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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 대륙에 묻어』―어느 중국노동운동가의 일대기 -문국진

『내 영혼 대륙에 묻어』―어느 중국노동운동가의 일대기
 2007-07-23 11:17:30 - 문국진

 1. “새로운 시대의 청년들은 단순히 자신의 수양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수양을 쌓는 것도 좋지만, 그것이 혼자만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사회적 실천에서 쌓는 수양이 되어야 한다. 개인과 집단의 변증법적 관계, 즉 한 개인은 집단에 소속하기 때문에, 집단적인 삶 속에서 수양할 것이 요청된다.
 
 2. 사람은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뛰어다닐 자신의 일을 가지는 것이 곧 행복이다. 더구나 전체 인민을 위해 역사적인 과업을 자신의 일로 가지는 혁명 운동가는 그 얼마나 행복한가!
 (당을 지향하는 활동가는 미래의 대규모 대중투쟁에 대비하여 조직적 대열의 준비를 지향해야 한다.)
 지금 분산-포진하여 각개약진하고 있는 활동가조직들과 그 개인들은 전체 변혁운동의 일부분들이다. 현재의 일상적 실천들은 또한 전체 혁명적 실천의 일부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혁명 이론 없이 혁명적 실천도 없다.” 즉 실천가들은 혁명적 사상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맑스주의는 물질적 무기와 사상적 무기의 결합을 지향하는 혁명이념이기 때문이다.


 3. “눈앞에 닥친 가장 절실한 문제부터 해결해가라.”―당장 해결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지 말라. 당장 착수하라. “시작이 반이다.”
 등중하(이 책의 주인공)는 “일상사를 꼼꼼하게 처리해 나갔다.”―실천운동은 결국 실무로 귀착되는 데 바로 그 실무들 처리에서 무책이면 전체 운동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다. 실무역량을 높이는 데 주력하라.
 
 4. (등중하의 혁명적 낙관주의) “우리의 앞길이 그들(즉 부르주아지)보다 훨씬 밝다는 걸 믿어야 해.”―노동운동과 사회변혁운동은 온갖 난관과 씨름해야 하고 또 여러 가지 문제들에 일상적으로 부딪치게 되지만, 그 운동의 미래는 밝다는 것에 확신을 가져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등중하는 말한다)-- “일일이 한 가정을 돌볼 틈이 어디 있나?”―활동가들은 이혼을 당하거나 가정이 해체됨을 겪기도 한다. 정말 활동가는 개인적 삶을 희생하고 오로지 운동에 헌신하는 사람들이다. 돈 버는 일보다 운동에의 헌신을 더 중시하는 사람들이다. (정말 ‘부르주아적 가족제도’는 우리가 반대해야 할 것인가?)
 
 5. “지금부터 일어나는 일을 지켜보자.”―때로는 사태를 관조하고, 정세 흐름과 그 동향을 주시하면서, 어떤 일들이 왜 일어나고 있는지를 찬찬히 파악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민중은 우리가 사랑하는 친구다.”―민중의 벗, 인민의 벗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어깨동무하고서 앞으로, 함께 전진해야 할 것이다. 과연 활동가들은 민중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가? 그들을 단지 운동의 ‘대상’으로만 간주하지는 않는가?
 
 6. “모두가 각각 나름대로의 길을 찾아 헤매고 있어.”―그렇게 해서 이제 한 길을 찾아 안정된 자리에 안주할 수 있게 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90년대 이후에는 많은 사람들이 시민단체의 활동가가 되었다. 그리고 노동운동가의 길로 접어든 많은 노동활동가들도 있다. 또 일부는 혁명적 대의를 잃어버리지 않고, 체제변혁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이어가고 있는 좌파정치조직 활동가들도 있다. 중요한 건 “각각 나름대로의 길”을 걸어가되, 서로 간에 애정 어린 비판과 상호소통(예를 들면 ‘적녹연대’)을 실현하는 것이 요청되는 것은 아닐까.
 
 7. “등중하의 영향을 받으면서 인력거꾼들은 빠른 속도로 사람들을 규합해 나갔다.”―힘이 실어지고, 특히 사상적 강화가 이루어지게 되면 실천운동은 더욱 가열차지게 된다. 특히 노동자들은 아주 작은 사상적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사회주의의 영향을 쉽게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자본주의에 본질적으로 결합되어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혁명가들이 노동자대중에게 다가가서 행하는 선동과 선전은 노동대중으로 하여금 자신의 계급적 당파성에 따라 민감하게 수용하고, 투쟁의 사상, 해방의 사상을 자기 것으로 하기가 매우 쉽다. 중요한 것은 그들에 대한 ‘활동가들의 조직적 진출’이다.
 
