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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주인이 된다는 것.
참 쉽고도 어려운 문제다. (어떻게 스스로의 주인이 된다는 것인지...)
임금노동을 통해 살아가는 사람들은 현실에서 곧잘 비굴하기 쉽고 비참하기 쉽다.
또 어떤 경우에는 비열하고 야비한 자들과 맞닥드리게 되고, 때로는 (어쩌면 자주) 그런 자신을 발견하게 될 때도 있다. 이런 것으로 힘들어하는 것은 스스로의 위치가 피해자가 되거나 가해자가 되거나 이렇거나 저렇거나다. 이 때 어떻게 자신을 절망으로 몰아 넣지 않고 자신을
신속하게 구출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리하여 <평정>으로 복귀할 수 있을까.. 극한 선택에까지 자신을 내몰지 않기 위해 우리는 이것, "주체"가 필요하다.
<주체>, 이것은 주체화라고 할 때의 그 주체이고 주체성이라고 할 때의 그 주체다.
절망에 빠지거나 죄책감에 시달려서 스스로를 포기하기까지에 이르럿을 때 우리는 모든 것을 뒤로하고 자신을 추스려내야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견뎌내야하는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스스로의 비난을 뒤로 하고 자신을 굳건히 지켜내야하는 것이다.
<대립>과 <적대성>으로 둘러쌓인 자본주의 현실에서 스스로가 스스로의 주인이 되는 것은 그토록 중요하다. 주체는 참혹한 현실에 대한 지극히 정당한
당당함이다.
삶에 대해 당당하게 맞설 때 노동자는 스스로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또는 스스로의 주인이 되기 위해 현실은 노동자에게 당당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 <당당함>은 "정정당당"이라고 할 때의 당당함과는 다른 범주의 것이다.
<참고>
변증법적 유물론:고급철학 1 / 동녘신서 59철학 에세이 / 조성우 /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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