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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모교 사이트에 보니...

먼저 고교 사이트에 대하여 말하지면

기술력이 좋은 건지 홈피는 깔끔하긴 하는데

참 '대학' 배너가 덕지덕지 붙어 있어 조금은 짜증이 나군요.

 

그럼에도 눈에 띄는 건 공지사항에 나온

'2006학년도 대학진학현황'... 그래서 클릭해보니

참 상전벽해라는 말처럼 주변에 아파트 단지가 생기니

소위 명문대도 가긴 진핵하였구나 싶네요.

 

그 목록을 보면 "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한양대, 경희대, 

중앙대, 동국대, 아주대, 숭실대, 단국대, 세종대, 숙명대,

상명대, 호서대, 서원대, 한신대, 경기대, 건국대, 백석대,

한라대, 경동대, 호원대, 인하대, 수원대, 강남대, 나사렛대 등등 "... 

 

더욱이 내가 졸업할 때에는 수시 모집이 처음이어서

숙명여대에 진학한 이가 있었고 내가 진학한 대학도 두 명만이

합격받아서 그나마 괞찮다고 부르는 정도이었는데...

 

참 부럽더군요.

물론 '학벌사회'에 징글징글하게 싫어하지만 과거의 어둡고

불운한 시절이 끝이 났는 듯 해서 좋아 보이네요.

 

그럼에도 올해도 S대는 나오지 않았네요.

심지어 농대라도 들어갈라고 기를 썼던 시절을 안 나로선

다음엔 과연 되는 것인지 궁금하고요.

 

그리고 교직원 명단을 보며 아직도 살이있는

선생님(왜 붙여야 하지?)이 있지만 공립학교로 가서

사라진 이도 있어서 언제 찾아가야 할 것인데 싶네요.

 

또한 대학 학과 홈피에도 본 즉

처음엔 모 교수의 정년 퇴임 소식이 보였고

역시나 '취업 이데올로기'에 편승 당해 어디로 취업을 하였는지

학번과 이름(실명으로)을 쫙 보여 주는데...

 

지금 내 자신이 어디라도 밥벌이를 하려고 있는 걸

감안한다면 개인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문제있는 건 물론이고

'취업'에 대해서도 좀 짜증이 나더라고요.

 

그 중 나에게 가장 큰 생각은

지금 당장 모교에 찾아가서 병역거부자이면서

'무임금유노동'의 활동가라는 걸 보여준다면 참 우습겠지요...

 

특히 '빨갱이'라는 걸 안다면 더욱 웃길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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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알 수 없는 무기력함이란...

요즘 전 핸드폰(저로선 필요감이 없으나 주변에서 하도 성화쳐서...)등의

마련을 하면서 용돈이라도 벌어야 해서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지요.

 

그러던 중 모 주류회사에서 꺼리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비록 숫자는 적지만 잔업 없고 집에서 멀지는 않으면서

특히 요일 및 날짜를 협의해서 그 일정만큼 일할 수가 있어서

활동가에게도 굉장히 땡기는 것이어서 저로선

신청을 하고 싶었는데...

 

수감 한 걸 제외해도 몇 년동안 일을 하지 않았던 저는

대인관계이나 의사소통에 약간의 장애(?)가 있고

병역에 대한 '커밍아웃'에 대하여 준비하지 못 하였는지

육체이나 정식으로 힘들다는 건 물론이고 참 두려움이 드네요. 

 

그리고 오랜만에 밥벌이를 한다고 마음을 먹긴 하였는데

집에서 같이 서식하는 '참새'도 밖에 안 나가려고 해서

내가 일꺼리를 보여주며 제발 취업해라고 말을 하였음에도

정작 내 자신은 알바라도 하려는 걸 못하는지...

 

이 무기력의 때인가?

 

차라리 로또나 당첨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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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무슨 일이?

어제는 좀 바쁜 나날을 보냈지요.


먼저 그저께 수원구치소에 가서 용석 씨 추가접견을 시도를 하였는데
직원이 횟수 초과로 매정히 거부당해 돌아가는데...

집에 들어서니 서식하고 있는 '참새'(친누나)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돼지(나)! 수원구치소에서 연락이 왔는데 다이어리 찾아가라고 하더라고...'

 

처음엔 하도 그러한 걸로 겁주며 놀렸던 적이 있어
무시하였는데 들고 갔던 백팩 안에서 뒤져보니
오~ 내 자신이 왜 이러지... 없네?

 

그렇습니다. 제 다이어리가 구치소 민원실에 두고 왔고
그러한 사실을 모른 채 있다가 밤 늦게에서야 알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이런 분실 자체를 '난 정말 몰랐었네~'라고...

 

참 그 다이어리엔 중요한 것이 있어서
언제나 유무를 확인하는데 앞서 지갑을 통째로 날아가 버린 때가
언제쯤인데, 20대 말에 접어들은 지금 서서히 '건망증'이
걸리고 있으면서 '점점 더 멀어져 간' 나 자신에 우울해 지네요.

 

그래서 어제 또 구치소에 가서 다이어리를 되찾았고,
이참에 지갑이 있었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직원이 말하더군요.

 

지금도 그 지갑이 잃어버린 걸로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참새'가
나의 기억감퇴에 대하여 나('새'니까...)와 같다고 놀리는데... 휴~

그 후 국가인권위로 갔는데 고민을 하게 되었죠.


바로 활동보조인 총력집회이냐 아니면 유엔 자유권규약 토론회이냐...
원래 집회 참석을 위해 온 것이었는데, 토론회에서 병역거부 관련 부분이
있어서 여차저차해서 토론회로 선회하여서 갔죠.

 

지금 춥다보니 역시 같은 단체의 활동가도 거기로 갔더군요.
이 토론회에서는 발제 → 관련부서 입장 → 토론 순이었는데
전 국방부 관계자도 있어서 그 분의 말을 귀담어보니...

 

역시 올 3월중에 병역거부의 인정유무에 대한 검토 완료이나
6월중 결론이 나올 것이라는 것 이외에는 별 다른 '펙트'는 알려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국방일보 1월 30일자에서 대통령이 군부대에 방문하면서
“군 복무제도 변경은 꼭 필요한 것으로 청년 인적자원 활용 측면에서
학제 개편과 함께 긴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군 복무제도가 합리화될 것”과
“청년 인적자원 활용과 병역 의무 형평성을 위해
복무 기간을 포함한 군 복무제도 개편과 학제 개편,
복지·봉사근무 등을 포괄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라고 말해서 이 사안에 대하여
뭔가 보고를 한 듯 싶다고 그 관계자가 추측하였지요.

 

또한 그 관계자의 개인적 입장인지 아니면 홍영일 님의 언질을 받았는지
발표 중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는 명명을 자주 하여서 저로선
뭔가 좋은 일이 나올 듯 싶은데 절 모르겠군요.

 

그 후에도 토론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더 이상 듣을 것이 없고
그 집회에 가야 해서 나갔고, 인권위 앞부터 동화면세점 앞까지

행진에 동행하였지요.

 

그럼에도 장애인 투쟁에 처음으로 가서 몇몇 활동가의 안면이 있어
같이 갔음에도 이 알 수 없는 낮설음이 느꼈지요.

 

그리고 스스로 소수의 길을 선택한 한 사람으로서
활동보조인제도에 관련하여 가장 큰 수혜를 줄 수 있는 집단에 속함에도
이제야 (보잘 것 없지만...) 연대를 하였다는 것에 미안함이 드네요.

 

심지어 어떤 장애관련 활동가가 사회복무제과 관련하여
탈시설화를 요구하는 입장과 달리 역행할 수 있다는 의문을 제시한 적이
있어서 뭔가 오해를 풀어야 할 필요성이 느꼈거든요.

 

하여튼 이것저것 생각하며 천천히 집에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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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징역 1년 6월에 처한다' - 또 다시 코미디를 만들었던 선고공판.