 8. “어려운 모색기간을 거쳐 다른 사람의 소개로 등중하는 철도공장의 기계조립공인 사문빈과 친분을 맺게 되었다.”―활동의 초기에는 현장노동자와 개인적 친분을 맺고 그 친분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중요하다. 예전에 한 후배가 위장취업을 해서 처음 시도한 일이 다른 동료들과 ‘떡볶이 먹는 모임’을 가졌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후 점차 등산가기, 야유회가기 등으로 친목회를 활성화했고, 나중에 그 이후 현장에서 투쟁이 벌어졌을 때 가장 기본적인 동력으로 나서게 된 사람은 바로 이 ‘소모임 멤버들’이었다는 것이다.
 
 9. “등중하는 사문빈과 함께 철도노동운동 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들’을 연구/검토하였다.”―인간의 인식은, 그리고 그 발전으로서의 인간의 실천은 추상에서 구체로 나아가는 법이다. 따라서 처음의 추상적인 생각은 차후에는 보다 구체적인 방도를 찾는 것으로 대체된다. 생각이 구체적이지 않고 막연한 추상적 생각에만 머물러 있으면, 결코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를 ‘관념주의’의 오류라고 한다.
 현실에 대결하는 변혁주체는 모름지기 ‘관념주의’를 타파하고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인 사고로 나아가야 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10. “등중하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우리는 되도록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실천가들은 사람을 조직하기 위하여, 이론가는 더 많은 토론으로 자기 사상을 재점검하기 위하여. 우물 안 개구리는 결코 세상을 현실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결코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없다.
 
 11. “어찌 한달음에 하늘까지 오를 수 있겠는가?”―인생지사가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터이다. 느리지만 꾸준하고 지속력이 있는 편이 더 낫다. 정성을 기울여 축적해 나가다보면 어느새 정상에 도달하지 않겠는가? 욕심에만 집착하다보면 그만큼 실망도 크고,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판단에 갇히게 될 것이다. 분명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한발 한발 내딛어 가다보면 확실히 어떤 성취에 도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12. “각지의 대표들은 회의를 마치고 곧 돌아가 행동을 개시하였다.”―맨 날 회의만 하던가, 맨 날 이론작업만 하던가 하는 것은 편향적이다. 행동, 실천화야말로 역사적 의의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올바른 실천을 위해 회의도 하고 학습도 하는 것이지, 그 역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올바른 실천의 올바른 지침을 획득하기 위해 집단적 토론과 치밀한 이론 학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실천이야말로 진리의 유일한 기준”이라는 말은 실천의 중요성을 잘 표현해준다.
 
 13. “실제와 동떨어진 공허한 학습은 공허하다.”―특히 철학자들의 경우에 이런 비실제적인 연구로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의 실제 생활과 결부되지 않는 공론공담은 결국은 인민대중의 절박함을 외면하는 것이다. 또한 리얼리즘에서 벗어난 문학을 추구하는 예술가들도 마찬가지로 역사와 사회의 절박한 요구를 저버리는 데로 귀결된다. 
 
 또 한편 실제에 결부된 ‘이론적 실천’을 한답시고 부르주아적인 주장과 부르주아적인 비판을 마구 떠벌리는 사이비학자들의 경우는 더 위험하다. 이들은 인민의 눈을 가리고 왜곡하며, 착취체제의 옹호에 적극 나서는 자들이다. 자본주의의 모순 혁파를 위해 착취에 저항하고 부르주아국가에 맞서 투쟁하고자 하는 변혁적 활동가들은 이러한 부르주아적 이데올로그들에 맞선 투쟁, 즉 사상전선에서의 투쟁을 도외시해서는 안 될 것이며, 그들이 곧 사상적 지배계급이기 때문에, 이 지배계급에 맞선 사상적 계급투쟁은 필연적이다.
 
 14. “인민에게 ‘희망’을 제시해야만 사회를 개조하는 힘이 생겨날 수 있다.”―그런데 인민에게 정치적 희망을 제시하려면 정당이 존재해야 한다. 현대사회의 정치는 정당제도로 이루어지기 때문이고, 자신의 명확한 정치적 입장을 숨기지 않는 사회주의당만이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개별적 부분에서 인민을 포섭하고 조직화하는 데에도 정당적 조직구조가 매우 유효하기 때문에, 사회 개조를 지향하는 세력은 반드시 정당을 가지고 투쟁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의 실질적 개조는 다만 정당이 ‘대리주의적으로’ 인민에 대신해서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개조의 주체는 엄연히 노동자계급과 인민대중인 것이다. 혁명의 과정에서, 그리고 혁명 이후의 과정에서 엄연한 역사적 주체는 (당이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과 인민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곧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의 원리에도 잘 부합된다.
 
