 접근한다.

이 문제는 바로 사회주의 정치조직 운영원칙이다.

 

조직운영원칙: 다수파와 소수파 문제

 

하나의 정치조직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그 조직을 구성하는 성원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성원들의 산술적 합이 곧 하나의 조직을 형성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조직 전체와 개인/부분의 관계를 모색해서 조직 활동을 생각해야 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개인의 권리와 (조직 활동) 의무, 소수파와 다수파, 분파의 문제를 어떻게 규정하는 가다.

일반적으로 사회주의 정치조직의 조직운영원리는 계급성을 보장하고, 민주주의 성격을 전제로 하면서 중앙집중주의를 원리로 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민주집중제다. 민주집중제는 조직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토론과 비판의 자유, 행동의 통일로 요약된다. 일반적으로 행동의 통일을 위해, 토론 종료 후에 소수파는 다수파의 견해에 따른다.

그러나 전제가 있다. 조직 내 소수파의 권리보장이다. 소수파는 다음 총회에 다수파가 되기 위해 조직 내 자신들의 입장을 개진할 자유를 가진다. 이것은 조직 내 언론과 문건 발행으로 나타난다. 소수파의 언론과 문건 발행은, 일정한 원칙이 있는데, 내용상 노동계급의 이해를 부정하거나 해가 미치지 않는 이상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정치조직의 내용적 통일성은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정치 토론과 조직원의 실천적 행위 속에서 획득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수파와 소수파의 의견대립과 논쟁을 공개화하고, 논쟁의 대립 측면을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조직원들이 스스로 자신의 두뇌로, 판단하는 것이다.

 

이번 비평 글 정치적 논란은 사노위 중앙(다수파)과 서울 집행위(소수파)의 정치적 구도로 시작됐다. 비평 글 게재가 있고, ‘바로’며칠 후 사노위 중집과 서울지역 다수파 운영위원들의 정치적 의견이 모아졌다. 조직사업 부정· 외부화 · 파괴, 사과, 삭제 요구로. (서울 임시운영위에서 삭제 요구는 빠졌다)

오직 조직 중앙 사업 권위에 기댄 다수파의 관료적 해법, 실용적인 해결 접근 방식으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심각한 정치적 오류다.

 

해결책 : 정치적 오류 인정

 

1924년 11월 말, 트로츠키는「우리의 견해의 차이」라는 문건을 당 다수파(스탈린)에게 반론을 제출했으나, 그 문건은 공개되지 않고 삭제되었다. 또한 스탈린과 부하린 투쟁에서 드러났듯이, 스탈린에게 ‘소수파의 권리’는 오직 자신의 입장을 철회하고 당 다수파 입장을 받아들이는 것뿐이었다.

 

역사적으로 정치조직(당) 내적 통일의 필요성은 광범위한 노동계급투쟁에 복무하는 단 하나의 이유가 있을 때뿐이다. 정치조직 안에서 크던 작던 정치적 논쟁은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다수파와 소수파는 항상 있다. 그리고 정치적 논쟁의 성과는 계급투쟁의 무기로 이어진다.

중집과 서울지역 다수파 운영위원은 비평 글 내용이 어떻게 조직의 사업을 부정하고 파괴했는지 공개적으로 논증해야 한다.

지금 사노위 안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정치적 오류를 감추고 있는 것이다. 오류를 저지른 것 보다 오류를 분석하지 않는 것이 더 심각하다. 중집과 서울지역 다수파 운영위원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오류를 반성하지 않고, 여전히 비평 글이 조직의 사업을 부정 파괴했다고 주장한다면, 나는 이제 ‘정치적 웃음’으로 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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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의 자유와 행동의 통일에 대해 [사회주의자 통신 2호]

비판의 자유와 행동의 통일

- <사회주의자 통신> 창간호 소책자 비평 글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하여

 

 

 

 <사회주의자 통신> 창간호를 낸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지만 지난 창간호의 비평 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지역 집행위와 운영위는 물론, 중앙위에서도 이와 관련한 논란이 다루어졌고, 19일에는 사노위 서울지역위원회의 임시 총회까지 상정되어 있다. 아직 창간호 비평글을 접하지 못한 동지들은 사노위 홈페이지의 <사회주의자 통신> 창간호를 참조하기 바란다.

 

 

 

 여기서는 우선 비평글 논란과 관련하여 지금까지의 경과를 살펴보겠다.

 

 

 서울지역위원회에서 발간하는 온라인 매체 <사회주의자 통신>은 창간호에서 사회주의 소책자 사업의 일환으로 발간된 소책자 ‘사회주의 지금 여기에’에 대한 비평 글을 게재했다. 게시 직전 중집은 글 게시 유보를 요구하였고, <사회주의자 통신>의 편집자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대로 창간호를 발간하였다. 이에 대해 중집은 임시 중집 회의를 소집하고, 소책자 비평 글과 관련하여 서울지역위원회 집행위원회와 서울지역위원회 운영위원회의 입장을 요구했다.

서울집행위는 입장을 통해 중집의 편집권 침해 및 비판의 자유를 근거로 중집 입장 재고를 요청하였다. 이어서 일부 운영위원들의 운영위 소집 요구가 이뤄졌고, 임시 운영위에서는 비평 글 게제에 대한 운영위 사과, 삭제 입장을 안건으로 제출하였다. 이 안건은 일부 운영위원과 서울지역 대표가 안건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퇴장하면서 처리되지 못했다. 임시 운영위 직후 서울 집행위의 두 동지는 사노위 중집의 요구에 의해 긴급히 소집된 임시운영위 안에 동조하여 기존 서울집행위 입장을 번복함으로써 사노위 서울지역위원회 집행위원회는 정치적으로 파산하였고, 사회주의자 통신 역시 잠정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속개된 운영위에서는 기 상정된 안에 대한 표결을 통해 비평 글 ‘삭제’ 부분이 빠진 채 사과 입장으로 통과되었다. 직후 대표는 이 문제를 지역위 임시 총회에서 다룰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총회 결론 이전까지 <사회주의자 통신>을 포함한 기존 사업 정상화를 요청하였다. 이에 따라 2호 기획이 제출되었으나 직후 진행된 운영위에서는 특정 기획이 아니라 아예 <사회주의자 통신> 발간 자체를 총회 이후로 연기하라는 안을 발의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안에 대한 표결 결과 과반수에 못 미치면서 겨우 2호를 발간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이 문제인가?

 

 

 사노위의 소책자에 대해 서울지역위 매체에서 비판했다고 해서 글을 삭제하고 사과하라는 임시운영위의 안(물론 최종적으로 삭제 요구는 빠졌지만)이 나오기까지, 최초에 중집의 문제제기로 시작해, 이후 서울지역위원회 임시 운영위는 좀 더 극단적인 형태로 문제제기하였다. 중집과 운영위의 문제제기는 내용, 절차의 문제뿐만 아니라 조직의 운영원리까지 다양하게 제기되었으며, 특히 조직운영원리에 집중되고 있다.

 

 관련하여 집행위에서 지속적으로 편집권과 비판의 자유를 주장하는 데 대해 중집과 일부 운영위원들은 비판의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고 보는 입장이 존재한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조직운영원리에 대한 다른 시각이 드러난다. 즉 이들은 비판의 자유를 조직운영원리의 내용적 측면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양자를 분리하고 비판의 자유를 조직운영원리에 종속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 여기에다 추진위 전망을 둘러싼 정치적 혐의가 덧붙여진다. 일부 내용에 대한 문제라고 제기하는 입장도 있으나 내용에 대한 반박을 구체적으로 제기하지 않으면서 끝까지 정치적 혐의에 기반을 둔 조직운영 원리 문제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 글의 주된 관심사는 조직운영 원리에 대한 다른 시각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가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강령이든 조직운영 원리든 현실과 동떨어진 추상적인 이론으로서 정립되는 것이 아니라, 이번 건과 같이 구체적인 사안과 계기를 통해 비로소 조직의 실천적 원리로서 자리잡는 것이라고 할 때, 이 글이 사회주의 조직의 조직운영 원리를 바로잡아 나가는 데 미력하나마 일조하기를 바란다. 여기서는 기본적으로 <사회주의자 통신>의 기조와 방향을 검토하고, 3월 16일 <사회주의자 통신> 창간호 발간과 동시에 진행된 사건의 추이 속에서 조직운영 원리에서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가를 제기하도록 하겠다.

 

 

 

 

사회주의자 통신의 기조 및 방향

 

 

 <사회주의자 통신>은 서울지역위원회의 온라인 정치신문이다. 온라인 신문 사업은 서울지역위원회 2차 총회에서 서울지역 동지들의 총의를 모아 사업으로 승인되었으며, 운영위를 통해서 정책선전국 관장사업이 되었다. 내용은 지역위원회의 입장 및 쟁점과 주요한 투쟁소식을 전하는 것과 기획기사 및 기고글로 구성할 것을 제시하였다. <사회주의자 통신>의 구체적인 목표와 편집 방향은 창간호 발간사와 편집자의 글을 통해 드러난다.

 

 

 지난 서울지역위원회 1기 투쟁웹이 지역의 투쟁소식을 간략히 전하는데 그쳤다는 평가 속에서, <사회주의자 통신>은 지역위원회의 정치신문으로서 지역 투쟁 사안뿐만 아니라 당건설 과정에서의 주요한 쟁점과 전국적 이슈를 지면의 제약 없이 담아내고자 했으며, 당건설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많은 동지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고자 했다.

 

 

먼저 <사회주의자 통신> 발행자는 사노위 서울지역위원회이지만 내용에서는 전국적이고 정치적인 사회주의 정치선동을 전개할 것이다. 인터넷 신문의 특성상 종이신문이 가진 분량의 한계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모든 주제에 대해 심층적인 기사를 작성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토론과 노동계급적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은 동지들의 기고가 있다면 언제나 환영한다.

- <사회주의자 통신> 발간사 中

 

 

 특히 향후 3차 총회까지 강령토론으로 전조직의 역량이 집중되고 있는 만큼, 강령토론 과정의 첨예한 쟁점들을 제시하고 적극적으로 논쟁을 기획하고자 했다. 대상에 있어서도 사노위 내부뿐만이 아니라 당장 사노위에 함께 하고 있지는 않지만, 당건설을 향한 사노위의 역사적 행보를 주시하고 있는 노동자 투사들까지를 상정하고 있다.

 

 

다음으로 사노위는 3개의 초초안을 가지고 강령토론을 진행하고 있으며, 혁명적 강령으로 통일시켜야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사회주의자 통신>은 사노위의 동지들이 어떠한 경향으로 통일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뜨거운 논쟁과 토론의 장을 만들 것이다. 이것은 현재 사노위에 참가하고 있는 동지들뿐만 아니라 사노위의 강령토론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자 투사들에 대한 기본적인 임무이기도 하다.

- <사회주의자 통신> 발간사 中

 

 

 편집자 역시 ‘편집자의 글’을 통해 정치적으로 예민하고 날카로운 비판들을 다룰 것이며, 이를 조직 내외를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공개할 것을 천명하였다.

 

 

앞으로 <사회주의자 통신>은 당 추진위 건설을 위한 사노위 내부의 논쟁을 적극적으로 공개할 것이며, 이와 관련하여 조직 내외를 가리지 않고 정치적으로 예민하고 날카로운 비판들이 적극적으로 제기되고 토론되기를 기대한다.

- <사회주의자 통신> 편집자의 글 中

 

 

 결국 소책자 비평 글에 대한 문제제기는 이 발간사와 편집자의 글에 대한 문제제기와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소책자 비평 글은 정확히 위에서 밝힌 편집 기조 하에 창간호에 실렸으며, 소책자 비평 글에 대한 문제제기의 대부분은 <사회주의자 통신>의 편집 기조에 대한 문제제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즉 이번 중집 및 서울지역위 운영위원 일부의 비평 글에 대한 문제제기는 특정 기사에 대한 문제제기가 아니라 <사회주의자 통신> 전반에 대한 문제제기인 것이다. 집행위 내에서조차 이러한 문제제기에 동조하는 입장이 존재했고, 이로 인해 <사회주의자 통신>이 잠정 중단되기까지 했다. 이러한 태도는 <사회주의자 통신> 발행이 중단되었다가 재개되면서 2호 기획을 제출되자마자 운영위에서 아예 발간 연기를 안건으로 상정하는 대목에서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창간호 기획 및 발간까지

 

 

 이 문제와 관련한 쟁점들을 살펴보기 위해서 구체적인 경과를 검토해보겠다. 우선 창간호 기획 및 발간 경과를 살펴보고, 이후 중집의 문제제기와 임시 운영위 소집에 있어서 제기된 문제가 무엇인지 종합적으로 검토하도록 하겠다.

 

 

 3월 3일 창간호 기획이 제출되었으며, 일부 수정을 거쳐 3월 7일 정책선전국 계획과 함께 운영위에 보고되었다. 운영위 이후 임천용 동지가 소책자 비평 글 기고 의사를 밝혔으며, 발간 전까지 제출하면 게재할 수 있다고 했다. 창간호 발간 예정일은 3월 11일이었는데 강령쟁점 원고 및 집행위원 담당 글들의 미취합으로 발간 일정을 14일로 연기하였다.

 

 

 당시 비평 글에 대해서 편집자는 아직 전반적인 배포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게재가 시의성이 있는가 하는 정도의 의문 - 이는 소책자에 대한 비평 글이라는 것 말고 내용상의 방향성을 모르는 상태에서 당연한 의문이었다 - 을 가진 상태에서 2호에 게재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어쨌든 본격적인 편집을 앞둔 14일 완성된 비평 글이 다른 글들과 함께 제출되었다. 편집자는 제출된 비평 글이 애초의 기획에는 없었으나, 소책자 전반의 기조 및 방향에서 드러나는 강령적 쟁점에 대한 논쟁적 성격의 기고글이며 <사회주의자 통신>의 편집방향에서 벗어나지 않으므로 창간호에 싣기로 하였다. 만약 또 다른 기고글이 있었다면 마찬가지 방식으로 게재했을 것이다.