여하튼 8월 17일에 벌어진 심리공판은 끝나고, 두 주 동안 똑같은 일상에서 늦게 신입으로 들어온 약간의 변주를 섞어진 하루들이 지나며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그리면서 앞서 저의 양심상의 결정으로 인하여 구치소측의 탄압과 이따금 본인확인을 할 때 실랑이에 묵묵히 받아 안고서 두 어르신의 호위(?) 아래 방안의 몇몇 이들의 약간의 비꼬움을 안으며 9월 1일을 향하는데...

 

그런데 앞서 구형을 1년 6월이 나온 것에 대하여 우리의 봉사원님은 자기가 이 방에 있으면서 수 없는 여호와의 증인을 만나 봤다면서, 너가 여호와의 증인이 아니고 구형량으로 볼 때 절대 원하는(?) 형량이 나오지 않다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집행유예로 출소를 하는 것인데, 앞서 말했지만 집행유예로 출소하게 되면 이후에 다시 입영통지서를 받게 되고 이에 '병역거부'로 불응하면 또 구속될 것이고 병역법상 '통'으로-한 번에- 1년 6월의 징역 및 금고에 처해야 제2국민역으로 빠지기에 앞서 선고한 형량에 1년 6월을 더한 징역을 살아야 하니 정말 복잡하더라고요.

 

물론 그 당시에 저는 이러한 '꼼수'보다는 저보다 앞서 구속하고 선고한 병역거부자가 있는데 모두 1년 6월로 받았고 그러한 판례가 많다-10 여개-고 하면서 반박하는데, 뭐 이러한 논쟁이 무슨 소용이 있겠지만 워나 무미건조한 일상이라서 이런 걸로 시간을 때우는 것이지요.

 

그리고 소심하면서 마음이 맞은 이가 아니면 대화를 잘 않았고 제가 다산에 있다 구속하였기에 다른 이와 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 이외로 논쟁을 벌이지 않았어요.

 

아니 외로운 걸 알지만 상처주기도 받기도 싫어서 그러한 걸 피하고 싶을 뿐이었지요. 그럼에도 이따금 제 스스로의 언행으로 파장을 몰았지요.

 

그리면서 지내보는데 공판일 몇 일전에 변호인 접견이 있다고 해서 날 계호(법정용어로 쓰지만 사실상 감시...)한 직원을 따라 변호인인 이번에 인권위 사무총장이 된 김칠준 변호사님을 만나는데 그의 입에서 충격적인 한마디를 하더군요.

 

'판사에서 전화가 왔는데, 자기는 양심상 도저히 1년 6월을 줄 수 없다.'

 

엥~ 무슨 소리인지... 그렇게 양심을 외치면서 아무런 비판 없이 60년 가깝게 병역거부자를 감옥에 처넣었는데 무슨 말인지 좀 황당하기도 하였지요. 그리면서 앞서 이정렬 판사처럼 무죄선고를 하면 비록 당장 굴욕을 당할 지라도 역사는 당신에게 찬사를 보낼 것인데 싶더군요.

 

그럼에도 관료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국가안보'와 관련하여 도전하는 이에게 응징을 낼 수밖에 없기에 그 판사 아니 한 인간으로서 이해는 하긴 합니다.

 

그래서 전 그동안 담아두었던 심정으로 지금 당장으로는 나나 판사 그리고 국가를 위하여 최소한의 합의는 징역 1년 6월이다는 걸 전했고 김 변호사는 이러한 식으로 말을 맞추기로 끝나는데 이 사건으로 다른 공안사건처럼 바라보는 것에 좀 미덥지만 이런 걸 잘 모르니까 감안을 하겠지요.

 

그러면서 아침저녁으로 스믈스믈 다가오는 한기가 오는 9월 1일의 해는 뜨고, 우연찮게 같은 날에 선고공판으로 잡혀 출정할 여호와의 증인 한 분과 저는 직원의 부름을 기다리며 이후 구치소에 있으라고 마음먹고 있어서 마지막 바깥공기를 마실 준비를 하였지요.

 

물론 얇은 줄과 쇠팔찌와 재회하였고, 수원지방법원으로 실을 차도 대령을 하였지요. 그래서 법원으로 들어선 후 버스는 검찰청 건물 쪽 뒷문으로 돌아서서 지하로 내려갔고 통로를 지나 어느 공간에서 포승줄을 푼 뒤 각자 지정한 법정으로 가는데 왠지 익숙한 얼굴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그 분을 보더니 아 옆방에 있었던 사람이구나 싶었죠. 그런데 이 사람이 절도로 들어 왔는데 역시 사회와 단절되다보니 가족이 보고 싶었고, 그리하여 밖에 있는 사모님에게 수도 없이 편지를 보냈는데 답장 하나도 안 와서 가뜩이나 판결에 신경이 쓰는 차에 이러한 감정까지 섞여서 스테플러 안쪽 부분의 모서리에 그의 이마에 내려 찍혔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해를 하는 것인데... 물론 피는 났지요. 그 후 징벌 받은 것 같았는데 다른 방으로 갔다고 하더군요. 참~ 안타까웠지요.

 

그 후 법정에 가기 전 대기실에서 졸음을 좇기며 기다리다 제 이름을 나왔고, 선고 후 고무신을 던져 판사의 신체에 상하거나 도주의 우려가 있다는 까닭으로 수갑은 그대로 두는 채 들여 주었지요.

 

그런데 이 판사가 앞선 저의 불복종에 갚은 인상을 받아선지 인정심문 없이 바로 심문을 하는데 앞서 판사 자신이 본인에게 잘 생각하라는 것에 대하여 묻으면서 본인에게 더 큰 고통을 당할 수가 있다면서 회유를 하는데 전 고심 끝에 결심한 것이어서 당연히 갈 수밖에 없다고 답했지요.

 

그러나 기다리는 시간 동안 명연기를 보여줘서 이 우스운 비극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미처 많이 준비를 하지 못하였지요. 더욱이 즉흥적으로 발언을 하려는데 이 판사는 중단을 시키면서 자기 할말만 하더라고요.

 

잠시 후 판사는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최선의 선택'을 요구하는 저의 입장에 순순히 '징역 1년 6월에 처한다. 그리고 구금일수 35일을 본 형량에 산입한다'는 걸 개미소리가 나게 말하면서 퇴장을 하는데... 이 때 이 코미디의 결말으로 오마주로서 가네다 후미코의 사형 선고후 '만세'행동을 하였으면 하는 저의 뒤늦은 생각이 들었지요.

 

그 후 다시 못 볼 바깥풍경을 보며 돌아가는데, 이미 같은 방에 있는 증인이 먼저 도착을 하였고 그는 차악의 선택이 적중된 이상 항소할 의미가 없기에 바로 항소포기서를 작성을 한 후 기다렸지요.

 

그런데 전 아직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고 바깥 상황도 봐야 해서 바로 항소포기서를 쓰지 않기로 전하면서 점심시간이 지나 방 사람들이 우리들을 위해 마련한 밥을 먹으며 그 날을 보냈지요.

 

끝으로 누군가 군 복무기간이 2년이니까 1년 6월의 징역이 훨씬 편할 것 같다고 말한 이가 있을 것 같은데, 선고 후 대기실에 돌아온 뒤 같이 있던 누군가 저의 형량을 묻은 후 뒷말로서 저의 답을 대신하며 끝낼게요.

 

'많이도 받으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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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기 민노당 경기도당 선거 개표를 지켜보면서... 그리고 당선 소감.

여긴 민노당에 대하여 좀 좋지 않는 감정이 많은 듯한지 몰라도, 호응이 좀 없네요. 그럼에도 지난 금요일에 벌어진 경기도당 선거 개표장에 있었던 저로선 정말 손에 땀이 나도 무색할 정도로 진짜 흥미진진했습니다.

 

사실 제가 뭐 특정 후보를 지지하여서 찾아간 건 아니고, 동시에 있었던 대의원 선거에 제가 경기도당 대의원에 자진출마를 하여서 그 결과를 보려고 찾아 간 것이지요.

