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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를 죽이다

규항넷(http://gyuhang.net/)에서 퍼온 그림. 내가 보기엔 천사를 가장한 악마가 죽임을 당하는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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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통합 결과 예측의 수식화?

자료 찾아 노조 홈피 방문했더니 이런 글도........ 

 

현재 과학기술노조와 공공연구전문노조와 통합이 추진되고 있는데 통합과 관련한 내용은 일단 생략하고.

 

아래는 과학기술노조 홈피 자유게시판에 한 조합원이 올린 글임.

정말 과기스러운 글. ㅋㅋ

 

 

 

제목 :   <퀴즈>과기<->연전 통합투표와 통합가결 가능성에 대한 확률적 예측?

 

ㅇ 기본전제/가정
- 투표대상 조합원 수 : 과기(5,000명), 연전(2,000명)
- 투표율 : 과기(80%), 연전(80%)
- 투표방법 : 조합원 개인별 직접/비밀/무기명 -> 무작위(?)/독립변수
- 개표방법 : 과기/연전소속 조합원별로 개별 개표
- 의결기준 : 과기/연전 각각 투표조합원 2/3이상 찬성 -> 통합의결
. 과기/연전 어느 한쪽에서도 2/3 찬성 부족시 -> 통합 결렬

ㅇ 퀴즈?
- 위 전제/가정하에 과기/연전의 통합 성사 확률? 가능성?
- 위 확률예측에 필요한 확률분포의 종류는?
- 오차의 범위?
- 검증방법?

ㅇ 응모요령 : 댓글달기

ㅇ 경품 : 미정
- 나름대로 타당성 있는 답안을 제시하고,
연락처를 남기는 분에 대하여
추후 게시자가 별도 연락.

# 조합원 각자의 관심과 판단, 의지에 따라 조합원 각자가 행하는 투표의
결과를 단순희 통계/확률적으로 예측하려는 점에서, 혹시 문제로는
성립조차 않는 사안이기는 하지만, 수학/통계학을 많이 사용하는 과기
노조 조합원의 구성과 때로는 통계적방법을 많이 사용하는 연전노조
소속조합원의 구성을 감안할 때, 퀴즈로는 되지 않을지?
(혹시 이런 중요한 사안을 단순히 장난끼 삼아 이야기한다고
하시는 분이 있으면 본 게시물은 삭제예정)

# 단, 아래와 같은 단순오답은 제외 요망
. 0.8 * 2/3 = 53%
. (0.8 * 2/3)*(0.8*2/3) = 28%
. 1 - (0.8 * 2/3) = 47%
. 1 - ((0.8 * 2/3)*(0.8 * 2/3)) = 72%
. 2/3 * 2/3 = 44%(4/9)
. 1 - (2/3 * 2/3) =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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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의 거처?

마음속의 기록으로는 그 감흥을 까먹을 거 같아 어떤 식이던 여행기를 남겨야 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시간이 없어서였는지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였는지 아직 시도하지 못하고 있다. 

일단 맛보기로 사진 한 장 올리고 다음부터 자세히 45일간의 네팔 산행기(랑탕, 안나푸르나, 에베레스트)를 적어보도록 할 참.  

개봉박두.

 

 

사진은 안나푸르나 산행 3일차 푼힐에서 파다파니 가는 오전 산길목 해발 3000미터 정도?, 경관의 황홀경에 그냥 주저 앉아 쉬고 있는 모습. 저멀리 8000미터급 안나푸르나 산군이 펼쳐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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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48미터에서 본 초모롱마(에베레스트)와 눕체의 해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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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에 대한 12가지 생각

 

사람들은 크고 화려한 것을 쫓아 다니지만 큰 것은 발전가능성이 별로 없습니다. 이미 다 되었거나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도중에 길을 잃기 쉽습니다. 반면에 작은 것들은 별 볼일 없어 보이지만 발전가능성이 큽니다.

