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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공의 병역거부 이유서

병역거부 이유서


군대는 전쟁을 생산하는 기구입니다.

자유인이냐 수인(囚人)이냐? 이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선택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절박한 질문입니다. 우리는 전지구적 전쟁이 항상 진행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2009년 1월 초에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가 전쟁 중이라는 소식이 들립니다. 우리는 지난 20세기를 전쟁의 세기로 기억합니다. 1,2차 세계대전 이외에도 수를 헤아리기 어려운 국지적인 전쟁들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21세기도 전쟁의 세기로 기억하게 될지 모릅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무역빌딩에 대한 테러공격 이후 미국 정부는 이라크를 침공했습니다. 국내외 양심 있는 언론인, 지식인, 문학인들이 이라크에 대한 미국전쟁의 참상을 전해주었습니다. 이것은 또 하나의 끔찍한 전쟁입니다. 이라크에 대한 미국전쟁에서 적(敵)은 이라크라는 국민국가나 테러행위를 한 자들만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은 이 전쟁이 ‘악’에 대한 전쟁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악이라니요. 누가, 무엇이 악인가요? 악을 규정하는 일은 매우 신중해야 하며 그렇기에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 정부가 전쟁을 일으킨 이후 미국 내에서 전쟁에 반대하는 다양한 사람들이나 이슬람인들이 ‘악’으로 규정되는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악’과 같은 추상적인 것이 적으로 정의되는 순간 다른 국가와 국민뿐만 아니라 내국민도 적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적은 국민국가 안팎을 가리지 않고 존재하게 됩니다. 이렇듯 우리는 언제라도 국민들이 (정부가 규정한) 적이 될 수 있는 ‘전쟁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도 이 전쟁의 당사자입니다. 2003년 한국 정부는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되지 않았음에도 미국 정부가 일으킨 전쟁에 국익의 이름으로 파병을 결정했고, 의회에서 이것이 통과되었습니다. 수많은 시민들이 국회 앞, 도심에서 연일 집회를 열었지만 정부와 일부 국회의원들은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정부는 고(故) 김선일 씨가 납치되었음에도 파병 결정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부는 국민들을 ‘잠재적 테러행위자들’로 여기며 지하철에서 쓰레기통을 치우고, (도무지 정의할 수 없는) ‘이상한’ 사람들을 신고하라며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키려 하였습니다. 놀랍게도 이 모습은 미국 정부가 내국민에게 보인 태도와 너무 흡사합니다.
저 또한 전쟁과 파병에 반대하는 이 수많은 사람들 속에 있었으며, 대학 학생회 집행부로서 전쟁반대 일일휴교 집회를 준비하고 연일 거리로 나갔습니다. 하지만 이후 한국군은 파병되었습니다. 또한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없다는 사실도 확인되어 미국 정부의 거짓이 드러났습니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와 파병에 찬성한 사람들은 사과하지 않았고 자신의 잘못을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분노할 일입니다.
군대는 이러한 전쟁을 준비하는 국가기구입니다. 실제 전쟁이 발생하지 않아도 군대는 전쟁이 발생했다는 가상의 전제 위에서 전쟁을 준비하는 군사훈련을 실행합니다. 그렇기에 군대는 ‘전쟁을 막기 위한 기구’가 아닙니다. 군대는 전쟁을 생산하는 기구입니다. 저는 이러한 군대에 입영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전쟁의 시대’라는 감옥 속에서 수인(囚人)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유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절박하고도 피할 수 없는 선택입니다.


전쟁은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습니다.

전쟁은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습니다. 전쟁은 민주주의의 즉각적인 유보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5조는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지난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전쟁과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전쟁에 참여를 결정한 한국 정부는 모두 헌법을 위반했습니다. 왜냐하면 불가피한 최후의 방어가 아닌 전쟁은 모두 침략전쟁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전쟁은 ‘예방과 선제 공격’임을 명확히 했기에 더욱더 큰 문제입니다. 이러한 전쟁이 침략전쟁이 아니라면 무엇이 침략전쟁입니까? 그럼에도 이 위헌 결정에 대한 책임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 정부는 헌법을 위반함으로써 민주주의를 훼손시켰음에도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잡히지 않는다면 한국의 헌법은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실현되지 않고 항상 미뤄진 상태일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침략전쟁에 참여했음에도 아무런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의미의 사과도 하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는 정부의 군대에 입영할 수 없습니다. 이 또한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절박한 선택입니다.


민주주의는 제헌권력입니다.

지난 2004년 8월 26일 헌법재판소의 ‘병역법 제88조 제1항 제1호 위헌제청’의 판결과 2004년 7월 15일 대법원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한 대법원 판결’로 한국의 민주주의는 다시 한 번 유예되었습니다. 저는 ‘국방의 의무’가 ‘양심의 자유’보다 우선한다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국가주의적 판결에 깊은 상심에 빠졌습니다. 이런 판결이 지속된다면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자유는 항상 국가주의적 판단에 의해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헌법을 만드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제정되어 성문화된 헌법보다 더 중요한 것은 헌법을 만드는 국민들의 행위 아닐까요? 한국의 헌법 제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명시하여 헌법을 만드는 원천으로서의 권력, 즉 제헌(制憲)권력이 국민에게 있음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제정․성문화된 헌법은 항상 이 제헌권력에 의해 변경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시적인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요? 재판부는 헌법 제39조 1항이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는 조항에 근거하여 이 점도 중시한 것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국방의 의무도 국민의 양심의 자유보다 우선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요? 국민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국방의 의무도 국가도 사라지기 때문에 항상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은 국민의 의사가 아닌가요? 이것이 민주주의의 원리가 아닌가요?
최근 저는 또 한 번 참담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국방부의 발표입니다. 2008년 12월 24일 국방부는 실질적으로 ‘대체복무제도 백지화’ 발표를 하였습니다. 국방부는 헌법재판소, 대법원, 국가인권위원회의 ‘국방의 의무와 양심의 자유가 충돌하여 발생하는 문제를 조화롭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권고도 무시한 채 대체복무제도 백지화 발표를 하였습니다. 설문조사 과정을 거친 발표라고 하였지만 최근 언론기사에 의하면, 국방부는 설문조사와는 아무 상관없이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반대하는 입장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체복무제도는 개헌을 하지 않고서도 추가 입법을 통해서만 도입할 수 있는 제도이며 외국의 다양한 대체복무제도와 그 도입 과정에 관한 사례들이 국내에도 여러 차례 소개되었습니다. 이런 기초적인 제도조차도 한국에서는 도입될 수 없는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아직 한국의 민주주의가 가야할 길이 멀다는 점을 말해줍니다. 한편으로는 오늘 이 땅을 사는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더욱더 많은 고민과 실천을 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할테지요.

이상이 부모님이 흘리시는 눈물에 제 가슴이 찢기는 것 같은 고통에도 불구하고 병역거부를 선택한 이유입니다. 아마 이 고통은 지난 수십년 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한 분들과 그들의 가족, 연인, 친구 그리고 그밖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같은 것이겠지요. 부모님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수십년 간 쌓인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의 고통들을 위로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한 걸음이 민주주의로 가는 즐거운 한 걸음이라고 믿습니다.


2009년 1월 6일 화요일 우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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