더욱이 대다수를 온라인 투표를 하였기에 투표 종결 후 바로 결과가 나와야 상책이건만 왜 이리 모니터 상에는 결과가 안 나와서, 전 원래 다른 곳으로 갈려고 하였으나 일단 바로 알아보고자 당사로 갔습니다.

 

그리더니 아직까지 개표를 끝나지 않아서 우연치 않게 검표를 도와줘야 했습니다. 특히 수명이 찍힌 표에 찬반 확인을 하는데 정말 머리가 아프더라고요. 그렇게 눈과 뇌가 뺑뺑 돌며 어느 정도 확인을 한 후, 온라인 투표에서 나온 결과가 보고 원래 가려고 한 곳으로 향할려고 하였으나 어쩌다 가지 않는 것이 나을 듯 싶어서 결국 도당 개표장를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그럼 저와 관련된 결과를 보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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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동시 당직선거 최종투표율

* 선거인명부 작성기준일 당권자수 : 861명

* 사고자 : 7명 ( 탈당 : 6명, 구속자 : 1명 )
* 현 당권자수 : 854명

* 투표율 : 599명 투표(온라인 : 570명 , 직접투표 : 29명) : 70.14%

 

수원시위원회 임원(부위원장)선출 선거

* 선거인명부 작성기준일 당권자수 : 861명

* 사고자 : 7명 ( 탈당 : 6명, 구속자 : 1명 )
* 현 당권자수 : 854명

* 투표율 : 596명 투표(온라인 : 567명 , 직접투표 : 29명) : 6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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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18일에 공고한 2007년 동시당직선거 선거공고 중 2.선출방법에 따라(후보자에 대한 찬반투표를 실시하여 과반수득표로 선출) 선거결과를 공지합니다.

 

1) 수원시위원회 부위원장
* 안**후보 (찬성 : 487표 / 반대 : 100표) : 당선 → '전진' 경기남부지부장

 

(중략)

 

7) 경기도당대의원 일반명부
* 김**후보 (찬성 : 530표 / 반대 : 45표) : 당선
* 김**후보 (찬성 : 532표 / 반대 : 44표) : 당선
* 김**후보 (찬성 : 532표 / 반대 : 43표) : 당선
* 변**후보 (찬성 : 526표 / 반대 : 51표) : 당선
* 안**후보 (찬성 : 507표 / 반대 : 72표) : 당선
* *승규후보 (찬성 : 480표 / 반대 : 93표) : 당선 → 접니다!
* 장**후보 (찬성 : 528표 / 반대 : 44표) : 당선
* 최**후보 (찬성 : 534표 / 반대 : 40표) : 당선

 

(중략)

 

2007. 1. 26.

민주노동당 수원시위원회 선거관리위원장 이재문(직인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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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당규상 과반수 이상의 투표와 과반수 이상의 찬성이 되어야 인정을 하는데요.

 

이번의 경우 도당 선거가 워나 (경기동부)연합 대 반연합['실력선본'이란 이름으로 나왔지요.]의 구도로 진행을 하다보니 밑에 보시겠지만 정말 내가 보기에 도당 역사상 최대 투표율이 나와서 덩달아 연장투표를 한 경우가 없었지만 평상 50~55% 정도이었다는 것과 비교하면 정말 장난이 아니었지요.

 

그런데 위를 보시면, 반대표가 가장 많이 나온 이가 딱 보이실 것이예요. 바로 안 모 부위원장과 저인데, 여기 수원이 우파가 강성한 곳 중에 한 곳이라서 좌파가 살아 있기가 어려워서 심지어 조직낙선을 당한 이가 있을 정도이었지요.

 

그래서 저로선 그러한 상황을 감안하면서 민노당을 정말 뜯어내고 싶지만 어차피 낙선되어도 상관없기에 이젠 정체성을 밝혀도 상관이 없다는 걸 보여주자는 내면의 결정을 하였고 가감하게 제 할 말을 하며 선거운동을 하였지요.

 

그럼에도 당락이 궁금하기에 찾아갔는데, 지역위 위원장이 '찬반투표인데... 뭘~'이란 말처럼 당선은 되었는데 역시 선거운동 중 모 후보의 사퇴가 없었더라면 바로 제가 낙선이 될 수 있었다는 걸 증명했다는 것에 의의가 있지 않나 싶네요.

 

더욱이 직접투표 결과를 보니 타 후보는 반대표가 4~5표인데 유독 저와 안** 후보의 경우 찬성 16표 반대 12표로 똑같이 나와서 '어떻게든 조직결정이 있었긴 하였구나'라고 싶었지요.

 

그럼에도 당선이 되어서 좋긴 하는데, 참 도당과 지역위 대대까지 두 번의 차례를 기다려야 하는 입장에선 어떻게 대응을 할까라는 머리를 굴려야 해서 이랬든 저랬든 휴유증이 남은 듯 싶네요.

 

그리고 기대하시는 도당 선거에 대하여 결과를 보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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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권자 : 8553(사고 3명)

* 온라인 : 5476
* 직접투표 : 788
* 투표자 : 6264 [ 투표율 - 73.25% ]

 

위원장후보
기호 1번 김용한(반연합) 3219(온라인 2828)<당선, 51.4%>
기호 2번 정형주(연합) 3000(온라인 2611)
무효 10

 

사무처장후보
기호 1번 박미진(반연합) 3133(온라인 2775)<당선, 50.02%>
기호 2번 주경희(연합) 3057(온라인 2640)
무효 11

 

부위원장후보(여성명부)(1인 2표제)
기호 1번 김현경(연합) 3652(온라인 3197)<당선, 58.3%>
기호 2번 신정숙(연합) 3325(온라인 2863)<당선, 53.1%>
기호 3번 정경화(반연합) 3025(온라인 2711)
무효 9

 

부위원장후보(일반명부)(1인 3표제)
기호 1번 이성윤(연합) 3307(온라인 2882)<당선 52.8%>
기호 2번 조환구(반연합) 2776(온라인 2451)
기호 3번 김홍열(연합) 2914(온라인 2523)
기호 4번 김영철(반연합) 2471(온라인 2140)
기호 5번 김진성(연합) 2745(온라인 2407)
기호 6번 송재영(반연합) 2681(온라인 2407)
무효 12

 

투표시스템상으로 직접투표수는 788이나 개표결과 직접투표가 794로 집계되어 확인중에 있습니다. 확인되는데로 추가공지하도록 하겠습니다.

 

경기도당 선거관리위원장 강명용(직인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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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를 잘 보시면 위원장과 사무처장 결과를 보시면 아 박빙이구나 보이실 것입니다. 특히 제가 현장투표 결과를 말한 걸 보시면 더욱 실감이 나실 것 같는데, 몸내 정확히 공개하고 싶으나 도당 쪽에서 제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대충 결과를 말하겠습니다.

 

먼저 도당에 위차 수원 걸 보니 역시 연합 쪽 후보가 강세이었고 그 다음에 화성에는 위원장과 사무처장에서 박빙이었고 부위원장에서 연합 쪽의 강세.

 

그리더니 군포와 안양에서 반연합 후보에서 대거 득표를 해서 합계에서 역전, 그 후 안성/시흥/광주에서 개표를 하였으나 안성과 광주에서 연합으로 시흥은 반연합으로 딱 몰표를 주었으나 그렇게 큰 변화가 없다가, 오산에서 이상하게 위원장은 김용한 사무처장은 주경희에게 집중이 되었고 부위원장 쪽에서 분산이 되어서 혼전중이 되었죠.

 

그러다 김포에서 전부 연합쪽으로 몰다가 경기 북부지역에서 반연합의 압도한 걸 나오면서 현장투표 결과에서 반연합의 우세를 하였고 부천 오정과 광명의 몰표성 결과를 지나 부천 소사와 원미에서 연합 쪽 우세로 추격을 하였지요.

