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라고? ‘이경규의 양심냉장고’ 할 때 그 양심인가? ‘양심적으로 살다’ 할 때 그 양심? 아니 누군 '양심' 없어 군대가나?”
용어조차 낯설던 때가 있었다. ‘병역거부’라는 우리사회 '주홍글씨' 같은 글자 앞에 ‘양심’이라는 단어가 붙다니. 도대체 이게 어디서 떨어진 말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제 누구라도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말을 들으면 “아, 그거”라고 대충 아는 척 할 만큼 됐다. 이렇게 만든 사람이 바로 평화인권연대 활동가 최정민씨(36)다. 그의 또 다른 직함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공동위원장.
|
최문주기자 |
제2회 이우정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최정민씨. |
최씨는 7년 전 국내 시민사회에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을 끌어들인(?) 장본인이다. 그리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뒷바라지며 대내외적 연대 조직 일까지 도맡아해 오고 있는 살림꾼이다.
최씨가 여성으로서 통일운동, 평화운동을 펼친 고 이우정 선생을 기려 만든 '이우정평화상'에 제2회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에 어쩌면 조금 의외인 것 같았다.
전통적으로 여성운동 분야도 아닐 뿐더러 그의 앳돼 보이는 외모 탓에 상을 받기에 좀 젊은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곧 고개가 끄덕여졌다. 운동의 무게를 생각하면 당연히 그럴만하다 싶은 것이다. 그리고 후자는 '아차', 편견일 뿐였다.
2001년 말 오태양씨의 병역거부 선언으로 국내에 공론화되기 시작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운동'. 사회적 논쟁거리로 불거지면서 용어 자체는 익숙해졌지만 실제 변한 건 별로 없어 보인다.
현재 감옥에 있는 병역거부자의 수는 900여명. 일제시대 이후로 총을 들 수 없다는 이유로 감옥을 거친 이들은 총 1만 여명으로 추정된다. 오태양씨 이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선언자도 30여명가까이 되는데, 이들 중 형을 마치고 출소한 이만 10여명. 현재도 10여명이 감옥에 있는 상태다.
노회찬, 임종인 의원의 대표발의로 재작년 대체복무 법안이 국회에 상정됐으나 여전히 논의는 지지부진이다. 지난해 말 인권위원회의 권고가 있고서 국방부는 최근 대체복무제 연구회를 발족시켰으나 위원회 구성 기준, 선정 절차 등에서 요식행위라는 혐의를 지울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젊은 병역거부자들의 '대모'라 불린다는 최정민씨를 서울 서대문에 위치한 평화인권연대 사무실에서 만났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서 군대와 관련한 '무얼'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겠다고 물으니 최씨는 병역거부 운동이 단순히 군대와 관련된 운동만은 아니라고 답했다. 병역거부 운동은 우리 사회 시스템을 바꾸는 사회운동이라는 것이다. 운동을 하며 몇년 전부터 채식도 하게됐다는 최정민씨는 또 병역거부 운동을 하는 것과 채식을 선택하는 것이 방법론으로는 같은데 뿌리를 두고 있다는 얘기도 들려주었다.
- 병역거부 운동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
2000년 가을 한국에서 아셈회의가 열렸는데 그때 외국 활동가들을 만나 군대를 거부하는 운동에 대해 처음 들었다. 당시 대만이 대체복무제를 막 도입했을 때여서 국제적으로도 이슈가 됐을 때였다.
우선 세미나부터 시작했는데 한국에선 마땅한 용어도 없었고 논문 하나 없을 정도로 막막했다. 외국 자료들을 참조하고 외국 단체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서구에선 이미 1, 2차 세계대전 당시 병역거부의 큰 흐름이 있었고 대체복무제가 도입되고 정착되는 역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병역거부 운동에 대해 알게 되면서 마치 뒷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 왜 병역거부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건가.