 

 

실제 편집은 16일에야 마무리되었다. 창간호인지라 편집에 많은 시간이 걸렸으며, 글 분량이 많다보니 교열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교열중인 서울 온라인 신문 <사회주의자 통신> 창간호 비평 기사를 접한 중집 성원의 비평 글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 편집자와 발행인은 중집의 문제제기가 편집권 및 비판의 자유에 대한 침해라고 판단하였으며, 내용상의 논쟁은 얼마든지 다음 기사를 통해 다룰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따라 기고글은 별도의 수정 없이 그대로 창간호에 실렸다.

 

 

 

 

비평 글에 대한 문제제기

 

 

 <사회주의자 통신> 창간호의 온라인 게시 직후 중집은 비평 글 문제를 두고 임시 중집회의 소집을 요청하였다. 바로 다음날 개최된 임시 중집-사무국 회의는 서울지역위회 인터넷 신문 글 중 조직의 공식 소책자 “사회주의 지금 여기에” 대한 전면 부정 외부화에 관하여 서울집행위와 운영위가 3/21 오후5시 중집-사무국회의 이전에 본건과 관계된 판단(내용, 절차, 조직운영 측면)을 표명할 것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이 때까지 이후 소책자 사업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 직후 일부 운영위원들의 발의로 임시 운영위도 발의됐다.

 

 

 임시 중집-사무국 회의 결과는 속기록과 함께 제출되었는데 여기에서의 발언들이 다양한 수준에서 혼재되어있어 사회주의자 통신 창간호의 비평 글이 정확하게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를 읽어내기가 쉽지는 않다. 임시 운영위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또한 속기록의 경우 속기의 특성상 맥락을 왜곡할 우려도 있다. 따라서 이후 서술에서는 소집 요청과 각 회의 결과 등 공식적인 자료들을 토대로 하였다.

 

 

 

 

비판의 자유인가? 조직사업의 부정인가?

 

 

 다음은 긴급 중집회의 소집 요청 글 가운데 일부이다.

 

 

요청사항은 긴급하게 중앙집행위원회 소집 요청입니다.

 

근거는 서울지역위원회 온라인신문 기사 중 소책자에 대한 비평 글 때문입니다.

정책위원회는 소책자 초안을 이미 중집-사무국회의자료 및 중집회의준비 방에 소책자가 나오기 훨씬 전에 초안을 올린바 있습니다.

그런데 온라인 신문(공개용)에 올려진 글은 소책자 내용을 전면 부정하는 비평 글입니다.

정책위원회는 소책자 원고와 관련해 사전에는 물론이거니와 사후적으로도 단 한차례도 문제제기를 받은 바 없습니다.

 

 비평 글을 기고한 동지는 임시 중집 회의 소집 요청글의 주장과 달리 소책자에 대해 - 뒤늦기는 했지만 - <사회주의자 통신> 창간호를 통해 분명히 ‘사후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따라서 문제가 되는 것은 사전이냐 사후냐가 문제가 아니라 소책자 내용을 ‘전면 부정’한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임시 운영위에서 안 상정에 동의할 수 없다며 퇴장한 운영위원을 제외한 6명의 운영위원이 성안한 안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첫째, 사노위는 현재 소책자를 전조직적으로 판매하며 대내외적 토론을 진행 중이다. 그럼에도 조직의 주요한 사상을 담아 조직의 이름으로 발간된 소책자에 대해 '비평' 글처럼 규정한 것은 조직의 사업을 부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지역위원회에서 전체 조직의 사업 자체에 대해 부정함으로써 소책자를 통해 조직사업을 벌이고 있는 회원들은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 안은 중집보다 한참을 더 나아가 비평 글이 조직의 사업 자체를 부정했다고 말하고 있다. 게다가 “‘비평’ 글처럼”이라니. 과연 비평 글의 무엇이 문제인가? 비평 자체가 문제는 아닐테고. 비평 글이 사업 자체를 부정했는가? 소책자의 내용을 부정했는가? 아니면 둘 다 같은 것이므로 구분할 필요가 없는 것인가? 안을 발의했던 운영위원들이 지금이라도 이를 명확히 밝혀주면 좋겠다.

 

 

 

 어쨌든 조직내에 전술적인 문제는 물론이고 때로는 강령의 문제까지 첨예한 쟁점이 되고 이 와중에 반대파의 입장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면 사노위 8호에는 당장 리비아 혁명을 둘러싸고 혁명의 향방을 둘러싼 사활적인 문제에 대해 두 개의 다른 입장이 제출되고 있다. 각각의 입장은 다른 입장을 전면적으로 부정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에 오히려 상호간의 적극적인 토론을 통해 정치적 입장을 명확히 하는 것이 정치적 통일성을 형성하기 위한 기본적인 전제다.

 

 

 따라서 이 문제는 ‘조직의 공식적’인 소책자로서의 위상이 근본적으로 상실된다고 한 것과 연결시켜 볼 때, 조직의 ‘공식적’인 것에 대해 비판하면 안 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물론 소책자가 비공식적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소책자 사업은 중앙위에서 사업으로 승인되었으며,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 중앙위가 직접 심의하지는 않았지만 엄연히 조직의 주요한 기구로서, 그것도 ‘선출된’ 자들로 구성된 중집에서 검토되었다. 이로써 이미 공식성을 다툴 여지는 없다. 여기에 대해서는 전혀 이견이 없다.

 

 

 하지만 공식적 문서에 대한 비판은 과연 허용될 수 없는가? 예를 들어 편집위원회 논의를 거쳐 제출된 신문기사에 대해 전면적으로 비판할 수는 없는가? 물론 누구나 비판할 수 있다고 답할 것이다. ‘조직의 공식적’ 문서라 하더라도 이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이 허용되어야 한다. 소책자 비평 글에 비추어보자. 우리는 현재 정치적 통일성의 부족으로 소책자 배포에조차 어려움을 끼친다. 그런데 이는 사노위든, 추진위든, 당이든 마찬가지다. 통일된 강령 하에서조차 모든 당원의 완벽한 정치사상적 통일은 불가능하다. 소책자 사업이 중앙위에서 결정되었고, 내용과 관련해서는 중집의 책임하에 발간되었다. 여기에는 얼마든지 내용에 대한 이견이 있을 수 있으며 이에 토론을 진행할 수 있는 부분이다. 따라서 설사 ‘조직의 공식적’ 입장으로 제출된 경우라고 하거나 혹은 심지어 전조직적 토론을 거쳐 다수가 아무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경우에도 소수파는 소책자에 대해 ‘내용적으로’ 비판할 수 있으며, 이를 적극적으로 권장해야 한다.

 

 

 

 

비판의 자유와 행동의 통일

 

 

 

물론 나는 행동의 통일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그런데 행동의 통일을 위해 비판의 자유는 필수다. 민주집중제에서 민주와 집중이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민주집중제의 원리로서 비판의 자유와 행동의 통일 역시 분리될 수 없다. 특히 중집 혹은 중앙위원회가 언제나 옳은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스스로 오류를 정정할 수 있는 구조를 가져야 한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단일한 당에서는 당의 직접적 행동을 규정하는 전술이 하나이어야만 한다. 이러한 단일한 전술은 당원 다수자가 채택한 전술이어야 한다. 즉, 다수자가 완전히 명백하게 된 경우 소수자는 비판의 권리 및 다음 대회에서의 문제의 해결을 목표로 하는 선동의 권리를 확보하면서 그 정치적 행동에 있어서는 다수자에 복종해야만 한다.

- 1906, ‘의회와 사회민주당의 전술’ 中

 

 

 

 중집은 총회에서 ‘선출된 자’이다. 그래서 조직을 대표하는 기구이자 많은 권한을 부여받고 있다. 하지만 소책자 문제처럼 “중요한 문제” - 물론 사회주의자 통신에 비평 글이 실리면서부터 ‘중요한’ 문제가 되었기 때문에 그 전에 광범위한 토론을 요청하지는 못했지만 - 에 대해 중집이 언제나 올바른 판단을 하는 것은 아니다. 중집이 무오류의 결정체가 아니라면 이처럼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전조직적 토론을 진행했어야 했다. 중앙의 판단이나 몇몇 동지들의 개별적읜 의견 개진이 아니라 조직의 모든 기구 및 회원들에게 토론을 제기하고 명확한 판단을 요청해야 했었다. 그리고 사후에라도 행동의 통일을 파괴하지 않는 경우에 지속적인 비판과 선동을 인정해야 한다. 이를 통해서만 중앙의 오류 가능성의 극복과 함께 행동의 통일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소책자뿐만 아니라 조직의 모든 사업에 대한 비판이 해당 사업의 공식적인 위상을 침해하기라도 했는가? 그리고 소책자에 대한 비평이 어떠한 구체적인 행동의 통일을 파괴했는가? 만약에 중집이 사노위의 현상태에 대해 어떠한 비판의 자유를 인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정치적 통일성이 높다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래서 비판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면, 비평 글에 대해 조직 사업 파괴 운운하는 것은 근거 없는 비난일 뿐이다.

 

 

사실 이는 당연한 결론인데, 소수파에게 구체적인 행동의 통일 - 예컨대 소책자를 1인당 몇 부씩 지지자에게 판매하는 것 - 이 아니라 사상의 통일을 강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상의 통일을 강제한다는 것은 소책자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으나 이를 절대 밝히지 말고 소책자 내용에 동의하는 척 가장하라고 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동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소책자에 절대 비판하지 않겠다고 충성서약을 강요하는 것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아예 생각을 멈추라고 하는 것과 같다.

 

 

 또한 구체적으로 비평 글이 행동의 통일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와 관련하여 중집의 다음과 같은 언급을 살펴보자.

 

 

이런 비평 글이 공개용으로 작성되었고 배포되는 상황에서 이후 조직 성원들은 사회주의 소책자 배포에 있어서도 심각한 어려움이 있음은 물론이고 조직의 공식적인 소책자로서의 위상이 근본적으로 상실된다고 판단합니다.

 

 

 과연 여기서 구체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동지들이 누구일까? ‘조직의 공식적인’ 소책자 내용이 전적으로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동지들이 어려움을 겪을 리 없다. 이 동지들은 소책자를 판매하면서 소책자의 내용을 충실히 설명하고 동의와 지지를 구할 것이며, 비평 글에 대해서도 오히려 적극적으로 비평 글을 비판하고 소책자의 내용을 옹호하면서 소책자 판매 사업을 해나갈 것이다.

 

 사실 정작 어려움을 겪는 동지들은 비평 글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가진 동지들이다. 이 동지들은 비평 글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 조직의 ‘공식적인’ 소책자의 내용 때문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 동지들은 자신이 소책자 내용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배포에 자신 없기 마련이며, 질문을 받을 경우에 답변하기도 어려워진다. 따라서 조직적 결정에 따르기 위해서, 즉 행동의 통일을 위해서는 소책자에 대해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차후에라도 비판 내용이 반영되도록 노력할 수밖에 없다.

 

 

 결국 중집이 아무리 비판의 자유를 옹호한다고 말하더라도, 중집이 말하는 비판의 자유는 극히 협소한 수준으로 제약되고 있으며, 행동의 통일을 위한 비판의 자유를 사고하지 않은 채 무조건적인 행동의 통일을 옹호하는 논리에 불과하다. 특히 운영위원들회의 경우는 스스로도 소책자에 대해 ‘대내외적 토론을 진행 중’이라고 하면서도 비판적 견해를 밝힘으로써 행동의 통일을 기하려는 노력에 왜 제제를 가하려 드는지 의문이다.

 

 

 

 

‘인쇄물을 통한 공개적인 논쟁은 적을 기쁘게 할 뿐’인가?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중집, 운영위는 앞서 지적한 사항 외에도 ‘외부화’의 문제를 추가로 제기하고 있다.

 

 

1. 서울지역위회 인터넷 신문 글 중 조직의 공식 소책자 “사회주의 지금 여기에” 대한 전면 부정 외부화에 관하여 서울집행위와 운영위는 3/21 오후5시 중집-사무국회의 이전에 본건과 관계된 판단(내용, 절차, 조직운영 측면)을 표명할 것을 요청한다.

 

 

 운영위도 마찬가지로 공개화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둘째, 이 소책자는 이미 2월22일에 초안이 공개됐고, 조직 내 골간을 통한 내부적 문제제기가 가능했음에도 그 과정에 침묵하다가 소책자 배포 이후 대외적으로 배포하는 온라인신문에 글을 실은 것은 조직내부의 건강한 상호비판과 활발한 토론을 통해 조직의 발전을 이루는 것이 아니고, 사업을 파괴하는 것이다.

 

따라서 서울지역위원회 사업과 운영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는 서울지역위원회 운영위원회는 이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조직 내 혼란을 부추긴 데 대해 조직 및 회원에게 사과한다. 그리고 현재 온라인에 게시돼 있는 사회주의자 통신의 '비평' 글은 즉각 삭제한다. 단, 조직 내부에서는 '비평' 글에 대한 토론을 지속해 나간다.

또한 서울지역위원회 운영위는 추후 이런 오류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골간단위를 통한 조직내 토론에 적극적으로 임할 것이다.

 

 

 중집과 운영위는 외부화, 다르게 말하면 출판물(사회주의자 통신)을 통한 공개에 대해서도 문제제기 했다. 그런데 이는 비판의 자유의 문제와 별반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소책자에 대한 사노위 8호에 실린 서평과 같이 긍정적인 평가를 외부화했다고 해서 문제삼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따라서 이 문제 역시 일반적인 공개의 문제로서가 아니라 민주집중제의 원리적 측면, 즉 비판의 자유와 행동의 통일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 우리는 모든 문제를 우리의 특정한 입장에 서서 심의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기관지를 통한 동지들의 논쟁을 거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러시아의 모든 사회민주주의자와 자각된 노동자 앞에서의 공개적인 논쟁은 현재 어떤 의견차이의 깊이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계파간 투쟁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심의하기 위해......불가결하고 바람직하다...... 명백히 엇갈리고 있는 견해들간의 공개적인 논쟁의 부재, 극히 중대한 문제에 관한 의견의 차이를 감추려고 하는 경향을 우리는 현재 운동이 지닌 결함의 하나라고까지 생각한다.

 

 

 ‘이스크라’의 발간에서 앞서 발표된 편집국 성명이다. 조직내 논쟁을 내외로 갈라서 내부로 한정하지 말고, 계급투쟁의 전진을 위해 적극적으로 계급 대중에게 공개하고 결국 대중 속에서 심판받으라고 하는 당연한 주장이다. 이에 대해 야크보바는 어떻게 답했는가?