 

그리더니 기대하던 평택에서 반연합 후보의 우세한 결과가 나오면서 과반수로 김용한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었지요. 그 다음 용인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연합 쪽 몰표가 나왔지요.

 

그런데 문제는 사무처장 선거이었어요. 이 상황에서 박미진 후보의 우세이간 하였지만 남은 건 이천과 성남 그리고 기표방식 문제로 보류되던 하남이 남아서 과반수가 되는데 최소한의 남은 획수인 15표를 과연 도달할 수 있을지 저를 포함한 실력 선본 측 사람들은 연합 쪽이 강세인 이 남은 지역위에서 과연 반란표가 나올지 반신반의를 하였지요.

 

그리면서 이천에서 9표 득표를 하였고, 성역이었던 성남에서 4표의 반란표가 나와 이제 남은 표는 바로바로바로 2표... 과연 마지막 남은 하남에서 2표 이상이 나올 것인가라는 실력선본 측 사람들에겐 초미의 관심사가 되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그리다 하남을 개표한 걸 본 저는 박 후보에서 두 표가 나온 걸 눈에서 보았고 고대하던 과반수가 되었다는 걸 확신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비판적 지지'를 거부하며 기권을 한 제가 그분들에게 미안함이 들었고요.

 

그 후 재확인을 한다면서 선관위원 이외에는 밖으로 나가라고 하면서 자정이 넘은 시각에 당사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분위기요? 그 곳에선 전부 반연합 측 사람들이라 축제 분위기이었고, 여건상 자리에 있어야 하던 모 님 등의 몇몇 연합측 사람은 한마디로 짜증난 반응이었지요. 그리고 이따금 선관위원에게 딴죽을 걸어준 모 후보가 기억나고요.



(이 글은 민주노동당 수원시위원회에도 실린 것입니다.)

 

먼저 또다시 조직낙선으로 당하지 않는 것에 감사하며 기쁩니다. 그리고 무슨 까닭인지 모르지만 자진사퇴를 한 어느 당원동지에게는 특히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다만 앞선 수원시위원회 임원 선거와 이번 선거 중에서 탈당한 이들이 몇몇이 있다는 것에 마음에 걸립니다. 물론 생계가 어럽다는 것이 있지만, 진보정치를 염원하며 매월 만원씩이나 내며 입당하다 당내 현실과 위기에 실망하여 박찬 것이 가장 큰 사유인 듯 합니다.

 

저도 4년 동안 당운동을 하면서 외부의 실망스러운 성과는 물론이고 내부의 비민주적 운영까지 바라보면서 마음 같아서는 몇몇 탈당하는 이처럼 탈당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 갈길을 하면서 지지를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다시 대의원에 출마한 건 서서히 몰락해가는 민주노동당의 현재 상황을 어떻게든 터닝 포인트로 나가야 한다는 절박함과 함께 그동안 납부한 보험금에 대한 제 권리찾기 차원 그리고 '또 다른 민주노동당은 가능하다!' 라는 제 슬로건처럼 약 7년간 당내에서 소외당한 현안이나 이념을 다시 안으면서 기존 강령과 당헌당규를 실질적 운영은 물론이고 뛰어 넘어야 한다는 내부 혁신을 촉구하는 차원으로서 결의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무슨 이유인 모르지만 이에 반기를 드는 이가 많다는 것에 조금은 놀랍긴 합니다. 그래도 전 그 어떠한 시련과 냉대에도 굴하지 않았고 험난한 길을 가기로 마음을 먹은 만큼, 비록 저의 답이 정답이 아닐 수 있겠지만 갈길은 가겠습니다. 그리고 역사에 심판에 맡기겠습니다.

 

그럼 저의 소감을 마무리하면서, '민주적 운영'을 뒷받침할 규약개정을 요구하는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전 앞선 대의원대회에서 지역위 규약 개정안을 제출하면서, 최소한의 원칙에 따라 운영을 하여야 함에도 법적 근거가 없이 자의적 결정으로 집행하는 것에 이의를 달면서 개정안을 들었는데 이번 지역위 규약을 보면 이전보다 자의적 판단과 결정을 가능하게 되는 사항이 늘어나서 개악된 걸로 보여집니다.

 

그래서 이번 대의원대회(지역위/도당 등)에서 어떻게 개정을 할 것인지 한번 논의하고자 합니다.

 

그럼 저의 소감을 마치면서 저와 같이 당선한 모든 이에게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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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평택대행진 관련 재판 후기 그리고 아침의 대화

오늘 아침 피고인으로 출석할 9명을 비롯하여 여옥, 69Hz, 가람, 재성, 오리, Rei, 저 등 20명 남짓의 사람들이 수원지법 108호 법정에 갔습니다.

 

물론 지난 7월 245리 대행진 끝 무렵의 경찰서 진출(?)에 대하여 건조물침입/특수공무집행방해/집시법위반으로 공판이 열려서도 있지만, 참 편안하게 지내다 느닷없는 기소로 수원구치소에 유배(?)당한 용석 씨를 보는 까닭이 가장 큽니다.

 

더욱이 지난 공판에서 '선임계 미제출'로 인한 업무 미숙으로 4주를 기약을 하였기에 이번 공판을 기다리게 되었는데, 앞선 심리(결심)공판이 많아서 그 순서가 밀려서 예상된 11시 반을 지나 거의 12시쯤에 피고인의 자리 배치와 기결복 입은 용석씨의 등장으로 시작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용석 씨가 방청석에 있던 우리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였는데 교도관들이 별 다른 제재 없어서 한동안 못 봤던 얼굴들 재대로 보았을 꺼라고 저는 짐작이 갑니다.

 

먼저 검찰의 심문에서는 맨 먼저 용석 씨에게 질의를 하였는데(여기서 주범으로 갈 듯 싶었죠.) '철문이 닫혔고 바리게이트를 쳤음에도 인파에 밀려 경찰서 안에 들어갔다.'는 다친 모 의경의 진술에 '무방비이었다'고 답했고, 경찰서 안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건 물론이고 핸드마이크로 사회를 보았다고 하였지만 잠깐 하였다는 수준인 듯한 답변이 하였지요. (그 나머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리고 덕진 / 래군 씨의 진술과 그 나머지의 진술에서 공통적으로 우린 대행진 중 상인연합회 측에서의 폭력에 경찰의 경비가 없었으면서 평택역 앞 집회 후 돌아갈 때 전경이 막는 것으로 주민들이 대추리로 들어가지 못하였다는 것에 대한 항의의 차원에서 평택경찰서 정문 앞에 집회를 하기로 결정을 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

 

또한 일부 참가자의 경찰서 내 진입이 있었음에도 덕진 씨 등이 그 분들에게 설득한 후 다시 정문 앞으로 보냈다고 말하면서 경찰 측에서 '해산 경고방송'을 하였다는 걸 잘 모른다고 말하지만(그 쪽에선 3번 방송하였다고 하군요.) 자진해산을 하였음에도 연행해가고 더욱이 11명(1명은 불출석)만이 기소한 건 관련 전과가 있는 것 밖에 설명할 수밖에 없다고 하고요.

 

특히 이 검사가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는 이가 있었냐?' 라는 질문에 그 누구도 답하지 않자 말도 안 된다는 억측으로 몰고 가는 것 같아서 제 눈으로는 이러다 쎄게 나갈 것 보였습니다.

 

그래서 모두 진술으로 재판이 열렸고, 판사측에서 남은 한 사람의 진술과 증인심문을 하기로 하면서 다음 기일을 2월 23일 오전 11시 반으로 정했습니다.

 

* 덧말 :  오늘 저의 만기일이 되어 그나마 사슬이 푸었는데 용석 씨는 또 한달(정확히 30일)을 기다려야 하는 참 근처에 살고 있음에도 안쓰러운 건 어쩔 수 없네요.