당시 우리나라에는 ‘병역거부’처럼 국가 시스템이나 법제도에 불복해 저항하는 사회운동의 흐름이 없었다. 국가주의 폭력에 대항하는 운동의 방법론으로 ‘참여하지 않는’ 시민 개인의 활동, 그러니까 평화를 애호하는 착한 마음들이 자발적으로 복종하지 않는 활동으로 이어지는 흐름 같은 걸 만들어내고 싶었다. 자각한 개인들이 동의할 수 없는 법제도가 있을 때 협조하지 않는 것도 운동의 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아마 그래서 군대 내 폭력이나 징병제 자체에 대한 문제보다 병역거부 운동에 더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 초창기 병역거부 운동을 받아들이는 시민사회의 태도는 어땠나.
세미나 하고 여호와의 증인 분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고 2001년 초부터 공론화해야겠다는 생각에 시민단체들에게 제안하고 다녔다. 근데 그게 1년 동안이나 되지 못했다. 사실 시민운동, 인권운동 진영에서도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편견이 있었던 거고, 선뜻 나서게 되지가 않았던 거다. 결국 그해 12월 여호와의증인이 아닌 사람으로 오태양씨가 처음 나오고 나서야 공대위가 구성됐다. 이 또한 우리의 한계라는 생각도 들었다.
- 병역거부 운동을 시작한 지 7년 정도 지났다. 어느 정도 공론화는 된 것 같다. 그 동안의 성과가 있다면.
보통 3년형 선고가 내려지던 게 최소형량인 1년 6개월로 줄었다. 여호와의증인 신도들의 경우 교도소 내 종교행위도 일부 허용됐다. 사실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내 양심을 지킨다는 자존감 하나로 버티는 이들에게 사회적으로 지지 목소리가 있다는 것은 당사자들에겐 큰 힘이 된다. 사회 전반적으로 이제 병역거부에 대한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근본적으로 바뀐 건 없다. 2년 전 노회찬, 임종인 의원 대표발의로 대체복무제 입법안이 국회에 상정됐지만 논의는 아직 지지부진이다.
- 병역거부자들을 지원하는 과정은 어떠한가.
병역거부를 결정하는 과정, 또 수감 기간 중 이것저것 도울 수있는 것들을 돕는다. 최근엔 출소 후 이들이 평화주의자로 떳떳하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중요한 활동 영역이 됐다. 개인이 감수해야 할 고통이 크기에 운동으로서 병역거부를 하려고 한다면 말리는 편이다. 감옥에서의 1년 6개월이란 겪지 않으면 더 좋은 일이니까.
-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인가.
재작년 8월, 9월이었을 거다. 8월에 헌재 결정이 나면서 그 동안 미뤄두던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재판이 한꺼번에 잡혀있었다. 그때 줄줄이 판결이 나는 걸 보면서 마음이 너무 안좋았다. 특히 병역거부자들이 가족관계 속에서 힘들어할 때는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마음이 아플 때가 많다.
- 병역거부 운동 과정에서 기억에 나는 이들이 있다면.
병역을 거부한 초등학교 교사만도 2명이나 되는데, 그 중에서 지금 청송 교도소에 수감 중인 최진씨는 가슴 아프게 기억이 난다. 병역거부 선언하고 결혼하셨는데 수감 중에 아이가 하늘나라로 가게 됐다.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당사자는 어떤 심정이겠는가. 한 여호와의 증인 신자 분은 60년대 병역거부로 감옥에 계시면서 바로 옆에서 친구가 맞아 죽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자신도 충분히 죽을 수 있겠다 싶으면서도 도저히 마음이 바꿔지지가 않더라고 했다. 인간의 신념이 극한의 상황에서도 그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그 아저씨도 너무 감동적이었다.
- 현역병으로 군 휴가를 나와 병역을 거부했던 강철민씨도 인상적이었다.
당시 KNCC에서 일주일 동안 같이 생활 하면서 참 인간적인 친구구나 느꼈다. 말 수도 별로 없고 어리숙했지만 군인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이라크전에 파병하는 부대에 있을 수가 없다고 말하는 게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현재 현역 전투경찰로 병역을 거부한 친구도 재판 중이다. 누구더라도 개인이 병역을 거부하는 것 자체가 감동스러운 과정이다.