 

 

인쇄물을 통한 공개적인 논쟁은 적을 기쁘게 할 뿐

 

 

 사실 우리가 조직 내의 문제들에 대해 출판물로 공개하지 않더라도 오늘날 계급 대중은 조직 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모두 알고 있다. 대중적입 집회에서, 공개적인 매체를 통해, 투쟁전술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또는 개인적 발언을 통해 개별 활동가가 어떻게 활동해왔고, 어떻게 발전해왔으며, 또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대중은 모두 알고 있다. 조직내 토론이라는 외피 뒤에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태도를 숨기고자 하는가? 이를 덮고 감춘다고 해서 도대체 어떠한 이점이 있는가?

 

 

 다시 한 번 상기시키지만 소책자는 운영위원들이 제대로 지적했듯이 대내외적으로 토론 중이다. 사노위가 현재 함께 하고 있는 소수의 친목단체가 아니라 명실상부한 계급의 지도부로서 우뚝 서려면 어떤 입장이 올바른가에 대해 현재 사노위 내의 다수 경향에 손을 들어줄 것이 아니라, 계급 앞에 공개적으로 제기하고 대중적으로 심판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이를 외면하고 또 다시 오직 안으로, 안으로 향하는 태도는 당 건설의 길이 아니라 다시 한 번 종파주의의 구태를 반복하는 길이다.

 

 

 결국 중집과 임시 운영위에서 위 안을 발의한 운영위원들은 당연한 절차상의 문제를 제기하는 척 하지만, 실상은 공개적인 논쟁을 통한 굳건한 통일의 길을 외면하고, 소수파의 의견을 묵살함으로써 통일을 가장하는 것이다. 비판의 자유는 옹호하지만, 비평 글에 대해서는 허용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고 더더욱 그것이 공개되면 안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레닌이 1900년 야크보바에 보내는 서한을 검토해보기를 바란다.

 

 

어쨌든 서한과 논쟁을 통해 오래전부터 문제를 검토하고 있는데, 문서를 통한 문제의 검토를 두려워하는 것은 우스꽝스럽지 않은가. 회합에서 논쟁하거나 편지를 쓰거나 하는 것은 괜찮은데, 계파간 분쟁 문제를 인쇄물로 명확히 하는 것이 어째서 ‘우리의 적을 기쁘게 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 가장 해로운 사항’인 것인지. 나는 그 점을 이해할 수 없다.

 

 

 

 

정치적 혐의로 심판받아야 하는가?

 

 

 중집의 문제제기가 이 정도 수준에 그쳤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문제제기가 조직운영 원리의 문제로 한정되었다면, 이에 대해 얼마든지 토론하고 논쟁할 수 있었을 것이다. 비판의 자유와 행동의 통일, 그리고 이와 관련한 공개의 문제까지. 그런데 중집은 여기에서 한참을 더 나갔다.

 

 

특히 이후에도 이런 일이 계속될 것이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책위원회가 계속해서 소책자를 발간할 필요가 있는지도 근본적으로 의문입니다.

- [요청]긴급 중집회의를 요청합니다. 中

 

 

 임시 중집-사무국 회의에서는 소책자 사업의 일시 중단이 결정되었다. 중단의 근거는 무엇인가? 애초의 임시 중집회의 소집 요구에서 ‘이런 일이 계속될 것’이므로 소책자 발간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으로까지 나아갔고, 이것이 회의의 결과로 정식화 된 것이다. 여기서 비평 글을 작성한 동지가 매번 소책자 비평 글을 쓸 것 같지는 않은데, ‘이런 일’이 뜻하는 바는 과연 무엇인가? 만약 ‘이런 일’이 중집의 사업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판적 의견을 개진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공개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조직의 사상적 통일과 행동의 통일을 바라는 모든 동지들의 임무이다. 사노위 11개 정치원칙에서도 당원이 당활동의 주인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중집은 과연 이를 가로막고자 하는 것인가?

 

 여기에 어떠한 정치적 혐의도 부여하지 않기를 바란다. 회의의 결과로 정확하게 전달하지 않고 속기록 상의 난잡한 문제제기로 정치적 혐의를 씌우는 것은 사회주의자가 취할 태도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속기록 문구 하나하나에 문제제기 하거나, 속기록 삭제를 요청하지는 않겠다. 부당한 혐의를 제기하고 정치공세를 펼친 데 대해서 회원들이 분명하게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조직의 조직운영 원리를 향하여

 

 

 사회주의자 통신의 편집자로서, 그리고 사노위 회원으로서 <사회주의자 통신>을 통해 적극적인 정치토론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현재의 상태는 애초에 의도처럼 비판의 내용에 입각한 정치적 토론이 아니라 조직운영 원리에 대한 토론으로 전환된 것처럼 보인다. 글의 의도가 어떻든 판단은 결국 독자들의 몫이라는 것을 절감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지금의 논의 역시도 우리가 건설할 당의 주요한 조직운영 원리의 기초를 잡아나간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여전히 비평 글 문제에 대해서 비판의 자유와 행동의 통일로 접근하는 것에 대해 이견이 존재하지만, 다양한 수준에서 비평 글 문제에 대한 입장과 판단들이 적극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리고 오는 19일 서울지역위원회의 임시 총회는 사노위가 어떠한 조직운영 원리를 승인할 것인가 하는 중요한 결절점이 될 것이다.

 행동의 통일이라는 측면에서 총회 결과를 겸허하게 수용하겠지만, 이번 논란에 대한 어떠한 반대 의견에 대해서도 관료적으로 제재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묵과하지 않을 것이며, 사회주의 조직의 조직운영 원리에 대해 지속적으로 제기할 것이다. 활발한 논쟁과 토론을 통해서만 사회주의 조직운동의 기초를 옹호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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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당 건설의 역사와 ‘비판의 자유’에 대한 교훈 [사회주의자 통신 2호]

사회주의 당 건설의 역사와 ‘비판의 자유’에 대한 교훈

- 이탈리아 공산당과 그람시의 교훈

 

사노위 강령실무위원 이형로

 

 


 

‘신질서’와 ‘공장평의회운동’으로 잘 알려진 이탈리아의 혁명가 안토니오 그람시가 PCI(이탈리아 공산당)에서 스탈린의 정책을 이식하는 핵심인물이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게다가 그 핵심 조치가 바로 트로츠키에 우호적이었던 보르디가 경향의 글을 삭제시키고, 결국 당의 공식 매체에서 출판 금지시키는‘언론통제’였다는 무거운 사실을 그 후예들이 알지 못하거나 가볍게 여기고 있는 것 같아 이글을 시작한다.

 

이탈리아 공산당의 창건과 혁명분파 구성에 머뭇거린 ‘신질서’그룹

1892년Genoa에 의해 창건된 PSI(이탈리아사회당)는 개량주의 세력의 지배아래 1917년 전까지는 맑스주의 혁명적 원칙을 고수하는 진정한 좌파 세력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1917년로마대회 이후‘비타협적 혁명분파’가 형성되기 시작했는데, “전쟁 후 평화적인 삶”이라는 당내 개량주의 다수파의 주장에 대항하여 아직 소수였지만 혁명분파는 “노동자계급 스스로의 독재를 세우기 위하여 모든 나라에 프롤레타리아의 권리를...”, “정치적 영역뿐 아니라, 자본가에 대한 사회주의적 몰수를 통하여 모든 부르주아 기구에 대한 투쟁을...”이라는 강령을 방어했다. 당시 보르디가가 주도했던 혁명분파는 당의 분리를 원하지 않았는데, 위와 같은 혁명적 강령으로 당의 다수를 획득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1920년 3월 토리노에서 열흘 동안 총파업이 일어났을 때, 주류 법적노조의 지원을 받는 PSI(이탈리아사회당)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고, 결국 노동자계급을 배신했다.

 

1919년 5월1일 그람시, 톨리아티, 타스카는 신질서(L'Ordine Nuovo)의 창간호를 발간하였고, 당시 파업이 일어난 지역인 PSI의 토리노그룹은 보르디가가 이끌고 있었다. 그런데 그람시는 레닌과 De Leon의 혁명적 쌩디칼리즘을 묘하게 섞어 “노조주의가 공장평의회와 소비에트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보르디가는 핵심문제를 혁명당의 부재라고 보았다. 보르디가도 물론 평의회를 지지했지만, 평의회가 “공산주의당 지역단위”의 기반 위에 형성될 때 비로소 혁명적 내용을 획득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신질서와 논쟁했다. 그런데 정작 보르디가가 신질서와 논쟁한 이유는 이론적 문제를 떠나 신질서 그룹이 개량주의 극대주의자, 중앙파와 선을 긋고 스스로 혁명분파로 구성하는 것을 주저했기 때문이었다. 당의 다수파인 개량주의 세력이 노동자계급의 투쟁에서 배신을 하거나 당의 구조가 혁명적 강령을 실천할 구조가 갖춰져 있지 않을 경우, 혁명적 원칙을 방어하고 개량주의 세력에 넘어간 노동자계급을 혁명 강령으로 비틀어 빼내오기 위해서는, 당내 기반과 일부 건강한 인자들을 포기하더라도 그들과 분명하게 선을 긋고 단절하는 것은 혁명조직의 원칙이자 노동자 계급에 대한 신뢰를 지키는 일이다. 당시의 신질서 그룹은 혁명당의 역할과 혁명 강령의 실천적 의미를 소홀히 인식한 결과 개량주자들과의 단절을 주저했던 것이다.

 

결국 1920년대 말신질서 그룹은 보르디가 분파로 움직이게 된다. 9월의 공장점거투쟁 실패가 “경제관리”와 “노동자 통제”이론에 대한 심각한 타격을 입혔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정적으로 보르디가가 강조했던 “공장점거 투쟁이라는 혁명적 사건이 그 운동을 지지하고 지도할 공산당이 부재했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었다. 그래서 11월 밀라노에서 “통일공산주의분파”가 형성되었고, 1921년 1월21일 드디어 Imola대회에서 코민테른의 지부인 PCI(이탈리아공산당)이 창건된다. 분파들은 해소하여 신당에 결합했고, 당 대회의 안건에는 “혁명 중에 일어난 평의회는 그의 다수가 공산당에 의해 획득되었을 때 혁명적일 수 있고, 그렇지 않을 경우 혁명투쟁에 대한 심각한 위험이 될 수 있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대중의 직접행동의 자발성과 혁명 강령에 입각한 의식성을 혁명적으로 이해 한 위의 테제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스탈린정책’을 이식한 그람시와 ‘비판의 자유’를 방어하지 못한 혁명 좌파

그람시는 혁명분파 구성에 주저하긴 했지만 PCI를 창당하는 데 일정정도 기여했고, 1922년부터 1924년까지는 모스크바와 빈에서 코민테른을 위해 활동했다. 당시 소련에서는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정책이 수립되어야 하는가와, 서유럽에서 사회주의자와 새로운 공산당 사이의 관계에 관해 논쟁이 진행되고 있었다. 1924년이탈리아 의회에 선출되어 이탈리아로 돌아온 그는 당의 지도권을 확보하고, PCI를 창당 초기의 분파주의 경향으로부터 대중운동에 뿌리박은 대중정당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투쟁을 전개했는데, 이러한 당 노선을 두고 보르디가 경향과 심각한 갈등을 빚게 된다. 왜냐하면 당시 이탈리아는 이미 파시스트운동의 발전이 당 운동의 행동적 제약을 가져왔고, 모든 투쟁은 방어적 수준에 머물렀고, 대중들의 경제투쟁조차 광범위하게 줄어든 상태였기 때문에, 대중정당 노선은 보르디가 에게는 혁명적 원칙을 포기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당시 코민테른과 그람시는 이탈리아에서 PSI(이탈리아사회당)와 PCI(이탈리아공산당)가 통합하여 대중정당을 만들기를 원했지만, 보르디가는 무솔리니와“평화협정”을 맺는 “중립주의”정책을 채택한 PSI와는 동맹을 맺을 수 없었고, 강령적으로도 프롤레타리아의 무장을 통한 혁명투쟁 노선을 갖고 있지 않거나 사실상 폐기해버린 정치세력들과의 “통일전선”을 거부하는 노선을 강력히 밀고 나갔다. 결국 통일전선 문제는 보르디가 지도부와 코민테른 사이의 대립을 가져온다. 당시의 코민테른 3차 대회는 모든 나라에 통일전선 전술의 적용을 명령했는데, PCI는 4차 대회에서 오히려 이것에 반대하는 선언을 한다. 1924년 5월 Como에서의 PCI대회에서 보르디가 등이 제안한 테제인 프롤레타리아 독재, 무장투쟁 노선(프롤레타리아독재냐 부르주아지독재냐)을 절대다수로 수용한 것이다.