오늘 일어나더니 어머니가 뭐라고 하더군요.

뭐~ 물 잠글고 씻은 흔적 닦아라는 것을 가본이고

돈 벌 궁리나 하라고 말하면서 어디서 이상한 걸 듣었는지

'교회'나 가지마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전 그 것과는 상관이 없다고 대꾸하더니

소위 사이비 종교처럼 몸과 맘 그리고 돈 날린다는

답만 들었을 뿐이었지요.

 

사실 제가 지금 하는 걸 어머니는 모르거든요.

물론 무엇을 하고 있는 것 자체도 모르는데 말이지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는지 난감하네요.

 

그리면서 이 한마디에 절 치더군요.

'니 아버지가 봄에 집 팔꺼다.'라고...

지금 여기에도 재개발 광풍이 불어서 좀 집값이 뛰었거든요.

 

더욱이 이 인간은 뭐 강원도에서

농사지며 산다면서 어머니에게 돈  달라고 하였고

정 없으니까 거기서 빼낼려고 하는 듯 보이는데...

 

아~ 지금은 거의 남남이 되었고 어자피 독립을 하여하 함에도

그 인간에 대한 싫은 감정은 어쩌할 도리가 없네요...


그래서 지금이라도 나가야 하는데 뭐

어디로 갈 곳이 있냐고요.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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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년 당내 동시선거에 대한 소감.

오늘 집에 나서서 민노당 수원 사무실에 가서 투표를 하는데...

경선으로 치뤄진 도당은 별로 찍을 건 없는데

(참고로 전 빈 종이로 답했지요. 다시 말해 기권!)

오로지 찬반으로 선택을 하는 이 수원지역위에선

일반/여성/장애인 명부를 합쳐 아마 50여개를 일일이 찍여야

했었지요.

 

이런 걸 보면 누군가 '그러면 분회별로 선거구를 두면

투표수를 줄이게 되지 않겠냐고' 물어 보시겠지만 저도 이 문제에 대하여

제기를 해봤는데 아직도 깜깜 무소식이고 이 어리숙한

당무로 이번에도 일일이 찍어야 했었습니다.

 

그 후 모 부위원장의 그 짜증나는 반말로 절 부르더니

밥 먹었냐고 물어본 다음

(그때 뭐라고 대꾸하고 싶었으나 참았지요.

뭐~ '연합'의 소굴에서 살아남은 방법은 '인내' 뿐인데요. 뭐.)

전 남은 일이 하려고 다산에 돌아 왔습니다.

 

앞서 이번 선거에 제가 출마를 하였다고 아실 것이고 그 쪽에서

이미 짜여진 각본 위에 왠 잡티가 보이는 것 처럼

8명이 정원인데 저의 등록으로 9명이 되었다는 것도 아실 것이고요.

 

그래서 지금 투표 중이라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에

당락을 말할 수는 없으나 별로 할 것이 없는 당직선거에 대하여

넞두리를 말할께요.

 

먼저 저의 경우 도당 대의원에 자진출마를 한 후

제대로 운동을 하려면 최소한 연설회나 유세를 하거나

전화번호나 이메일 주소 등을 받아서 홍보를 하는 것이

정석이건만...

 

여긴 단선으로 나온다고 연설회는 물론이고 유세는 할 기회가 없었고

개인정보 보호-이 것에 대해선 저도 인정은 하지만-를 핑계로 

그 어떠한 자료를 받지 못하니까 경력이나 조직/인맥 그리고

뛰어난 능력이 없는 위치에 있지 못한 저에겐 사실

다른 후보에 비하여 그 출발선이 다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더욱이 선관위 차원에서는 홍보물 발송을 대행해 주어야

함에도 어찌 종이 공보물 이외엔 아무런 지원이 없으니

아~ 뭘 선거운동을 할 것이 없었어요.

 

해봤자 선거게시판에 실리는 제 글 뿐이었는데

문제는 이 지역에선 도당 집행부 선거가 동시에 하는데

역시 동부연합 대 반(反)동부연합 구도의 경선으로 나가니까

상대적으로 소홀할 수 밖에 없었지요.

 

그래도 다행인지 모르나 이후에

저와 같은 명부에 있던 어느 분이 갑자기 사퇴하게 되어서

단선으로 찬반이 되었기 망정인지

'조직투표'(전 비주류)와 '소수자'(병역거부자) 그리고

'연령주의'가 판치는 제가 있는 수원에서

또 다시 '낙선'이라는 정신적 린치를 당하게 되겠지요.

 

그래도 찬반이라 의외의 변수가 없는한 당선은 하겠는데

참 모르겠네요.

 

왜냐하면 앞서 수원에서 조직낙선을 당한 당원이 있고

선거 내용이 다른 이와는 완전 차별화를 하여서

( 감표를 각오하고 '투쟁'(?) 하여서... )

저로서는 당선하면 '규약' 전면개정을 이용해 민주화운동을

할 것이고 낙선하면 그 짜증나는 민노당에 한동안 신경 안 쓰면 되니

누군가 당원 몇 년하다 보면 듣도의 경지에 이른다고

하는데 제가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당선하면 좋겠죠.

 

* 덧말 : 전 지난 인권활동가대회에 참가를 했었는데

그 중 수다마당에서 왠 '대선'에 대한 장을 열게 한

사람의 안면을 기억한다면 그게 접니다.

 

그래서 이 글을 보다 아시면 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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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또 다른 이야기 #3 - '진보정치'에 실린 이정훈 씨 편지에 대한 주석.

어제부터 선거운동이 시작한다고 하면서 ‘회고록’을 쓰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고 말했지요. 그런데 소위 ‘일심회’ 사건으로 구속당한 이정훈 당원의 편지를 보면서 제가 그 글 중에 감목에 관련한 내용에서 뭔가 덧붙어야 할 필요가 있어서 당사자에게 죄송하지만 뭔가 말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제가 한 소리를 하겠습니다.

 

<원문> 서울 구치소에서 - [진보의 창] 이정훈 서울 마포구위원회 당원

 

그 중 감옥과 관련한 글귀는 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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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주신 글 중에 제게는 다소 웃음이 나오는 감옥 관련 질문들도 있습니다. 물론 당원들이 감옥 경험(?)이 없으니 당연한 상상일지 모르겠습니다. 가령 영화에서 보니 밥은 식당에서 같이 먹던데 어떠냐? 설거지, 빨래는 어디서 하냐? 운동장은 크냐? 신문, TV를 정말로 볼 수 있냐? 콩밥이냐? 등입니다.


대답은 운동을 제외하고는 한마디로 모든 것을 1.4평 독방에서 해결합니다. 밥은 콩밥이 아니라 (보리+쌀) 밥이고, 25×25cm 정도의 벽에 네모난 ‘식구통’ 구멍으로 밥이 들어옵니다. 신문은 다 볼 수 있고 TV는 뉴스와 드라마 몇 편을 보여줍니다. 밖에서도 못 보던 주몽, 연인, 연개소문, 일요일의 남자 송해씨가 진행하는 ‘전국노래자랑’ 등을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수세식 변기 옆에 작은 수도꼭지가 있어 변기 옆에서 설거지, 빨래, 세면 모두 합니다. 좀 비위생적일 것 같지만 본인하기 나름입니다. 원래 변기가 더러운 것이 아니라 사람이 더러운 것이니까요. 얼마 전 한겨레신문에 가족을 위해 남자도 ‘앉는 자세로 소변을 보라’는 기사가 생각나서, 주변을 위생적으로 쓰려고 실시해 봤는데 처음이라 그런지 영 기분이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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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영화에서 보니 밥은 식당에서 같이 먹던데 어떠냐?’라는 질문인데 이정훈 씨의 경우에는 미결수 즉 형 집행을 하지 않는 재소자이어서 아니면서 방 안에서 밖에서 준 급식으로 먹는다는 답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기결수(형 집행중인 재소자) 특히 공장이나 각종 작업장에 일하는 경우에는 평일 점심에는 식당은 아닌 작업장에서 다 같이 식사를 합니다. 그런데 그 곳의 경우 ‘조폭’에게서 권력의 정점을 두기 때문에 그 가부장적인 시스템처럼 조폭들(나이순으로) 식사를 할 때에 다른 재소자도 같이 먹습니다.