[작은 것에 말걸기]  작은 것에 대한 12가지 생각

- 작은것이 아름답다 6월호

- 글. 황대권

 

작은 것은 경제적입니다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성과를 얻었을 때 경제적이라고 말합니다. 공룡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대규모 투자로 최대한 이익을 내는 것이 관행처럼 되어 있지만 그 대가가 너무 큽니다. 사실 그것은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외부로 떠넘기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 비용은 고스란히 일반 납세자의 부담으로 돌아가거나 자연 파괴로 이어집니다. 작은 것을 잘 운영할 때에라야 의미 있는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작은 것이 경제적이라는 것은 모든 다른 분야에서도 발견됩니다. 예컨대 들판 언저리에 아무렇게나 피어난 작은 야생화의 아름다움은 많은 돈을 주고 산 화려한 장미꽃 다발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에 견주어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거친 환경에서 피어낸 여리지만 완벽한 꽃송이를 보면 아름다움을 넘어 자연에 대한 경외감마저 느끼게 됩니다.

작은 것은 민주적입니다
사회 구성원들이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고 자기 권리를 동등하게 행사할 때 민주적이라고 말합니다. 오늘날 국가들은 스스로 민주주의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대부분 형식에 그칠 뿐 자본과 권력을 쥔 소수가 마음대로 국가를 주무릅니다. 조직이 커지면 관료주의와 소수에 의한 배타적 지배를 거의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을 정치학에서는 ‘소수 지배의 철칙’이라 합니다. 이 것을 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조직을 되도록 작게 만드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그 종류가 무수히 많지만 진정한 민주주의는 전체 주민에 의한 직접민주주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작은 마을 단위에서나 가능합니다.

작은 것은 공동체적입니다
공동체는 모든 생명의 기본 단위입니다. 인간은 지난 수만 년동안 마을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생명을 유지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난 백 년 동안 산업문명은 공동체를 철저히 해체하고 사람들을 뿌리 없는 유랑자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생명은 그 자체가 서로 기대어 사는 공동체적 존재인데 현대인은 자신의 뿌리를 잃어버리고 대신 다른 생명 공동체를 공격하여 그 생명력을 취하는 약탈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식민지 건설, 약소국 침략, 기업합병, 재벌의 문어발식 기업확장 따위가 그 사례입니다. 지구별에 생명과 평화를 가져오려면 공동체를 다시 살려야 합니다. 때때로 국가공동체니 무슨 기업공동체니 하는 말을 쓰는데 이는 공동체의 의미를 왜곡하는 언어 남용입니다. 공동체는 작습니다. 작아야지만 공동체 의미가 살아납니다. 한 인류학자 연구에 의하면 최적의 소그룹 공동체는 8~14명이, 마을공동체는 50~500명이 적당하다고 합니다. 직접민주주의는 인구 1000명이 넘어가면 제대로 기능하기 어려우며 500명 정도 규모에서 최대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작은 것은 생태적입니다
산업혁명 이후 지구 생태계가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은 ‘대량생산-대량소비-대량폐기’가 전 지구에서 벌어지면서입니다. 한정된 자원을 가진 지구별이 살아 있는 유기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러한 방식은 영원히 계속될 수 없습니다. 작은 것은 설사 그 자신이 오염물질을 가지고 있더라도 지구 생태계가 충분히 정화할 수 있습니다. 그보다도 생태계는 다양한 작은 집단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을수록 건강합니다. 현대 농업의 특징인 대규모 단일 경작은 환경오염과 생물종 다양성 감소의 주된 원인입니다. 인공위성을 통해 보면 지금 지구별은 사막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존의 모래사막이 계속 넓어지는 ‘황색사막화’는 물론이고, 단일경작에 의한 ‘녹색사막화’와 도시 확대에 의한 ‘회색사막화’도 심각한 수준에 와 있습니다. 아름다운 초록별을 우리 후손에게 물려주려면 ‘다양한 소규모생산-적정소비-폐기물 재활용’의 방식으로 삶의 패턴을 바꾸어야 합니다.