 

그래서 다음해인 1925년은 본격적으로 보르디가 경향과 코민테른의 러시아 지도부의 전쟁이 일어난 중요한 해이다. 또한 1925년은 트로츠키의 좌익반대파와 러시아공산당 및 코민테른이 대립한 시기였다. 1925년 3월-4월 코민테른 확대집행위원회는 PCI 3차 대회의 의제에 대한 보르디가 경향을 강제로 삭제·제거했고, 트로츠키에 우호적인 보르디가의 글(“트로츠키 문제”)의 출판을 금지시켰다. 결국 코민테른의 스탈린 정책을 PCI에 이식시키기 위해 그람시는 혁명적 좌파들의 입을 막음으로써 다수의 당원들과 분리시키려 했고, 코민테른 안에 이미 뿌리내리고 있던 강압적 관료주의(스탈린주의)를 이용하여 혁명분파들을 차례로 축출하는 변절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또한 그것이 참혹한 스탈린주의의 잉태였던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혁명적 좌파들은, 그해 4월 보르디가의 동료이자 훗날 보르디가 경향을 극복하고 혁명분파의 다수파를 차지한 데이먼 등을 통해 조정을 위한 위원회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조차도 그람시는 “조직화된 분파”라고 위원회를 비난하면서 격렬하게 공격했고, 그를 추종하는 다수의 맹목적 조직보존주의자들의 축출의 위협 아래 “위원회”는 결국 해산해야 했다. 그것은 다수파로서의 이탈리아 좌파의 종말의 시작이었다. 그 후 당을 장악한 그람시의 지도력(대중정당 노선) 아래 당은 12.000명에서 30.000명의 전투파로 증가했다. 그런데 당시의 신규 당원들은 젊은 노동자와 농민이 다수였고, 낮은 수준의 강령의 승인은 정치의식의 하락을 가져왔고, 정치적 미숙함과 무능력은 당을 급속도로 변질시켰다. 정치의식이 균질화되지 않은 미성숙한 다수에게 조직보존주의, 양적 팽창주의 노선을 강제하는 것과 사상투쟁의 자유마저 제한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사상투쟁과 혁명적 실천을 통해 다수를 획득해나가고자 하는 혁명적 좌파들에게는 치명적인 상황을 초래했다. 혁명조직의 기본 운영원리이자 혁명가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사상투쟁의 자유’를 방어하고 그것의 박탈에 대해 끝까지 저항하고 투쟁했어야 하는 공산주의자들의 생존원칙이 안타깝게도 무겁게 인식되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말해 움트고 있던 스탈린주의에 대한 거부원칙이 이탈리아 좌파에게는 아직 정립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1926년 리옹대회에서 보르디가 경향은 완전히 제거되었고, 소수파로 전락한 좌파는 유명한 “리옹테제”를 제출한다. 이는 망명중의 혁명적공산주의자들의 지향점이 되어, 2차 대전 중에도 활동의 지침이 되었고, 결정적으로 68혁명이후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혁명적 좌파들의 부활을 돕는다. 이 테제는 그람시의 정치를 크로체와 베르그송의 사이비-맑스주의의 혼합이라 규정하고 강력하게 비난한다. 그리고 반파시스트 당과의 동맹과 “노동자연방공화국”을 맑스주의의 포기라고 하면서 비판한다. 또한, 권위에 복종하는 자발성을 대체하는 어떠한 규율도 거부한다. 이것은 인터내셔널의 당들이 스탈린의 코민테른에 복종하는 퇴행의 위험성을 미리 경고했던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경고는 머지않아 현실이 되었고, 코민테른의 결정적 타락과 세계적으로 혁명적 공산주의 세력에게 기나긴 죽음의 시대를 가져다주었다.

 

혁명적 분파운동과 당 건설 운동의 역사적 교훈

PCI에서 축출당한 보르디가는 1926년 2월-3월 6차 코민테른 확대집행위원회에 마지막으로 참여했는데 트로츠키와 장시간 토론할 기회를 가졌다. 위원회의 참여는 “일국사회주의”에 대한 트로츠키의 투쟁에 이탈리아 좌파의 연대를 보이기 위한 것이었다. 여기서 보르디가는 극단적 개입의 형태로 가장 맹렬하게 스탈린을 공격했다. 그는 당시를“분파의 역사는 레닌의 역사이다”라고 회상했다. 이것이 코민테른 내에서의 이태리 좌파의 마지막 투쟁이었고, 그 이후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저항, 그리고 스탈린의 이탈리아에서 있었던 것보다 더 잔혹한 숙청과 살해의 역사였다. 1927년 12월 스탈린은 일국사회주의를 선언한 러시아 공산당 15차 대회에서 트로츠키를 축출했다. 또한 혁명과 관계된 모든 사진과 기록들에서 트로츠키의 흔적을 지워나갔고, 수많은 공산주의자들과 혁명적노동자계급을 추방하고 살해했다.

 

이탈리아에서는1926년파시스트 정부의 정당금지령에 따라 PCI는 해산 당했고, 그해 11월 그람시는 체포되어 20년형을 선고받았다. 또한 혁명적 좌파와 결별한 당은 이미 혁명성과 전투성을 모두 잃은 채 파시스트의 탄압 하에 조직적 활동이 끊어지게 된다. 그리고 2차 대전 이후 모스크바로 망명했다 귀국한 톨리아티의 대중정당형 의회주의 노선을 채택하면서, 스탈린주의에서 사민주의까지 혼재된 다원주의의 길로 접어든다. 또한 톨리아티의 사후에는 러시아파와 이탈리아파로 양분, 유로코뮤니즘과 민족 공산주의 노선 등으로 혼란을 겪다가 결국 소련 붕괴 후 완전한 사민주의좌파 정당으로 몰락하고 만다. 이것이 바로 파시즘과 통일전선의 반혁명적 성격을 명확히 하지 못해 파시스트에게 길을 열어주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혁명노선을 굳건히 하지 못해 전투력을 잃은 변절된 PCI의 비극이었고, 그람시가 주도한 스탈린주의 공산당의 실패였다.

 

보르디가 또한 1926년 말 파시스트에 의해 체포되어 3년간 추방되었다. 당시 해외로 망명한 이탈리아 좌파는 유럽에서 투쟁을 계속했지만, 보르디가는 점점 정치적 삶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혁명운동에서 멀어져 간다. 하지만 보르디가를 극복한 그의 동지 데이먼과 후배 혁명가들은 파시즘 하에서도 전쟁 중에도 수백 명이 분명하게 살아남아 여러 공장과 거리에서 목숨을 건 선전활동을 해나갔으며, 혁명적 분파활동의 원칙과 실천적 경험들로 인해 전쟁이 끝나기 전 독자적인 국제공산주의당(PcInt)을 건설하기에 이른다. 수백으로 시작한 당원들이 수천으로 증가하는 데에는 채 몇 년이 걸리지 않았고, 이것은 대중적 노선이 아닌 혁명적 원칙과 혁명 강령을 전투적 노동자계급에게 굳건히 뿌리내린 결과였다.

 

그리고 1920년대 타락해가는 코민테른과 스탈린에 대항해 이탈리아 좌파와 트로츠키가 함께 싸웠던 혁명적 전통은, 80년이 넘게 흐른 오늘날 새로운 혁명적 인터내셔널 창출을 향한 중요한 밑거름이 되고 있다. 또한, 2011년 한국의 사회주의자 재판에 항의해 뉴욕에서 벌어진 국제주의자들의 항의시위도 이들의 후예들이며, 이러한 국제주의는 우리에게 원칙만이 아니라 즉시 실천해야 할 지침으로 인식해야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람시나 보르디가 중 어느 누구도 전폭적으로 지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공산주의 당 운동의 역사적 순간에 이들이 각자 서있었던 정치적 위치와 역할에 대해 명확한 원칙을 갖고 평가하면서 역사적 교훈을 계승할 뿐이다. 첫째, 혁명적 분파 활동 없이 혁명당 건설과 혁명적 원칙의 방어는 불가능하며, 모든 분파활동은 끊임없이 외부의 노동자계급을 향해야 한다. 둘째, 혁명 강령 없이 혁명당 건설은 불가능하며, 혁명 강령은 실천적으로 승인할 때 혁명성을 보장한다. 스탈린도 그람시도 강령을 승인했지만,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원칙을 저버리고 강령의 수준을 낮춤으로써 비극의 시작을 알렸다. 셋째, 혁명 강령은 계급투쟁과 공산주의 운동의 발전과 함께 살아 움직이며 끊임없이 발전해나가는 것이지 절대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그래서 혁명적이지 않은 낡은 강령을 단호하게 배격하는 것이야말로 혁명조직과 혁명운동의 시작이다. 넷째, 혁명가들의 가장 큰 사상적 실천적 무기인 혁명 강령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한 없는 사상투쟁의 자유를 쟁취해야 한다. 그 어떠한 명분으로도 조직적 이해관계로도 사상투쟁의 자유가 침해당해서는 안 된다. 사상투쟁은 살아 움직이며 상호 침투하는 과정이며, 혁명적 행동을 강제하는 의식적 행위이며, 노동자계급이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버리고 혁명의식을 체득하는데 있어 필수요소이기 때문에 자본가들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공개적으로 열려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탈리아 당 운동의 역사를 보면서 한국의 당 건설 운동의 주체들에게 묻고 싶다. 동지들이 서 있는 역사적 정치적 위치는 어디이며, 단지 먼저 시작했을 뿐인 아무런 특권이 없는 동지들이 대체 누구를 위한 누구에 의한 당 건설을 하려는 것이며, 무엇을 움켜쥐고 달려가고 있는가?

 

그리고 당 추진위를 향한 강령투쟁에 사활을 걸어야 할 사노위에 요청한다. 사노위는 남은 기간 한국의 노동자계급과 우리 스스로에게 약속한 당 추진위를 향한 강령투쟁에 전념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첫째, 강령초안제출과 강령토론이 공개적으로 진행되는 4월30일 이후에는, 강령채택을 위한 과도적 조직체계로 즉각 전환해야 한다. 과도적 조직체계란 강령채택 조건 창출을 위한 중립적인 조직 관리체계를 의미한다. 이것은 내용적으로는 모든 강령초안이 동일한 조건 속에서 조직내외로 확장해 나갈 수 있는 체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중집, 중앙위, 지역위 ,분회, 언론 등 모든 기구와 조직의 근간은 강령채택을 위한 과도적(임시)체계로 전환하며, 총회를 통해 위임받은 관리기구(대리인)는 철저한 중립성을 유지해야 한다. 이것은 조직이 당 추진위로 상승하기 위한 이행체제이며, 아래로부터 강령을 결의하고 조직 활동의 질적인 상승을 강제하는 체제이다.

 

둘째, 강령투쟁을 통해 혁명적 강령이 채택되고 당 추진위로의 이행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사노위는 즉각 종료하고, 당 추진위(준비모임)로 전환해야 한다. 만일 강령투쟁에서 사노위 전체를 견인하지 못한다 해도, 당건설 경로와 사노위 이후 진로(연장포함)는 위와 같은 강령채택 체계를 충실히 수행한 후, 조직이행과정의 결과물을 바탕으로 새롭게 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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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행전략에서 역사적 후퇴 [사회주의자 통신 2호]

이행전략에서 역사적 후퇴

 

사노위 서울지역위원회 김해화

 


 

최근 사노위는 세 가지 강령 초초안을 두고 토론을 해왔다.‘초초안’이라는 형식은 ‘완결성’을 보여주기보다 더 자주, 많이 토론이 되고 다듬어져야 할 것이고, 또 그렇게 할 것이라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미완’의 형식에도 불구하고 이 ‘초초안’들은 명확히 다른 정치와 경향의 차이들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 차이는 토론을 통해서 해결되기보다 더욱 명료해졌다.

 

최근 강령토론에서 주요한 몇 가지 쟁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강령에 프롤레타리아독재 및 무력을 수반한 혁명적 이행을 ‘명시’할 것인가의 문제. 그러나 이는 단지 ‘명시’할 것인가를 떠나 전략에서 중대한 차이를 내포하고 있다.

둘째, 과거 ‘소련’, ‘동유럽’, ‘중국’, ‘쿠바’, ‘북한’ 등을 노동자국가로 볼 것인가의 문제.

셋째, 실천강령(이행강령)의 문제. 이는 당면한 요구투쟁들을 어떻게 변혁과 연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이다.

 

3인안의 동지들은 이 모든 문제에서 5인안의 동지들과 차이를 드러내왔다. 특히 첫째 문제에서 이들은 이를 ‘명시’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실천적 의의가 우리가 어떠한 변혁전략을 가질 것인가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는 주장에 대해 블랑키주의라고 공격했다. 그러한 공격들과 주장들은 ‘유로코뮤니즘’이 성립하고 맑스주의에서 역사적 후퇴를 가져왔던 그 순간들에 대한 기억을 나에게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이것은 나 자신만의 착각이나 오해가 아니라 엄연한 사실이라는 점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둘째 문제에 대해서도 3인안의 동지들은 명확한 규정을 회피하고 소련의 ‘당 독재’, ‘관료주의’, ‘생산력주의’라고 비판하는 데 멈추고 있다. 이들은 이 체제가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니고 “1917년 혁명을 통해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이행을 시작했으나 ‘이행에 실패한 사회’라고 본다. 우리는 자본주의 아니면 사회주의라는 도식적 접근에 반대한다. 이런 관점은 이행기에 대한 관점이 없는 입장이며, 동시에 역사적 상황에 대한 구체 분석이 없는 관점이다.”라고 그들은 말한다. 누가 역사적 평가를 결여하고 있는가하는 것도, 누가 이행의 관점에 서 있는지에 대해서도 놔두겠다. 그런데 ‘이행에 실패’한 그 사회의 성격이 도대체 무엇이라는 것인가? 2인안의 동지들은 노동자국가의 필수요소들이 (관료주의 반혁명으로) 파괴된 것이 분명함에도 ‘집단적 소유’가 확립되었다는 이유로 ‘방어’ 논리를 여전히 주장한다. 이들은 심지어 국가자본주의론에 바탕을 둔 5인안에 대하여 ‘반동적 사상’이라고 과감히 주장하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

 

이 글은 예전에 강령토론을 위해 준비해둔 메모를 가다듬은 것이다. 따라서 최근 강령적 쟁점에 대해서 모두, 충분히 다루고 있지 않으며 위와 같은 ‘역사적 후퇴’에 대해 되새겨보는 것에 제한되어 있다. 또한 나는 5인안을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는 이 글에서 이러한 ‘역사적 후퇴’는 결코 전투적 맑스주의 운동과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것을 떨쳐내지 않는 한, 이 글은 또한 결별선언이 될 것이다. 3인안의 동지들은 자신들의 견해에 대해 유로코뮤니즘이라 ‘비난’한 것을 두고 ‘유로코뮤니즘이면 함께 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답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블랑키주의와 함께 할 수 있겠는가? 나로서는 여전히 그것이 의문으로 남아 있다.

 

 

 

강령에 익숙하기

 

이 나라에는 두 개의 개량주의 ‘진보’정당이 있다. 레닌은 제국주의와 이러한 정당과 ‘운동’의 번성을 엥겔스를 인용하여 ‘부르주아 노동자당’이라고 말한다.이는 이 정당들의 속성을 표현하기에 매우 적절해 보인다. 외국에서 이 정당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노동자당’의 성격마저 완전히 벗어던졌지만 말이다. 이 나라에서도 이러한 정당들의 형성과 성장은 노동조합 관료제의 안착과 함께 또 하나의 부르주아민주주의를 떠받드는 요새들이 굳건하게 구축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요새들을 둘러싸고 결정적 공격을 예비하는 것은 3인안의 주장처럼 불명료하기 짝이 없는 ‘진지전’에 있지 않다.