그리고 제가 알기에는 소년원에서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고 듣었고, 여주교도소의 경우에는 사동 한쪽에 식사하는 공간이 있어서 그 곳에서 먹고 설거지를 하기도 합니다.


그 다음은 ‘설거지, 빨래는 어디서 하냐?’라는 질문인데 이 당원의 답처럼 방에 붙어있는 화장실에서 한다고 말을 한 것처럼 독거실의 경우에는 오직 화장실에서 초록색 수세미(아시겠죠?)에 액체 세제(수원구치소에선 고체 세제를 쓰고 다른 곳에선 아예 판매를 하지 않아서 비누로 대용하기도 합니다)를 묻히며 에나멜수지 식기에 밥풀에 묻지 않게 또는 플라스틱 숟가락/젓가락 및 탕반기에 묻어있는 빨간 기름때를 없애며 설거지를 합니다.


그리고 빨래의 경우 화장실 바닥에 물기 먹인 빨랫감을 빨래비누로 묻히며 신나게 서로의 옷감을 마찰시키며 빤 뒤 물기를 손으로 짜거나 아니면 사동청소에게 각 사동에 있는 탈수기를 써서 짜내라고 요청합니다. 물론 돈이 있는 경우에는 거품이 잘 내라고 그 비싼 샴푸로 하기도 합니다.


또한 이불 같이 큰 빨랫감인 경우 구치소나 교도소와 협정 맺은 외부 세탁업체를 통해 빨아 주기도 합니다. 물론 영치금으로 몇 천원 지불해야 하지요.


더불어 뒤늦지만 싱크대가 있는 곳이 있어서 약간 적응기간이 필요하지만 식사 후 청소를 할 때 걸레 빨 때 설거지 담당 눈치 없이 화장실을 쓸 수 있게 되어 빠르게 마무리를 할 수가 있게 되었지요.


앞서 화장실에서 설거지를 하는 것 보고 더럽다고 할 지 모르지만 이 징역살이에서는 이 철저한 위생관념이 자리 잡고 있어서 외부 환경 상 좀 더럽지 않을까란 의문이 들어도 오히려 깔끔하게 삽니다.


그 다음 질문이 ‘운동장은 크냐?’라는 것인데 제가 듣기로는 서울구치소의 경우 역시 많은 인원을 넣다보니 작다고 하더군요. 그럼에도 그 좁은 공간에서는 주위를 맴돌며 걷거나 양말을 여러 번 싸서 만든 ‘공’을 차며 잘 놉니다.


또한 기결수가 되면 ‘대운동장’에서 30분 동안 머물며 주어서 소측에서 준비한 공이나 운동기구를 이용하며 땀을 흘리기도 하지요.


그 다음에는 ‘신문, TV를 정말로 볼 수 있냐?’이란 질문인데 신문의 경우 중앙지는 기본이고 소속지역의 신문까지 구독할 수 있습니다. 다만, 역시 인터넷 신문은 구독할 수는 없는 건 물론이고 저의 경우처럼 영치금이 없거나 사용을 할 수 없는 경우 구독신청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로선 문제 많은 ‘한겨레’도 볼 수가 없었고 주변에서 구독한 ‘조중동’이나 스포츠신문으로 밖에서의 소식을 접할 수밖에 없었지요. 물론 금액은 밖에서와 동일하며 두 개까지 가능하면서 한 달 간격으로 전 달 끝 무렵에 신청할 수 있는데, 어떤 시설에는 15일 간격도 할 수 있기도 하네요.


또한 TV의 경우 몇 개 프로그램(대표적으로 ‘전국노래자랑’)에는 생방송(여기선 소측에서 녹화하지 않고 바로 동시에 상영하는 방송)을 해주지만 시간 여건상이나 검열을 위해 디지털 녹화로 하거나 VHS으로 녹화방송을 주로 하는데 대부분 한 주전 걸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방송사 측에서 방영하지 않거나 녹화물이 잘못된 경우 대체 방영물도 준비하여서 만발의 준비를 하지요.


더불어 아침 및 점심 식사시간(1시간)에는 생방송으로 라디오를 들려주고(서울구치소의 경우 아침에 뉴스를 틀어주기도 하면서 이것저것 보여 준다고 알고 있습니다.), 매주 한두 번은 최신 영화를 틀어줍니다. 그래서 저의 경우 뉴스나 다큐이외에는 절대 TV를 보지 않았는데, 거기서 웃찾사를 보며 개그맨이 하는 말 따라하며 보았지요.


그리고 ‘(밥이 진짜) 콩밥이냐?’이나고 물어 보는데 저 역사상 징역살이에서 콩밥 먹은 기억이 없습니다. 물론 위에서 쓴 것처럼 쌀 8 : 보리 2 의 보리밥인데 콩은 이따금 주는 ‘콩자반(콩조림)’이외에는 먹은 적이 없어서 출소할 때 콩밥을 먹을 때 좋았지요.


또한 콩에서 나온 ‘두부’는 자주 반찬으로 나와서 많이 먹었는데, 출소할 때 두부 준다고 하는데 정확히 따끈할 때 가로세로 자른 두부판 중에 가운데 걸로 주어야 한다고 듣었습니다.


왜냐하면 가운데 두부를 꺼내다가 식어서 다시 그 자리에 넣으면 안 맞듯이, 다신 감옥가지 마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네요.


그리고 최근 점심에 반찬 및 국이 2개에서 3개로 늘어나서 예전보다 먹을 맛이 난다는 듯 하다는 반응이 들 것 보이는데 정작 급식을 만드는 취사장에 일하는 재소자의 경우 더 힘들어 졌다고 하네요.


그래도 서울구치소의 경우 국이 뻐다귀국이나 순대국까지 나온다고 해서 ‘국물 왕창 건더기 조금’이란 성격상 그게 그것이지만 콩나물국 몇 번이나 나오는 수원구치소보다는 낫다고 말할 수밖에 없네요.


다만, 쇠고기무국이나 쇠고기미역국이 나올 때 쇠고기 조각을 건지려고 잘 퍼내려는 때가 좋았긴 하였지요. 그런데 소문이지만 사동청소가 각 사동에 배식한 뒤 남은 걸로 식사를 하는데 이 쇠고기 조각이 나온 경우 그 걸 싹 모아서 간장에 재워 장조림으로 먹기도 한다나...


끝으로 ‘식구통’이란 통로에 대한 재미나지만 웃을 수 없는 사실을 전하자면 이 징역살이에서 ‘발’에 대하선 무좀이나 냄새가 난다고 유난히 터부시하는 경향이 강해서 ‘식구통’에 발을 갖다 대면 주변에서 이러한 까닭으로 지적당합니다.


그럼에도 예전 모 프로그램에서 감옥관련 내용이 방영할 때 ‘식구통’으로 배식하는 걸 보면서 왠지 ‘돼지우리’에 사료 주는 것처럼 비인간적으로 비친다는 말을 듣은 적이 있어서 참 어떻게 답을 할 수가 있는지 난감하기도 하였는데 ‘변기가 더러운 것이 아니라 사람이 더러운 것이니까요.’이라는 이 당원의 글귀가 이에 답일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끝으로 이정훈 당원과 수감중인 12인의 병역거부자를 비롯한 모든 양심수의 무죄석방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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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좀 큰 일을 저지렸습니다.

