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평정심'잃은 세데뇨?

경기 전 정근우(27) 는 상대 선발 세데뇨에 대한 질문에 "번트 수비 등 세밀한 기술 면에서 많이 나아진 모습을 보이기는 했다. 그러나 여느 도미니카 선수들처럼 자신의 기분을 절제하는 능력은 약한 것 같았다. 많은 공을 던지도록 유도하고 귀찮게 하면 스스로 무너질 것이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이는 짧은 순간 동안 사실이 되었다.


물론 그 많은 실점을 세데뇨 혼자 저지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단기전서 선취점이 얼마나 중요한 지 여부에 대해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세데뇨는 첫 타자 박재홍을 상대하며 볼카운트 2-2에서 던진 회심의 1구가 볼 판정을 받은 뒤 흔들리는 기색을 숨기지 못했고 제구력을 잃은 높은 실투로 인해 선제 결승포를 허용했다.

 

늘 보는 야구기사이지만 이런 기사를 보고 나면 생각을 한번 더 하게 만든다. 도미니카 출신이라 자기 기분을 절제하는 능력이 약하다. 그냥 넘어가기에는 뭔가 냄새가 나는 문장이다. 예컨대 흑인들은 몸이 유연하다거나 노래를 잘 부른다거나 이런 식의 언설들이 사실은 대부분의 사회적 자원에 대한 접근이 막혀있기에 체육이나 음악쪽으로밖에 진출을 못하는 유색인종의 현실을 호도하는 것처럼.

 

그렇게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남성들이 성폭력의 상황에서는 넘치는 충동을 순간 견디지 못해서 그런 것으로 면죄부를 받는다. 술이 취해서 '비정상'인 상태에서 저지른 성폭력 역시 '정상 참작'을 받는다. 무엇이 감정적이고 이성적인 것인가에 대한 잣대는 늘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보는' 사람에게 달려있다. 그렇기에 '보는' 남성들은 다른 집단에 타자성을 부여하면서 동시에 필요할 땐  자기집단 내부에 타자집단을 만들어 내는 것을 아무런 논리적 하자 없이 수행한다.

 

화이트 칼라들에겐 블루 칼라들이 덜 지적이고 좀 더 감정적으로 여겨지는 것처럼 야구선수를 비롯한 운동선수 집단 역시 뭔가 머리보다 몸이 앞서는 존재로 여겨진다. 그런 운동선수 집단 안에서 다시 타자가 되어 '괴력'을 가진 것처럼 묘사되는  외국인 선수(보통은 '용병'이라고 불리는)들. 이 집단 안에서도 다시 비백인들은 또 다른 딱지들 예컨대 감정변화가 심하다는 식의 이미지가 투영된다.

 

구체적인 인용을 하려니 그 선수에겐 참 미안하지만, 배영수 투수는 경기가 뜻대로 안 풀리면 표정에서 감정이 쉽게 읽히는 것을 볼 수 있다. 중얼중얼 욕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힌 적도 많다. 그런데 배영수 선수에 대해서는 "여느 한국인 선수들처럼 자기 기분을 절제하는 능력이 약하다"라고 회자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위에 인터뷰에 화자로 인용된 정근우나 그런 기사를 쓴 기자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다만 안 그래도 경기가 안 풀려서 속상했을 세데뇨가 근거없는 인종적 편견이 더해진 평가를 받고 있는 모습에 안타깝고 씁쓸하고 화도 좀 나는 것 같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