작은 것은 영성적입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다 영적 차원이 있습니다. ‘존재’는 물질과 영의 통일체입니다. 사람만이 영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개에는 개의 영이, 나무에는 나무의 영이, 산에는 산의 영이 있습니다. 심지어 돌멩이에도 영이 있습니다. 자연물의 영은 그 크기에 따라 영성의 깊이가 달라집니다. 산의 영은 조그만 돌멩이의 영보다 더 크고 위대합니다. 그리고 종족에 따라 크기에 상관없이 특정 동식물의 영이 더 위대하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인위적인 조직이나 구조물은 그 크기가 클수록 영성이 빈약한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인간의 삿된 욕망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왕조시대의 거대한 석조물이나 현대의 대형 교회에 들어서면 위압감을 먼저 느끼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그보다는 시골의 작은 성당이나 산중의 이름 없는 암자에서 깊은 영혼의 울림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규모 집회에서 보다 작은 집단에서 더 쉽게 영적 공명이 일어납니다. 수만 명이 한꺼번에 내지르는 붉은 악마의 응원함성은 일종의 집단적인 광기 혹은 카타르시스이지 거기에서 개인적으로 어떤 영적 고양 상태를 경험했다는 고백은 아직 들어본 일이 없습니다.

작은 것은 민중적입니다
민중은 원래 작고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의 집단입니다. 그들은 숫자만 많을 뿐이지 그 숫자를 이용하여 크고 멋있는 것을 추구하는 간특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크고 좋고 멋진 것은 늘 소수의 힘 있는 자들의 몫이었습니다. 민초들은 그저 제 앞에 있는 ‘작고 못 생긴 것들’을 애지중지하며 스스로 만족할 뿐입니다. 인사동 길거리 난전에서 흔히 마주치는 어느 민초가 만들었음직한 작은 목각 인형이나 일그러진 막사발 같은 것을 보면 그렇게 사랑스럽고 정이 갈 수가 없습니다. 민중은 애당초 크고 번듯한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정교한 기계나 도구도 사용할 줄 모릅니다. 그저 제 생긴 대로, 손이 가는 대로 깎고 주물러서 만들어냅니다. 이 자연스러움 속에 탁월한 민중적 예술성이 깃들어 있습니다.

작은 것은 유연합니다
작은 것은 누구나 쉽게 계획하고 쉽게 실천할 수 있습니다. 규모가 작기 때문에 하다가 잘못 되더라도 금방 고칠 수 있습니다. ‘지속가능성’은 절대 변하지 않는 견고함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능히 변할 수 있는 유연함에 있습니다. 국토의 왼쪽 가슴에 커다란 대못을 박아버린 새만금 사태는 큰 것이 한 번 잘못되면 얼마나 골치 아픈 일인지를 몸살이 나게 보여 주었습니다. 일이 잘못되었음이 분명한데도 지금까지 들인 돈과 노력이 아깝다고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믿음과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간 큰 지도자들이 벌이는 일은 늘 그렇습니다. 오, 하느님! 작은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안 되나요? 작은 것의 유연함을 아는 사람이 정치를 하면 안 되나요? ‘중단 없는 전진’을 외친 박 뭐시기 대통령, ‘하면 된다!’며 마구 밀어붙인 전 뭐시기, 보통사람의 위대한 업적을 위해 새만금 사업을 시작한 노 뭐시기… 아, 아, 알았습니다. 작은 것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시려는 당신의 그 깊은 배려를.

작은 것은 친근합니다
길거리를 가다가 우연히 공연포스터에서 평소 보고 싶었던 공연소식을 알게 되면 가슴이 뛸 것입니다. 그러나 공연장소가 ‘예술의 전당’인 것을 확인하면 설레던 마음이 금세 가라앉습니다. 가고 올 일이 아득해서입니다. 어째서 같은 도시 안에 있는 시설물이 이렇게 멀게만 느껴질까요? 너무 커서입니다. 너무 커서 도무지 정이 붙질 않습니다. 돌아다녀 보니 전국 주요 도시에 있는 문화예술회관들 사정이 비슷했습니다. 마치 도시들 간에 누가 크게 짓나 경쟁이라도 한 것 같고, 시민들은 아랑곳 않고 외국인들에게 과시하기 위해 지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은 의외로 크고 화려한 것보다 작고 소담스런 것에 더 마음이 쏠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친근하기 때문이지요. 이런 것을 두고 ‘인간척도’라고 합니다. 인간은 자기 몸의 크기와 비슷한 것에서 친근함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사람 몸의 크기와 길이를 기준으로 척도를 만들었던 그 옛날이 그리워집니다.