이 정당들은 각기 강령을 채택하고 자신의 대변인과 언론과 연구소를 두고 날마다 정책과 논평을 제시하고 있다. 더군다나 그들은 적은 수이긴 하지만 의회에 ‘진입’해 있다. 그럼에도 이들 정당들은, 강령의 기회주의는 말할 것도 없이, 대개 실천과 강령과의 현저한 분리를 특징으로 갖고 있다. 그들에게 강령은 멋들어진 ‘대안체계’의 고안물에 지나지 않는다. 민주노동당은 “직접민주주의 확대”와 “사적 소유권의 제한”과 “생산수단의 사회화”라는 드높은 추상성을 자랑한다. 진보신당은 “사회공화국”, “공공성”, “사회연대”의 깃발 아래 “대의민주주의 민주화”, “아래로부터의 민주화”를 말한다. 이처럼 꽤나 멋들어진 슬로건을 뒤로 놔둔 채 이들은 G20 정상회의 당시 이 국가의 수반들에게 금융거래세를 도입하라고 간청하는 서한을 보냈고, 현재 리비아 혁명과 관련해서는 “국제사회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실효성 있는 조치를 즉각 취”하라고 했다. 그리고 “비행금지 구역 설정을 통해 지금이라도 카다피군의 전투기를 묶어놓는 것은 물론, 수세에 몰린 시위대에 대한 무기 지원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것은 지난 1호에 내가 쓴 대로 혁명세력의 피로 손을 물들인 학살자들의 ‘망할’ 국제사회에게 리비아혁명을 맡기는 것인데도 말이다. 이러한 분리는 강령과 그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두드러진다. 그 구성원들은 자기 당 강령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도 설명하지도 못한다. 그들은 강령에 익숙하지 않다. 그들에게 강령은 행동의 지침이 아니다. 대신에 그들은 각기 속한 지역과 부문들에서 협소한 ‘현안’에만 매달려 있을 뿐이다.

우리들 안에서도 이러한 문제가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다. 어떤 이들은 앞서 제시한 쟁점들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일부 외국의 좌파들처럼 강령 건설을 밀쳐두고 ‘우리의 입장’(사노위의 정치원칙으로 제시된 11개 테제들)과 같은 것으로 제한해서 활동을 지속하자는 주장이 고개를 내밀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쟁점들 대신에 생태, 여성, 핵문제, 문화적 쟁점을 주로 다루자고 한다. 이것은 단지 몇몇 개별 구성원들의 태도의 문제인가, 아니면 특별히 어떤 경향을 보여주는 것인가? 이러한 강령에 대한 태도는 개량주의 정당들이 그러한 것처럼 변혁과 이를 위한 전략의 문제를 뒤로 밀쳐두거나(또는 포기하거나), 여기서부터 후퇴하려는 경향의 산물이다.

우리의 강령은 ‘진보’정당의 그것과 달라야 한다. 강령은 살아 있는 행동의 지침이 되어야 하고 따라서 우리는 여기에 완전히 익숙해져야 한다. 최근 한국어로 출간된 『꼬뮤니즘 ABC』에서 부하린은 “우리 당의 당원은 아주 세세한 내용까지 강령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것은 당의 모든 그룹과 개별 당원의 활동에 가장 중요한 지침을 이룬다”고 했다. 나아가 “강령을 알지 않고서 그 누구도 참된 공산주의적 볼셰비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도 이와 똑같이 말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강령은 문건들의 뭉치, 모음집이 아니다. 강령은 사회주의와 노동자운동의 결합, 즉, 노동자운동을 사회주의 확립이라는 목표를 향해 이끌고자 하는 이들의 전투적 지침, 현실운동의 지침이다. 강령이 없다면 ‘사회주의 대중화’라는 슬로건은 공허하다. 강령이 없다면 그동안 긴 서클과 그룹이 각개 약진하던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당으로서의 통일도 불가능하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우리는 강령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우리의 전통에 대하여

 

3인안의 동지들은 5인안에 대하여 블랑키주의라고 비난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은 왜 그것이 블랑키주의인지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이들은 아직 공개되지 않은 토론용 문서에서 이러한 비난을 여러 차례 쏟아 부었다. 이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일상적 삶의 모든 공간에서 저항과 진지의 구축”을 주장한다. 이들은 5인안의 동지들에 대해 오직 “자본주의 체제를 타도하는 물리력을 확보하는 과업만을 중요하게 제기”하고, “사회주의 혁명의 주체형성 관점과 혁명의 경로를 물리력과 무봉전술로 협소화”시키며, 따라서 이는 “블랑키적 맹동주의”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또한 노동자계급의 무력혁명의 필요성을 강령에 ‘명시’하는 문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부르주아국가의 계급폭력에 대한 반폭력으로서의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폭력의 본질을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성장 및 의식의 고양과 분리시켜 피를 부르는 물리적 폭력만으로 협소하게 바라보는 블랑키주의나 바쿠닌주의의 좌익적 변용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피를 부르는 물리적 폭력”이라는 말은 꽤나 “무시무시”하지만 이 쟁점을 이런 식으로 “무시”하거나 간단히 무슨무슨 주의로 치부해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과연 이들이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성장과 의식의 고양”을 결정적 계기로서 반란을 예비하기 위한 것으로 바라보는지도 여전히 남아있는 문제이다.

그런데 정작 이러한 비난 또는 언명대로 5인의 동지들 가운데서 블랑키처럼 ‘무모한’ 인간들은 없다. 정직히 말하자면 이러한 주장은 이 다섯 사람의 현실의 활동과 기반을 둔 전통에 대해서만 살펴보더라도 간단히 “무시”될 수 있는 주장이다. 그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이러한 비난을 즐기는 이유는 전투적 맑스주의 전통과 다른 어떤 “특별한” 전략을 정당화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역사적으로 자주 되풀이되면서 나타났던 현상이다.

플레하노프도 볼셰비키를 “블랑키주의”라고 전력을 다한(exhaustive, 즉, “소모적인”) 고발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는 1905년 혁명기에 “우리는 총을 들지 말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로자 룩셈부르크는 이에 맞서는 일은 러시아의 동지들이 충분히 할 수는 있는 일이지만 관심을 지닌 독일의 동지들을 위해 비판한 적이 있다. 엥겔스에 따르면, 1840년대 블랑키주의 경향은, “잘 조직된 소수가 때를 잘 만나서 정치적 일격을 가함으로써 인민대중을 이끄는데 성공하여 혁명의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혁명적 소수파가 소요나 반란을 일으키면 나머지 대중은 독재의 필요성을 깨닫고 당연히 뒤따른다는 것이다. 블랑키는 스스로를 그러한 ‘행동하는 인간’으로 보았다. 그런데 이것은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를 위한 것이 아니고 소수의 독재가 될 것이라는 것이 프롤레타리아독재를 경험한 엥겔스의 지적이다. 우리의 플레하노프는 이 엥겔스의 지적을 볼셰비키에게 적용하기 위해 애를 썼다(오늘날 이곳 한국에서 프롤레타리아트독재를 ‘언명’하는 것에 대해서 그토록 반대하는 이들이 ”프롤레타리아독재주의자“들에게 이러한 비난을 하는 것은 참으로 역설이다). 볼셰비키가 당대의 블랑키주의 “소수파”이고 그들은 대중의 혁명적 자율성 또는 자주성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이다. 이것은 세 사람이 다섯 사람을 향하여 “노동자계급의 정치의식의 성장과 고양” 그리고 “혁명의 주체형성”에 대해 망각하고 있다는 비난과 크게 다르지 않다.

로자 룩셈부르크가 지적한 대로 러시아의 블랑키주의자는 ‘인민의 의지파’였다. 한국에서 이 블랑키주의의 전통은 많은 민중주의 정파들(사노맹과 같은)에서 어느 정도 찾아볼 수 있다. 적어도 다섯 사람은 이와 철저히 단절하기 위한 기나긴 투쟁을 거쳐왔다. 그것은 80년대부터 지금까지 지배적인 인민주의(또는 블랑키주의적인), 노동조합주의, 스탈린주의나아가 대혼란의 와중에 등장한 ‘현대적 조류’들(이제 막 세 사람이 제출하고 있는 것과 같은 그람시의 기회주의적 변용으로서 “진지전과 기동전의 결합”과 같은 것들을 포함하여)을 이론적․실천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또는 그것에 맞서 분투해왔다. 이는 90년대 혁명적 사회주의 그리고 좌익공산주의 그룹들의 생성에서 비롯되었다. 3인의 동지들이 아마도 이러한 낡은 스탈린주의와 조합주의에 갇혀 있을 때 말이다. 그리고 기나긴 고립과 분열의 시기가 있었고 통일을 위한 요구와 열망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지금의 사노위로 이어졌다.

베른슈타인은 전투적 맑스주의자들에 대한 비난으로 악명 높다. 유로코뮤니스트들이 “프롤레타리아독재”에 대한 언명을 폐기하고 그들의 전략을 향해 나아갈 때에도 언제나 전투적 맑스주의에 대한 비난은 되풀이되었다. 그들은 3인안의 동지들처럼 “프롤레타리아독재”와 “노동자계급의 무력”에 의한 결정적 반란을 “명시”하는 것에 반기를 들고, 이것이 “피를 부르는 물리적 폭력”이라는 “협소한” 시각에 갇혀 있다고 말했다. 다섯 사람이 이제 와서 들어야 하는 블랑키주의라는 비난은 여전히 전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여실히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다시 전통의 문제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5인안을 제시했거나 이를 지지하는 동지들은 최소한 다음의 전통과 원칙들을 공유하고 있다.

 

첫째, 파리코뮌과 러시아 노동자혁명에서 보여준, 그리고 실패했지만 그 이후 혁명들과 노동자운동에서 나아가 오늘날 아랍의 혁명에서도 등장한, 노동자계급의 정치권력(프롤레타리아독재), 그리고 이를 위한 혁명적 이행에 대해서 확연한 일치를 지니고 있다. 이는 러시아혁명의 승리 이후 코민테른 초기의 테제들에 이미 담겨져 있다. 우리는 1차 제국주의 전쟁 시기 찜머발트에서 전쟁에 대하여 혁명적 결의를 함께했던 좌파들과 그 결의의 산물로서 초기 코민테른의 결집했던 좌파들의 전통을 계승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이후 코민테른은 잘 알고 있는 바대로 좌우편향의 갈지자걸음을 걸었고, 인민전선과 같은 부르주아민주주의에 종속되거나 러시아 쇼비니즘적인 길로 나아갔다. 우리는 당시 부르주아독재와 프롤레타리아독재에 대한 테제, 전술에 관한 테제, 공산주의자당의 역할과 임무에 관한 테제 등을 다시 오늘날의 이 강령토론과 관련지어 해독하고 적용해야 한다. 나아가 5인의 강령은 말로서만 프롤레타리아독재에 대해 승인할 뿐만 아니라 이를 향해 나아가기 위한 이행전략에 대한 일치를 포함한다. 우리는 지금 주어진 노동자운동을 혁명적 이행의 각도에서 다루고 그리고 그러한 길로 이끌고 가기 위한 전술과 행동강령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전략에 대해 공유하고 있다.

 

둘째, 5인안은, 비록 그 차이들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맑스, 엥겔스, 로자 룩셈부르크 트로츠키의 혁명적 부분, 보르디가의 혁명적 부분들 속에서 그리고 그 외 과거 혁명적 투사들과 전통에 기원을 두고 또한 여기서 ‘추출’된 혁명적 정치와 원칙 그리고 전략들을 방어하며 실현하려 한다.

 

셋째로, 이들은 이곳 한국에서 3인안의 동지들과 다른 전통을 형성하고 발전시켜내기 위해 투쟁해왔다.

 

 

블랑키 대 프롤레타리아독재주의자

 

3인안의 동지들은 이와 명백히 다른 과거를 지닐 뿐만 아니라 미래도 다른 길로 가고자 한다. 그들은 마치 21세기라는 새로운 시대에 알맞은 최신의 강령을 들고 나온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유로코뮤니스트의 최신판 버전이자 이행전략에 있어서 맑스주의로부터 후퇴일 뿐이다. 이들은 유로코뮤니스트가 ‘정식화’되는 과정을 21세기 이곳에서 되풀이하고 있다.

3인안 동지들은 그들과 마찬가지로 먼저 사민주의와 스탈린주의(아마 그들에게는 레닌주의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에 대해 반대한다고 한다. (물론 이들은 사민주의 비판을 강령에 길게 할애할 필요는 없다. 그 이유는 사민주의와 실천적으로 다른 명확한 강령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당면 변혁은 사회주의혁명이고, 노동자계급의 ‘대체권력’을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들은 사회주의 혁명으로 어떻게 “이행”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참으로 모호하게, 부정확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이는 혁명적 사회주의 전통이 확립하고 다듬고 발전시켜온 이행전략과 충돌하고 있다. 3인안의 대체권력과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지루하고 산만한 서술이 핵심을 잃어버린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다음에 이들은 먼저 프롤레타리아트독재와 노동자계급의 무장에 의한 결정적 반란에 대해 ‘언명’하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우리의 실천적 활동이 이러한 결정적 국면으로 이행해 나가기 위해 노동자계급 다수를 전취(획득)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를 꺼려한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에 대해 “블랑키주의”, “바쿠닌주의”, “맹동주의”로 그려낸다. 그 다음에 그들이 내놓은 신전략은 그람시에게 빌려온 “기동전과 진지전의 결합”과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론”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람시를 두 번 죽이는 것에 다름 아니다.

3인안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노동자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 “노동자와 민중의 자치”로 바꿔치기 하였다. 내가 농담한 대로 민주주의와 독재는 다행이도 영어 알파벳 D로 시작한다. 프롤레타리아독재는 프롤레타리아민주주의다. 그러면 별 문제가 없는가? 우리는 노동자계급의 정치권력의 형태, 노동의 경제적 해방을 위해 마침내 발견된 정치형태인 프롤레타리아독재에 대해 제대로 말하지 않고 넘어가도 좋은가? 왜 말하지 않는가? 단지, 좀 더 대중적인 언어가 있기 때문인가? 그러나 아무리 대중적인 언어를 발견했다고 하여서 핵심을 놓치는 일은 있어서는 아니 된다.