앞서 말한 것이지만

저 '스스로의 결의'(!)로 민주노동당 경기도당 대의원에

출마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후보서류를 작성하는데

문제는 덧붙여서 등록하려고 18명 이상의 추천을 받아야 하는데

미리 추천하는 글을 게시함에도 어찌 답해주신

분이 없어서 정말 어제가 마감이라서 쪽수 채우려고

여기저기 연락하면서 알수없는 긴장감까지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다행히 제가 연락한 모든 당원 동지들이

추천에 흔쾌이 응하여서 떠돌이 추천인을 포함하여

어쨌든 자리는 채워져서 마감 한 시간전에 접수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제 하나가 있었는데

바로 제가 출마한 명부에서 정원은 8명인데

저 까지 포함해서 9명이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투표를 5명에게 하였기에 아시다시피

선거 자체게 '조직'이 필요함에도 저에게 빈약 아니

전무한 상황에선 그 낙선자가 제가 될 공산이 커서

어찌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상대후보도 대부분 경력발이 짱짱하니까요.

 

물론 여기서 구걸(?)한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니지만

결론은 제 스스로가 재미있게 선거운동을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한동안 '회고록' 쓰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응원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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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마의 변

 

지금 이 글을 보시고 있는 수원시위원회 당원 동지께.


저는 감히 이런 표현으로서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 지금 잘 버티고 있으십니까?


물론 '버티고 있다'라는 표현이 좀 상스러운 표현이다라는 건 알지만 제가 감히 이러한 표현을 쓰는 건, 한국의 노무현 정권과 미국과 EU 등의 거대 국가권력 그리고 초국적 자본들이 민중들에게서 얻어냈던 수많은 권리를 이따금 빼앗으려고 하는 이 신자유주의로 인하여 해고의 두려움과 가계의 빈곤악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상징적인 표현으로서 물어보는 것입니다.


더불어 제가 병역거부로 김천교도소에 있을 때 지난 531지방선거의 본전마저 잃은 성과에도 당기구 전체에선 차마 조잡한 대책이라도 내놓여야 하면서 실천을 해야 하지만 뚜렷한 기미는 보이지 않는 점과 정치적 입장차는 있을 수 있음에도 거대담론과 당내 거대 세력의 일방적 운영방식으로 인한 소외감의 표현으로서 질문한 것입니다.


저는 지난 9월 29일, 429일간의 징역살이를 마치고 자유를 얻게 되면서 우리 민주노동당이 어떻게 되었는지 하도 궁금해서 주변 당원들에게 인사해면서 질문을 하더니 역시나 '그들만의 세상'에만 살고 있다라는 답이 들렸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수감한 동안 민주노동당이 어떻게든 잘 되기를 빌며 지켜보기로 마음먹던 전 이번선거에서 정말 '탈당'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쓰며 당내 민주화를 위해 분신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세 달을 다산인권센터에서 자원활동가로서 돌아오면서 안으로는 '인권영화제'와 '경기도청에 대한 활동보조인의 실질운영 요구를 위하는 투쟁'에 어느 정도 동참하면서 외부로는 최근 세차례 있었던 민중총궐기에 가석방중이라는 불리한 상황에도 그 투쟁의 현장에 함께 있으면서 지금도 하나둘 탈당의 갈라짐이 있지만, 저와 비슷한 당원들을 봐서라도 그동안 지불하였던 '보험금'이라도 재대로 행사한다는 다짐을 안고서 잔류는 물론이고 이번 당직선거에 자발적으로 출마를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제 스스로 공약을 내놓을 고민을 많이 하지 않아서 예전 출마의 변 보다는 적지만 그 동안 생각한 것으로서 대신하겠습니다.


먼저 이 진보정당이라 자부하는 민주노동당에서는 국가주의(민족주의)나 군사주의에서 더욱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보고, 이제야 장애인 당원에 대한 당직공직 할당이 공식화가 되었지만 성소수자/이주노동자/청소년/다민족인(가족)/병역거부자 등의 사회소수자에 대한 당내의 배려가 더욱 더 공식적으로 인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역에서는 같은 직선투표로 선출하는 대의원에 대하여 운영위원회의 일부권한을 대의원대회으로 이관하고 대의원대회의 계최 횟수도 늘려서 당원참여의 폭을 확대할 수 있게 하고 회계감사의 경우 지역위 운영에 대한 감찰과 당기위의 권한까지 확대하는 감찰위원회 신설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중앙당에서 일괄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각종 당규를 지역위 실정에 맞게 자체 제정을 하면서, 실무적으로 필요함에도 아직까지 전무한 규칙들을 제정할 것을 요구할 것이며 만약 운영위원회에서 뚜렷한 추진 없이 미진한 경우 규약 전면개정을 통해서라도 도입할 것입니다.


특히 문제가 많았던 '각급 위원장'의 밀실선출에 대한 시정과 회계 및 회의록공개 그리고 대상자가 아니지만 당 회의에 참여하고자 하는 평당원에 대한 발언권 부여, 일방적인 담론이 아닌 다양성이 보장하는 교육이나 각종 캠페인의 참여 등을 우선으로 추진하도록 하겠습니다. 


끝으로 이 구호로서 정리를 하겠습니다. " 또 다른 민주노동당은 가능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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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또다른 이야기(외전) #2 - 재소자로서의 비애들.

최근 김지태 이장님이 병보석으로 나오셨다는 것에 이 글을 보시는 대부분의 여러분은 다 알고 있겠지요. 저로서도 수감하였던 이였고 12월 1일에 한번 면회를 해선지 기쁘지 그지없습니다.

 

물론 법정에서의 결정이 나오지 않은 상태이라서 또 다시 실형이 나와 구속을 당할 수 있다는 것에 조심스럽지만, 제 입장으로는 소위 재력이나 인맥 많은 변호사를 선임('산다'는 표현도 쓰지요)하지 않으면서 보석신청을 받아 준다는 것은 결정권자가 당 사건의 판사이기에 어떻게 보면 최소한 집행유예로 바꿀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으로 예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뭐~ 보석을 뭐 쉽게 받을 수 있지 않겠냐고 묻겠지만, 제가 미결에 있을 때 사동에 들어서니 고혈압, 당뇨, 장애 등등 소위 병사에 들어갈 수 없는 이들을 질병별로 나눠서 관리하는 사동에 있었는데 물론 실상을 알지 못한 상황이라고 단지 소문이지만 '병보석'을 쉽사리 받아주지 않는 듯 합니다.

 

심지어 불치병이라고 부르는 '암'을 걸려야 옥문을 나설 수 있다는 소문이 들었으니까요. 그러나 사실 어느 질병이 걸렸다는 것이 각 개인에게는 중대한 고역이거든요. 더욱이 행형시설에서 '의료권'이 재대로 보장해 주지 않는 현실에서는 각자가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 철칙처럼 지킬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제가 구치소에서 기결방에 있을 때, 그 방의 봉사원이 저에게 의무과에서 나온 감기약을 먹으라고 하는 거예요. 그 때 제가 잔병 없이 잘 지내고 있었는데 뭐 예방차원에서 먹으라고 봉사원이 말해서 마지못해 먹은 기억이 있었지요.

 

그럼에도 제가 구속 전까지 이따금 감기나 몸살이 걸렸지만 의약품 자체가 또 다른 독극물이다는 걸 알고 있고 인체의 자생력을 믿기에 최대한 버티며 내전(?)이 끝내길 빌다가 정작 못 견디겠다면 해열진통제나 비타민 C 한두알 정도 먹었는데, 이 사회에선 무슨 뭔가 아프다고 하면(특히 머리나 허리 아프다고 하면) 바로 메모지에 적으며 약 달라고 난리를 치더라고요.

 

심지어 무슨 봉변을 당할 수 있다면서 아무 병도 없는데 '타**놀'이나 '게*린' 등의 약 달라고 할 정도이었으니까요. 그렇더라도 이 시설에서 의약품 사정이 좋으냐리고 묻으시겠지만 그건 아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보유하고 있는 품목이 한정되다 보니 지금 한겨울에 발에 동상이 걸리는데 아니 '안***민'을 주지 않나?(관련 회사 홈피에 보니 효능란에 없더군요) 또한 외부 타박상 정도는 이해하지만 허리가 차도 없이 아픈데 계속 '신**스'를 주는 경우가 있었어요.