작은 것은 자립적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부자 나라가 빚이 가장 많다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나라뿐 아니라 회사도 규모가 클수록 빚이 많습니다. 세상은 참 이상합니다. 그냥 제가 지니고 있는 것을 가지고 서로 돕고 살면 세상이 훨씬 부드러워질 텐데 빚을 얻어 몸집을 잔뜩 부풀려서는 저보다 작은이들을 괴롭히는 일을 서슴지 않고 해댑니다. 이런 일을 잘해야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누구나 입만 열면 자립을 외치지만 이미 빚을 진 상태에서 자립을 달성하려면 자기 주변을 엄청나게 괴롭혀야 합니다. 작은 것은 빚을 질 필요가 없습니다. 규모가 작다 보니 자립하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물론 경제학에는 일정 규모 이상이 되어야 자립이 가능하다는 이론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자립은 시장을 넘어선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공동체 세상에서는 전표에 기록되지 않는 ‘비공식 부분’이 자립하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예컨대 가사노동, 품앗이, 공동 울력, 물물교환, 신용교환, 기증, 자원봉사, 호의 같은 것들이 그렇습니다. 이러한 선의의 경제는 규모가 작기 때문에 더욱 쉽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작은 것은 단순합니다
불은 물로 꺼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복잡한 것은 단순하게 풀어야 합니다. 미리 겁을 먹고 복잡한 방법을 쓰면 더욱 얽힐 뿐입니다. 마치 실타래를 풀듯 전체를 관조하고 하나하나 단순하게 풀어가야 합니다. 모든 복잡함은 단순함에서 옵니다. 그러나 복잡함에 머물지 않고 늘 단순함의 초심을 유지하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비결입니다. 생명력은 아주 단순한 구조 속에서 나옵니다. 복잡함은 생명력을 분산 고갈시킵니다. 우리의 영적 능력도 삶이 단순할수록 더욱 커집니다. 단순하게 사는 것은 바보가 되는 것이 아니라 현인이 되는 지름길입니다.

작은 것은 소박합니다
작은 것이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경우도 있습니다만 대체적으로 작은 것은 소박합니다. 소박한 밥상이란 말이 있습니다. 별로 가공하지 않은 투박한 음식으로 간소하게 차린 밥상을 뜻합니다. 흔히들 잔뜩 차려서 많이 먹어야 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지만 그것은 오히려 체력이 떨어지고 병에 걸리기 쉽습니다. 소박하게 차린 밥상을 천천히 정성스럽게 먹으면 생명력이 배가됩니다. 과식은 양으로 먹지만 소식은 질=생명을 먹기 때문입니다. 소박한 인간관계도 그러합니다. 작은 두 마음이 만나서 생명력이 두 배로 됩니다.

작은 것은 발전가능성이 큽니다
사람들은 크고 화려한 것을 쫓아 다니지만 큰 것은 발전가능성이 별로 없습니다. 이미 다 되었거나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도중에 길을 잃기 쉽습니다. 반면에 작은 것들은 별 볼일 없어 보이지만 발전가능성이 큽니다. 토종 씨앗 같은 것이 좋은 예입니다. 토종 씨앗은 수확량도 신통치 않고 맛과 크기도 별로라서 사람들이 잘 찾지 않습니다. 그러나 토종 씨앗은 신품종을 개발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원천자원입니다. 가게에서 파는 개량종자는 이미 개발이 완료되어 더 이상의 육종이 불가능한 것들입니다. 토종 씨앗은 아직 때묻지 않은 순수한 유전자를 지니고 있어 다양한 형태로 발전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것은 원색인 삼원색을 가지고 무궁무진한 색깔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이미 만들어진 혼합색으로는 별다른 색깔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황대권 님은 영광에서 농사를 지으며 생태공동체를 일구고 있다. 생명평화회의 모임에 함께하며 평화로운 삶과 생명의 가치를 이야기하신다. ≪백척간두에 서서≫, ≪야생초 편지≫를 쓰신 님은 올해부터 <작아>편집위원으로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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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내년에는? 10년 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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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기록



부끄럽기보단 슬픈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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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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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심장

예전보다는 확실히 감흥의 진동폭이 작아졌지만 그래도 볼 때마다 느껴지는 미묘한 심장 고동의 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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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의 평등

능력이나 체력의 차이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평등이란 있을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리히텐베르그는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곧 능력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권리의 평등이 더욱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지혜와 힘이 불평등한데 거기다 권리마저 불평등하다면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받는 폭압은 더욱 커져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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