핵심은 무엇인가? 부르주아 의회제도와 관료제 등 부르주아 국가기구의 분쇄, 노동자평의회국가 또는 공화국의 창설이다. 그리고 부르주아국가기구는 혁명적으로, 절대 다수 노동자계급 자신의 전인민의 무장력에 의해 분쇄, 타도되어야 한다. 이러한 노동자계급의 무력은 이들이 말하듯 단지 “부르주아지 폭력에 맞선 반폭력”이 아니다. 부르주아도 그들의 자본주의 혁명을 이루고자 할 때 단지 “반폭력”이나 “저항폭력”으로서만 자신의 힘을 지닌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동의의 기제와 이데올로기적 기구가 발달한 부르주아민주주의라도 이것이 없다면 국가는 성립하거나 존속할 수 없다. 이것이 결정적 요소이다. 노동자계급에게도 이는 국가를 떠받드는, 없어서는 아니 될 원천이다.

다섯 사람은 잘 단련되고 의지를 갖춘 소수가 국가를 기습함으로써 이것이 가능하다고 결코 말하지 않았다. 이들은 노동자계급과 민중 자신의 무력을 갖추고 그들 자신의 능동적 행위로서 결정적 반란의 중요성에 대해 거듭 말하였다. 그리고 이 노동자계급의 다수를 혁명정당이 전취하기 위한 행동강령들, 방법(전략과 전술)에 대해 명확히 말하였다. 이것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피흘림”은 아주 적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오늘날에도 무수히 보여주는 것처럼 혁명은 부르주아 군대와 용병들의 발톱 아래 할퀴어져 유산되어 버릴 것이다.

결정적 반란의 성공은 술수가 당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진보적 계급에 의한 것, 오직 인민대중의 혁명적 봉기에 기초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 반란이 발생하기 위한 결정적 조건은 인민의 전위들의 행동이 최고조에 도달하는 혁명의 절정기에 그리고 지배계급이 최고도로 분열하고, 중간계급들 또한 가장 강력한 분열과 동요가 있을 때이다. 이것이 블랑키주의와 맑스주의를 구분하는 열쇠이다. 5인안의 동지들이 이러한 반란의 필수조건과 원칙들에 대한 이해 없이 블랑키주의로 빠져들었다는 것은 대단히 모험적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단지 이러한 사상과 진리에 대해 말했을 뿐인데도 마치 그러한 행동을 예비했거나(아니 음모하였거나) 착수한 것처럼 그래서 위험한 것처럼 바라보는 공안기관의 시각에 기댄 것이다. 그들은 굳이 명시하지 않아도 다 말한 것처럼 이야기한다. 또는 굳이 그것을 언명함으로써 탄압을 불러일으킬 이유가 없다고도 한다. (지난 1호에 실린 대로) 사노련 재판에서 우리가 본 것처럼 자본주의 철폐와 다른 대안사회를 말하는 것은 “무죄”이다. 심지어 방어적으로 “정당방위대”를 말하는 것도 “무죄”이다.

그런데 우리가 감히 자본가권력을 (블랑키나 그 누구 개인 또는 소수가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무력으로 타도해야 하고, 그 무력은 전인민의 무장된 힘으로부터 나와야 하며, 또한 이것은 노동자계급의 현실 운동에서 노동자 정당방위대, 노동자계급의 군대(militia)인 민병대를 건설해야 한다는 것(역사적 실례를 갖고 있는 사상이자 하나의 견해)을 말하는 것은 “유죄”이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우리가 말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 부르주아 민주주의 동의의 기반이 넓은 서구에서 이것을 말하는 것은 아무런 죄가 되지 않는다. 어디 한 번 해 보시라지! 우리는 강하다. 이 ‘민주주의’가 덜 성숙한 이 나라에서는 여전히 그것은 유죄라고 선언되었다. 이것은 표현의 자유의 영역에 속하고 또한 그 자유는 옹호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마땅히 혁명가들이라면 현존 체제에 속박된 이데올로기적 ‘동의’를 허물기 위해서라도 말해야만 되는 것은 아닌가!

 

 

역사적 후퇴

 

3인안에서도 경찰, 상비군 제도의 폐지와 노동자, 민중의 자치적 병사와 치안조직을 구성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이를 노동자권력 수립 이후의 과제라는 항목에서 다루고 노동자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혁명적 투쟁의 과제로 명확히 제시하기를 회피한다.

그래서 대신에 채워진 것들은 “변혁적 사회운동을 형성․강화하고 적극 연대한다.”, “노동자민중의 일상 삶의 공간인 지역을 변혁의 거점으로 만들어 간다” 등이다. 부르주아국가권력의 분쇄와 노동자평의회 국가의 수립 그리고 이에 부속하는 과제들로서 상비군의 폐지와 전인민의 무장은 서로 다른 항목에서 결코 다룰 수 없다. 이들은 당면 노동자권력 문제에서도 이를 한 묶음으로 명확히 제시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천 강령에서도 전혀 제시하고 있지 않으므로, 혁명적 이행의 과제는 붕 떠있거나 실종되어 버린다.이를 대신하는 것은 무엇인가? “총체적인 저항의 진지를 구축하고 직접민주주의를 체험하는 도전과 경험을 축적”, “노동자민중의 자치능력 향상이나 제고”이다. 이는 최근 우리의 강령토론 과정에서 “진지전과 기동전의 결합”이라는 그람시적인 슬로건으로 제기되었다.

스탈린에 맞서 연합반대파가 투쟁할 때 스탈린주의 다수파의 노선을 지지하는 서신을 보내고 그의 ‘일국사회주의론’에 대해 착각했다는 사실들을 빼고 나면 우리가 그람시에게도 배울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토리노의 공장평의회 운동, 『옥중수고』의 노동자계급의 유기적 지식인과 현대의 군주로서 혁명정당의 역할에 대한 사상과 저작들은 혁명가들이라면 충분히 살펴보아야 할 것들이다. 더 나아가 그가 동방(러시아)과 서구의 혁명적 조건의 차이와 진지전에 대한 언급에서도 우리는 충분히 배울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세 사람과 수많은 유럽의 공산주의자들에게 영감을 준 ‘진지전과 기동전의 결합’과 같은 정신은 결코 아니다.

 

자본의 지역사회 장악에 맞서 지역을 노동자민중들의 주체적이고 공동체적인 삶을 구현하기 위한 장소로 재구성해 나간다.

 

지역 특성에 근거해 지역 중요 현안을 둘러싸고 대국가(정부와 지자체)를 상대로 한 투쟁, 지역 거점(공간)을 통한 지역 노동자민중의 주체형성 사업을 시도․축적해 나간다.

 

“경제-정치-사회-일상삶의 전영역에서 대체권력을 형성하기 위한 투쟁과 도전이 펼쳐지고 저항의 진지가 구축되는 과정”이 격변의 시기에 대체권력(노동자권력)의 형성과 지배계급과의 결정적 대결로 수렴되는 것이다.

 

이들은 강령에서 그리고 토론 과정에서 “노동자민중의 자치”, “자치능력 능력의 제고” 그리고 “전영역에서 저항의 진지”에 대해서 수없이 되풀이했다. 그리고 다섯 사람은 이것의 중요성을 망각하고 졸지에“노동자계급의 주체형성을 위한 총체적 활동을 오직 노동자계급의 물리력과 무장력 확보로만 단순화, 협소화”하고 따라서 부르주아민주주의 지배가 강제(물리력)만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동의나 환상에 기초해 있다는 것을 망각한 사람이 되었다. 이것 또한 유로코뮤니스트들이 혁명적 좌파들을 향해서 또는 자신의 과거를 향해서 겨누던 말이다. 도대체 5인안이 “노동자계급 독재 수립은 오직 물리력으로 정치권력을 노동자계급에게 이전시킴으로써만 가능하다”는 단순, 자명한 진실에 대한 언명이 무엇이 거슬리는 것일까?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지배계급과의 결정적 대결”의 실상이 아니고 무엇인가?

 

“노동자계급의 자기통치능력을 현존 사회 안에서 강화한다”는 것은 전투적 맑스주의 전통의 이론과 강령 또는 전술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딱히 한 군데 찾을 수 있다면, 이는 유로코뮤니스트들과 유사한 오늘날의 “21세기 사회주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동지들은 언젠가 노동자계급이 ‘자치능력의 제고’니 따위의 슬로건이나 그것에 바탕을 둔 활동의 축적이 없이도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노동자의 ‘자치능력’을 지금부터 일상과 삶의 각 영역에서 만들어나가겠다는 것은 잘못 겨냥된 것이다.

그람시에게로 다시 돌아와 보면 그에게서도 헤게모니를 위한 투쟁이 권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지 않았다. 심지어 “진지전이 지배적인, 주요한 시대일지라도 이는 운동의 부분적 요소이고 기동전은 “전략적 작용에 앞선 더욱 많은 전술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장기적인 진지전의 시기라 하더라도 “주기적인 무력적 충돌과 순간, 정면공격을 통해 한쪽이 다른 쪽을 요새로부터 몰아내기 위한 주기적 순간들이 있다”는 것이다. 무장반란은 그람시에게 옥중대화에서 분명히 하였다. 그것은 “투쟁의 결정적 순간”이라는 것이다.

 

한편으로 이러한 “결정적 순간”은 앞서 반란의 발생조건에 대해 언급한 바와 같이 일상적 삶의 다양한 측면들에서 노동자계급이 헤게모니를 장악했을 때 또는 노동자들의 자치역량이 향상되어 ‘준비’되었을 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더욱이 자본주의 국가와 사회에서 이러한 영역들에서 (일상적으로) 노동자계급이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자본주의 국가의 지배의 기제를 잘못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는 그람시를 오독하게 만든다. 오히려 바로 “부르주아 헤게모니 본질과 그의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 기구를 통한 지배의 본질 때문에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 사회에서 문화적 헤게모니를 쥘 수 없다.”

 

또한 일상적으로 노동자계급이 중간계급을 포함한 전 계급에 대한 지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부분적 영역들에서 자치나 자기결정권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자본주의와 양립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가 노동자계급에게 강요하는 법칙들과 물질적 조건 때문에 불가능하다. 이것을 분명히 하지 않은 혼란 때문에 그람시에 대한 해석과 변용은 개량주의로 가는 문을 열어놓는다. 그리하여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와 정치의식의 성장의 척도를 선거에서의 성공 따위에서 찾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노동자계급의 문화적 헤게모니나 “자치”가 양립할 수 없다고 하여 이를 양립할 수 없을 때까지 밀어붙이고 “결정적 대결”로 수렴시킨다는 전략은 혁명가들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한 결정적 반란은 있을 수 없고 더 정직하게 말하면 이는 오히려 결정적 반란을 회피하기 위한 수사에 불과하다. 이것이 “진지전”을 항구화하고 체제 내 “자치”로 “수렴”시킨 유로코뮤니즘의 길이다.

혁명을 향한 결정적 반란은 이를 전제로 발생하지 않는다. 또한 헤게모니(노동자계급의 지도력 문제)를 쟁취하는 것은 이와 같은 “자치능력”의 제고와 “저항의 진지”를 구축하기 위한 활동이 아니라 자본주의(자본가) 체제에 맞서 노동자계급의 실천적 요구를 위한 중단 없는 투쟁과 이 속에서 혁명적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것이다(물론 이데올로기투쟁을 당연히 포함한다).

이것은 5인안의 이행강령들에서 제시된 공동전선 전술들을 필요로 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5인안에서는 자본주의를 떠받드는 ‘기제’로서 개량주의 정당과 노동조합 관료제의 번성에 대해서도 지적하면서 일관되게 이에 맞선 투쟁으로 혁명적 좌파와 노동자계급의 전투파가 어떻게 하면 이를 허물고 헤게모니를 전취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실천방침을 제시하고 있다.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 국가를 함께 구성하는 사민주의(좌파)정당과 노동조합 기구들을 통해서도 노동자계급에게 이미 깊숙이 스며든 상태이다.”

그러나 3인안은 이러한 서술을 마치 노동조합이나 선거에 대한 기권주의로 몰아친 다음에 자신들의 진지전을 물신화한다. 그람시는 스탈린주의 기구에 의한 트로츠키주의의 위조 즉, 영구혁명이론이 ‘공세이론’과 같다는 비난을 공유했다. 따라서 트로츠키가 언제나 정면공격, 기동전만을 옹호했다는 것이다(마치, 3인의 동지들이 5인의 동지들을 향해 비난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스탈린주의야말로 나치에 맞선 공동전선을 거부했지만 (또한 그람시주의를 변용하려는 이들이 ‘계급동맹전략’으로 나아갈 길을 제공해주었지만) 트로츠키야말로 이 공동전선전술(넓은 의미의 전략)을 전투적으로 옹호했다. 마찬가지로 3인안의 동지들은 5인안이 자본가지배의 두 가지 측면을 바라보지 못하고 진지전과 헤게모니의 중요성을 망각하며 따라서 정면공격과 기습만을 주창하는 블랑키주의라고 비난할 때 그람시가 지닌 오류를 공유한다. 그리고 이 오류는 그람시에게 치명적인 독이 되어서 그들의 기회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그를 죽여 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진정 노동자계급의 자치능력을 보고 싶은가? 그것을 끌어올리고 싶은가? 87년 대파업 시기의 노동자투쟁들을 보라. 그리고 어제, 오늘 계속되는 노동자투쟁을 보라. 우리의 전략, 전술은 과거의 테제에서 옮겨보면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위한 투쟁의 방법과 형태들”에 대한 것이다. 프롤레타리아독재는 또는 노동자민주주의는 현존 체제 안에서,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창출되는 것이 아니다. 또 이것을 위한 항구적인 진지전 전략이 혁명가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독재를 향해서, 부르주아권력에 맞서 공공연한 충돌과 투쟁을 통해서 새로운 질서로 등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혁명정당은 이러한 운동에서 가장 앞선 부분으로서 지도력을 가져야만 한다. 그리고 이것은 무엇을 우리에게 제기하는가? 공장과 직장들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정치적 세포를 구성해야 한다. 그리고 5인의 동지들이 제기한 행동강령들을 위한 투쟁을 창출하기 위해 헌신해야 한다. 노동자계급은 이러한 투쟁을 통해 3인의 동지들의 멋진 강령보다 더욱 힘차고, 놀라운 “자치”의 물결을 만들어낼 것이다. 오늘날 투쟁 속에서 생동하는 노동자계급의 자발성을, 자주성을, ‘자치능력 제고’라는 말로 가로막아서는 아니 된다. 노동자계급은 투쟁 속에서 3인안보다 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이다.

