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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에서 늙은 농촌, 농민을 보았다.

 ‘워낭소리’에서 늙은 농촌, 농민을 보았다.

 

영화 ‘워낭소리’가 야금야금 전해지더니 이제는 100만을 바라본다고 한다. 이제는 명박 아저씨도 보고 ‘잘 봤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라고 했단다. 이제껏 독립영화를 말살하는 정책을 펴다가 전용관이 어떻고 하는 소리를 했다고 전한다. 나도 어제 워낭소리를 보았다.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시각에 따라서 다양한 느낌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선 독립영화의 성공사례라고 칭찬이 대단하다. 그리고 기계문명과 자본만능으로 ‘정’이 메말라 있는 이때에 사람들로 하여금 서정적인 풍경과 소와 사람이 동거 동락하는 모습을 보면서 잃어 버렸던 지난날의 정겨운 모습을 기억해 내고 그리워했을 것이다. 한편으로 할아버지만 부각되고 할머니는 부차적으로 묘사되어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인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나는 농촌에서 자라면서 영화에 나오는 대로 소와 함께 지내면서 대체로 경험한 내용이라서인지 소에 대한 생소함은 별반 느끼지 못했다. 다만, 소가 40년이나 살았고 그렇게 앙상하게 마른 소는 처음 본다. 우리네 농촌에서 소는 10여 년 동안 키우는데 일소로 부리면서 송아지를 낳아서 팔고, 어미 소도 어느 정도 늙으면 팔아서 바꾸곤 했다. 영화에서 기계로 밭을 정리해 놓은 밭을 다시 소로 갈고, 기계로 모를 내고 다시 손으로 모를 내는 모습, 할머니가 계속적으로 하는 말들 중에는 자연스럽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다리가 그렇게 많이 불편한 할아버지가 소를 키우면서 농사를 지어가는 모습은 특별한 경우라고 보인다.

 

나는 이 영화에서 늙은소, 늙은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면서 나는 오늘 우리 농촌의 현실적인 모습을 보았다. 망하기 한 발자국 앞에 있는 오늘 우리 농촌모습이 40년이나 되어 늙어 죽을날을 앞두고 있으면서도 일소로서의 역할을 해 나가야 하는 불쌍한 소, 여든에 가까운 늙은 농부이지만 오로지 그들 밖에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오늘 우리의 농촌을 사실적인 표현했다고 봤다. 소가 죽었다. 이제 얼마지 않아 소를 따라 늙은 농부도, 늙은 농촌도 죽을 것이다.

 

‘워낭소리’를 보면서 몇 해 전에 본 권우정 감독의 ‘농사일기’가 생각난다. 농사일기는 도시에서 공부한 젊은 청년(부부)이 귀농해서 아스팔트 농사와 논밭 농사를 겸하면서 힘들게 살아가면서 희망을 일구어 나가는 이야기라고 기억된다.

 

이 영화를 많은 사람들이 보면서 잠시 동안 눈물을 흘리면서 향수를 자극해 내는데 그치지 않고, 독립영화를 살려내는 계기도 되고, 자유무역과 FTA로 몰락해 나가는 농촌을 한 번씩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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