 

그리고 앞서 동상의 경우 가장 빠른 치료법이 따뜻한 곳에서 있는 것인데, 이런 건 소문이지만 '여호와의 증인'이 바닥에 전기온돌이 깔려있는 병사에 들어가서 동상 좀 나오게 해달라고 의무과에 요청하더니 당연히 기다려달라고 답했겠지요.

 

그리더니 그 증인이 의무과 직원에게 '욕'-주변의 귓가엔 그런 표현이 나오겠지만 저로선 그 들의 철저한 계율 엄수를 하고 있기에 '막말'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이 나왔다는 것이에요.

 

하여튼 그 이상의 사례가 있을 것 같지만 저로선 기억이 가물 하네요. 그래서 당국에게 묻건대 예전에 모 구치소에서 치료 소홀으로 사망하게 한 사건을 기억한다면, 관리나 비용 문제로 골치가 아프더라고 재대로 치료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음... 그리고 앞서 '보석' 예기를 하였는데 그러면 '보석'으로 출소한 분이 아닌 그러한 모습을 지켜보는 이로선 어떠한지 간단히 말해볼께요.

 

일단 다른 상황이나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어떻게 서라도 한 자리에 있는 이상 제 기준에 별로 이지만 '가족' 같이 지낼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어느 누가 실형 특히 중형을 받으면 주변에선 안타까움이 들고, 보석이나 집행유예·벌금으로 나오게 되면 같은 방 사람들은 대체로 환호를 하게 되지요.

 

물론 환호한다는 것이 단순한 인정에 가까울 수 있지만, 그 간사스러움이 꼼지락거리듯이 좁디좁은 방에서 한자리가 비워져 편히 누울 수 있다는 것이나 그 동안 그 분이 소지하던 물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또 다른 환호의 원인이 있다는 것이지요. 다만, 그러한 사회도 자본주의 사회이다 보니 면회를 오는 이가 많아 영치금이 가득 찬 분들의 경우 때론 안타까움까지 들기도 하지요.

 

그래서 미결 때 과거 조폭이였다는 근육질 체격의 어느 분이 보석으로 출소할 때, 참 양심에 따라야 한다면서 자리 편하게 잘 수가 있다면서 영치금을 쓸 수 없어 면도기가 필요하던 저에게 단비가 내렸다는 후문이... 흐흐흐...

 

그럼에도 가장 안타까운 건 집행유예나 만기출소를 하는데 이 벌금 때문에 제 시간에 나가지 못하고 가족 등에서 벌금 내기를 기다리는 벌금방에 가는 것이나 제 시간에 나서지 못하고 기다려야 하는 경우이지요.

 

사실 '벌금'이라는 것이 그 숫자에 따라 중압감의 차이가 나지만 문제는 수감중인 경우 이 '벌금'이 있다는 까닭으로 가석방에 나갈 기회가 박탈당하는 건 물론이고 만기가 지나도 그 금액에서 하루 5만원씩 깍으며 노역(실제로는 방안에 콕 박히는 경우가 많죠)하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지 아시는지.

 

더욱이 그러한 방에 가서 지냈는데 문제는 구성원 대다수가 빈민이 다수이라서 입소시 소측에서 준 수건(흰색 작은 정사각형)이나 칫솔(모텔에서 판매하는 싸구려)등의 얼마 없는 생필품으로 살아야 해서 그나마 인간된 삶이 지낸다는 보통 징역살이보다는 비참하지요. 아 말도 못한다고 들었는데...

 

그리고 나중에 말하겠지만 어떠한 까닭으로 사동 전체가 이동하게 되었는데 하필 노역방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도배하지 않고 바닥도 더러워서 - 무슨 공사를 해서 바닥에 스크레치가 나고 그 귀한(?) 모래 알갱이가 보여서 - 청소를 하느냐고 좀 고생 많았지요.

 

그래서 최근 평택 건으로 벌금과 기소를 당한 용석씨의 경우를 보니 그 안쓰러움이 가시지 않네요. 지금 제가 사는 곳 근처 구치소에 꼭대기(8층)에 있는 걸로 아는데, 최근 편지를 보니 그 소문이 무성함에도 아직도 전기판낼을 깔지 안 되는 듯 해서 방안에만 있어도 걱정 또 걱정이 드네요.

 

또한 저와 같은 방에 있는지 병역법 89조제2에 의해 대체복무(공익근무요원이 대표이지요)를 하다 '정당한 사유'(저의 범법사실과는 인연이 많아 짜증이 밀려나오는...) 없이 통산 8일 이상을 복무를 이탈 - 다른 표현이 아니라 학생의 경우 무단결석이고 노동자에게는 무단결근이지요 - 하거나 해당분야에 복무하지 아니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는데 실제로는 일단 처음인 경우 집행유예를 선고하지요.

 

그럼에도 문제는 집행유예로 나와도 복무하다 또 다른 이유로 결근해서 8일이 지나면 또 다시 경찰의 부름을 받고, - 싫으면 바로 수배 떨어지고 - 구금한 후 변호사를 사서 또 다시 집행유예로 나오지 않는 한(병역법의 경우 대부분 자유형으로 선고할 수 없다고 하네요) 실형을 받는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한번에 징역(금고) 1년 6월 이상의 형량이 선고하지 않는 한 집행유예에서 나온 형량과 본형량이 아무리 1년 6월 이상이어도 각각 그 이하이면 총 형량을 다 살아도 또 다시 남은 기간동안 복무를 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 전 처음엔 무조건 18개월 이상이면 제2국민역으로 빠진다고 알았는데 좀 뒤져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

 

더욱이 그 남은 기간이면 차라리 낫지요. 왜냐하면 그 남은 기간에다가 이탈한 일수×5를 더한 날짜를 더 복역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집에서 편히 있으면서 공익으로 복무한다는 것이 아무리 편할지 몰라도 한 번 잘못 삐끗해보면 그건 돌이킬 수 없는 늪으로 빠지는 꼴이다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3번의 복무이탈로 징역살이 살 것 다 살았는데 또다시 결근해서 구속을 당했는데 이 사슬을 끊고 싶다고 1년 6월을 부려야 하는 이 비극을 모 인터넷뉴스에 본 적이 있었지요. 물론 이러한 사실이 저와는 상관이 없는 듯 하지만 동지애라고나 할까요?

 

더구더나 저와 같은 방에 있었던 어느 여호와의 증인의 경우, 앞서 구속당한 형이 지금 같은 곳에서 의무과 보조로 출역을 하고 있는데 저 병역거부자들이 구속을 당하는 사유를 누구보다 아는 구치소에서 형제이면서 사유가 동일하다는 것으로 그 형제를 공범으로 정해서 서로의 수번표에 공범마크를 빨간 색으로 쓰는 걸 보았어요.

 

사실 같은 사건으로 구속당한 사람들에게 소위 말 맞추지 못하도록 '공범'이라는 낙인을 찍혀서 같은 방이나 사동에 못 있게 하는 건 물론이고 면회를 할 때 서로 마주 보지 못하도록 시점을 서로 못 보도록 조정을 하는 걸 알고 있어서 저로선 안쓰러움이 들었지요.

 

그래서 저보다 먼저 기결수방으로 갈 때에는 혹시 이감갈 수 있는 것 같았는데 이후 제가 출소한 후 우연히 병역거부자 목록을 담은 파일이 있어 찾아보더니 다행히 그 자리에 있었군요. 물론 지금쯤 이미 가석방으로 출소하여서 열심히 하고 있겠고요.

 

그러면 여러 이야기를 쓰였는데 난잡하게 서술해서 어떠한지 모르겠네요. 지금 전 하필이면 감기 걸려서 정신이 없는데도 말인데 그 누가 지나가도 기록은 계속 이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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