그러한 자발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그들에게 가야 할 길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운동 속에서 만들어내는 우리들은 누군가에 의해 블랑키주의자로 불리어지고 있다. 볼셰비키를 블랑키주의자로 온 힘을 다해 고발했던 플레하노프 그리고 베른슈타인 그리고 유로코뮤니스트들에게 그들의 후계자가 여기 태어났음을 고하는 바이다. 그들은 이행전략에서 역사적 후퇴를 되풀이했는데 이것은 단순한 되풀이가 아니다. 그들에게는 ‘이행’의 전망도 관점도 모두 결여되어 있다. 프롤레타리아독재와 노동자계급의 결정적 반란이라는 혁명적 이행이 없다면 다른 세계로의 이행은 결단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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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운수노동운동 나아갈 방향을 찾아서 [사회주의자 통신 2호]

공공운수노동운동 나아갈 방향을 찾아서

- 공공운수활동가 수련회 개최 소감

 

사노위 서울지역위원회 정윤광

 


 

1. 경과

 

1)예비과정

10년 5월 사노위 공공운수분회가 결성된 이후부터 공공운수분회와 궤도분회의 과제의 하나로서 ‘공공운수노동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연속토론을 거쳐서, 그 성과를 모아서 사노위 서울지역위 주최로 관심 있는 활동가들을 모아서 공개 또는 반공개 토론을 개최해보고자 하였으나 잘 진행되지 않았다. 10월쯤 공공운수 분회원과 소수의 관심 있는 사람들의 참석 속에 소규모 반공개 토론으로 그쳤다. 그러나 토론회 개최 이후 과제로 토론을 보다 구체화하고 토론참여자 범위를 현장조직 구성원 등으로 넓히자는 결의가 있었다.

10년 12월 화물연대 현장조직인 ‘현장노동자회’가 후보를 낸 화물연대본부장선거를 계기로 해서 축하연이나 위로연 형태로 현장조직들을 초청해서 함께 서로 소개하며 이후 토론회나 수련회 개최 등 공동 활동을 모색해 나가자는 의견을 나누었으나 실행하지 못하면서, 별도로 전투적 변혁적 노동운동을 추구하는 현장조직들 중심으로 활동가조직과 정치조직도 참여하는 공동의 토론회를 1박 2일 수련회 형식으로 추진키로 상호 협의를 진행해서 대체적인 공감대가 이루어졌다.

 

2)준비모임

11년 1월 중순경에 간단히 제안서가 회람되면서 동의가 이루어져서, 11년 2월 9일 18:30 서울 전해투 사무실에서 1차 준비모임이 이루어졌는데, 사보민주노조현장투쟁위원회, 발전현장투쟁위원회, 철도노동자회, 화물노동자회 의 4개 현장조직과 노동전선, 사노위 대표들이 참가하였다.

11년 3월 3일 18:30 철도 서지본 회의실에서 2차 준비모임이 이루어졌고, 발전노동자현장투쟁위원회, 화물현장노동자회, 사회보험민주노조재건투쟁위원회, 철도노동자회, 노동전선, 사노위 공공운수분회, 사회진보연대가 조직적 결정으로 참여하였고, KT민주노동자회, 철도현장회가 참관자격으로 나왔고, 도시철도 강효찬 동지가 개인자격 참가하였다. 3월 19일 14;00시 대전 유성 유스호스텔에서 열린 1박 수련회에는 이 조직 구성원 40명가량이 참가하여 열띤 토론 속에 진행되었다.

수련회 참가 조직과 개인들 전부는 이 수련회가 이후 연속적 연대활동을 통해서 지속되기를 바라고, 3차 준비모임은 4월 5일 19:00시 절도 서지본에서 개최키로 예정되어 있다. 사보 현장노동자회는 다음 준비모임에 꼭 참가하겠다고 하였고, 그 이외에 공공운수부문 각 지역 현장에서 활동하는 동지들의 개인자격 참여 역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3)제안 취지, 목표

 

애초부터 제안취지는, 한 차례 수련회를 거쳐서 현장활동가들이 이후 공공운수부문 노동운동의 방향, 과제, 그 틀을 고민해나가자는 것이었다.

공공운수노동운동 각 업종과 사업장에는 현장조직이 있고 나름의 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나, 노동운동 전반의 붕괴와 더불어서 현장조직 역시 급속히 쇠퇴하고 있고, 현장조직들은 각 사업장 또는 업종별로 고립, 관심영역이 실천적으로 단사나 업종 이해관계에 머물러 있음으로써, 현장조직활동 목표가 단사나 업종 노조조직 혁신, 건설 등에 머물러 있거나, 심지어는 사실상 집행부 선거가 주요 목표가 되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 현장조직들은 대체로 투쟁을 강조하나 그것도 전투적 조합주의나 전투적 경제주의 수준을 거의 넘어서지 못하고 있으나, 한편으로 최근 노동운동위기상황을 맞아서 목적의식적으로 전투적 변혁적 노동운동을 지키거나 지향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으므로, 이러한 현장조직들을 함께 연대, 통합해내고 전투적 변혁적 노동운동으로 발전시켜나가자는 것이다.

수련회 개최목표는 ①공공운수노동운동 방향과 과제 정립과 실천활동 강화, ②현장조직연대를 발전시킬 방안 수립, ③각 현장조직 활동 강화, 전투적 변혁적 노동운동 현장기반 구축 등이 제시되었으나, 이러한 목표는 이후 다양한 토론과정을 통해서 만들어갈 내용이다.

 

2. 수련회 내용

 

수련회는 참가 단체의 소개를 마친 후 공공운수노동운동의 방향, 목표, 과제와 실천방안에 대한 두 차례 발제와 토론으로 진행되었다. 3시부터 토론을 시작해서 약 10시 반까지, 1시간의 저녁식사시간을 제외한 6시간 반 이상 치열한 토론이 이루어졌다. 1차는 공공운수노동운동의 방향과 목표에 관한 내용을 중심으로 했고, 2차는 공공운수노동운동의 구체적 과제와 실천방안을 초점으로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1차는 ‘공공운수노동운동 어떻게 할 것인가?’ 주제 아래 정윤광(사노위)의 발제 이후 토론이 진행되었고, 2차는 철도노동자회 김형균(‘자본운동’과 ‘노동운동’이 부딪치는 지점은 어디인가?), 사보민주노조재건투의 김운용(노동조합을 넘어선 공동투쟁과 노동자평의회운동을 전개하자!), 노동전선 김태연(공공부문 현장 활동 확대강화를 위해) 세 사람의 발제 후 토론을 전개하였다.

 

현재 노동운동이 와해지점에 와 있고, 공공운수노동운동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은 참석자 공통의 인식이었다. 노동운동이 와해지경에 와 있는 근본원인을 정윤광은 세계적으로 그리고 한국 역시 공통적으로, 현실사회주의권의 붕괴와 변질로써 노동자, 인민의 의식과 실천의 토대로서의 사회주의 부재를 들고, 전투적 혁명지향적 노동운동을 새롭게 정초할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노동운동이 조합운동에 머물지 말고, 스스로 혁명운동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너진 노동운동을 단순히 재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질적 내용을 가진 운동으로 창조해야 한다. 공공운수부문에서도 이미 무너진 기존 상층조직 가지고는 안 된다. 그래서 현장에부터 운동의 전망을 구축해가자고 강조하였다.

 

김형균은, 현장과 단위사업장에서 노자 대립 속에서 대중투쟁으로 정권과 총자본에 맞서 투쟁을 만들어내는 것이 과제이다. 정치세력화든, 계급적 산별이든, 자본이 노동자에 가하는 압력에 맞서는 사회주의 혁명정당이든, 이러한 의제를 전면화하기 위해서는 대중전선을 복원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있다. 선거를 중심으로 한 환상을 버리고 대중추체의 활동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각 사업장의 구체적 조건 속에서 선진노동자 활동가들의 이데올로기적 정체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가 핵심적이라고 본다. 당면한 쟁점과 전술이 결합하면서 지도력이 관철되어야 한다.

 

김운용은, 혁명기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산별의 관료화를 막기 위해서도 그렇고, 노조의 테두리를 벗어난 투쟁을 하기위해서라도, 새로운 노동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을 결론적으로 이야기한다. 현장조직을 재편하자는 것이 아니라 집행부나 대표자들의 결정이 아니라 현장노동자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투쟁하는 노동자평의회 운동을 만들어내자는 것이다. 조합원들이 직접 작업을 거부하고 투쟁할 수 있는 현장노동운동을 조직하자는 것이다.

 

김태연은, 현장조직이 주체가 된 토론과정을 통해서 만들어가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공동의 투쟁을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공은 금속에 비해서도 연대가 떨어진다. 금속은 소통이라도 하지만 공공은 그런 것도 거의 없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이런 것을 진행하는 것이 공공현장조직들에게 필요하다. 내용을 준비하고 쟁점도 만들어 9월도에 다 모인 합동 수련회를 했으면 좋겠다.

 

일반토론과정에서 다양한 의견들이 표출되었다. 현장기반구축에 집중해야 한다, 대사업장(철도)에서는 활동가가 대중조직 간부로서의 일을 우선하고, 산별문제 역시 아무런 고민이 없거나 오히려 부정적인데 이런 문제에서부터 출발해 보자, 활동가 몇몇이 아니라 왜 노동조합운동이 필요한지 체계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대공업적으로 현장권력을 올바르게 조직하는 것이다. 보다 치열하게 토론하고 연맹이든 현장이건 치밀하게 조직하지 못했던 것 아닌가. 현장단위의 네트워크를 지금부터 계속 만들어가면서 자기고민을 만들어가지 못하면 우리는 여전히 노동조합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산별, 복수노조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토론해야 할 것이다. 자본의 독주에 파열구를 내야한다. 노동자가 주체가 되는 운동들을 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각 단사별로 노동통제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조사하고 이를 저지하는 투쟁을 연대와 공동투쟁의 매개 고리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운동에 대한 평가와 진단이 필요하다. 각사업장 운동이 연대하고, 산업적, 지역적 토대를 구축하는 양대의 과정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 연대투쟁 관련해서 전주버스 같은 경우 공동파업 못하더라도 현장조직 활동가들 수련회에서 연대파업이나 같이 할 사업들을 만드는 것, 현재 상황에서는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 쌍차, 현자비 투쟁 등에 우리가 실제로 함께 해나가야 하는 부분이다.

 

집행부 가면 안 되고 현장에서는 못 받아 안는 문제는, 현장권력을 장악하지 못하면 올라간다 하더라도 투쟁을 잘 못 만들어낼 것이다. 현장에서 못하니까 집행부에서 하려고 해도 현장이 안 움직인다. 활동가 수련회 이런 것들을 통해서 조직을 하고, 현장 활동을 통해서 변혁적 노동운동을 해야 한다. 평가만 할 것이냐, 좀 구체적인 것들이 이야기되어야 한다. 지금 문제되고 있는 구조조정이나 통제에 대항한 투쟁을 통해서 그렇게 가야하지 않나? 무엇이 계급적이고 변혁적인가? 기본에 충실한 게 아닌가? 최근 공사의 공세가 극심하다. 이러한 공세에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해 조합원들이 이완되고 있다. 현장장악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 위에서 아래에서 민주노조가 같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 있다. 현장의 투쟁으로 돌파해야한다는 것을 실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판단한다. 공동투쟁, 연대투쟁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각 조직의 주체가 재생산되어야 하는데, 새로운 세대와의 소통이 어렵다고 하는데 신규자들은 거의 다 비정규직으로 가기도 했다. 어떻게 함께 할 것인가 주체적으로 같이 논의할 수 있는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연봉제나 감시통제 실적관리 등의 문제를 현실의 문제로 묶어 철폐투쟁을 만들어갈 수 있는 현장순회라든가의 공동행동을 조직해나가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공공운수 산별이 만들어져도 공동파업 불가능해 보인다. 현장 활동가들이 주인이 되는 그러한 운동을 만들어 가면 좋겠다.

 

3. 맺는말

 

수련회에 참가한 모두가 이 모임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으므로 이 모임은 이후 구체적 내용과 형태를 갖추면서 발전해 나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개인적 기대를 약간 덧붙이기로 하자.

 

사노위는 당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회원은 아직 미미한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당은 노동자계급투쟁을 일으켜 세우고 이를 혁명투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당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당 강령과 혁명전략을 올바르게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혁명이란 현실사회를 바꾸어내는 운동이기 때문에, 이를 실현할 동력을 형성해내는 것은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 노동자대중의 혁명투쟁역량을 조직화해내고, 이를 토대로 해서 당 역량을 어떻게 대공업적으로 형성해낼 것인가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할 것이다. 공공운수노동운동이 현장 조직역량을 통합하고, 혁명지향적 노동운동역량으로 재구축해내는 작업은 이러한 대중적 혁명운동역량을 구축하는 과정의 하나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어느 정도 해 낼 수 있을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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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글에 대한 문제제기에 답한다 [사회주의자 통신 2호]

비평글에 대한 문제제기에 답한다

- 정치적 통일과 조직 문제

 

사노위 서울지역위원회 조직국장 임천용

 


 

사노위 정치원칙

 

사노위는 지난해 5월 11개 정치원칙에 대한 동의지반으로 출범하였다. 이러한 동의지반은 쉽지 않은 산고를 겪어야만 했다. 왜냐하면 정치적으로 매우 다양한 세력들의 연합이었고, 공동의 활동 경험을 축적하지 못한 채 오랜 시간 동안 따로 활동해 왔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강령상의 통일은 토론회 몇 번으로 성취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1년여의 시한을 두고 공동의 활동 속에서 당추진위 건설을 위한 강령적 통일을 목표로 출범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11개 정치원칙을 제출하였다. 이 정치원칙은 사노위가 출범하기 이전 제조직들의 정치적 타협의 결과물이다. 물론 이마저도 극적인 정치적 타협, 특히 구 사노련 동지들의 최후통첩식 정치협상에 의한 결과물인 것이다.