 당은 다만 그러한 투쟁주체들에게 ‘희망’을 제시하고 혁명지도부로서 대중투쟁을 이끌어가야 하는 임무를 떠맡는다. 당과 계급/인민 간의 유기적인 관계의 올바른 전진만이 투쟁을 승리로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고, 그 혁명이 왜곡되지 않고 올바로 발전해갈 수 있을 것이다.
 
 15. “개인의 연약함은 오직 ‘실제의 투쟁 가운데에서’ 각고의 시련을 거쳐 철저히 극복함으로써만 올바로 해결되어 나갈 수 있다.”―개인은 연약하다. 그러나 각고의 시련을 경험하면서 투쟁의 삶을 살아가다보면 개인도 강인하게 단련될 수 있다. 이는 오직 투철한 의지와 변혁에의 열정, 동지들과의 공동의 실천의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노동운동가는 협상 테이블이 아닌 투쟁의 현장에서 대중들과 함께 같이 호흡하고 같이 연대하는 투사로서의 삶을 영위해 갈 때, 자신을 연단할 수 있다. 그리고 사상적 유약함을 극복하고자 하는 사상학습에 게을리 하지 않을 때 자신을 더욱 강화시킬 수 있다.
 
 16. “등중하는 각고의 노력 끝에 몇 몇 각성된 노동자들과 사귀게 되어 호서공인구락부(湖西工人俱樂部)를 세워 노동자들에게 강연을 실시하였다.”―강연은 곧 혁명이론과 실제운동을 결합시키는 유력한 도구이자 매개체인데, 현재 남한에서 실시되는 많은 강연, 교육들은 조합주의나 선전하고, 개량주의자나 육성하고 있다.
 
 반대로 혁명적 사회주의자 진영은 이러한 노동조합주의에 반대하여, 혁명적 사상을 과감히 유포하고 그들을 혁명적 노동계급으로 양성시키는 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러한 교육을 이수한 노동계급은 전위로 성장되어 가는 것이고, 추후 당의 핵심역량, 당의 핵심간부역량으로 성장할 것이다.
 
 해방공간시 남로당이 세운 ‘강동정치학원’과 같이, 그리고 중앙당학교나 중앙연수원과 같은 집단적 학습공간의 건설도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예컨대 사이버노동대학의 경우는 어떠한가? 그곳은 강사진이 주로 대학교수들이다. 대학교수들의 교육과 혁명가의 교육(예컨대 맑스도 “임노동과 자본”등을 노동자들에게 직접 강의한 바 있고, 로자도 노동자들을 상대로 정치교육을 실시한 바 있듯이)은 하늘과 땅 차이일 것이다. (사이버노동대학에서는 본인도 강사를 거부당한 바도 있다.)
 제대로 된 혁명가들에 의한 교육과 혁명가 양성을 지향하는 혁명활동이 요긴하다.
 
 17. “먼지만 휘날리던 소사도에 새로운 불씨가 심어졌고, 그것은 금새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현대물리학에서 말하는 파장이론이나 에너지론, 소위 ‘나비효과’를 필자는 수용하는데, 이러한 파급은 현대사회에서는 더욱 극대화한다고 본다. 레닌이 당 건설에서 유효한 수단으로 간주했던 당 기관지 정치신문의 이름은 ‘이스크라’, 즉 불꽃이었다.
 중국공산주의운동사에서도 “하나의 불씨가 온 광야를 태우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비록 소수에서 출발한 공산당운동이라 해도 그 작은 불씨가 기하급수적으로 퍼져 온 땅으로 번져 나아갔던 것이다. 맑스도 『공산당선언』에서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온 유럽을 떠돈다”라고 했다.
 비록 소수일지라도 확고한 결의와 사상으로 무장한 집단이 활동을 결의한다면 그것은 놀랄만한 파급효과를 초래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한 세력은 반드시 노동계급 속으로 들어가 그 전위적 부분을 전취해야만 한다. 이러한 전위들의 강고한 결의와 열정으로 운동은 급속한 자기 성장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다.//<맑스사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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