-운동으로서 의미 있지만 병역거부자 당사자에겐 너무 가혹한 일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다. 누구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하고 너무 이상적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 옆에서 보면 그들은 너무나 소박하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실천하는 것뿐이다. 20대 초 중반의 너무나 착한 친구들이다.
- 한국에 병역거부로 감옥에 간 사람은 총 얼마나 되나.
정확한 기록은 없다. 여호와의 증인에서 각 개인들로부터 증언 기록을 받은 것만 7천장 정도 된다고 하더라. 일제시대 일본 군대를 거부한 이들에 대한 얘기가 독립운동사에 기록돼 있는 걸 최초로 치고 추정컨대 1만명 가량 되리라 보고 있다.
- 병역거부 운동이 평화운동으로서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나.
그 동안 평화운동이 통일운동의 확장의 의미에서 진행됐다면 90년대 후반부터 평화와 인권이라는 개념이 묶여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 같다. 제도나 구조의 변화로만이 아니라 미시적이고 보다 개인적인, 문화적인 평화운동에 관심에 높아진 거다. 평화운동은 구조를 바꾸는 운동임과 동시에 작은 곳에서부터 출발해야하고 대안을 만들어나가는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의미를 따지자면 병역거부운동이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 채식을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이도 평화운동의 한 방법인가.
병역거부 운동을 하게 되면서 그 방법론에서 온 것이다. 병역거부 운동을 하기 위해선 내 위치에서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채식을 하게 됐다. 주위에 채식을 해 온 친구들도 있었고 마침 내가 먹는 욕심이나 식탐도 별로 없다보니 남들보다 쉽게 하게 된 것 같다.
- 정작 본인은 군 징집 대상이 아닌 ‘여성’이다. 운동을 하면서 편견도 많았을 것 같은데.
군대도 안가는 여자가 ‘병역거부’ 어쩌고 하고 다닌다고 이상하게 보는 시선도 많았다. 하지만 병역거부가 단지 군대에 관한 얘기만은 아니다. 한 개인이 군대를 거부하길 선택한다는 것은, 군사주의에 길들여진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흔드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제 징병이나 군대 관련 활동에서 여성으로서 주어진 경계가 있더라. 여성인 내가 군대에 대해 말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일 거다. 병역거부 운동이 일면서 최근 군대 내 여성 참여나 유연화 등 ‘군대의 여성화’ 방향으로 가는 것 같기도 한데, 이 자체가 탈군사화되는 과정은 아니라고 본다. 근본적으로 한국사회의 탈군사화에 관심을 가져야한다.
-여성이기 때문에 평화운동에 더 적합하다라는 생각을 하나.
여성이기 때문에 유리한 점은 많은 것 같다. 소수자로서의 소외감 때문에 기존 세계에 진입하고자 하는 욕구도 클 수 있지만 뒤집어 보면 소수자로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대도 쉽다.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남에게 폭력적인 위치에 있지도 않고 소수자 감수성에 연대하기도 쉽다. 나도 한때는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감사하다.(^^) 병역거부 운동도 어떻게 보면 여성운동이지 않나 싶다.
인터뷰가 끝난 뒤 최정민씨는 현역 전투경찰로 얼마 전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유정민석씨의 재판이 열리는 곳으로 총총 발걸음을 향했다. 제2회 이우정평화상 시상식은 오는 30일 오후 4시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관 1층 강당에서 열린다.
최문주 기자 cmjoo@ngotimes.net
|
댓글 목록
돕
관리 메뉴
본문
원문 기사는 http://www.ngotimes.net/news_read.aspx?ano=37140 에 있습니다.부가 정보
김디온
관리 메뉴
본문
사진빨 감동적인데~~ 수상 축하^^부가 정보
stego
관리 메뉴
본문
앳되어 보이는 얼굴 사진빨 잘 받았군ㅋㅋ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