사노위 정치원칙이 타협의 산물이라는 것은 사노위 결성과정과 구 사노준 강령의 형성과정이 연속되는 시간 속에 있었다는 사실에 의해 증명된다. 구 사노준 동지들이 자신의 강령이 아닌 별도의 사노위 11개 정치원칙을 공동으로 마련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11개 정치원칙이 정치협상에 의한 결과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구 사노련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입장>이 있었지만 그것과 별개의 안에 합의한 것이다. 그 외 동지들은 별도의 강령을 제출하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11개 정치원칙에 대한 동의를 바탕으로 결합하였다.

 

그렇다면 사노위 정치원칙이 왜 정치적 타협물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 필요한가? 만약 사노위가 당추진위 강령을 마련하기 위한 공동의 투쟁이 아니라 자본의 공세에 맞선 공동투쟁전선을 형성하기 위한 정도를 상정했다면 당면한 투쟁목표를 통한 협정만이 있었을 것이고, 정치적 입장의 후퇴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타협은 불가피하게 혁명적 진영의 정치적 입장의 후퇴를 동반하게 된다. 이를 알면서도 사회주의 당건설이라는 계급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을 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선택이 곧바로 강령상의 후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노위 기간으로 상정된 1년(+3개월)의 기간 동안의 일시적 정치적 후퇴를 명확히 하고, 타협이 완성된 순간부터 혁명적 사회주의를 옹호하기 위한 비타협적 투쟁을 전개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서 추진위가 혁명강령으로 조직될 것인가 아니면 유로꼬뮤니즘식 강령으로 조직될 것인가의 문제로 드러날 것이다. 바로 이 측면에서 사노위에 참가하고 있는 동지들은 이러한 투쟁에 얼마나 충실했는 다시 한 번 되물어 한다.

 

만약 사노위가 혁명적 강령을 중심으로 한 통일을 이루어내지 못한다면, 역사는 다음과 같이 평가할 것이다. 사노위는 목적 달성을 실패한 채 진보정당이 아닌 혁명정당 건설의 필요성을 노동계급 운동에 적극적으로 제기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 역할을 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에겐 무덤이 되고 말았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현실을 외면하고 현재 사노위의 분열적 모습이 마치 운동을 후퇴시키는 것처럼 여기는 것은 정치적으로 줏대 없는 사람들을 겁줌으로써 대동단결을 외치는 것에 불과하다.

이들은 맑스의 고타강령 비판 서문에서 “현실운동의 한걸음 한걸음이 한 다스의 강령보다 중요하다”는 유명한 문구를 즐겨 인용하는데, 이 얼마나 분별없는 짓인가. 맑스는 강령을 공식화하는데 있어서 절충주의를 호되게 나무라 하면서 혁명적 강령의 필요성을 옹호했다. 여기서 “한 다스의 강령”이란 아흐제나흐 파, 라쌀레 파,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뒤섞어 놓은 절충주의 강령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절충주의 강령은 현실운동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슨 맥락인지 궁금하다면 서문의 나머지 부분도 마저 읽어보기 바란다.

 

그러므로 만일 아이제나흐 강령을 넘어서서 나아갈 수 없었다면 - 그런데 세태는 이것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 그저 공동의 적에 반대하는 행동에 관한 합의를 체결하고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원칙 강령을 (더 장기간의 공동 활동을 거쳐 준비될 때까지 유예하지 않고) 작성한다면, 그것은 당 운동의 높이를 가늠하는 이정표를 전세계 앞에 세워 놓는 것입니다.

 

결국 각자의 강령을 가지고 쪼개지든, 아니면 통일된 강령을 가지고 함께 나아가든 스스로의 정치를 후퇴시키지 않은 채 앞으로 나아간다면 모두 다 운동에서의 발전이다. 왜냐하면 은폐되지 않은 자신의 입장을 끝까지 발전시킨 결과물을 중심으로 모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퇴행적인 것은 강령 없이 그리고 무원칙한 대동단결을 외치면서 모였다가 바람처럼 흩어지는 것이다. 현재 사노위가 과거 사회주의 써클들의 위치를 극복할 것인가, 그리고 추진위로 나아갈 것인가는 11개 정치원칙에 입각해 회원을 얼마나 늘리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혁명적 강령을 쟁취하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다.

 

 

 

조직문제에서 두 걸음 후퇴

 

사노위가 정치적 경향의 상이함을 뒤로한 타협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은 조직문제에 있어서도 차이를 동반하게 된다. 정치적 통일 없이 조직적 통일은 빈말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사노위의 조직활동은 사노위에 참가하고 있는 모든 동지들에게 사실상 매우 조심스러운 것이었다. 정치적 차이와 조직활동의 경험의 차이는 사소한 것도 중요한 조직적 사안으로 만들 수 있는 휘발성 물질이기에 충분했다. 휘발성 물질은 그때그때 제거되지 않으면 쌓이게 되고 보다 큰 위험을 내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직활동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조직문제에 대한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것의 대답은 사회주의 운동의 조직 기본원리로 통용되는 민주집중제에 의해서, 오직 혁명적 방식으로 휘발성 물질을 상시적으로 제거하는 것이다.

사노위의 조직문제는 지난해 가입원서 처리 문제와 올해 사노위 서울 <사회주의자 통신> 창간호의 비평글을 통해 드러났다. 이러한 문제들이 처리되는 과정은 조직문제에 있어서 후진적 경향의 승리를 동반하였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이라 칭해지는 다수결에 결과였다. 혁명적 사회주의 경향에 의한 정치적 통일을 동반하지 않은 일반 민주주의 원칙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냈다. 그 결과 조직문제에서만 두 걸음 후퇴한 것이다.

 

먼저 지난해 가입원서 처리 문제를 보자. 중앙위원회에서 사노위 성원들이 가입원서를 작성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거부하는 동지들이 있었다. 총회에서 이미 확인되었기 때문에 이중적으로 또 쓸 필요가 있느냐 등의 얼핏 수긍이 가는 문제제기부터 회원을 관료적으로 통제하는 것으로 바라보고 맞선 동지들도 있었다. 두 경우 모두 중앙위 결정을 따르지 않은 것에서는 동일하지만, 서울지역위에서는 입장에 대해서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행동을 파괴한 행위에 대해 징계안을 제출하였다.

이 문제는 서울지역위원회 운영위를 거쳐 중앙위원회에 제출되었으며, 중앙위원회는 사노위가 공동실천위 단계이기 때문에 징계할 수 없다고 결정함으로써 기존 가입원서 작성 결정을 뒤집었다. 공동실천위 단계에서는 조직결정에 따르지 않아도 어떠한 것도 할 수 없다고 공표함으로써 중앙위원회는 실질적으로 파산하게 되었고 동시에 사노위 1기도 마무리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토론의 결과 결정된 사항에 대해 행동의 통일을 부정하고 그것을 오히려 응원하는 동지들을 한 편으로 하고, 행동의 통일을 옹호하려는 동지들을 다른 한 편으로 하여 정치적 입장이 갈라졌던 것이다.

 

다음은 서울지역위 <사회주의자 통신> 창간호에 실린 <사회주의 지금 여기에>에 대한 비평글 문제로 인한 조직문제다. 비평글에 대한 사노위 중앙의 입장 표명 요구에 의해 서울지역 운영위원회는 "조직의 주요한 사상을 담아 조직의 이름으로 발간된 소책자에 대해 ‘비평’ 글처럼 규정한 것은 조직의 사업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결정은 조직내의 정치적 토론과 비판에 대해 조직에서 발간된 소책자라는 이유로 어떠한 비판도 할 수 없게끔 만드는 지극히 관료적인 처분이다. 이러한 결정은 조직의 상층에서 발행된 사노위 신문에 대해 하급단위에서는 비판할 수 없게 만든다. 예를 들어 사노위 8호에 게재된 리비아의 내전중에, 제국주의에 맞서 카다피와 제휴하자는 반동적이고 반노동자적인 입장을 중앙보다는 하급단위인 서울지역위원회의 <사회주의자 통신>에서는 비판할 수 없게 한다. 사회주의 조직에서 비판의 자유를 상급과 하급으로, 그리고 조직 내부와 외부로 나누는 것은 지극히 편의주의적 발상에 다름 아니며, 사회주의 조직에서 용납될 수 없는 태도다.

서울지역위원회는 조직의 결정사항인 소책자 판매를 보이콧하자고 선동하지 않았다. 이것은 행동의 통일을 방해하지 않았다. 단지 소책자에 대해 정치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내용에 대해서 비평한 글을 실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비판의 자유를 서울지역위 다수의 운영위원들처럼 부정하려는 경향과 비판의 자유를 옹호하려는 경향으로 정치적 입장이 대립했다.

 

이처럼 조직문제에서 두 번에 걸쳐 후진적 경향이 승리함으로써, 조직상의 휘발성 물질이 혁명적 방식으로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존치됨으로써 내적 모순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조직문제에 있어 적극적인 토론과 비판 없이 항상 다수 동지들의 승리로 귀결된다면, 그러한 승리는 기존 조직의 내부가 정치적으로 갈가리 찢어지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낡은 조직을 형식적 민주주의의 틀로 봉합하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조직적으로 혁명적 경향을 옹호하는 동지들을 조직문제에서 더 이상 다수의 틀로 가둬둘 수 없다. 이들은 혁명적 강령을 건설하는 것에 부단히 투여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그것을 완성함으로써 조직문제에서 사회주의 조직의 기본 운영원리를 지켜나갈 것이다.

 

 

소책자 문제와 정치적 토론

 

글 서두에서 사노위 건설과정을 상세히 설명한 이유는 사노위에서 발행되는 신문과 책자들은 특정한 경향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불가피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모두가 동의하는 일반적인 내용을 담은 것만 발행될 수 있거나 아니면 소책자 자체가 발행될 수 없을 것이다. 사노위에서는 소책자를 몇 번 발행하기로 했고, 발행책임은 중앙에 위임되었다. 그것의 결과 <사회주의 지금 여기에>가 나온 것이다.

그런데 소책자 발행과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사실이 완성본의 내용에 대해 비판할 자유를 봉쇄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된다. 특히 사노위처럼 사회주의 혁명정당 건설을 위한 강령을 만들어나가는데 있어서 보다 활기차게 진행되어야 할 정치토론를 심각히 방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후퇴적인 것이다.

조직내외를 막론하고 활발한 정치적 투쟁만이 조직내의 후진적 경향을 끌어올리고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러한 투쟁이 조직을 깨고 분란만 일으키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사노위의 동지들이 하나로 통일되기 위해서는 여러 경향간의 투쟁 속에서 정치적 입장을 발전시킴으로써만 가능하다. 이것만이 인적 관계에 의한 형식적 통일이 아니고 실질적인 정치적 통일을 가능케 한다.

 

소책자 비평이 내용상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동지들은 <사회주의자 통신> 혹은 중앙 신문, 그것도 아니면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서 반박하는 손쉬운 길이 있었다. 그 반박이 정당하다면 현재의 논란은 손쉽게 정리되었을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논쟁의 과정에서 최소한 내용적 상승을 이뤄냈을 것이다. 그런데 비평글에 문제제기하는 동지들은 이 쉬운 방법을 두고 오히려 관료적이고 행정적인 처리로 비판을 봉쇄하려는 경향에 의해 내용 문제를 조직문제로 뒤바꿔버렸다.

결국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그 어떤 내용상의 반박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주의자 통신> 창간호의 소책자 비평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주장은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회주의의 유토피아적 묘사와 그것과 연동되는 계급투쟁의 실종, 그리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구분하지 않음으로써 공상적 사회주의로 여전히 빠져들었다는 주장에서 정정할 것은 없다. 오히려 소책자가 사용하는 주요한 개념들에서 과거 민중주의의 잔재를 떨쳐내 버리지 못한 입장들을 본다. 공상적 사회주의, 국가권력 장악의 상 없이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살고 싶은 희망의 끝은 건전한 인간 이성에 호소한다.

일부 동지들은 소책자 구성의 후반부에 사노위 정치원칙이 서술되어 있기 때문에 조직의 주요한 사상을 담고 있다고 판단하지만 이것은 형식논리에 불과하다. 소책자의 전반부는 후반부 사노위 정치원칙과 병렬적으로 나열되어 있다. 만약 이것을 유기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동지이 있다면 스스로 독해능력이 매우 뛰어나다는데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독해능력이 뛰어난 동지들만이 사노위에서 발간한 소책자가 사노위 정치원칙을 올곧게 담고 있기 때문에 사노위의 지역조직인 사노위 서울 발간물에서는 소책자에 대한 비판이 허용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조직의 소책자에 대해 어떻게 공상적 사회주의라고 비판할 수 있냐며 의아해하는 동지들도 있다. 하지만 이미 강령 초초안 토론에서는 블랑키주의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토론은 공상적인 것을 공상적이라고 말할 자유가 있을 때에 가능하다. 차이를 봉합하기 위한 신사적이고 외교적 용어가 아니라, 보다 높은 통일을 원한다면 먼저 차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 다소 거칠더라도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 공동실천의 최종적 결과물로 어떠한 강령이 사회주의 당추진위 건설의 강령으로 남을 것인지 한 달(+3개월)이 남아있다. 이 기간은 사회주의 혁명운동의 국제적 경험이 가르쳐주고 있고, 사회주의 혁명정당을 만들어가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인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노동자계급 대 자본가계급 투쟁의 필연적 발전경로인 내전을 승인하느냐 마느냐의 시간이 될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한편으로 남한 사회주의 운동 진영에게 해결된 지 10년도 훨씬 지난 낡은 사안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제야 대중적으로 제기된다는 측면에서 새로운 사안이기도 하다. 이 기간은 사노위가 혁명적 사회주의로 전진할지 유로꼬뮤니즘으로 미끄러질 것인지를 가늠하게 된다. 아랍민중들의 계급투쟁이 보여주고 있는 바, 지배계급에 대항한 투쟁은 대체로 내전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아랍을 포함한 모든 자본주의 국가에서 자본가계급의 생산수단을 몰수하고 국가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투쟁은 필연적으로 내전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과거의 역사 속에서가 아니라 현실의 운동에서 확증시켜주고 있다. 이러한 내전에서 승리하기 위한 사회주의 혁명정당 건설의 필요성을 무엇보다 긴급히 요구하고 있다. 아랍에서뿐만 아니라 여기 남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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